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아나 후안 그림,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미리 본 마지막
여정에 대하여

 

 

셉템버에게 얼마나 긴 여정이 있었는지 그 내용을 모른 채, 셉템버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다.


1~4권 동안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셉템버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는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 힘든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그때마다 셉템버는 지혜롭게 해결한다.

 

"왕관이 널 선택했어. 네가 바로 페어리랜드의 여왕이라고.

내 개인적으로는 더럽게 꿈틀거리는 벌레가

가득한 파이를 내놓고 먹으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사실인 걸 어째.

네가 아무리 왕관을 잡아 뜯고 엉엉 울어대도

왕관은 너한테서 떨어지지 않을 거야. …"

 

갑자기 페어리랜드에 온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셉템버. 그녀는 페어리랜드의 여왕이 되었다. 소녀에서 마흔 살이 되어보기도 했지만 왕관의 선택으로 여왕이 된 건, 당연히 셉템버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도새의 알의 마법으로 과거의 모든 왕과 여왕들이 되살아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자기를 놓고 시시한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아침마다 똑같은 마법과 경이와 씩씩한 위험들을 반짝반짝 닦아놓는 일, 허구한 날 심술궂고 위험한 바다를 어여쁘게 떠돌아다니는 일, 세기마다 똑같은 늙은 폭군들과 용감한 영웅들을 데리고 노는 일에 정말이지 몹시 질린" 페어리랜드의 왕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다. 여왕이 된 것만으로도 기막힌 상황인데, 셉템버에게 왕위를 지키기 위한 경주에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페어리랜드의 심장"을 찾는 경주에 말이다.

 

셉템버의 내면에서부터 나온 차분함이 심장에 고여

모든 것을 매끈하고 깔끔하게 다듬었다.

오랜 세월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벌어진 일에, 셉템버는 당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다 요정 새터데이와 엘, 웜뱃, 나팔총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전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셉템버를 위해 이 모험에 적극 동참한다. 친구들과 함께 해서일까. 셉템버는 얼떨결에 시작한 경주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그 경주에 참여한다. 그 과정은 여느 '경주'들처럼 긴장되고, 흥미롭다. 그리고 그 경주의 끝은 행복하고 완벽하기까지 하다. 5권만 읽은 나에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만족스러운 결말이었고, 완결이었다.


 

페어리랜드의 '왕'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당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지배하는 건 당신 자신뿐이에요."

"왕이 되는 건 최고의 도둑질이야."

 

나는 《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를 읽으며 셉템버를 따라가다 보면, "권력"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만든다. 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 셉템버는 질문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모험 중간중간 그녀의 마음과 생각에 쌓인다. 이렇게 셉템버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판타지 소설인지 철학 소설인지 헷갈린다.

 

"남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 너는 그것이 될 것이다."

"난 폭군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 폭군이 아닌 거예요."

 

사실 좋은 판타지 소설은 다 이렇듯 철학적인 이야기를 숨기고 있기 마련이다. 현실과 다른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어떤 판타지 소설은 그 철학적 이야기를 티 나게 드러낸다. 마치 독자에게 철학을 가르치려는 어조로 말이다. 촌스럽게 말이다. 물론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내 생각을 좀 더 붙여본다면 《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는 촌스러운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촌스럽게 썼다고 하기에 이 세계는 다채롭고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이 즐거워 그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를 다스리는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전혀 없지. 하지만 권력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물건을 모두 한 곳에 모아두고 영원히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갖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모두 비뚤어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순전히 그들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겪는 일들 때문이다.

 

페어리랜드의 왕이 되기로 마음먹은 뒤, 셉템버는 계속 자신의 자리를 시험하게 만드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하고,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상대에게 말하며 스스로에게 필요한 말을 찾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셉템버가 놓치는 이야기는 이렇게 저자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속삭여준다. "왕"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길어지고, 셉템버에게 이야기가 많이 쌓이자 친구들과 이별 아닌 이별의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특히, 셉템버에게 특별한 새러데이와의 이별은 의미심장하다.

 

"네가 어떻게 날 잊어. 그러면 안 되잖아." 셉템버가 속삭였다.
"다른 건 다 잊어도 날 잊으면 안 되잖아. 우리를 잊으면 안 되잖아."

 

이 순간이 누구보다 셉템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것, 그 섬뜩하고 무서운 순간이 셉템버를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으로 만들었고, 솔직하게 만들었다. 사실 셉템버에게 어느 순간보다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러데이의 시간이 뒤엉키고 난 뒤에 셉템버는 "심장"을 찾는 경주에서 확실히 앞서 나가 결국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승리 후 그녀는 페어리랜드의 왕으로 바로 즉위하지 못한다. 셉템버와 함께 경주했던 경쟁자들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 죽음은 꼭, 해리포터가 죽음(사실은 죽음이 아니었던 그 죽음)을 맞이했던 장면과 겹쳐 보였다.

 

"그리 잘 해내진 못했어요. 난 정말로 내가 이길 줄 알았거든요.

나는…… 나는 좋은 여왕이 될 것 같았어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 이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엔딩이란 말은 쓸데없다.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러분이 이야기를 그만하기로 선택하는 지점은 하나뿐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영원히 이야기로 이어진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셉템버는 어떤 소녀를 만난다. "새로움"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어떤 소녀를 말이다. 그렇게 끝은 끝나고, 시작을 시작한다.


 

《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에서 꼭 전하고 싶은 진실은 이거다.

 

"모든 것에 심장이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어디에도 그 중심에 가장 중요한 것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은 다른 누가 부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는 사실. 감정을 느끼고, 잃을까 봐 두렵고, 간절히 자신이 원하고 그래서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용기도 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심장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심장은 쉽게 멈추지 않고, 쉽게 끝낼 수는 없다는 걸 말해준다.

 

《페어리랜드 5 : 셉템버와 심장을 향한 경주》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심장은 무엇입니까?라고.

그리고 그 심장을 멈추게도 하지 말라고 빙긋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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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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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쓴 산문,
그의 사랑이 녹아진 글들.

 


삶의 한가운데, 길을 잃고 멈춰 선 우리에게,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그만의 작고 소중한 비밀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

 

"이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의 배경은 언뜻 보기에는 성과 산, 골짜기와 정원, 가까운 해변이지만, 실제로는 시인의 영혼이다. 그의 영혼 안에서 이 세계의 온갖 현상들은 아름다운 하늘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부드럽고 말갛기도 하다."

 

독일이 자랑스러워하고, 전 세계가 사랑한 작가 헤르만 헤세.

그는 많은 소설을 남겼고, 시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으로 시공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채우고 있다. 그가 쓴 수많은 문학작품은 그가 할 수 있는 글과 언어로 만든 하나의 세계였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 그는 작품으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고백한 작품이 자신의 작품으로 밝혀질 때 한 글을 통해 한 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를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작품이라는 베일에 싸인 그를 본 건 아닐까.

 

평론이 캐내지 못하는 비밀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도 혼자서만 아는 작고 소중한 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베일이 찢겨나간 다음 나는 《데미안》에 주어진 폰타네 상을 반납하고, 출판사에 앞으로 이 책의 새로운 판본에는 내 이름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은 헤르만 헤세가 책을 읽고 쓴 서평들을 엮은 책이다.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책에 대한 이야기이자, 누군가도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긴 글이다.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로,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그의 편지다. '책'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의 책들은 그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길들이고, 책을 읽고 쓴 서평은 그 길에서 찾아낸 것이다. 여느 소설 평론집이나, 서평집을 떠올렸다면, 그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작가가 생산한 1차 도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 엮어진 2차 도서임에도 책들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만든 세계가 책 속에 가득 담겨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글들은 평론가들과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하지만 그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 자신에 대한 글들이다. 작가이자 독자였던 그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았고, 어디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는지, 어디에서 행복에 젖어들어갔는지, 어디에서 사랑을 배웠는지, 신비로운 세계의 체험을 한 곳이 어딘지를 그의 글로 들려준다. 오로지 인간 헤르만 헤세의 글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는,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는 작은 틈 사이를 우리의 생각으로 빼곡히 채워나가게 만들어준다.

 


그에게 도스토옙스키란?

 

 

도스토옙스키는 그냥 천재적인 작가, 러시아 낱말을 완전히 장악한 사람, 러시아 영혼에 대한 속 깊은 해석자만이 아니다. 그는 고독한 모험가이며, 운명에 의해 기이하고도 눈에 띄게 선택된 사람, 총살 직전 마지막 순간에 은사를 입은 죄수, 고독하고 가여운 안내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는 헤세의 절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편집자였던 폴커 미헬스가 펴낸 헤세 전집 20건 중에 5권의 책을 원전으로 삼았으며, 이중 73편을 안인희 씨가 추린 것이다. 서평이기 때문에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평은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에겐 도스토옙스키 부분들이 특별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작품(까라마조프가 형제들)은 결코 다함이 없다. 나는 며칠이라도 여기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보고 또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 하나가 더 생각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했고, 그의 소설에 담긴 것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연구하기로 마음먹으면 평생을 다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던 대학 스승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읽을 때마다, 도스토옙스키라는 문호의 이야기와 세계 속에 빠져들었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올 때면 새로운 것을 가지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도스토옙스키'다. 무려 3편의 서평과 작가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단지 3편의 서평을 써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 《백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을 두고 쓴 글의 길이는 다른 산문보다 훨씬 길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글 중간중간에 담긴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을 언급할 때면 그가 얼마나 도스토옙스키를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막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임함을 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그의 표현에 적극 공감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틸 힘이 없을 때, 끊임없는 죽음이 자신의 주변을 감돌 때를 도스토옙스키만큼 이해할 수 있는 작가는 없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었고, 그 경험이 그의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헤르만 헤세는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다. 20세기 초반 인류의 잔악함이 끝이었던,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피부로 느꼈고, 눈앞에서 목도했던 그에게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한 건 당연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비참함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영혼을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이기에. 난 헤르만 헤세의 생에서 가장 큰 위로를 준 작가가 도스토옙스키란 생각이 든다. 

 


그는 수많은 책들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73편의 글은 그가 걸었던 길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는 길을 잃어 주저앉아 있는 우리에게
그는 자신의 삶이 툭툭 묻은 지도를 건넨다.

 

그 지도가 바로, 《우리가 사랑한 헤. 세. 헤세가 사랑한 책.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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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집 (리커버) - 매일매일 핸드메이드 라이프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브라운 사진 / 윌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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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속도가 다르죠. 타샤 할머니의 속도를 책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빠른 속도로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필요한 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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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보랏빛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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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작품이 주는 아쉬움 그리고 여운,
나쓰메 소세키 《명암》

 

 

나쓰메 소세키.
일본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도련님》《나는 고양이로소이다》《런던탑》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 근대 사회를 표현한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고전 혹은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서가에 반듯이 놓여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만 인기 있는 작가인가? 아니다. 그는 2004년까지 일본 천 엔짜리 지폐의 모델이었으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 미완이라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미완성작,  《명암》은 그가 신문사에 연재했던 연재소설이었다. 연재 중에 위궤양이 심해져 결국 사망하였고 188편을 끝으로 이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걸.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떠올랐다. 그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미완의 작품으로, 원래 지금 나온 분량만큼의 뒷이야기가 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못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물론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은 지금 나온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반면 나쓰메 소세키는 카라마조프가 형제들보다 더 완성도가 아쉬운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그의 《명암》을 읽으며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린 건, 마지막 작품이 미완이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상한 정조를 일부러 속된 그릇에 담아 감상적으로 독자를 자극하는 책략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도스토옙스키가 먹혀들어 간 덕분에 많은 모방자가 속출해서 터무니없이 저속해진 일송의 예술적 꼼수에 불과하다는 거야.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99쪽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그의 글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고작 2주간 벌어지는 일인 '죄와 벌', 4일간 벌어진 일인 '까라마조프가 형제들'처럼 약 2주간 있었던 일이지만, 서사의 양이 장대한 점이 닮아 있다. 무엇보다 그가 만든 인물 속에 도스토옙스키 인물들의 성격과 글쓰기 방법이 닮아 있어 자연스레 떠올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는 '작가'라는 권위 있는 주체가 없다. 작가 역시 하나의 인물로 소설 속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인물이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이에 대해 작가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이들의 목소리를 글로 옮길 뿐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다성악 소설이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명암》도 다르지 않았다. 각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한다. 작가가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자신의 목소리로 한다. 작가는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평가과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최대한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작가는 이야기의 세계를 열어두고 있다. 주인공 부부 오노부와 쓰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찾아낼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그의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신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말하는 때까지가 좀 길거나, 혹은 그 말할 때가 오기 전에 작가가 세상을 떠나서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이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지난 문맥에서 주인공의 생각을 유추하게 하기 보다, 주인공의 생각 그 자체를 그의 목소리로 전하는 게 독자들이 더 편하게 느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일일드라마 한편 한편을 엮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장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NHK의 아침드라마였는데, 15분 분량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이 짧은 이야기가 이어진 연재소설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노부와 쓰다다. 쓰다와 오노부는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난 부부다. 아직 서로가 낯선 건지, 친해지지 못하는 건지 어색함이 감도는 보통의 신혼부부처럼 보인다.  1900년대 초, 일본 근대 사회에 젊은 부부의 자유로운 생각을 담기 위해  나쓰메 소세키가 주인공으로 삼은 인물이다. 이들 부부 곁에 가족, 직장동료, 친구의 관계가 부부 사이를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두 사람은 오노부가 쓰다네 집에 책을 빌리러 가서, 쓰다를 보고 첫눈에 반하면서 그 관계가 시작된다. 오노부는 쓰다와 혼인을 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결정했고, 이를 부모님께 알리고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

 

오노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다. 물론 그녀의 삶은 결혼과 함께 자신의 남편과 떨어트려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은 1900년대 초 일본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이해해야 한다. 그런 오노부에게 사촌동생 쓰키코는 묻는다. 자신과 결혼할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기코에게 오노부는 말한다.


"쓰기코, 너 알고 있니? 여자의 눈은 자기와 연고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눈이 잘 트인다는 사실을. 눈이 1초 사이에 10년 이상의 공훈을 세우는 건 그때밖에 없어. 게다가 그런 경우는 누구든 일생에 흔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때에 따라서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 눈 따위는 맹인이나 다름없어. 적어도 평소에는."


물론 이 대답은, 쓰기코와 오노부 사이에 미묘한 경쟁과 특수한 상황이 얽힌 결과물이었지만. 이 말속에 "오노부의 생각"은 분명히 담겨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옳다는 걸 만드는 건 자신이라는 답을 함께 얻는다.

 

 

아이러니 한 건, 이 말을 할 때 오노부는 쓰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어렴풋 그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때라는 점이다. 사실 오노부를 만나기 전에 쓰다는 한 여자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약속했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쓰다 곁을 떠났다.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쓰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보냈다. 그래서일까, 그 미련을 느끼고 있으며 그 미련은 아내인 '오노부'에게 미안함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내인 오노부를 사랑하면 되는데, 쓰다 사랑 대신 아버지에게 받은 생활보조금으로 오노부에게 반지를 사준다. 이게 오노부가 결코 원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처음에 무관심하게 보였던 그는 점점 자기 쪽으로 매혹된 듯 다가왔다. 일단 매혹된 그가 이번에는 차츰 자신에게서 멀어지며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의심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녀는 그 의심을 말끔히 떨어내기 위해 그 사실을 뒤엎지 않을 수 없었다."

 

쓰다와 오노부는 쓰다의 과거 문제에 대해 오노부가 먼저 입을 연다. 이 상황을 더 유지하는 것을 오노부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오노부가 쓰다를 사랑했기 때문이고, 쓰다는 오노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쓰다가 오노부를 사랑했다면, 처음부터 이 문제가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되지 않게 정리를 했어야 했다. 혹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오노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렴풋 알게 되었을 때, 혼자 생각하게 만들지 않고 불안하지 않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쓰다가 한 건 피하는 것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쓰다는 이 문제에 대해 회피하려고 했으나, 결국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숨기만 안 돼요. 당신이 숨기면 다음 말을 할 수 없게 될 뿐이니까."


물론 이 대화에서 쓰다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었고, 오노부가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를 만든 것은 쓰다이기에 그가 느낀 감정보다 이런 그를 바라보았을 오노부에게 마음이 갔다. 결국 쓰다가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미련인지 사랑의 잔재인지 알 수 없는 관계를 끝내라며, 오노부는 쓰다에게 전 연인을 만나러 가라고 한다. 그리고 전 연인을 만나면서 이 소설은 미완의 결말을 내린다.

가장 중요한 때에 소설이 끝나버려 아쉽다. 처음에는 아쉬웠고, 왜 결론이 없는 건지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600쪽 가까이 되는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건 지금을 위한 토대였을 뿐이라. 그다음에 나올 결정적인 이야기가 중요한데, 나오지 않아서. 그런데 이야기가 비워둔 자리에 내가 설 수 있었다. 내가 소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궁금증으로, 오노부를 응원한 독자로.


쓰다가 과거의 연인을 사랑하는지. 그 연인 역시 쓰다를 잊지 못했는지. 사실 나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쓰다를 그 상황으로 만든 오노부가 어떻게 할지가 궁금했다. 만약 옛 연인과 사랑을 정리하지 못한 채 쓰다가 돌아온다면 오노부는 어떻게 할까. 혹은 미련이 남았다는 걸 확인한 채 돌아온 쓰다를 오노부는 어떻게 대할까. 자신을 굳게 믿고,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노부가 자신의 상황에서 무엇을 결정할까.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명암》은 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남긴 채 나쓰메 소세키는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 《명암》을 역자가 높이 평가한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에 끝난 서사 뒤에 자신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 여백 때문이 아닐까. 나쓰메 소세키의 죽음은 그가 결정할 수 없었지만.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이끌어온 이야기의 서사 그리고 모두가 주인공이게끔, 모두가 작가이게끔 만든 그 이야기를 높이 평가했다고 난 생각한다. 나 역시 이를 높이 평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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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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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의 순간들 속에서 건진,
그 쉽지 않았던 삶의 고비와 그 이후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인터뷰를 주로 읽나요?
 
난 스마트폰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신문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당연하다. 인간이라면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니까.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읽는다.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조금 알게 되고, 때론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도 한다.

 

《일하는 여자들》은 우리가 주로 보는 인터뷰와 사뭇 다르다. 우선 아주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다리 혹은 세 다리 정도 건너면 알 수 있을 법한.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 흔적을 남기며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 배우 전문기자 백은하 / 영화감독 윤가은 /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
/ 아티스트 양자주 / 작가 최지은 / GQ 에디터 손기은
 / 공연 연출가 이지나 / 극작가 지이선 / 기자·방송인 이지혜
 / 뉴프레스 공동대표 우해미 / N잡러 홍진아

 

《일하는 여자들》에는 11명의 interviewee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언론, 방송, 예술계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는 인터뷰를 한 4인용 테이블 구성원들이 관심 있는 사람들을 집중 취재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분야와 근접한 직군에 종사하고 싶기에, 더 관심이 갔다. 여성 롤모델을 찾기 힘든 그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을 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꿈꾸는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료에게.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평범하게 '일하는 여자들' 중 11명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이게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인지, 상식의 문제인지,

나조차도 편견을 가진 건 아닌지.

 


우리들(여성들)의 목소리를 엮어냈기에,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에 대해 설명하거나, 집단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책은 아니었다. 일하는 여성들의 '일'상을 다룬 인터뷰집이었다. 이제 막 젠더 감수성이 생겨나기 시작한 우리들이 돌아본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과 마주했던 고민을 말한 인터뷰다. 그 과거와 현재를 보며, 앞으로를 어떻게 걸어가면 좋을지 '질문'을 남기는 책이었다.

 

 

 


어느 순간, 살아남은 여자 영화기자가 거의 없으니까 정작 나에게는 롤모델이 없는데
내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버리더라.

 

자신의 앞에 누구도 없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맨 흔적이자, 이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 책임감을 가진 사람의 고백이다. 쉽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과 기회를 잡았고 '나'를 지키며 그녀들은 자신만의 단단한 삶을 일구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단 걸 알기에. 그들이 막 직장에 들어섰을 때 이야기는 짧게 나오지만, 마음에 아프게 다가갔다. '성희롱'과 '자기검열'이 일상이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부재했던 때를 지나와, 아주 조금씩은 나아져가는 지금을 살아가기까지를 너무 담담하게 말해 묘하게 마음속에 잔향을 남겼다.

 

담담함 속에 그녀들은 자신을 이야기한 뒤, 지금 우리에게 하고픈 말을 한다.

 

 

  

롤모델이나 멘토 같은 이름보다는 나는 그냥 나 자신이고 싶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거나 약자이면 더.
나부터가 그렇게 되어야 그런 세상이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을 선택할 때, 내가 먼저 했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
일이든 결혼이든 결정하기 전에는 이런 걸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 수도 있다'하는 부분들.
그걸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떠한 시행착오든 줄지 않을까.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공부하기 전에,

누군가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자발성이 중요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막 살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는 거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각자가 잘 사는 게 중요하다.

 

 

 

'No'를 했다고 찍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 인생에서 볼 일없는 잔챙이 그릇이니 아웃시켜도 된다.
진짜 어른은 그렇게 말했을 때 오히려 '너 뭐 있다'하고 지켜보는 경우가 있다.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심하게 툭' 건네기도 하고, '따뜻하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는 '우리'라는 연대감이 녹아져 있다. 그래서 무심함 속에서도 온기가 전해지고 따뜻함 속에 뜨거움이 느껴진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이들의 응원엔 '우리는 함께 한다''라는 연대감이 깃들어 있다. 완전한 글로 이를 느껴보길 추천한다.

 

 

  

그동안 우리가 같은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일단 많이 들어주고, 그다음에 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교류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긴다.

 

 


《일하는 여자들》은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다.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듯. 《일하는 여자들》도 일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그녀들과 함께 일하는 그들에게 함께 전하는 이야기다. 《일하는 여자들》이 느끼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감정들에 대해 함께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동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공감이란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해하는 지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넓이가 넓어지고 폭이 깊어질 때, 세상은 반드시 아름다워지기에. 《일하는 여자들》은 일하는 여자들의 '일'상이라는 부분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라는 책이다.

 

 

언젠가 혹은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 겪을 일과 고민들을 말한 《일하는 여자들》. 그래서 이 인터뷰집은 다른 인터뷰와 달리 한번 보고 지나칠 수 없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답을 내리고, 전달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나'가 되고 싶지?"

 

그들의 삶의 조각들이 '나'에게 건넨 질문에 답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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