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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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어야 하는 소설집이다. 《화이트 호스》는 그런 소설집이다.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의 <음복>이란 작품으로 강화길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알았다. 그때 읽었던 임팩트보다 7편의 소설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소설집에서 작가님을 소설을 읽었을 때 임팩트가 더 강력했다. 소설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 느낌 뭐지?" 싶은 서늘함이 다가오는 소설은 참 오랜만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난 소설을 관찰하는 독자가 아니라, 내가 소설 속 인물이 되어 느끼는 것만 같았다. 문장을 읽다 보면, 소설 속 세계에 내가 놓인 듯 작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7편 소설 속 주인공 각각 삶의 자리가 달랐고, 인생의 운동성 또한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각 이야기에 내 마음이 같은 감도는 아니지만 크고 작게 동요하게 하는 몰입력 있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노력은 선의와 상관없이 내가 의심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한번 생기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_122쪽

공포 장르 중 난 실제 있었던 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사건에 두려움을 느낀다. 즐길 수 없는 공포라고나 할까. 보고 나서 깜박이는 가로등에 흠칫 놀라 빠르게 구청에 민원을 넣어 가로등 교체를 요청하게끔 하는 그런 장르를 무서워한다. 그런 장르는 특정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란 종이 원인이라 더 그렇다.

강화길 작가의 소설이 딱 그랬다. 신문과 SNS를 조금 뒤적이면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일어날법한 일을 담았다. 보이는 사실만 기술한 글엔 담을 수 없는. 가려진 인물의 인생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그런 의미에서 무섭지는 않았던 <가원>이 난 좋았다. (그리고 <손>과 <오물자의 출현>은 섬뜩했다.)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 나만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살게 되었다. 살고 있다. _72~73쪽

해설을 쓴 신샛별 문학평론가는 박완서 작가와 에밀리 브론테를 언급했는데, 그 이야기에 공감했다. 평론을 읽으며 소설의 표지 이미지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고딕 스릴러를 표현하려던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못내 표지가 아쉬운 난, 조금 다른 느낌의 표지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리커버가 나중에 나오면 좋겠다. (내가 사지는 않겠지만)

"너무 빨리 읽어버렸어요."라는 탄식을 내놓은 분이 말이 내 마음속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 아직 여름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빨리 읽어버려 아쉬운 소설집이었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좋은 소설집을 발견해 좋지만, 조금만 더 음미하며 읽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이번보다는 천천히 《괜찮은 사람》과 《다른 사람》을 읽으며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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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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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책, 단단한 책! 산린이도 살짝 산타볼까 안산에라도 올라볼까 생각하게 만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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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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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우리나라 취미 모임에 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던 적이 있다. 독서라고 믿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낚시"와 "등산"이었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중 여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가파른 언덕이란 입지 조건을 피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을 다닌 나에게 산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런 내가 《아무튼 산》을 사다니. 귀여운 건 옳다는 굳은 믿음. 그리고 부제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힘든 건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피할 수 있어도 굳이 그 힘든 걸 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힘든 걸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책을 낑낑거리며 읽고 난 뒤에 내 마음에 번지는 행복을 주기적으로 찾는 것도 여기에 있다. 부제를 읽고. "나도 아는데, 힘들어서 좋다는 걸." 이렇게 말했다.

스물일곱, 서른은 아직 아니었지만 청춘의 달뜬 호기로부터는 한 걸음 멀어진 시간에 나는 또 다짐했다. 행복하자고. 어제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의 마음을 알았으니, 더는 모른 척하지 말자고. 하루라도 일찍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_ 34쪽

《아무튼 산》은 색다른 아무튼 시리즈였다. 내가 지금까지 읽음 아무튼 시리즈는 단편 단편 글마다 개성이 전해지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서 꼭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글도 윤이 나고 단단했다. 마치 그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위에 닿아 마모된 돌 같았다. 아니, 길이 아니었던 곳을 지나간 사람의 발걸음에 단단하게 다져진 등산로 같았다.

멀어지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멀어졌다. 무거운 중력과 무서운 습관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한 대로, 나에게 전부였던 산에서 놓여나고 있었다.
_126쪽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켜켜이 쌓아 만든 글엔, 산과 함께 하며 삶을 더 사랑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이렇게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뜨겁게 사랑하기도 하고, 때론 미적지근하게 식기도 했던.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온도를 찾았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다. 저자가 더는 타지 않는 2200번 버스에 행복하게 올라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걸 보면.

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는 것처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배경과 목적과 이유도 저마다 다르다. 이른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이 있으면 늦은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산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을 때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차음 산을 향한 세상의 모든 대답과 만나고 싶어졌다. 산을 배우고 싶었다. _46쪽

나도 언젠가 산을 배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까. 확실한 건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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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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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림 이야기! 어른을 위한 그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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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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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난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답고 싶지 않아, 그림책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어린도 아이도 어울리지 않아지기 시작했을 때 그림책이 궁금해졌다. 텍스트로 상상할 수 없는 그림책이 주는 포근함을 발견한 건, 내 상상이 더는 사랑스러움으로 치닫지 못하면서부터였다.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림책을 수집하는 사람의 심정을. 자꾸만 낙담하게 만드는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도 긍정하는 힘을 주는 책이어서가 아닐까 짐작해보며 나도 그림책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준 사랑은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고 했다. 많은 것들이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세상에 던져놓은 마음을 끝내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마음을 선물처럼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좋은 것들이 먼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온다. 그것들은 나를 통과해 또다시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_ 54쪽

이미 난 이상하고, 이미 난 자유롭다. 이제 할머니 될 일이남은 것 같은 내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은 이유는 두 번째 목차 때문이었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같은 이름의 그림책이 좋아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한 적이 있던 나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망설인 끝에 있는 너에게"라고. 그렇게 난 골랐고 샀고 읽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옳았다.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와 《오리건의 여행》을 페어로 쓴 글을 보고, 아주 마음이 찌릿해졌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세계 위에 내 세계를 겹쳐보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그때의 나만믘만 읽혔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는 동시에 읽는 수만큼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지나는 삶의 시기마다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읽힌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_174-175쪽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읽어주던 동화를 들을 때처럼, '내일'이 '오늘'이 된 순간이 낯선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어찌나 스스로가 어리숙하고 서툰지, 모든 일에 실수가 참 잦다. 당장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꿀팁이 간절하지만, 요령보다 두루뭉술하지만 포근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그림책과 삶을 겹쳐놓고 풀어낸 이야기엔 모두가 다 아는 평범하고 단순한 그래서 썩 괜찮은 가치가 담겨 있었다.
(대개 그런 가치는 요령 피우는 삶에서 얻을 수 없는 의연함이 있는 법이다.그래서 참 괜찮다.)

추신1. 이 글처럼 서평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책과 삶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글을.
추신2. 책에 담긴 그림책의 표지이미지 정도는 책의 마지막에 담아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림책의 표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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