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영화<적벽대전>을 보고 온 아들녀석이 삼국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집에 60권짜리 만화 삼국지를 몇 해전에 고모네에서 얻어와 이사때마다 들고 다닌 보람이
있었서인지 방학동안 일주일 내내 방에서 꼼짝을 않더니 삼국지를 다 읽었다며 의기양양이다.
처음엔 적벽대전 그 이후부터 읽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이전도 읽었단다. 내친김에
<초한지>를 거쳐 지금은 <수호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이런 쪽의 책엔 눈길조차 주지않던
나도 아들녀석과 아빠가 어찌나 재미있게 읽는지 슬며시 곁에 앉아 읽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었다. 108명의 영웅호걸을 다룬 이야기라더니
은근히 재미있다. 시작 부분에 고구라는 인물이 나온다.
친구를 꾀어 돈을 훔쳐 유흥비에 써버린 고구가 귀양에서 풀려나 소왕 태위라 불리던
왕진경의 시중드는 일을 맡았다. 어느날 왕진경과 길을 가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개미를
향해 고구가 대뜸 호령치기를 "감히 이분이 누구라고 가시는 길을 막아서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이런식의 아부로 고구는 소왕도 태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 장면을 보고
난 배꼽을 쥐고 말았다.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간신의 극치라고 해야 하나..
아뭏든 대단한 처세술이다.
<수호지>는 <삼국지>와 함께 중국 고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젊었을 땐 <삼국지>를 읽고
나이가 들어서는 <수호지>를 읽어라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엔 <삼국지>의 다양한 지혜와 경험
을 본받고, 나이가 들어서는 수호지의 호기를 본받으라는 뜻이다. 반면 이 말은 혈기 왕성한 젊은
이가 수호지를 읽으면 호기로운 108호걸들에게 영향을 받아 도를 지나치기 쉽고, 나이 든 사람이
삼국지를 읽으면 연륜에 삼국지의 지혜가 더해져 간교해질 수 있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실제 중국에서는 정사에 충실한 삼국지 보다 108호걸들의 호쾌한 모험담으로 가득한 수호지를
더 즐겨 본다고 한다. 의를 지키기 위해 탐관오리를 혼내고 자유롭게 모험을 떠나는 108호걸들의
모습속에는 당시 고통받던 백성들의 바람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수호지/ 아이세움 해설 중에서>
부패한 탐관오리들이 득세하던 중국 송나라 철종 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영웅호걸들이
결국 세상을 등지고 하나 둘씩 양산박 산채로 모이는 과정을 그린 것이 수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