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울음소리 (타계 10주기 특별판)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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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렁이 울음소리》에 많은 소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나목>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박완서 선생님의 첫 작품이었지만, 왜 그렇게나 미뤄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서야 읽었다. 이 책을 사면서 <나목>을 드디어 읽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서도 한참 뒤인 지금에서야 읽었다.


등단 이후 그녀의 삶에 일어난 일을 알기 때문도 있지만, 슬픔이 덮치기 전에 쓴 그리고 숨어가며 몰래 쓴 <나목>을 두고 많은 사람이 싱그럽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과거까지도 소설에 녹여내 표현하고 싶은 어느 작가의 순수한 열망이 보이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어긋난 마음의 갈래는 마음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메말랐던 이경을 보며 나도 소설 《모순》과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생각났다. 마음에 다른 이가 있음을 알지만 별수 없어서이든 저마다의 이유로 그 삶을 바꾸지 않고 이어나가는 이의 삶이 주는 미묘함이 있었다.

겨울나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목은 잠시 쉬어가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무라고 한다. (대체로 꽃은 봄에 피니까)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움트는 봄의 초입과 닮은 소설이었다. 내가 읽었던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 좋았고, 그 이유를 가늠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작품이 있었지만, 역시 처음 읽는 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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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 ADHD, 아스퍼거 등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를 위한 부모 가이드
데보라 레버 지음, 이로미 옮김 / 수오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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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에서 조금 벗어난 자녀를 둔 부모는 다른 부모와 대화에서 자식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 혹시나 싶은 기대가 역시나 싶은 현실로 다가올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다. ‘장애도’라는 말이 있다. 장애가 있는 자녀나 가족 구성원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살아나가기 위해 때론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로 세상과 멀어지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아이도 부모도 모두 힘들어질 뿐이다.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의 데보라 레버는 다른 양육 방식을 제안한다. 보통에서 조금 벗어난 아이를 가리키는 수많은 진단명( ADHD, 아스퍼거 증후군, 불안장애, 학습장애 등)이 아닌 아이의 ‘다름’과 ‘다양성’을 지지해주는 양육법을 소개한다. 그녀는 진단명이 아닌 두뇌회로가 다른 ‘신경다양성’을 가진 것이라고 재정의하고,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18가지 실천 양육법을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보통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늘날 평균적으로 약 20%의 아이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이 사회에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남들과 다른 자녀를 보며 불안의 질문을 대뇐다. 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지, 언젠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 사회에서 우리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될지. 저자는 불안과 걱정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에게 아이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하며, 아이만을 위한 길과 방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비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하지 않는다. 자녀로 인해 불안한 마음을 인정할 것을 말하며, 아이의 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일 것을 말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에 다가선 불가능한 기대를 버릴 것을 말한다. 대신 그 자리에 아이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아이 맞춤형 시간을 가동하며, 자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조언한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지칠 수 있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지며, 배우자와 상의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실용적인 지침은 두뇌회로가 남들과 다른 아이를 둔 부모뿐만 아니라 내 아이만을 위한 양육법을 고민하는 부모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많다.

개인적으로 장애가 있는 남동생이 있는 누나로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이 책의 메시지가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진 부모님이 겪는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지켜보았던 이로써 조금이라도 혼자 자신의 자녀를 감당하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모님이 이 책과 함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길 바랬다. 저자가 조직한 커뮤니티처럼 우리나라에도 각종 온라인 공간에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의 커뮤니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조금 더 우리사회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육아서이지만 동시에 두뇌회로가 다른 아이가 우리 사회에 존재할 때 개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도 주는 책이었다.)

*

두뇌 회로가 다른 아이를 양육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반복해서 하고 정직하게 그 답을 찾아보자. _145쪽

아이의 독특한 두뇌회로를 적극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할 존재이며, 존재만으로 특별한 선물이다. _188쪽

아이의 삶이 우리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라서 스스로에게 슬퍼할 여지를 허용했듯, 우리나 아이들에게 일어난 것과 관련해 남들의 불쾌함이나 불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중략) 괜찮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모든 힘든 감정처럼 핵심은 그 감정을 인정하고, 표출하고, 넘어가는 데 있다. _ 327쪽

현재를 살지 않으면 작은 것들을 놓친다. 뭔가 좋은 것을 찾으려고 열심히 알아보는 때조차 아주 작지만 밝게 빛나는 좋은 일을 놓쳐버린다. 작은 성장이지만 빛나는 순간, 기쁨이 터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것을 경험하려면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현재 이곳에. _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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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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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은 다양한 세대의 여성 이야기가 모아진 소설집이다. 내 주변 어딘가에서 있었을지도 모르고, 기사를 통해, SNS를 통해서 보았을 법한 일이 한 편 한 편 소설로 옮겨져 있었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면서 그렇지 않았다. 치매가 있는 언니가 있는 동생, 자신의 소설에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악플러를 고소하는 사람, 아버지와 적당한 거리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딸, 본인의 이름 대신 '미스 김'으로 있는 존재, 가스라이팅을 하는 연인이 있는 사람, 친정엄마에게 육아를 부탁해야만 하는 딸 등이 소설에 등장한다.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불안한 상황에 있었고 조남주 작가는 그 불안한 인물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자신을 지키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소설을 읽는 이가 인물을 걱정하기보다, 표현하지 않은 인물들의 내일이 오늘보다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소설집에서 <오로라의 밤>과 <여자아이는 자라서>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첫사랑 2020>은 귀엽고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인물들이 걱정하고 신경 쓰이는 마음을 간직한 만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지금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순간에 자신이 걱정하는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렇게 최선의 오늘을 보내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여성이기에 날 서고 예민한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면 나의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그 순간이 다시금 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듣고 그 마음을 생각하는 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여성주의 서사의 소설을 자주 읽지 않지만 읽을 때면 내가 하는 고민에 내 성별이 '여성'이어서 긋는 한계에 나도 모르게 쌓인 우울감을 툭 털어내게끔 만든다.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닐까 속으로만 생각했던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지는 위안을 얻곤 한다. 조남주 작가의 이번 신작 《우리가 쓴 것》은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 이야기가 모여 있어, 이런 생각도 했다. 다른 세대의 다양한 여성 서사를 다시 이야기하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곳에 가닿았으면 좋겠다고.

 

※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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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리스 Fearless - 한국 최초를 써 내려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유나양의 정공법
유나양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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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리스는 행복한 성공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바라는 간절한 꿈을 따르는 용기를 북돋는 책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집는 순간, 단번에 다 읽었다. 전하는 메시지 하나하나를 천천히 살펴봐야지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뉴욕에서 하이앤드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유나양(YUNA YANG)의 오너로 일하며 경험한 것에서 오는 지혜와 에너지에 이끌려서 일까. 어느 한 순간에서 끊을 수 없어 단번에 책을 다 읽었다.

 

피어리스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유나양이 어떻게 일했는지 삶을 대하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가 이뤄낸 결과물을 녹여낸 책이라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건 단순히 자신의 성공 비결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가꿔오며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통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성공이 아닌 스스로에게 당당한 나만의 성공을 이뤘는지를 전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녀가 고수한 원칙은 늘 다른 이들의 성공 법칙과 달랐다. 누군가가 성공으로 다가갔던 방법을 쫓는 것이 성공에 한 발 더 빨리 다가서는 길 일 텐데, 왜 유나양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까. 의문이 생겼다. 유나양이 말하는 성공은 통상적인 성공과 달랐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할 수 있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탄탄한 자기 브랜드를 유지 발전하는 것이었다. 빠르고 급진적인 성공이 아닌 자신이 만들고 싶은 하이앤드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만의 성공 원칙을 고수했다.

 

책을 읽으며 유나양은 천천히 깊이 새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디자이너로 데뷔를 성공적으로 했지만 그녀의 삶은 빠르고 화려하게 보인다. 그녀의 글에 한 사람 한사람에게, 패션계에 천천히 그리고 깊게 자신과 유나양 브랜드 존재감을 남기기 위해 만든 태도가 보인다. 어떤 결정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지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결정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살펴보는 태도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패션 디자이너에서 자신만의 탄탄한 브랜드를 가진 유나양의 이야기는 스스로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조언이 되어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가진 삶의 태도와 생각이 나라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이 아닌 행복한 성공이라는 철학을 가진 유나양의 10년이 진하게 담긴 피어리스에는 제목 그대로 두려움 없이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 사람이 보여주는 궤적이 고스라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성공도 하고 싶고, 나만의 브랜드도 가지고 싶고, 소망이 많은 내가 따라야 하는 것은 유나양이 해온 삶의 방식을 그대로 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을 따라 나만의 원칙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이 책은 전하고 있다. 하기 싫은 일에는 싫은데요.”를 하고 싶은 일에는 내 열정을 쏟아 진심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지금보다 더 자기답게 살고 싶은, 나만의 삶의 매력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럼 모든 사람에게 유나양은 말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쫓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따라가는 길에 행복한 성공을 만났듯이 당신도 그러기를 응원한다고.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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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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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할 수밖에 없는 재난이 7년이나 지속된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 녹지 않은 눈이 세상을 덮은 디스토피아에서 두 아이가 마주한 세상은 분명 절망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희망찬 발돋움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함께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연결감이 보여주는 온기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적당한 온기. 녹지 않는 눈을 녹여낼 뜨거운 온도가 아닌 그 눈에 파묻히지 않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의지와 닮은 온도였다. 


재난 소설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지만. 시원하게 읽었다. 걸리는 부분 없이 눈썰매 타고 내려가는 기분으로 모루와 이월의 이야기를 읽었다. 반려견과 엄마 그리고 이모 등.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앞에선 주인공들과 함께 멈칫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읽는 느낌은 시원스러움이었다. 그래서 끝날 듯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란 상황에 포개어진 이 소설이 음울하지 않은 것이 묘한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큰 재난이 일어나면 그 이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다.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길 바라지만, 그 이전의 삶이 아닌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시간을 드라이브 하듯이 달려 나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기분 좋은 드라이브가 될 수는 없겠지만, 혼자가 아닌 옆자리에 다정한 봄이 함께 타고 있다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게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이 함께한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싸늘할 수밖에 없는 상왕이었지만, 다른 온도로 나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누군가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가는 와중에 나에게 다정한 온기가 되어준 사람을 ‘함께’, ‘자주’ 만나고 싶다. 그나저나 언제쯤 끝나려나, 이 재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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