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 -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마흔 즈음부터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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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쉬우면서, 참 어려운 사람이 있다. 나에게 그 사람은 나다. 매년 달라지면 잘 맞춰줄 텐데, 하루하루 아니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나에게 당혹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많이 느낄 때는 내가 쓴 일기장을 볼 때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왔는지 신기하고, 지금의 나를 보며 기특하다가도 한심하기도 하고 또 몰라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 나인데, 내가 나를 믿어도 될까?

마흔 즈음의 어느 날부터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하기도 하고 시도해 보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자신에게 기분 좋은 시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래도 된다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전하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책이었다. 여기서 나를 믿는다는 건, 나를 전적으로 완벽하게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내 선택을 나의 것으로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참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다. 내 선택이 오롯이 나만을 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믿으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어떤 경험과 기억이 지금의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나에게 좋았던 과거의 순간이 오늘의 나에게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은 불안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종종 미래의 나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오늘을 힘겹게 보냈던 적도 많았다. 미래에 대한 보험은 안정과 함께 뿌듯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에게 묶어두었고, 내일의 나를 위해 뒤로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믿으며 지금의 나에게 오롯이 집중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런 시간을 쌓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서툴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좋은 방식을 택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고,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의미 없이 만나는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만나는 순간은 나에게 좋지 않으니까.


누군가와 만날 때 많은 경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을 내가 결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분명하고 내가 못 먹는 음식이 많고, 만나는 순간을 내가 디자인하고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좋은 순간을 보내면 정말 좋았다. 이 순간이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선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구체적으로 딱 설명할 수 없는 나와 혼자 있을 때도 나를 좀 믿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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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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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긴즈버그가 말했던 미국의 대법관이 모두 여성인 것이 당연한 세상. 한 발짝 더 나아가 세상의 권력이 모두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세상. 지금의 세상이 그렇게 바뀌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떠올려본 소설이 나왔다. 바로, 《파워》다. 여기까지 설명을 보면, 이 소설에 대한 한가지 프레임이 씌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선입견을 품고 지나치기보다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파워》는 전기를 내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특정한 한 소녀가 아니라,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기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잠재되어 있던 전기를 사용하는 능력을 어린아이부터 성인 여성까지 일깨우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바뀐다. 여성 공화국부터, 이브교, 정치적 권력을 두고 다투는 일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역동적이며 때때로 잔혹하다.

 

 

두려워하지 말자. 무사할 방법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의 동물적인 본능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믿음이 하나 있다. 사냥꾼이 되거나 사냥감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어느 쪽인지 알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 거기에 목숨이 걸렸다. _ 333-334쪽

 

 

"여자들에게 다가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 남자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여자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서 기존 질서를 지킬 필요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된다."면 주인공들은 어떤 딜레마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선을 긋고 살 수 있는 세계란 가능하지 않았다. 권력의 주도권을 쥔 성별이 바뀐다고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았다. 마치 또 다른 중심이 생겨 그 주변을 정복하는 지난 과거가 반복되었다.

 

 

《파워》는 나에게 고유성이 있듯이, 타자에게도 타자만의 고유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잔혹함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특정한 성이 다른 성보다 더 온화하며 배려심이 있고 평화를 수호하려 한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권력의 자리에서 배제된 이들이 권력을 잡을 때, 우리는 약자를 향한 공정함과 관대함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소설로 보여주었다. 권력을 50대 50으로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설은 묻는다.

 

 

소설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세계란 공간에서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가 산발하는 서사가 난 헷갈렸다. 무엇보다 액자형식의 소설로, 소설 밖에 남류 작가와 편집자(혹은 소설가)의 대화는 《파워》를 이해하는 또 다른 장치다. 다양한 장치로 소설은 성별을 계속해서 읽는 독자가 끊임없이 성별을 의식하게 만들고, 또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작가의 성별이 무엇인지, 성별이란 프레임이 소설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지도 묻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소설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과거에 저지른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실상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단다. 항상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법이지. 지름길은 없어. 이해와 지식에의 지름길은 없단다!"라고 하는 《파워》. 엠마 왓슨의 추천의 마지막 말을 나 역시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I’m excited to hear what you all make of the novel.

(나는 여러분이 이 소설을 어떻게 읽으실지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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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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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조지 6세가 로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장면이 있다. 말을 더듬게 된 이유와 닿아있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유모에게 받은 학대 경험, 말을 더듬을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받았을 냉혹한 시선에 대해서 말이다. 말을 더듬는 건 그가 자신이 너무 무서운 상황에 있으며 위협에 놓여 있다고 외치는 절규였지만 그걸 알아채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영 제국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왕자도 그랬는데, 가난한 집 아이는 어떨까. 말을 더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남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환경과 유전자 암호 모두가 생명 활동과 행동 모두를 형성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전자와 환경이 얼마나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생각해보면, 본성 대 양육 논쟁이 명백한 승자 없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것도 놀랍지 않다. 다행히 과학의 진보 덕에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모습과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가 동시에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_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165쪽

어린 시절에 겪은 정서적 학대가 트라우마가 되어 삶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한 것은 상처 정도였다. 흉터가 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상처.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만이 아니라 질병에 취약해져 건강까지 잃게 만드는 위협이기도 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사회 문제를 보건학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으로, 난 어린 나이에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가 느끼는 삶의 위기감은 느낌을 넘어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아팠다.

저자는 "불행은 한 아이의 발달 궤도를 틀어놓고 생리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생 안고 가야 할 만성 염증과 호르몬 변화도 촉발할 수 있다. DNA를 읽는 방식, 세포의 복제 방식을 바꿔놓을 수도 있으며, 심장병과 뇌졸중, 암, 당뇨병, 심지어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까지 급격히 증가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제도적으로 어린아이가 건강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드는 데 있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에 등장한 아이들은 자라지 못했고, 자주 아팠고,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 환경을 바꿔주었을 때, 비교적 쉽게 호전되었다. 절망이란 상황에서 조금만 벗어나게 해주면, 아이의 건강은 더 나아졌다. 유전자와 환경이 아이에게 깊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지만, 그 역시 방지할 수 있는 문제이며 나을 수 없는 불치병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방지하기보다 방치해온 문제였기에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난제다.

우리 사회에 산재한 많은 문제의 원인이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아이들이 겪는 부정적 경험을 줄이고 보호자들의 완충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들이 그 해결책으로 의미가 있다.

_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394쪽

아이가 겪는 트라우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이야기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의사가 썼기 때문에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심리학자가 쓴 듯싶었고, 저자의 글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드는 순간이 많았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해결을 위한 노력은 별것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별것조차 받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에 놓인 아이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프레임을 바꾸고 렌즈를 바꾸면 어느 순간 갑자기 감춰졌던 세계가 드러나 보이고, 그때부터는 모든 게 달라진다."라고. 아직 그녀가 노력한 결과로 일구어낸 것은 예방법에 불과하다. 그래도 질병의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이 병을 낫게 할 백신도 나오지 않을까. 모든 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치료제보다 아예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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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순정만화 - 그때는 그 특별함을 알아채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아무튼 시리즈 27
이마루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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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라. 내가 처음 순정만화를 본 건 초등학교 4학년 단짝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을 통해서였다. 한참 <궁>이 유행했고, <하백의 신부>가 사랑받던 중학생 때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사랑하는 길을 걸었지만 유독 내가 잘 못 읽는 분야가 만화였다. <그리스 로마신화> 시리즈, <각종 극한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제외한 만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난독증으로 인해, 순정만화를 읽겠다는 생각도 그 존재도 몰랐다. 드라마 <궁>을 재미있게 보았지만, 원작 만화에 관심을 가지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그렇다. 나에게 순정만화는 멀고 먼 존재였다. 그리고 빠져있던 시기도 참 짧았다.

"어른이 된 우리가, 더 이상 영원을 믿지 않게 된 우리가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추고, 이 세상에 우리밖에 없고 이 순간이 무엇보다 진실되며 꿈같고, 찰나이면서 영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날의 우리 마음속에 확실히 영원은 있었다."

그 장면을 상기하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진짜니까 괜찮다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굳이 예측하며 지금의 상황마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_ 12쪽

<신의 물방울>, <유리가면>, <궁>, <하백의 신부>, <오디션>을 비롯한 천계영 씨 작품이 내가 읽은 순정만화의 전부다. 그래도 《아무튼, 순정만화》는 읽고 싶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제법 도톰한 만화책 종이를 넘기는 즐거움을 맛보았던 중학교 때 내 마음을 콕콕 건드려주는 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위 글을 읽고, 책을 구매해서 읽기로 결심했다. 만화를 읽다가 마음이 저릿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고,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에 거침없던 때 나라면, 깊이 공감할 문장이었다. 내가 순정만화에 빠졌던 때, 그때 그 시절 나라면 말이다. 물론, 지금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순수하고 귀엽니 하고 괴롭히고 싶지만.

《아무튼, 순정만화》를 읽으며 서글픈 건 그 모든 것이 바래진 추억 속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면에서 잔인하다. 대가 없는 애정을 쏟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특별한 이유나 계기도 없이 느닷없이 그 마음을 철회해버리니까."라는 말처럼. 이유 없이 나도 순정만화가 재미없었다. 만화보다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맨스 소설이 더 좋았다. 완결을 단숨에 확인할 수 있는 소설과 달리,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궁>의 연재 기간도 나의 순정만화에 대한 사랑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일상이라고 여겼던 어떤 시간들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곧 비일상이 된다."라는 말처럼. 궁금했던 마음이 무관심으로 바뀌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에겐 짧게 지나갔지만 순정만화가 주는 설렘을 느꼈던 시절이 있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순정만화와 함께 반짝였던 시절과 그 시절에 배운 '세상을 향한 애정과 신뢰'가 삶에 묻어난 글에서 내 이야기도 떠올랐다. 나에겐 무엇을 남겼을지 말이다. 그러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아직도 만화를 잘 못 읽을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궁>에서 채경이 선택을 이해할지. 궁금하다. 순정만화는 그때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남아있고 나는 달라졌으니. 무언가 다른 걸 읽어내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내가 읽었던 순정만화를 다시 읽고 싶었다.

믿음직한 동행을 찾았다면 운이 좋은 것. 하지만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라며 평생을 결핍감 속에 사는 것보다는 혼자, 성큼성큼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때로는 푹푹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밭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가 되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알려준 감정들이 나를 자라게 했으니.

_ 103쪽

그리고 지금 나에게 맞는 순정만화도 읽어봐야겠다. 특히, <도쿄 후회 망상 아가씨>는 도쿄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왠지 공감하며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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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묻고 세계의 지성 100인이 답하다
윌 듀런트 지음, 신소희 옮김 / 유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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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은 좀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질문이든, 왜를 하나 붙이면 답하기 쉽지 않다. 습관처럼 '왜?'를 묻지만, 정작 내가 받으면 어떻게든 답은 하지만 솔직하지 않은 답을 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어려운 '왜?'라는 물음 대신 난 '어떻게?'라고 물었다. 왜라고 생각할 때 막연해서 포기하고 싶었던 일이 어떻게라고 물으면 풀리곤 했다. 특히 나 자신에게 왜라는 이유를 물을 때 그랬다.

나는 진짜 답을 얻고 싶어서 묻기보다, 그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거나 피하고 싶을 때 핑계처럼 '왜?'라는 질문을 했다. 불안하고 흔들리기에 질문에 나를 숨겨두고, 방황을 정당화했다. 그런 나를 인정한 후, 왜라는 막연한 질문을 두고 뭉그적거리기보다 어떻게를 넣어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세우려 했다. 덕분에 좋든 나쁘든 고민의 끝을 볼 수 있었고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책 제목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어떨까.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나는 당장 자살할 생각입니다."라는 말까지 더한 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참 쉽지 않은 질문을 두고 저자가 얼마나 고민이 심했을지, 그리고 세계 각계 100인의 셀럽에게 삶의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마저 짐작이 된다.

책은 우선 삶의 이유를 잃은 이유에 대해 "비어 있는 것은 우리의 집이나 금고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이제는 인간의 변치 않는 위대함을 믿거나 삶에 죽음으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의 분석은 세계가 급격히 변한 20세기에서 찾은 답이지만, 21세기인 지금도 통찰력 있게 현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측면이 있다.

홀로 해결할 수 없었던 저자는 "인생의 의미 혹은 가치는 무엇일까요? 당신의 영감과 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당신을 노력하게 만드는 목적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행복을 구합니까? 당신에게 소중한 궁극적 가치는 무엇입니까?"를 100인에게 묻는다. 그리고 받은 답을 종교, 역사, 과학, 유토피아 등으로 나누어 정리한다.

위 질문에 또 "어떻게?"로 바꾸어 답을 할 수밖에 없고, 헬렌 윌스의 답이 내 생각과 가장 비슷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매진함으로써 순간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슬픔과 초조와 분노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내 마음은 행복해지고 거의 평화로워지기까지 하지요. 이처럼 부단한 불안, 계속 나아가 어느 정도의 완벽함에 이르고 싶은 희망은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과 뒤섞여 있다"라는 글에 공감했다.

나는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기보다 인생에 내가 맞이할 수 있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그렇게 사는 나를 누구보다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솔직하고 당당해지고 싶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많지만, 그런 나를 보듬고 더 나아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과 삶이 더없이 소중하다.

"경험이란 그 어떤 감각도 살아가기에 충분한 경험을 취할 수 있는 놀랍도록 풍부한 파노라마"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난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를 읽고 다음 질문을 하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계속 살아야 합니까?"라는 더 중요한 질문을. 나의 삶을 풍부하게 채워줄 경험이 무엇일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며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를 덮으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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