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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평점 :
마치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회상하듯 쓰여진 소설이다. 글의 서문에는 회상하는 글이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쓰겠다는 둥, 허구로 꾸며내지 않았다는 둥, 영국인으로서 미국인에 대해 서술하는게 미흡할 거라는 둥, 독자가 단단히 오해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양해를 구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정말 속을 뻔했다. 실제로 중간까지 실화라고 믿고 읽는 바람에 더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긴 했다. 역시 글을 풀어내는 재주가 남다르구나 했다. (비슷한 사례로 영화 <가려진 시간>도 실화라고 믿고 보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는데, 덕분에 기억에 제대로 남았다. 그냥 내가 잘 속는 것일 수도.)
워낙 작품 속 작가를 타자화 해서 인식하는 바람에 래리의 생각에만 집중해서 보다가, 생각해보면 왜 작가는 래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삶의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하게 만들었을까, 가 궁금해졌다. 실제로 세계1차대전을 겪은 후 쓰여진 글인 것을 보니 전쟁에서 일어난 많은 살상을 보며 삶의 허무함, 인간의 양면성, 신의 존재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이 생겼을 것 같다. 그리고 래리라는 인물을 만들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큰 대비를 이루면서도, 뒷걸음질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를 통해 대리만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엘리엇과 이사벨이 추구하던 삶은 그저 속물적인 삶이었던 것일까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세속의 삶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도, 욕심을 위해 약은 수를 쓰는 그들을 보면서도 마냥 비난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돈을 행복의 전제로 여기곤 한다. 정신적인 가치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재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세뇌인 것인지, 아니면 물질적 욕심이 만들어낸 합리화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도 쉽게 돈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래리보다 엘리엇 이사벨 쪽이 더 현실적이고 공감이 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이사벨과 래리는 사랑했지만 합의점을 내지 못한 것처럼 각자 추구하는 행복의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각자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고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그 중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남의 삶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삶에 대해서도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이 많고 더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갖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 위해 내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