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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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 바다를 보았더라면

아쉬움을 달랠 겸.. 영국에서 바라본 대서양 사진이다.


엘레나 페란테의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10대 후반부터 이어진 레누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지하철 안에서, 도심의 카페에서 읽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태양이 바다 지평선과 닿는 해질 무렵, 이탈리아 남부의 이름 모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읽었다면, 뒤엉킬 대로 엉킨 그녀의 마음의 타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인생을 두고 계획을 세우곤 한다.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나'를 만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만의 청사진을 만들곤 한다. 그 계획은 작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지부터, 학업 계획,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할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어떤 결혼을 할지 등 다양하다.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그 리스트를 체크하며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워도, 아무리 머리로 생각해도 그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한 일들이 때로 한순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일에 사람의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머리로 하는 계획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고민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고민을 명료하고 이성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는 참 힘들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민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레누가 경험한 일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믿었던 신랑에 대한 배신으로 끝난 결혼식 피로연, 신혼여행에서 '강간'당하는 신부, 가정 폭력, 혼외정사. 사랑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빼앗긴 상실감과 반발심으로 그 남자의 아버지와 맺는 성관계 가출, 맞바람, 임신, 이혼...
-661쪽


옮긴이의 요약된 글처럼. 정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건 사건 중심적인 요약으로, 이 요약은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친한 친구"라는 관계. 가족이라는 관계가 '나'의 자아 속에 침투해오며 생기는 고민들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하고, 이미 맺은 관계를 끊기에 너무 가까이 살고, 너무 많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멀어질 수 없는 존재가 '나(두 소녀)'의 삶에 침투해온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 침투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상처로 들어온다. 


남다른 천재성을 가지고 있던 소녀와 열등감을 두고서 천천히 배워나가는 소녀. 두 소녀는 상대방이 가지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며 상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할퀸다.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것에서 육체를 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가장 아프고 공허감을 느끼는 존재는 어김없이 '나(레누 혹은 릴라)'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른 인물이 주인공이었다면,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두 사람의 생각이 관계 속에서 뒤틀려 고민을 낳았다고만 한다면, 소설로서는 무언가 아쉽다. 잘못된 결혼과 사랑하는 남자의 아버지와 성관계라는 자신의 삶에 후회할 일을 했다로 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두 소녀의 고민의 결과로 발생한 후회할 일을 저마다 극복하는 과정을 담는다. 특히 레누는 '소설'을 통해 이를 돌아본다. 이는 마치 박완서 작가님의 "내 안의 언어사대주의 엿보기"라는 글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치명적인 치부를 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내면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나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사건의 구성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리노를 사랑한 레누는 끊임없이 자신을 열등감에 휩싸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믿었던 릴라에게 리노를 빼앗겼다는 사실과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리노의 아버지 도나토 사라토레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글을 통해 고백한다. 숨길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일을 드러낸다는 레누의 행동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가지 방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쓴 레누의 감정을 따라가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부분들이 툭툭 마음에 박힌다. 1950년대 이탈리아 남부 도시의 이야기가 2017년 8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에 말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내가 지금 하지 않지만, 그 행동 너머의 감정은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나'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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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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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한 친구이자 내가 가장 미워한 친구.
이 아이러니한 관계를 소설로 풀어냈다.

친구를 떠올르게 하는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

 

 

나는 친구를 질투해본적 있다. 질투 뿐만 아니라 부러워한적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종종 부러워한다.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냥 친구와 달리 내가 그 친구의 장점을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수많은 친구의 좋은 점, 닮고 싶은 점을 말이다. 특히, 내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인 것 같은데 친구가 더 좋은 성과, 결과를 가지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허탈함과 함께 친구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질투심을 입밖으로 쉽게 내뱉지는 못했다. 친한 친구에게 "난 네가 부러워."라는 말까지는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네가 더 좋을 수 있지."라는 어조의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다행인 점은 나의 경우에, 이 질투나 부러움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의 눈부신 친구> 레누는 조금 다르다. 그녀의 가장 눈부신 우정은 질투가 불러온 감정과 뒤엉켜 있었다.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 복합한 관계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고, '우정'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렸다. 하지만 '친구'와 '우정'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감정의 층위는 깊이도 넓이도 달랐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의 솔직한 감정 표현과 소설 속 상황 설정에 있었다.

레누는 마음 속 이야기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지레짐작하게끔 만들지 않는다. 레누가 지금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자존감이 약해졌는지, 진정으로 릴라를 좋아하는지, 릴라를 얼마나 의지했는지에 대해 거침없다. 반면 릴라의 감정은 이 소설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읽는 독자라면 알 수 있다. 릴라 역시 레누와 비슷하다. 릴라도 가정 형편상 할 수 없었던 것을 애써 덤덤하려고 하고, 레누를 가르치면서 때로는 자신이 느끼는 공허감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레누는 보지 못했지만, 독자는 릴라 역시 레누가 느낀 감정을 릴라 역시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소설은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지 못하고 친구에게 의존하는 류의 질투에 휩싸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친하지만 또 동시에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리면서 자신의 결핍을 상대를 통해 확인하며, 한 발 더 나아간. 이 복잡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설정의 배경을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 남부 마을로 설정한 점이 흥미롭다.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상황은 세계 대전을 감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문제는 패전으로 야기한 가난과 사회적 문제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일어났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는 부유한 북부와 달리 더 전쟁의 상처가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남부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끌어 나간 이가 "마피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환경 속에 두 소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영향이 섞어져 이야기가 보다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지금과 사뭇다른 환경의 이야기이지만,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는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공감을 불러온다. 그 상황과 여건이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의 경험이 다른듯 닮은듯 공감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이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점이 나의 공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릴라를 보며 나도 모르게 떠오른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보다 훨씬 책을 잘 읽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한 점을 발견하곤 했고, 이를 아무런 사심 없이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수록 나는 레누가 그랬듯이 더 열심히 공부했고, 때로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나의 부러움은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와 내 친구가 좋아하는 분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내가 친구와 비교할 것이 없어지면서 질투심은 나와 친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관계로 나아갔다.
릴라와 레누 역시 관심사 뿐만 아니라 삶의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고등교육을 받는 것과 일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다른 길을 걷는 것은 파국으로 치닿는 듯 싶다가, 서로가 느꼈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을 불러온다. 즉, 애써 감추려고 했던 다층적 우정이 그 가리던 마음이 벗겨진다.
내가 초등학교 때 친해져, 자라면서 서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친구와 난 지금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만나지만 피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어린 시절 비슷하게 경쟁심을 가졌던 때의 공유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단지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이유가 큰 것 같다. 우리는 레누와 릴라처럼 그때 느낀 질투를 결국 웃음으로, 우리가 생각한 우정이라는 좋은 감정을 포장해버려서가 아닐까. 우정의 다층적 면모를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왠지 모를 아쉬움 한조각을 남긴 책 한권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만족함을 듬뿍 주었다.)

 

 

 

 

밑줄친 문장...

 

리노는 머리는 텅비어 있고 가슴은 자기 생각만으로 꽉 차 있으니까.
16쪽

"부탁인데, 한 번쯤은 네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해주렴. 어머니를 찾지 말아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한 그대로다. 어머니를 찾아봤자 소용없을 테니 그만두고 이제 제발 혼자 사는 법을 배워. 이제 네게도 연락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17쪽

우리가 천천히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공포의 대상에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28쪽

릴라가 정말 알려고 했던 것은 '예전'의 기준이 되는 최초의 순간이 과연 존재했는지 하는 것이다.
39쪽

"릴라, 대체 누가 네게 글자를 가르쳐준 거지?"
자그마한 몸집에 짙은 색 머리와 눈동자, 그만큼이나 짙은 색 앞치마를 입고 목에는 분홍색 리본을 단, 기껏해야 6년의 세월을 살아온 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요."
48-49쪽

그의 침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복수에 마침표를 찍었다.
63쪽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릴라에게 무엇인가를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79쪽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나 언젠가부터 생각이 바뀌어서 돈을 공부와 연결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책을 쓸 수 있고 책이 팔리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가 수많은 상자에 담긴 빛나는 금화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보물 상자들이 있는 곳까지 자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책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함께 책을 쓰기로 하자."
언젠가 릴라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88쪽

릴라라면 온 세상이 머릿속에 말끔하게 정된되어 있고 그 때문에라도 우리 주위를 둘러싼 세상이 엉망이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느낌에 나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95쪽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마을은 마치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과거의 증오나 대립관계, 추악한 면으로 이뤄진 본연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려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139쪽

나와 릴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내게는 동생밖에 없어서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릴라에게는 누구에게서든 그녀를 보호해줄 수 있는 리노가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148쪽

세상은 이렇게 밝고 따뜻한데 어째서 우리 동네만 폭력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177쪽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모다 빨리, 나보다 더 잘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나가려 하는 걸까.
182쪽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207쪽

"내가 오빠에게 행운은 길보퉁이에 있다고 믿게 했어."
234쪽

"이제 책을 빌리러 가지 않아.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거든."
나는 공부를 계속했다. 독서는 이제 즐거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릴라가 나에 대해 신경을 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릴라가 공부에서나 독서에서나 학교에서나 페라로 선생님의 도서실에서 책을 빌릴 때 나보다 앞서나가려고 하지 않고부터는 책을 읽는다는 것치 예전처럼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그저 내가 잘하는 일이고, 이일로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일 정도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44쪽

나는 릴라의 글솜씨에 또다시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는 형상화할 수 있고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때문에 눈물이 앞을 흐렸다. 물론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이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도 않는데 릴라가 그토록 뛰어나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했다. 동시에 그 기쁨은 나를 불행하게 했고 나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306쪽

나와 스테파노를 움직이는 방식을 보면 릴라는 자신을 가둔 새장에서 벗어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으려 하는 것 같았다.
393쪽

"이제 다시는 네가 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왜?"
그녀는 잠시 생각해 잠겼다.
"나를 아프게 하니까."
릴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손으로 이마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400-401쪽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를 정해진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도 매우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그녀를 창백한 얼굴에 말총머리를 하고, 맹금류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구려 옷을 입은 과거의 릴라로 되돌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녀에게서 동네의 재클린 케네디 같은 분위기를 걷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릴라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그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었다.
413-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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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 - 스티븐 코비 지혜의 말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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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名言. famous saying...
국어사전의 뜻을 살펴보면,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 '널리 알려진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지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이나, 널리 알려진 말이기 때문에 명언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말속에 담긴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기억에 남아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명언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이유는 '생각의 임계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 혹은 조금 난해한 문장에 담긴 메시지 안에는 일상적인 생각의 정도에서 닿지 못했던 것이 담겨 있기 때문에 명언으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코비의 말을 엮어 만든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는 18가지 주제에 대한 '원칙' '조언'이 담겨있다.

책임. 균형. 선택. 기여. 용기. 효과성. 공감. 성실성. 리더십. 배움. 사랑. 잠재력. 자기 절제. 시너지. 신뢰. 진실. 비전. 승-승.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거리와 닿아 있는 것들이다. 가지고 싶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다. 그래서일까? 이 요소에 대해 인터넷, 책, 강연 등 다양한 매체에 방법, 중요성, 그리고 핵심 메시지만 요약한 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그 글들이 개인의 마음에 얼마나 닿을까? 이 가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책임감, 삶의 균형,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중요성,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용기, 효과성, 성실성,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리더십, 배움의 자세, 사랑, 내 안의 잠재력을 가지는 법, 자기 절제 등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중요한 것을 다룬 메시지가 개인의 마음에 닿기도 하고 "그냥 뻔한 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차이는 바로, 개인의 생각 '임계점'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 속 메시지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생각의 임계점을 넘어선 문자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모든 문장이 다 와 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티븐 코비의 하나의 생각 흐름 속에 놓인 문장들은 개인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와 닿을 수 있는 조언들이 담겨 있다.

7장 공감의 원칙에는 총 32개의 메시지가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믿어주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는 공감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공감의 사회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자신의 자서전적인 과거 경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 메시지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경험이 적다고 생각한 이들과 대화를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즉, 내 이야기가 좋은 선례이기 때문에 이를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한다. (안타깝게 이 문장을 보고 이와 같은 성찰을 했으면 하는 사람은 이 메시지가 그의 생각의 임계점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가슴속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매듭을 풀려면 진실하고 솔직하며 서로를 긍정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공감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는 메시지가 담긴 문장이다.

과연 이 문장들이 같은 사람에게 닿을까? 아니다.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눈에 더 들어오는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문장에 한 사람의 마음에 닿고 닿지 못하고의 문제는 개인의 생각의 임계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의 임계점에 닿을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 있다. 18가지의 분야별로 또 그 분야 속 다른 결의 메시지가 책 속에 있다.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책을 펼쳐보고 그 해결점이 담겨 있는 '해결의 책'을 보듯이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를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무가 책임감(주도적 대처능력)을 낳는다.
13쪽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사람들이 실수를 용서하는 것은 대부분의 실수란 판단의 오류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의, 불순한 동기, 오만, 정당화 같은
마음의 실수는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14쪽

관계에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의 역할이나 목표가 충돌하거나 기대치가 달라서 일어난다.
15쪽

자아의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찰할 수 있다.
16쪽


이성적인 마음의 소리를 할 때가 있고
내면적인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어야 할 때가 있다.
22-23쪽

우리는 모두 변화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다.
그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
28쪽


나는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의 결과이다.
29쪽

당신의 생각, 믿음, 이상 그리고 철학으로
만드는 환경이 당신이 평생 살아갈 환경이다.
35쪽

좋음은 종종 최상을 막는 방해꾼이다.
44쪽

살며, 사랑하며, 웃으며, 그리고 유산을 남겨라.
59쪽

스스로를 교육시키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는
꾸준히 양질의 독서를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61쪽

살면서 한 번쯤은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믿어주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66쪽

공감적 경청은 이해하기 위하여 듣는 것이다.
즉,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을 하다 보면 타인의 사고의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틀을 통해 상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67쪽

두려움은 가슴속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매듭을 풀려면 진실하고 솔직하며
서로를 긍정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지적인 이해와는 전혀 무관하다.
68쪽

사람들은 점차 그들이 받는 대우나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73쪽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은 복잡하고 괴로운 일이다.
83쪽

좌절은 기대의 소산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는 종종 자신의 가치나 우선순위보다 사회적인 기준을 반영한다.
84쪽

결국 우리의 성품이 어떤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한다.
85쪽

자신과 작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라. 
그리고 조금 더 큰 약속을 하고, 또 그보다 더 큰 약속을 하고 꼭 지켜라.
결국 그 약속을 지켰을 때 생기는 자긍심이
그날 당신의 기분보다 더 큰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진정한 힘의 원천, 즉 도덕적 권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86쪽

당신의 행동으로 생긴 문제를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91쪽

모든 문제는 우선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92쪽

리더는 러더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96쪽

좋은 사람을 나쁜 시스템에 두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좋은 꽃을 기르고 싶다면 좋은 물을 주어야 한다.
97쪽

사람의 노동력을 살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의리나 열정은 마음의 것이다.
일손도 살 수 있지만 사람의 머리를 살 수는 없다.
창조력, 기발함, 지략은 머리에서 나온다.
102쪽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다.
109쪽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사고를 성장시키는 것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110쪽

교육의 핵심적 가치는 돈을 벌거나 직업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영적인 성품 함양에 있다.
111쪽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당신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알 수 있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116쪽

깊은 신뢰가 있을 때, 소통은 쉽고 빠르며 효과적이다.
117쪽

관계에서는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
118쪽

사랑의 법칙의 핵심은
사람들을 그들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며 인내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있다.
119쪽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127쪽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양심상 꼭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133쪽

갈등은 삶이 보내는 신호이다.
갈등은 보통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140쪽

사람들은 올바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신뢰한다.
152쪽

신뢰는 삶과 삶을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다.
효과적인 소통의 핵심 요소이며, 어떤 관계이든 신뢰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152-153쪽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진정한 문제이다.
162쪽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시선으로 본다.
163쪽

당신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과 도움을 주고 싶었는가?
169쪽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169쪽

미래는 직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미래는 당신 안에 있다.
171쪽

자신을 효과적으로 바꾸려면 먼저 자신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172쪽

그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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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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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전 세계도 놀랐고 미국도 놀랐다. 놀란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를 뽑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다. 세계화의 선봉에 서있는 '미국'이 왜 "반이민 정책" "국경 장벽 설치" "FTA 재검토" 등의 세계화와 반대 방향의 정책을 말하는 트럼프를 국가 리더로 선택한 것일까? 

우리는 정말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볼 것인가 타인이 볼 것인가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구성하는 토대를 말한다. 개인적 자아 형성에서 시작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획득해 나가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성격, 민족, 인종, 국가, 지역, 성별, 나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정체성을 동시에 갖게 된다(「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120쪽.)
 흥미로운 점은 정체성의 어원에 있다.'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우리 전통예술은 한(恨)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89쪽.). 즉 내가 누구와 다르고, 누구와 같은가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정체성이라는 단어 어원과 닿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민족, 인종 등의 정체성에 대한 접근은 타 문화권 사람들에 의해서 분석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이룬 학문이 문화 인류학이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국화와 칼> <슬픈 열대>등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이 타인이 바라본 시선을 통해 확인한 정체성도 유효하지만, 자신이 바라본 자문화에 대한 분석도 매우 유의미하다. 이때 중요한 점은 얼마나 객관적인 태도로 그 분석에 임하느냐에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와  각종 실질적 통계자료에 근거해 미국인이 바라본 미국인의 문화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당선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그 해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기사 속에 나타난 해석들을 읽으며,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메시지와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간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럼프의 돌풍에 대해서 우리는 '교양 있는' 소위 미국 내 지식인·엘리트들은 무시로 일관했다. 트럼프가 후보자가 되겠다고 나왔을 때,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이 진행될수록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으로 높았고, 결국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후보자가 된 뒤에도 결코 대통령에 당선될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당선되었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지적했듯이, "백인 엘리트와 비 백인 엘리트 간의 거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백인 엘리트들은 미국의 모든 주요 기관들을 지배하지만, 수백만의 비엘리트 백인들은 엘리트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고, 엘리트들의 확신과 안전이 부족하고, 엘리트들의 지지와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는 다른 집단들과의 인종적 경쟁에서 자신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386쪽)" 

즉, 미국의 정치계, 사회계, 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엘리트 집단의 생각과 다수의 비 엘리트 백인 집단 간의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거리는 실질적인 수치로 명백하게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던 여부와 관계없다. "마음속에만 존재해도 새로 부상하는 집단들에 대해서 미움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요인에 대해 간과했다는 것이 반 트럼프 주의자들이 간과했던 점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중산층과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살았던 백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인종, 민족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으며, 미국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다인종 지원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들의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구성과 밀접한 연관되어 있다. 

"이민자들과 개척자, 이민자, 그리고 노예의 후손들 외에, 현재의 일부 미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정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67쪽)"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언어, 같은 종교적 신념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민자, 개척자, 노예의 후손 등으로 구성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토나 장소에 대한 깊은 정체성을 다른 국가에 비해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민들 구성에 대한 연결 관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일체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백인들의 경우,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이민을 왔고, 이 이민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 과정을 통해 혼합되었다. 그 결과 다른 인종에 비해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고, 그 공백이 "희생자란 느낌"으로 채웠다고 조지아 주립 대학교의 사회학자인 찰스 갤러허 교수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트럼프의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론에서 트럼프 지지에는 백인 노동자 계층 외에도 다른 인종의 지지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 주류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를 의식한 듯한 대선 승리 연설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2016년 11월 9일 미국 맨해튼 힐튼 미드타운호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승리 연설을 했다. 이때 트럼프는 “우리가 해 온 것은 선거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인종, 종교, 배경, 신념을 가진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운동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전국적 지지를 발판으로 삼은 자신감이 묻어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폄하해 온 주류 기득권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부활시키겠다"라며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기대감을 높였다. 
참고 기사 | 박영환 특파원·이윤정 기자, [트럼프 당선 - 기대와 실망]“아메리칸드림 부활…미국 다시 세울 것”, 경향신문, 2016.11.09

트럼프 지지 기반인 백인 비 엘리트 집단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새뮤얼 헌팅턴은 상세하게 책에서 다루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 가장 있음 직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백인 남성이고, 근로계층이고, 중산층인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은 그와 같은 운동 속에서 그와 같은 변화들을, 그리고 자신들이 볼 때 점점 더 줄어드는 자신들의 사회적 및 경제적 지위, 이민자들과 외국들에 빼앗기는 일자리,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약해지는 것, 그리고 자신들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 침식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인종적 및 문화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반 히스패닉, 반 흑인, 그리고 반이민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과거에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다수의 인종적 배타주의 및 반외국인 운동과 비슷할 수 있다. …(중략) '백인 현지인주의'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381쪽)" 

즉, 이미 지금 벌어진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마 1990년대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히스패닉의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유입은 백인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의 지배력과 유일한 전국적 언어로서 영어의 지위를 위협한다. 백인 현지인주의 운동은 이와 같은 추세들에 대응하는 가능하고 일견 타당한 반응이며, 심각한 경기 불황과 고난의 상황에서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능성은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높아진다.(384-385쪽)

"그러나 백인 현지인주의에 가장 강력한 자극이 되는 것은 백인들이 볼 때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이 점증하는 인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역할에서 비롯되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388쪽)"

그리고 그 움직임이 처음에는 인종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차별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지만, 점차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에 놓여 있는 '언어(영어)'까지 흔들자 느끼는 위협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 변화의 감도를 체감할 수 없다. 다만 트럼프의 극단적인 '멕시코'에 대한 정책과 이민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볼 때, 미국인들이 느끼는 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정책이 21세기에서 볼 때 비정상적이며 말도 안 되는 일임에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업계 엘리트들의 세계화 정책들은 일자리를 해외로 이동시켰고 근로계층 미국인들의 점증하는 소득 불평등과 실질임금 하락을 초래했다.(384쪽)"

"인종적 균형이 계속해서 변하고 더 많은 히스패닉이 시민이 되어 정치적 활동이 높아짐에 따라, 백인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385쪽)"

흥미로운 점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미국 정체성에 있어서 주류였고, 이들이 그 토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흑인 등의 인구 증가 속도가 높지만, 여전히 백인 계층이 미국 내에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즉, 이들이 피해자라고 느낄 만큼 약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타국에서 바라본 나의 시선이고, 이들의 체감하는 위협도는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킬 만큼 위협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지지 기반과 이들의 프레임에 의해서 당선된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를 통해 또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극우 정당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유럽권 국가들의 문제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다문화를 지향했던 국가에서 기존에 국가의 주류에 속했던 이들이 위협을 느끼자 극우 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해석을 유럽에 대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과 다른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종교, 언어, 문화 사회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접촉과 혼합이 당연시된 21세기에 오히려 이 흐름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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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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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재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_<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4쪽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그의 결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진 역사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롤모델'을 삼거나, '어떤 분야에 대한 흥미'로 나타나거나, '꿈과 목표'를 세우거나 통사가 설명하지 못한 한 시대의 그늘진 면을 바라보고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국제법 史는 그가 해낸 일만큼이나 다사다난한 길이었다. '국제법 학자'로서 책무와 존재 의미를 잊지 않고 국제법학자 백충현은 그 길을 걸었다.  그의 삶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한반도 국제 정세 위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생각의 자극'을 주고 있다.

 

 

 


저자 | 이충렬

저자 이충렬은 서울 출생,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 김수환 추기경 1,2》《간송 전형필》《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등이 있다. 실제에 근접하여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장르인 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몰입시키는 드라마틱한 연출로 쓰이는 글은 영혼이 담긴 다큐멘터리이자 소설 이상의 문학이 되고 있다. 이 책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에서는 독도,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재일 동포 인권, 종군 위안부,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과 난민 문제 등 조국과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백충현 교수의 생애를 복원하면서 최초 공개되는 자료인 <관판실측일본지도官板實測日本地圖>를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저자의 저서를 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가운데, 그 시대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한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노력한 "간송 전형필".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김수환 추기경", 반추상 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등..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4쪽)"가 된다는 신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중에..

 

 

 한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삶의 질' (quality of life indicators) 지표가 있다. 이는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면에 걸쳐 포괄적으로 척도화한 지표이다. 언젠가부터 세계 각국에서는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용한 혁명이 있었다.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 이상으로 어떤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환경 보호, 복지 문제, 문화재 보호, 국제 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얼마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제법"이다. 



국제법의 가치를 일찍 알아챈 사람이 바로, 고 송현  백충현 교수였다.

 

 

 

국제법 연구 모임을 했었던 '사직 아파트'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백충현 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국제법 수준이 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140쪽)"는 그의 신념은 그의 행동으로 실천적 삶으로 바뀌었다. 1972년 귀국 후 국제법 연구 모임을 만들고, 이후 이를 서울 국제법 연구원으로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던 '사직 아파트'가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장소라는 것에 놀랐다. 이 사실을 알고 종로도서관을 가기 위해 걷는 길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                        

* 독도 * 외규장각 * 재일 동포 * 위안부 *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 *

한일 양국이 재일 동포 법적 지위에 대한 회담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은 백 교수는 국제법 전문가로서 재일 동포가 받고 있는 법적 지위 차별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법적인 견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묻혀 있는 문제, 그것도 국가가 한일 협정을 체결할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학교 교수가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국제법 학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국제법 학자만이 재일 동포들이 왜 피해자인 동시에 권리자인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국제법 학자로서 그의 관심과 신념은 올곧았다. 자신의 양심과 책무에 따라 외면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고,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남기려고 하고 있다.
  이노우 다다타가가 측량한 지도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메이지대학 박물관에서 확인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을 쏟았다. 일본 고지도 전문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 지도를 구하기 위해 애썼고, 1997년 기적처럼 발견하고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우리나라로 가지고 왔다. 안타깝게 이 자료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일본과 '신한일어업협정'과 '중간수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 문제를 거론할 수 없었다. 이후 몸이 좋지 못해, '관판실측일본지도'와 그 해석에 대한 자료가 공개된 바가 없다. 그의 논문 집필 계획안 속 촘촘한 논의를 보며, 완성된 논문으로 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외규장각'에 대한 열정을 보며, <박물관학 개론> 수업에 배운 내용들이 떠올랐다.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입장은 문화재 원산국이고 반환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다. 돌려받은 외규장각 문서, 아직도 받아야 할 문화재들이 전 세계 곳곳에 놓여 있다. 이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노력은 제국주의 열강에서 독립한 신생 독립국들이 1960년도에 제기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문화민족주의를 근거로 두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 약탈은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련의 약탈 행위가 한 민족의 갱신적이고 물질적인 문화유산에 대해 영원히 회복시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힌 것(Kifle  Jpte, 1994)'이라고 규정하며, 본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상 우리에게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알고 있었던 백충현 교수는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 약탈에 대한 글을 확보하고, 프랑스와 외교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분명한 논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른 결과가 실현될 때,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노력이 '외규장각' 반환의 밑바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머문지 6년이 되어, 어느새 당연히 우리나라 문화재가 된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문화재 반환을 위해 국제법상으로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북한 무력 도발, 트럼프 정권, 사드 배치, 일본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다양한 국제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 외교는 바람 앞 촛불과 같은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고 송현 백충현 교수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게 주는 길도 분명 있다. 물론 학자로서 그의 삶이 현실 실리 외교와 멀어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국제법이란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법으로서 성립하지 않는 것은 사실(252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은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의 이론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있는 '무기'(252쪽)"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외국의 국제법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157쪽)"이라는 분명한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학자"로서 그가 지킨 양심과 책무는 그의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계속 흘러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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