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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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문장을 위해 읽는 소설이라고 해서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즈음해서는 마지막 문장이 도대체 뭘까 하는 마음에 두근두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역시는 역시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나서 다시 첫문장으로 돌아와서 보면 아주 기가 막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나치즘 이라는 무거운 배경을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 전개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게 전개되지만, 끝까지 읽고나면 그 역사의 무게와 주인공들의 감정이 내마음에 깊게 자리잡게 된다. 


주인공은 첫부분에 진정한 친구가 없는 것 같다며, "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아이, 내 완전한 믿음과 충절과 자기희생에 감복할 수 있는 아이"와 같은 친구를 갖고 싶다고 한다. 사실 친구라는게 그렇게 굳이 비장해야하나 싶었다.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물론 어떤 친구를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랬듯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그정도로 정해두진 않았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꼭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끝나더라도 너만은 믿을 수 있다 하는 친구가 있는지, 의심 많은 나에게 그건 마치 잡히지 않는 허상 같다고 할지라도 꼭 한 번은 잡아보고 싶은 무엇이다. 실로 세상에 남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고도 하고..


아무튼 간단한 내용인듯 하면서도 마지막 한 문장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한획을 남긴 작가가 대단하다. 여운은 역시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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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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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내 또래 직장인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현시대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다루거나 거창한 배경을 삼아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나와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내용들이어서 어쩌면 가볍게 술술 읽고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내 삶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라 더 깊이 공감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한다.


단편은 내용이 너무 쉽게 잊혀져서 간단히 줄거리 적기.


<잘 살겠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빛나 언니. 냉철한 세상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눈치 없이 감동받아버리는 빛나 언니.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기계처럼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은 어느새 필수 같다. 그런데 정해진 공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최선, 그것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로 여기는 이 세계가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내가 하나의 인격체보다는 부속품이 된 것 같아서.


<일의 기쁨과 슬픔>

사장의 갑질로 인해 포인트로 급여를 받게 된 거북이알.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억울하고 슬펐지만, 결국 그 포인트로 물건을 사 중고마켓에서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으로 그녀는 나름의 타개점을 찾는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길을 건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세로로 놓여져 있는 육교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냥 아무 일 없이 평탄한 길을 걸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쓸모없어보이는 육교를 올라서서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기분전환을 하기도 하고, 숨을 헉헉대기도 하고, 그렇게 다시 내려와서 아무일 없었단 듯 다시 길을 걷는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생활과 윗사람들의 갑질에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이 모든게 그렇게 쓸모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고 소중한 월급에 감사하기도 하고, 동료들과의 소소한 수다에 깔깔 웃기도 하고, 내 일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내맘대로 재단하여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소소하지만 가끔 오르락 내리락 하고, 비틀대지만 그래도 똑바로 걷고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다 잘 되겠지. 미래의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 아니겠지.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지유씨를 짝사랑하는 지훈씨의 이야기. 지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적혀있어 이인간은 뭔가, 싶다가 슬슬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쓰레기 새끼였구나. 결국은 자기의 시선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놓고선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고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건 분노밖에 없는 사람. 과연 소설속에서만 있는 사람일까.


<다소 낮음>

타이밍을 잡지 못한 장우의 이야기. 나름 본인의 가치를 지켜내고 싶었지만, 그가 마음 끌리는대로 행복을 찾아 살고 싶었으나, 효율적이고 가성비 높은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도움의 손길>

인생의 대부분을 피고용자로 살아와서, 고용자로서 자기보다 나이많은 아주머니에게 지시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또 똑같은 그소리. 애는 언제 낳을 거냐. 유독 이 편을 읽으면서 젋은 여성이 얼마나 얕잡아 보이는지 새삼 다시 느꼈다. 기혼여성뿐 아니라 미혼여성에게 그 시선은 한층 심해진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결국 소수점까지 따져가며 금액과 숫자를 계산해야 적당히 굴러갈 수 있는 세상.


<새벽의 방문자들>

새벽마다 성매매를 하러 오피스텔을 찾는 남성들. 바퀴벌레 마냥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곳곳에 숨어있겠지. 성매매 남성들의 사진을 뽑으며 '대상화'하는, 미러링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탐페레 공항>

마지막 즈음 노인이 사진이 구겨지지 않게 시리얼 박스를 붙여 넣은 것 같다고 묘사하는 장면에서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어쩌면 이토록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그래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누군가의 온정 가득한 눈빛과 마음 덕분일텐데.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사람이 누구든지 내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일지. 처음 노인이 다가오는 장면에서도 소설인데도 괜시리 해코지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세상이라며 항상 웅크리고 경계하며 지내고 있는데, 그렇게 만든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만큼 사람간의 온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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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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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해피엔딩만을 바라고 원하는 결말이 아니면 기분이 울적했었다. 힘든 일은 현실에도 가득한데 굳이 가상의 현실에서마저 사람들이 불행해야만 하나 싶어서.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씁쓸한 결말이 작품의 색을 짙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뻔한 해피엔딩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개성을 실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관념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어 오랫동안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결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면서도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애초에 사랑이라는 건 열정의 순간일 뿐 영원한 사랑이란 없는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진취적이기보단 조금 덜 행복하더라도 익숙함만을 좇게 되는 것인가. 애초에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사회적인 통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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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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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은 다른 3점 책들이 3.5이라면, 이책은 3.0)
결론적으로 말하면, 생각보다 감흥이 별로 일지 않았다. 그냥 따뜻한 동화를 읽은 듯한 느낌. 온전히 킬링타임용이라기엔 ‘환경‘이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지만.. 기대가 컸기 때문인가, 생각보다 밋밋한 진행 탓에 실망해버린 것도 있겠다. 읽기 전에도 기대가 높긴 했지만, 소설 도입부가 무언가 어마어마한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로맨스 소설이기에 어느정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읽으면 나름 만족스러울 것 같긴 한데, 요즘 내 감성의 순도가 워낙 낮은 상태라 더욱 무미건조하게 읽지 않았을까. 차라리 ‘덧니가 보고싶어’에서 헤어진 연인의 미묘한 감정들을 지켜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특한 소재로 지구를 향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누군가에겐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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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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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기를 잘했다. 저자가 이전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놓은 산문집인데, 주제 하나하나에서 감탄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길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약자, 실패, 상처와 같이 빛의 그늘에 있는 대상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책에 나온 것 처럼 공자가 말한 인간의 네 가지 유형 중, 나는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니까 내 생각이 모두 다 맞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내 편협함을 경계해야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흐릿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 책이 그 방향을 어느정도 구체화 시켜준 것 같다. 저자의 의견이 들어간 글이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편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기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 독서노트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됐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1.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실제로 내 친구는 친한 친구에게서 너의 슬픔이 불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이 말이 얼마나 사무치게 와닿았을까. 나 또한 그 잔인함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것이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누군가의 터널 속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2. “실수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나의 무지함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다. 몰라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나에겐 잘못이 없다고 합리화하지는 않았을지.

“폭력이란? 어떤 사람, 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이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민감해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3. 문학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게 됐다.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 정도로 그 가치를 가늠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문학의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

“어떤 시대에 사람들은 소설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그 시대가 저물면 그 반작용처럼 소설의 ‘미학’적 본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때가 온다. 그런가하면 요즘처럼 ‘정서’적 맥락에서 많이 읽히기도 한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문학은 내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의 지원군이다.”

특히 어려워했고 아직도 어려운 시. 글을 읽어보니 시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게 본질인듯 하다. 명확한 취지를 나르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특히 ‘모른다’고 말하는 시들이 매혹적으로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을 보니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만을 고집하던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소개된 시들도 내 나름의 방식대로 해석해보려고 했는데, 여전히 갈피가 안잡혔다. 해석해 놓은 글들을 보면 시가 더욱 찬란해 보이는데, 언젠가 내 힘으로 시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삶이란 의미를 찾기위해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4. 농단과 혐오를 엮어 생각한 부분도 깊이 와닿았다. 농단이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독점한다는 의미인데, ‘국정농단’에서 쓰이듯 농단은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반복되는 혜택앞에서 서서히 자기 성찰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농단과 혐오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 그 안에서 성찰적 긴장을 잃으면 자신도 모르게 악의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일말의 공통점이 있다” 라고 한다. 여성 혐오에 관해서라면 나는 여성이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느끼기 어려운 남성들에게는 성찰의 과정 없이는 여성혐오를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성인 나도 성별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수 있다.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며, 나 또한 무언가를 당연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한다.


대체적으로 읽기에 무리가 없었지만 문학 파트에서는 여러번 읽어서 겨우 어렴풋이 이해한 부분도 있었다. 명확함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내가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넓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하겠고, 더 많은 공부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여러 깨달음과 더불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책을 마음에 잘 새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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