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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경찰관속으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이후로 오랜만에 심장에서 아릿한 통증이 전해지는 글을 읽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나 자신이 부끄러워 심장이 내려앉을 때 느끼는 아픔을 느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는 나에게 그랬다. "글쓰기 수업"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글 잘 쓰는 법, 노하우, 테크닉을 배우는 커리큘럼은 없다. 그러니 내 글이 부끄러워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아니다. 이 책의 글쓰기 수업은 나만 쓸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법이다. 나만 쓸 수 있고, 씀의 과정에서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과정을 먼저 걸어온 홍승은이란 선배 작가의 수기다. 그럼 난 왜 아픔을 느꼈을까.
삶이 걸어온 싸움을 누구나 한 번 이상 부딪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싸움이다. 눈과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리며 그 순간이 지나길 바라는 순간일 수도 있고, 내 몸과 마음이 난도질당한 듯 너덜너덜해지는 싸움일 수도 있다. 혹은 싸움에 익숙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 수많은 싸움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상처 준다. 또 보고 지나치고 말리다 받기도 한다. 내가 이 글을 읽으며 아팠던 이유는 누군가가 온몸을 내걸며 싸우는 삶을 건조하게 지나치던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건조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감정을 쏟은 글이라 좋았다. 홍승은의 글이 '그런 건 그래야 더 좋지 않겠어?'라고 묶는 형태가 아니어서. 그렇길 내심 강요하던 내 마음을 정곡으로 찌른 글이라 좋았다.
저자는 글쓰기를 권한다. 자신의 달라진 삶을 보이며, 글쓰는 삶을 권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남들이 볼 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는 변화와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볼 때, 내가 발견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내가 나에게 더 관대해진다. 용서할 수 없고 잊고 싶었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기억에 매여 스스로를 옥죄며 나아가지 못한 삶의 반경을 넓혀준다. 그렇게 내가 더 나 다워진다. 이렇게 내 안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때로는 목격했던 과정이 나온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기록하며 적극적으로 내가 되어간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적극적으로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지지하면서."
경험을 해석한다는 말은 모든 경험에 이름표를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그렇듯 뚜렷하게 정해진 답이나 결말은 없다. 우리는 다만 시간과 사건의 끝없는 연속성 안에 존재하고, 순간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품을 수 있을 뿐이다. _231쪽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물론 나도 아픔이 있지만, 깊숙이 들여다볼 아픔이 아닌 것만 같아 다른 사람의 글로 글을 써왔다. 시작은 다른 사람의 글이었지만, 끝은 내 마음에서 나왔다. 책을 읽으며 서평 역시, 내가 나를 돌보는 글을 쓰는 법이구나 싶었다. 오직 내 안에서만 시작하는 것이 나만의 글은 아닐 것이다. 난 책에서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생각을 끌어냈다. 그렇게 지난 기억 속 나를 돌아봤고, 지금 나를 점검했고, 앞으로 나를 다짐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빌렸기에 한없이 조심할 수밖에 없고 그 조심이 어쩌면 저자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폭력을 막는 안전망을 조금씩 갖추며.
저는 우주로 대표되는 사람들, 제 이야기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꽤 많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어요.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 저는 실패할지언정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내 세계로 기꺼이 확장하는 사랑을 원해요. _ 89-90쪽
그렇기에 나는 계속 글을 쓰려고 한다. 책을 통해 글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작가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그렇게 사랑을 시도하며 말이다. 내가 그런 사랑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저자가 한 말을 나도 반복하고자 한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