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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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와인교에 귀의한 한 사내의 좌충우돌 신앙생활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다. 첫 만남의 그 신비로운 체험에서 시작해 고진 박해(아내의 등짝 스매싱)와 경제적 어려움(가산탕진)을 이겨내며 자신의 믿음을 견지하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을 거짓 없이 유쾌하게 그려낸다.”_ 12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흥미로운 주제와 술향 폴폴 나는 에세이가 감성적이지 않고 이토록 실용적일 수 있다니. 술린이이자 와린이인 내 마음을 홀딱 가져간 책이다. 분명히 나는 와인, 그거 어렵지 않나?”라며 주저하던 와린이였는데, 와인을 영접한 신도의 간증서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데, 작가가 나의 손을 붙잡고서 와인을 어떻게 사야하며, 어떻게 마셔야하며, 음식과 분위기에 젖어드는 와인까지 다 챙겨서 가방에 넣어주는 책이다. 마치 학교에 입학했을 때, 등교하는 첫 날 꽉 찬 가방 든 것처럼 든든한 와인 지침서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되서 되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는 와인 책이다. 되돌아가서 읽는다면, 아직은 낯선 와인 이름과 와인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우린 아직 와린이니까.) 이해가 안되는 건 없다. 와인에 갓 입문한 초심자를 위한 쉬운 내용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글이 재미있다. 작가님의 글 자체가 정말이지 내 취향 저격이었다. 매끄럽게 읽힐 뿐만 아니라 가성비를 논하는 어딘지 모를 짭조름한 감성은 책을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을 부른다. 자신이 와인에 왜 이렇게나 진심이며, 그 진심의 끝에 맞이한 결과를 읽다보면 , 실용서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였지.”란 생각이 든다.

 

*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이 와인 간증서를 읽으며, “와멘-!”을 외치는 건 필연을 넘은 운명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무수히 많지만, 20대 초반에 난 주량을 꼭 알고 싶었다. 하지만 겁도 많았고 (착하지도 않으면서) 술을 안 마시는 것이 효의 전부라고 믿었던 난 나의 주량을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에 묻었다. 그런 내가 정기적으로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마신 술이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와인이었다. 성찬식 때마다 작은 잔에 담긴 검붉은 포도주 한 모금이 남긴 향이 싫지 않았다.

 

효녀의 삶을 뒤로한 나는 이제 나의 주량을 잘 알고 있다. 주종에 무관하게 기분 좋아지는 주량은 1, 몹시 기분이 좋아지는 주량은 2, 아슬아슬하게 기분 좋아지는 주량이 3잔이다.

그래서 난 너무 아쉽다. 이 책에 나온 와인을 언제 다 맛볼 수 있을지 아득해서. “연말연시 가성비 최강 와인 5”, “2만 원대 최강 와인 5”, “심리상담사 같은 와인 3”, “가을에 어울리는 와인 3”, “비 오는 날 추천 가성비 와인 3”, “책을 마치며 추천하는 와인 4”까지. 이 모든 와인을 모두 마셔보고 싶은데..

그나저나 와인을 열 줄도 모르는 진짜 와린이인 나는 와인 여는 법을 배우든, 와인을 잘 열어줄 수 있는 와인 메이트를 찾아야겠다. 아무래도 후자가 와인이 아깝지 않을 선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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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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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을 읽은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자랐던, 내가 좋아하는 동네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훨씬 전과 내가 자랐을 때 본 동네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벽수산장이란 이름과 그 터가 어디인지만 알았고, 친구 집을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럴싸한 상상을 더해가며 읽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잘 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데다 심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도 지나, 일본과 수교가 다시 이루어진 1960년대 중반을 무대로 한 이야기다. 친일과 독립이란 날이 선 경계가 지독한 가난으로 흐릿해져만 갈 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흡입력 있는 문체로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억하고 싶을 때가 아닌 시기의 일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눅눅한 그 시대와 닮은 서사로 몰입감을 더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이해동은 친일파가 남긴 벽수산장이란 저택에 빌붙어 다시 아버지가 누렸던 영광을 다시 누리고자 하는 윤원섭의 말을 통역해야 하는 일을 하는 청년이다.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원섭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해동이 답답하면서 나라도 아무 말 못 하겠구나 싶어 씁쓸함을 몇 번이나 삼켰다.

해동은 통역 비서의 본분을 잊은 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통역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하는 것은 그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질문을 던졌다.

(중략)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일등을 할 거까지야 있었을까?”

둘의 대화가 항상 답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했던 해동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던 순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반문을 주저하고 속으로 삼켰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던 순간부터 소설의 흐름은 달라진다. 해동과 윤섭 외에도 다른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지난 석 달 동안 그것의 질긴 생명력을 경험하면서 해동은 그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는 분하고 고까울지언정 그것이 아예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사라지더라도 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거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라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니, 어떤 해석으로 만들어졌던 건 아닌지, 또 그런 해석의 틈에 이상한 논리가 들어와 꽤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상하다 느꼈을 때, 내가 떠올린 의문이 나의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순서가 있지 순서가. 저런 데에 나무가 서려면 씨앗부터 천천히 자라야 해. 이렇게 산 안쪽에, 그나마 흙이 좋은 데부터 나무가 서야지. 그러면 나중에 저렇게 박한 땅에도 씨앗이 떨어져서 자라겠지. 하지만 지금 저기다가 나무를 세우려고 하면 되지도 않는단 말이야. 뭐든지 제대로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네.”

벽수산장은 무너졌고, 제법 잊혔다. 그렇다면 해동의 마음에는 무엇이 제대로 심어졌을까. 1960년대를 지나 2020년대에는 박해던 땅에도 씨앗이 잘 떨어져 자라고 있을까. 내 생각에 영원한 유산은 벽수산장도 힘도 아니었다. 해동은 알지 않을까, 그 유산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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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 - 프로 일잘러를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 공존라이프
장금숙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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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만 뭔가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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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 - 프로 일잘러를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 공존라이프
장금숙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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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일잘러가 되고 싶은 소신을 목표로 다잡기 위해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을 읽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른 두 직종을 오간 저자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 나온 많은 조언과 제안은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이지만, 실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둔 이야기이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기획이다. "창의적인 마케터가 되고, 물건을 잘 파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결국 좋은 기획자일 때 가능하다.

내가 하고 있는 출판 마케팅으로 생각해보았다. 마케터이지만 세상에 필요한 책이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필요한 메시지를 잘 팔 수 있는 방법도 모두 기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편집자가 만들고 기획한 책을 파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좋은 마케터는 아닐 것이다. 책을 기획한 의도와 필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기획해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 아는 과정이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영화와 트라우마.. 무엇을 해야할까?)

덧붙여 20여 년간 디자이너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초보 마케터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마케터로 오래도록 살다가 디자이너로 사는 것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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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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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다. 유독 책에 깊이 몰입하게 되는 때가 있고 책읽기에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때가 있다. 요즘 내가 책읽기에 대한 의욕이 한풀 꺾인 상태다. 매일매일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야금야금 채우던 손길이 더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온라인 서점이 아닌 책에서 책을 불러내야 한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또 다른 책을 부르는 책이었다. 


온라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책소개 혹은 서점에서 책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얻을 수 있는 책 정보와 다른 결의 만남을 부른다. 이미 그 책들을 소화해 다른 책과 함께 자기 생각을 버무린 글에는 이 책을 읽어보라는 강력한 추천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사라마구는 심금을 울리는 품위와 재치를 담아, 그리고 자기 작품을 완전히 제어하는 위대한 예술가답게 단순하게 글을 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원로이며 눈물이 있는 남자, 지혜로운 남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라는 글을 읽고 어떻게 사라마구 책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책광고란 이런 것일까.) 


처음에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들어가고, 그 다음은 작가에 대한 견해. 그렇게 르 귄이란 작가가 자신의 내면에 쌓인 책의 세계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책에 대한 책은 유독 책에 대한 짙은 사랑이 묻어 있다. 글을 따라가면 그녀가 감동한 서사와 감정의 동요가 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인 나에게 이 책은 또다른 책의 세계를 통과하는 기분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나니 부지런히 책을 찾아내 일상을 독서로 꽉꽉 채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스쳤다.


SF 판타지의 거장 어슐러 르 귄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고 나니, 그녀가 만든 세계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그녀가 책과 책의 세계에 대해 쓴 책을 읽다보니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칼비노의 작품이 궁금해져 미리보기로 살포시 읽었다. 이내 어려워 장바구니에 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녀가 세밀하게 서술한 칼비노의 세계에 내가 들어서지 않을까 싶다. 



*


세상엔 많은 나쁜 책들이 있지요. 나쁜 장르는 없어요.

물론 어떤독자에게 매력이 없는 장르는 있지요. 모든 서사 유형을 똑같이 좋아하거나 가치 있게 여기는 독자라면 무차별하다 못해 무능해질걸요. _ 40쪽


선명하게 말하되, 그 말들 주변에 침묵의 영역을, 빈 공간을 남겨 두어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다른 진실, 더 나아간 진실과 통찰들이 생길 수 있게 하는 거죠. 그 공간이야말로 이런 말들이 나오는 곳이니까요. _ 98쪽


우리 손끝에 달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 읽기를 익힌 고집스럽고 내구력 있는 소수가 오랫동안 그러했듯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으리라 믿는다. 종이든 화면이든,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것이다.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게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하기에, 그리고 아무리 막연하다 해도 그 공유가 중요하다고 느끼기에, 어떻게 해서든 책이 다음 세대에도 존재하도록 만들고야 말 것이다. _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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