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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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을. 우리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원하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실제로 바뀐다는 뜻이다. 살았다는 뜻이 영원히 남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라는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최근 보았던 영화 '코코'가 생각났다. 코코와 미구엘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사랑, 영원 그리고 우리의 가치들. 이를 철학자 김형석의 방식으로 정리하면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00세 철학자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그리고 입을 단짝 거릴 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질문 하나를 더 한다.

 

"혹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나요?"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엮은 책이 아니다. 이 질문과 질문 뒤에 올 또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화다. 철학자 김형석과 독자 간의 대화일 뿐 이 책에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그런데 답이 정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대화의 가치가, 인생의 정답을 기대하는 나에게 현답을 주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다. 철학 에세이이지만 삶의 문제를 난해한 철학 이론을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과감한 사회활동을 강권하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살아온 삶을 가지고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재단하는 평가를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경험이 인생의 정답인 양 자기 자랑이 대부분인 훈수도 없다. 자기 자신이 10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글로 적었을 뿐이다. 모든 시간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생의 마지막을 염두에 둔 채 기록한 것으로 '우리 삶의 이유'라는 거대하고 오래된 질문과 끊임없이 대화하듯 쓴 책이다. 이 대화에는 가식이나 다른 이에게 잘 보이기 위한 꾸밈이 없다.  삶과 죽음 앞에 사랑하는 가족을, 가까이한 벗을 잃었던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상실론'.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다 깨달은 가치를 엮은 '인생론'. 영원과 사랑이 닿아 있는 초월적 무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인 '종교론'. 이를 비롯한 여러 수필들을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뒤 그 해석을 더했다. 그래서 난 글을 읽으며, 분명 필요하지만 바쁘거나 어렵다는 핑계로 혹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한 고민', '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을 찬찬히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 인생에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안겨주고 싶었다.

 

인간을 사랑하는 일, 그보다 더 소중하고 성스러운 가치의 삶은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길이며, 이웃을 위하는 삶인 것이다. 삶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이다.

 

 

철학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근사하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공부가 필요한 학문이고, 그러한 철학을 오래 공부한 사람은 같은 단어라도 다른 세계 속에 담긴 양 추론하기 어려운 뜻을 가진 말들이 나열하곤 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살아있는 세계와는 한참 멀리 떨어져 저 하늘처럼 먼 세상이 철학의 세계 같았고 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뜬구름 걷는 거 같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이란 단어는 낯선 형이상학적 세계 같을 것이다. 난 처음 김형석 교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래도 에세이지만 내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싶은 고민을 하며,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여름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통해 김형석 교수와 책 속의 대화를 나누며 철학자에 대한 거리감이 줄어든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고민보다 기대를 안고 또 다른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으로 읽었다.

 

 

옛날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사랑으로 맺어지는 작은 인연들이 고맙고, 아름다운 열매를 남기면서 사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문장들이 장신구 세공한 듯, 아름다운 걸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서 "에이, 어렵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영역과 다른 영역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나는 이점이 좋았다.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문장. 마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민과 사색 속에서 피어난 문장이라 이렇게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줄임말이나 속어, 거친 표현을 쏙 빼고도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우리에게 편안한 문체도 아니고, 그림이나 삽화, 작은 이모티콘 하나 없지만 흥미롭게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부르는 오묘함이 있었다. 글을 읽으며 이렇게 아름답고 품격 있는 표현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낯섦을 어려움이라 생각하지 않고, 에세이를 다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그 낯섦이 익숙함이 되는 순간 알 수 없는 잔잔한 고요함이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우는 뜻깊은 시간을 선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듯 다른 감동을 느끼면 참 좋겠다.

 

 

 

 

내가 있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빛의 근원이며, 존재의 바탕이다. 나는 하나의 내던져진 존재일지 모른다. 이유도 조건도 없는 하나의 우연한 산물일지 모른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었던 한 우연의 결과일지 모른다.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나'에 대한 이야기이고, '너'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결국 '우리'를 함께 생각하는 책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들과 이별하며 홀로 남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고독에 대하여' 부분은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색의 결과물이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의 정수였다. "외로움은 일시적이었고 더 큰 즐거움을 위한 기다림으로 바꿀 수 있었다."라고 외로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사귐과 대화가 끊어졌을 때 느끼는 마음 상태를 우리는 고독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고독은 홀로 있는 마음 상태이다."라고 고독을 말한다. 외로움을 느끼기는 쉽지만, 고독을 느끼고 자신이 고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어서 '예술의 아름다운 고독'이라는 부분에 참 공감이 갔다.

이렇게 본다면 예술의 아름다운 고독은 감상하는 우리의 속 깊이 숨겨져 있던 고독에의 그리움과 마음의 공허감을 채워주기 때문에 받아들이게 되는  고독감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는 높은 미에의 고독감이 가리어져 있었다. 그것을 예술가들이 밝혀주며 전해주었기 때문에 고독에 공감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에 대한 그리움. 생경한 표현이지만, 예술가들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을까. 기쁨과 행복을 표현한 작품보다 작품 어딘가 쓸쓸함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작품과 마주 섰을 때 세상에 오로지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이 가진 힘이다. 저자에게 특히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그랬다. 이곡과 함께 읽는 '고독에 대하여'는 특별했다.
저자는 고독과 나의 감정의 심연에서 시작한 글을 점차 너와 우리로 확장해 나간다. '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며, 그 끝에 '우리'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을 빼놓지 않는다. 나를 깊이 생각하느라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소중하며, 나를 완성하는 것은 '우리'라는 공동체성이라는 이야기는 당연하고 익숙하지만 여전히 좋았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기발견은 자아의식에서 오며 그 자아의식은 문제의식에서 싹튼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사느냐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 지었는가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가와 통한다." 즉, 나를 완성하는 것은 내가 우리 속에 어떤 조화를 이루었는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격의 충분한 성장과 우리의 삶의 의미를 역사와 사회 속에 남기는 일이다. 즉, 삶의 의미와 가치를 나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와 역사 속에 남길 수 있을 때 참다운 완성이 가능해진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누군가와 자신의 철학, 삶의 의미를 나눈다는 것이 가진 가치를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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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이 전부다 - 인생이 만든 광고, 광고로 배운 인생 아우름 29
권덕형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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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그리고 발견

 

 

대부분의 '발견'이 어려운 이유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거나, 누군가 찾기 어려운 곳에 꽁꽁 숨겨 놓아서가 아닙니다. 쉽게 결론 내려는 마음, 편하고 무난한 방식에 안주하는 습관이 사고를 게으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창조적인 직업 가운데 하나인 광고 기획자, 그들에게 창조란 무엇일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창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 권덕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쉽고 공감을 부르는 창조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창조에서 낯설게 '발견', 새로운  '관점', 신선한 '발상'과 같이 원래 있는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 책은 정말 많다. 저자 역시 글 속에서, 공감하고 인정받은 광고는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라 공감을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일상의 재발견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발견이 전부"라는 주제는 조금 진부하지 않을까? 설마  책 내용까지 진부한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진부한 생각일 거란 습관에 제대로 발견할 마음가짐을 갖추지 못한 건 나였다. 내가 읽어본 적 없는 책이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생각의 연결점을 툭툭 박아놓은 저자의 글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좋은 생각의 자극을 받았다.

 

광고는 '발견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남들도 잘 알고 있는 것, 이미 밝혀진 사실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광고가 될 수 없다.

 

남다른 걸 발견해야 하는 부담이 남다른 광고 기획자들이 바라본 세상은 일상마저도 남다르게 읽고 있었다. 권덕형만의 발견이 녹아진 책이었고, 자신이 발견한 "발견의 소중함"을 공유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글 곳곳에 담겨 있었다. 《발견이 전부다》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광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 광고를 만드는 기획자로서 생활을 돌아보는 부분 그리고 좋은 광고를 기획하는 방법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모두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1부였다. 세계 곳곳에서 방영되었던 광고들과 우리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연결하여 돌아보는 내용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광고와 삶을 오가는 글쓰기 방식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내용들이라, 모든 내용이 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글들을 묶는 제목부터 "인생 광고: 인생의 진리가 광고에 스미다"다.  광고는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져 있다. 각종 미디어 매체마다 적절한 방식의 광고가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네이버 배너에만 여러 개의 광고가 시선을 끌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노출된 광고는 누군가에게 '삶의 철학'을 담은 결과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저들 틈에서 버텨 내지 못하고, 끈질기게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지 못하고 내려 버린 자들의 빈자리를 분다. 그 빈자리를 살아남은 우리가 대신 메우고 있음을 본다.

 

짧으면 3초 길면 3분 남짓한 시간. 광고가 우리의 삶에 전해지는 시간이다. 이렇게 광고는 파편처럼 우리의 삶의 틈 사이에 들어온다. 하지만 수많은 광고 중에 그 틈에서 삶으로 번져나가는 광고가 있고, 어떤 광고는 그 틈에서 튕겨져 나가는 광고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 틈을 파고드는 광고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인생을, 사람의 생을, 삶을 담은 광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광고는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자는 권투를 할 수 없다고.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해냈다. 나는 링 위에 섰다.
내 아버지 알리의 외침이 들려온다.
싸워라! 내 딸아. 넌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본 광고다. 2000년대 후반에 나온 광고로 기억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구를 가지고 비슷한 듯 다른 광고를 내놓았다. 그중에 저자는 권투선수 알리 부녀관계를  담은 광고를 가지고 온다. 성별 나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엮어 이 광고가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디다스라는 브랜드의 스포츠 용품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광고에서 저마다 생각할 거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저자는 정리했지만, 더 넓게 세대 간으로 확장할 수 있고 성별로 볼 수 있다. 분명한 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준 이 광고는 '인생의 진리'라는 거창한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틈을 파고들 거리가 많은 광고라는 점이다. 광고를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왠지 난 박웅현씨 광고가 떠올랐다.

 

스토리의 힘은 동화를 듣고 싶은 어린아이를 엄마 품으로 깃들이게 하듯, 겨울날 난로 주위로 사람들을 모으듯 '당기는 힘'이다. 정보를 쏟아붓고 선택을 강요하는 '미는 힘'이 아닌 '당기는 힘'이 바로 제목이 추구해야 할 힘이다.

 

나는 많은 상업광고란, 일상에 불필요한 물건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 필요성만을 담은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광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상업성과 철학을 공식 다루듯이 비율을 맞추어 조합하면 좋은 광고일까. 그렇지 않다. 좋은 광고에 공통점은 있지만, 그걸 공식화하기 힘들다는 걸 《발견이 전부다》 맨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팁을 3부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팁을 다 설명하고 난 뒤에 정말 중요한 팁을 말한다.

 

좋은 광고는 공감을 부르는 광고다. 그리고 공감이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너와 나의 마음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견은, 마냥 행복하거나 정의롭거나 달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프고 못되고 쓴 것들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라면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광고란 무엇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광고 기획자로서 나를 두고 고민하고, 좋은 광고를 두고 고민한 저자의 생각이 모인 이 책은 광고를 말하지만 다른 걸 발견하게 한다. 광고에 대한 것보다 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작은 변화를 말이다. 그것이 살아가는 철학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일 수도 있고,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 혹은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광고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발견할 수 있는 책이고, 그 발견이 3초 동안 나오고 Skip을 누르는 광고일 수도 있고, 마음을 번지는 특별한 광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기왕이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걸,  《발견이 전부다》를 통해 광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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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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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시인이었던,
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시인이 되는 것이 헤세의 유일한 염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길잡이 없는 위험한 길을 홀로 헤쳐 나와서 필경에는 시인이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만은 아니고 훌륭한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그의 어머니의 일기에 따르면, 헤세는 다섯 살 때 벌써 시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는, 밤에 잠자리에서 그것을 노래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후에 대성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선천적인 시인이었던 것이다.

 

_송영택 해설 中...

 


헤르만 헤세.

그는 소설가였고 작가이면서 독자라고 생각했다. 그를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참 낯설었다. 적어도 그의 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쓸신잡 2>에서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시 한편을 만났다. 장동선 박사가 낭송한 시로, 제목은 '나는 별이다'였다. 제목부터 낭만이 묻어난 그 시 한 편은 "헤세, 그 친구 시 잘쓰네."라는 탄성을 불러오기 충분했고, 그의 다른 시들을 궁금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헤르만 헤세, 그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그의 시와 그림이 엮어진 《헤르만 헤세 시집》으로 눈과 마음이 향하게끔 만들었다.

 

그의 시집을 사서 돌아온 저녁, 나는 생각했다. 왜 그가 시인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까. 혹은 저자 소개에서 그가 시인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는 '시인'이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시인으로 알려지기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작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여러 편 쓴 독일의 대표 소설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또 당대에 작가로서 명성을 어느 정도 얻은 때에 들킨 "데미안 사건"은 소설가로서 그의 이미지를 더 굳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를 읽는 문화가 점차 사라져가는 요즘, 그가 좋은 시를 많이 썼더라도 그의 시가 독일에서 우리나라까지 오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헤르만 헤세 시집》 출간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책을 만드는 곳이며 동시에 책을 파는 곳인 문예출판사에서 《헤르만 헤세 시집》은 위험성이 큰 책이었다. 하지만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고민을 출판사 내에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독자들과 함께 나누자 시를 읽는 게 잊힌 때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응원에 힘입어 《헤르만 헤세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조금 더 시인들의 시를 돌아볼 수 있는 문학적 감수성이 우리 사회 곳곳에 번져나가길, 보다 짙은 감성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그의 시집을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했다.


 

 

 

 

독일어를 할 줄 모르지만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 아쉽다. 이건 외국 시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했을 때마다 마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우리나라 시를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그 감성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듯이, 다른 나라의 시도 마찬가지다. 시란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학 장르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에는 단어와 행, 절 그 텍스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 안에는 우리나라 문화적 정서는 단어 사이에 젖어있다. 그래서 천천히 우리의 말로 시를 낭송했을 때 마음을 휘몰아치는 여운은 남다르다. 헤르만 헤세의 좋은 시를 본래 모습 그대로 옮겨오고 싶었고 고민에 고민 끝에 문장화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 역자의 고민은 시 한편 한편에 충분히 깃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시라는 장르와 번역이라는 한계가 주는 불가피함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여러 편이 눈과 마음에 쌓이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속 장면들이었다. 마치 내가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읽고 마음과 머리에 무언가 떠올렸듯이. 여러 시가 내게 쌓이자 프리드리히 그림이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가 그린 삽화와 전혀 다른 질감과 분위기의 그림이 말이다. 거대한 자연과 초월적인 힘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을 화폭에 담은 프리드리히처럼, 시의 세계를 세상에 전달하는 시인이고 싶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헤세는 자신이 거대한 시의 세계 속에 작은 시인일 뿐이었다고, 자신의 바람은 바람일 뿐이며 그저 작은 시인이고픈 마음이 그의 시안에 조금씩 녹아져 있다. 누군가는 시구 중간중간 묻어난 그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 편 한 편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를 천천히 생각하고 생각할 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 작고 작은 독자이자 감상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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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저기행 - 책으로 읽는 조선의 지성과 교양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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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지만 모르는 세계,
명저 (名著) 속으로!

 

 

"독서라는 행위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다. 낯선 길일수록 귀한 친구를 만나는 법이다."

 

名著. '이름난 저서'일 수밖에 없는 '훌륭한 저술'이라는 뜻이다. 책 이름 앞에 '명저'란 수식어가 붙은 책을 우린 많이 알고 있다.

 

《목민심서》 《경국대전》 《난중일기》 《연려실기술》 《발해고》 《동사강목》 《열하일기》 《하멜 표류기》 《표해록》 《성호사설》 《택리지》 《북학의》 《동의보감》 《침구경험방》 《동의수세보원》...

 

우리나라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위 책들 이름 가운데 적어도 10개는 눈과 귀에 익을 것이고, 5개 정도는 저자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위 책들 가운데 많은 책들을 들어보았고, 그 내용을 간략하게는 알고 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난중일기》는 몇 차례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절반도 채 읽지 못하고 반납을 했고, 《열하일기》는 그 안에 <호질>과 <허생전> 정도만 국어 시간에 배웠고, 읽었다.  위 명저 가운데 길이가 가장 짧은 《발해고》는 고등학교 때 읽었지만 좀처럼 그 내용이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조선시대 명저의 딜레마가 있다.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정작 열혈 애독자는 정말 소수뿐인 책이라는 것이 조선 명저의 그림자다. 이름과 저자는 잘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을 통해 책의 가치를 확인한 사람은 소수라는 점. 다시 말해, 명성은 높지만 그 명성에 비해 현대 독자들의 사랑이 적은 아이러니가 《조선 명저 기행》을 완성했다.

 

"필자는 이런 책들이 현대인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나 문화 또는 역사 인물에 대한 무관심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책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문제는 접근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

 

저자는 명저가 대중에게 멀어진 이유를 "접근의 어려움"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가보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미지의 세계가 주는 낯섦이나 막막함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여행객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서문을 읽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내가 이 훌륭한 책을 읽지 못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책을 손에 들기까지는 쉽지만, 책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 바로 낯섦 때문이었다. 단일 왕조로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된 나라였던 조선은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국가였다. 2018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나에게 조선은 다른 나라 만큼이나 낯선 세계가 또 조선이다. 당대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글은 같은 한글이라 읽을 수 있지만, 그 맥락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운 문화적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을 《조선 명저 기행》은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 마치 낯선 외국에 갈 때 가지고 가는 가이드북과 같이 말이다.

 

*

 



그의 책들 중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것도 많았고, 비록 빛을 본다 하더라도 너무 늦게 세상에 나온 탓에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표출한 개혁 사상과 학문에 대한 열정, 그리고 백성에 대한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_ 목민심서 가이드 중에...



《조선 명저 기행》은 명저를 그 책만의 각도에서 바라본다. 정치, 역사, 기행(여행), 실학(과학), 의학이라 분류한 뒤 서술했지만, 《목민심서》와 《경국대전》은 같은 정치서이지만 다르게 다룬다. 《목민심서》는 열여섯 살 때부터 서른 살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 지방관의 삶을 체험하고 스스로도 지방관으로 돌아다녔던 경험이 곳곳에 묻어난 지방행정 총서이고, 《경국대전》은 조선시대의 국가철학을 보여주는 '나라 경영을 위한 대법전'으로 오늘날 헌법과 같기 때문이다. 이를 같은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책의 주제도 완성한 작가도 작가가 살아간 시대상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각 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이드가 되어 설명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행정을 공부한 사람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책이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꼭 읽어보길 권면하셨던 책 중 하나였다. 대학에서 행정을 공부했지만, 《목민심서》를 완독한 적은 없다. 한 번은 어떤 책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교수님의 추천을 받고 책부터 집어 들고 읽었다. 결국 재미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며 책을 내려놓았던 기억이 난다. 《목민심서》의 제목에 대해서 목민이란 곧 치민, 즉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고 '심서'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담은 글'이란 걸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백성을 다스리는 것과 수령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사이에서 어떤 치열한 고민을 했는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또 정약용의 생의 대부분이 녹아진 책이란 걸 알고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글에서 수령이었던 정약용이 향관들에게 당하기도 하고, 또 이들을 잘 통솔하기도 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생생하게 읽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목민심서》의 두께에서 읽어야 할 양이 이렇게 많다며 불만을 말하기 보다 이 정도로 세밀하게 말할 정도로 부패했던 조선의 암울한 모습을 더듬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완성된 연도를 보고, 이 책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늦었단 걸 정약용과 함께 가슴 아파했을 것 같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은 '나라 경영을 위한 대법전'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성문 헌법이다.

 

《경국대전》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읽으며, 사극을 보기 전에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선시대의 직제와 왕실과 관련된 관청에 대해 속속 알아볼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만 귀에 읽었던 관원들의 직책의 소속이 어떻게 되고, 누가 겸임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하, 통촉하여주십시오."라고 외치며 왕의 정책에 반대를 하는 신하의 목소리에 힘을 싣게 하는 구조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법전이기에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친근하고 읽기 쉽게 서술하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재미있게 보았던 사극 속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싶었다. 형장에서 처벌받던 죄인들의 재판이 어떤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지, 왕실 친인척은 누가 관리를 하는 것인지 사극 속에서 다 말해주지 않았던 그 당대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전함 위에 앉아 부하들과 함께 생선회를 곁들인 술잔을 기울이며 흥겨워하고, 품을 추며 시를 읊는 부하들의 흥겨운 몸짓만으로도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그저 평화를 사랑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기'라기보다는 '일지'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 《난중일기》에서 저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군 이순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순신의 슬픔, 아들 이순신의 슬픔, 나이 많고 자신보다 먼저 무과를 급제한 선배를 지휘해야 했던 상관 이순신의 고충에 대해서도 함께 서술한다. 그리고 전쟁 중이란 급박한 상황 중에 기록으로 남긴 난중일기는 《징비록》처럼 임진왜란에 대해 스스로 징계하여 반성하고 후환을 경계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전쟁 중에 조선의 병폐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소중한 기록이었다.

 

"좌우의 산꽃과 교외의 봄풀이 그림과 같았다. 옛날의 영주처럼 아름다웠다."

 

비록 두 문장으로 된 짧은 내용이지만 《난중일기》를 통틀어 이순신이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거의 유일한 내용이다. 전쟁을 앞둔 장수지만 산야에 핀 꽃과 막 피어오르는 봄풀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마치 신선이 사는 삼신산의 한 장면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난 《난중일기》에서 저자가 찾아낸 인간 이순신에 대한 부분들에서 일지가 아닌 일기로 남은 이유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이었던 이순신은 산천의 아름다움에 젖어들 수 있는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적과 맞서 싸운 조선의 명장이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산천의 아름다움을 다시 기록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바다 위에서 숨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극히 천한 똥 덩어리나 지푸라기일지라도, 밭에 거름으로 주면 아름다운 곡식을 기를 수 있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 아름다운 반찬을 만들 수 있다. 이 책도 잘 살펴보는 자가 그런 점을 채택한다면,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성호사설》의 겸손한 서두다. 이익의 말이 지나친 겸손임을 저자는 《성호사설》 가이드로 알려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이익이 겸손하게 말하지 않고, 과감하게 조선에 밝힐 수 있는 생각들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어쩌면, 러시아의 12월 혁명과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 종에게 제사 지내주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보다 이를 부끄럽게 바라보는 시선 앞에 당당했던 이익의 생각을 부분 부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학문을 배우는 사람이 가진 태도를 넘어,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글뿐만 아니라 책 전체로 말하고 있었다. 바로 "겸손함"이라는 삶의 태도를 말이다.

 

역사서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어느 한쪽의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명저 기행》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역사서는 아니다. 조선 명저를 뜻깊게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 하기 위해 저자는 종종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가이드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 설명한 말이 더 기억에 남곤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어머니의 경험과 함께한 《동의보감》 설명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한의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연결점이 되었다. 역사서나 객관적인 명저에 대한 이해는 명저를 읽는 내 몫으로 남겨 두었다. 명저를 위한 가이드로  《조선 명저 기행》을 뜻깊게 읽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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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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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인연을 잇는,
고고학 이야기

 

 

 

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

 

 

난 역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했다. 위인 전기도 좋아했지만, 세계 박물관 도록을 모아 놓은 듯한 시리즈 책을 이따금씩 살펴보는 걸 좋아했다. 이집트 미라를 사실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초등학교 1학년이 읽기에 적절한 책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역사 탐구 수업을 방과 후 학교로 들었는데 "역사 스페셜"을 보고 난 뒤에 역사 교과서 외의 역사를 살펴보는 수업이었다. 선생님이 좋았고, 수업은 더 좋았기 때문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사학과"를 가고 싶어 했을 정도니. 나의 역사 사랑은 미취학 아동 때부터 10대 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 사랑 덕에 가졌던 꿈이 "고고학자"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 금방이 되고 싶었던 꿈이 되었지만. 지금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시간을 구체화하는 고고학자란 직업을 동경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진실은 유물에 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동경했던 고고학자란 직업을, 매력적인 고고학이란 학문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화려한 보물 찾기가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삶을 밝혀내는 것이다.


고고학이란 흙무더기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유물이란, 빛나는 것들이라 이런 생각이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유물에 있다』를 읽으며 고고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고고학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유물을 통해 밝히는 학문"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저자 강인욱씨의 '고고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든 글들 덕분이었다.

 

 

고고학의 목적은 황금이 아니며, 고고학은 과거의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히는 인문학이다. 거대한 건축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건물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을 공부한다. 자그마한 유물에서 과거와의 인연을 찾고, 또 그 속에서 과거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물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우리는 역사를 '글'로 이해한다. 하지만 역사 기록, 글은 사실 중심으로 되기 어렵다. 진실을 오로지 담았다고 믿고 싶지만 이는 바람일 뿐이다. 역사를 아무리 생생히 기록하더라도, 인간만의 삶의 숨결, 짧은 순간 관통하는 복합적인 감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다 담기는 어렵다. 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바로 유물이다. 또 동시에 역사의 바탕이 되는 것 역시 유물이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우리는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서서 천천히 역사를 찾아보고 기록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그 이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땅이었고 시대마다 공간에 인간은 삶의 자취를 남겼다. 그 자취가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 만년의 시간을 지나 분절된 시간을 이어주었다. 역사의 진정한 복원은 우리의 소망일 뿐,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한 글과 글 유물과 유물 사이에 놓인 시간을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는 건 유물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기록이다. 이를 발견할 사람, 그 시간을 이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고고학자다. 이렇게 고고학과 고고학자를 바라보니, 조금 딱딱해 보이는 학자 이미지에서 흙냄새 묻어나는 친근한 이웃 같은 느낌이 든다.

 

 

고고학자가 무덤에서 발굴하는 것은 대개 말라비틀어진 뼛조각, 그리고 토기 몇 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과거 사람의 슬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 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속에서 그 사랑의 흔적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실제 고고학자들의 마음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기여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것, 아주 일상적인 삶의 조각들을 이어 맞추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무덤에서 돈을 바란 도굴꾼의 마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유물에 어떻게 깃들어 있는지 찾아낸다. 일상 모습은 어떤지 살펴본다. 작은 도구에서, 그들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고 그 일상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고고학자들에게는 화려한 보물보다는 한자리에서 살아온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더 소중하다는 저자의 말이 문장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글로 다가온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만약 고고학자가 황금을 발굴하길 기대한다면, 그건 도굴꾼과 다름없지 않을까." 또 화려한 유물만을 기대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진실은 유물에 있다』는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과 공감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고고학자라는 걸 여러 글들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역사적 진실이란 생각까지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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