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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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마다 팔리기를 원했다는, 핼러윈은 이야기가 깃들기 가장 좋은 때라던 작가의 의도는 내겐 성공적이다. 언어에 취해 읽다 무심결에 핼러윈에 딱이네 싶었으니까.
무서운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더위로 더 이상 뒤척이지 않는 아이들 잠자리에서 읽어주고 싶은 아주 아름답고 조금은 슬픈 이야기로.
시처럼 아름다운 소설에, 언어가 넘쳐도 이렇게 아름답게 어울러질 수 있다는 사실에 울컥 목이 메었다.

‘거만함이란 훌륭한 모피를 두른 채, 리무진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던 그릉거리는 엔진 소리를 더욱 나직하게 낮추면서,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3천 년이 걸린 여행길에서 방금 돌아온 고귀한 존재는천천히 복도로 발을 옮겼다.‘

‘그들은 지붕을 스치듯 날아 세시가 꿈꾸고 있는 다락방의 모래언덕을 들여다보고는, 시월의 바람을 붙들고 구름 위로 날아 올랐다가, 부드럽게 하강해서 현관 앞에 내려않았다. 눈이 있을 자리에 안개를 머금고 있는 스물 가량의 그림자가 예의 바르게 웅성거리며 빗소리처럼 울리는 박수로 그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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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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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 해도 모든 국토가 무덤이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매장이 화장으로 바뀐 세월이 그리 길지 않다. 장사지낼 땐 매장꾼들이 부르는 대로 돈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경우를 겪기도 했고, 화장이 부끄럽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걸린 것을 기억한다.

미국의 경우는 화장장이 개인적으로 운영되고 거기에서 시신의 염, 방부처리, 화장이 일사처리로
말 그대로 시체처리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협회, 자본들이 얽히면서 장례 당사자들이 죽음을 보고, 애도할 시간은 특별하지 않은 경우 주어지지도, 취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치워져야 하는 부패한 짐이 되버렸다. 예전 어른들 말씀대로 ‘갖다버리기 바빠진‘ 것이다.

일주일에 몇 십 구의 시체를 운반하고 화장 하며 사람들이 굳이 죽음을 숨기려 화장과 방부처리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장의학교를 다니기까지한 작가는 좋은 죽음을 가질 수 있음을 바라며 이 글을 썼다. 죽음을 이렇게 문화적, 사회적 지식을 전달함 없이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책도 드물지 싶다. 내가 이렇게 화장되는구나!
우리나라의 장례는 케이틀란이 주장하는 죽음과 미국식 장례의 중간쯤에 머무는 것 같다. 화장이나 방부처리 과정이 조금씩 들어오는 듯 싶은데 오히려 예전 내할아버님처럼 가족들이 씻기고 좋아하시던 옷을 입고 가시는 것도 좋으리라.
한 번쯤 읽어볼 일이다. 내가 죽은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 내 마지막이지만 내가 모를 그 일을 알아 미리 정할 수 있다면 내 가족들의 황망스러움을 덜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은‘알려져야 한다.‘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과정으로서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신에게는 누가 기억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다. 사실 시신에겐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치 않다. 거기 누워 부패해가는 것은 행복 그 이상이다. 시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유족 당사자‘이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떠났으며 이제 더 이상 삶이라는 경기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아님을 안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스스로 알아차림을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의 시작이다.‘

‘그의 한쪽 팔을 씻기려고 쳐들다가 잠깐 멈추었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씻김, 편안함, 이 내밀한 느낌, 이 안정감은 만약 사회가 미신의 짐만 벗는다면 누구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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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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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에, 이후에 읽었다면 내 생각의 변화를 혹은 그럼에도불구하고 토를 달았을 지도 모를 순간을 놓쳐버린 모양이다. 아쉽.
질본분들이 조치를 취하기 전에 까뮈의 예지력을 빌리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오랑시 폐쇄전략에 현대적 상황과 기술을 더한다면 지금, 여기가 될 것이다. 아무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코로나 시대가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드론을 띄워 우리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 주듯이.
아직은 우리가 공론화 시키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변화와 사회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격리로 인한 이별 그래서 각별해진 사랑, 그 틈에 벌어지는 범죄들, 사람들의 협력, 종교까지. 그리고 다행히 페스트가 물러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서술자로 자처하는 작가는 이런 사태에 영웅이라는 본보기의 선례로 평범하고 앞에 잘 나서지도 않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마음속에 약간의 선량함과 겉보기에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 없는 말단 공무원 그랑을 추천하면서 그가 집착하는 사소한 문장이 변화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람 사는 일이란 자기 자리에서의 성실함, 이것이 다라는듯.


‘해야할 일은, 인정해야 할 사실은 확실하게 인정하고 쓸데없는 그림자들을 쫓아버린 뒤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나면 페스트는 상상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멈추게 될 것이다. 만일 전염병이 멈춘다면, 게다가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한데, 다 잘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우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술자는 훌륭한 활동에 중요성을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은 결국 악에 대해서 강력하면서도 간접적인 찬사를 표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훌륭한 행동들이 그렇게도 큰 가치를 갖는다면 그런 행동들 자체가 드문 데다가 사악함과 무관심이 인간들의 행동에 있어 훨씬 더 빈번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라는 점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서술자가 동의할 수 없는 점이다. 이 세상의 악이란 거의 무지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배움이 없는 선의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한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덜 무지하거나 더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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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밀리언셀러 클럽 73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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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물은 온전한 성인의 연령이었나 보다.
어린 주인공이 당차게 사건에 뛰어들고 파트너가 전해준 경함담을 빌어 사건을 해결(?) 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던 또박또박함에 무색하게 범인검거
는 느닷없다.


‘아래엔 운이 다한 자의 경솔함을 빌어 부당하기 짝이 없는 최후의 간청을 흘려써 두었다.
내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면, 도움을 청하기 전에 아무쪼록 기다려 주시길, 자네만 믿어, 파트너.‘

‘불필요한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해. 진실은 위대한 권위를 지니고 있지 영리하기 그지없는 살인자들은 곌정적인 거짓말을 한 번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아무 해될 것이 없을 사소한 세부사항에 대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꼬리를 밝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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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머클라비어
야스미나 레자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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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의 대사들과 비슷한 어감의 에세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장조 op.106. ‘함머 클라비어‘라는 이름을 가진 곡을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배우며 은근한 경쟁을 즐기던 아버지와의 기억, 늙음, 파트너 편집장의 투병과 그 기억들, 그런 상실 되어가는 시간들의 이야기.
나이들어 공감되는.



‘‘‘얼굴로 말하자면......그냥 데스마스크구나.‘‘
내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사실 아빠,지금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데요.‘‘
‘‘그런 말이 어디 있니......!‘‘
아버지가 웃는다. 아버지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이윽고 나도 따라 웃는다. 나는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서, 아버지는 다시 잠옷을 입으면서, 아버지는 진짜로 우스워서, 나는 우스워서가 아니라 웃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모습 앞에서 우리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웃는다.‘



‘그녀가 불합리 하고 완강하게 포르트상페레가 없다고 우긴 것은, 바로 그 불합리함과 완강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하자면 하나의 실존적인 시험이었다. 세상보다 나를 우선시해줘. 그녀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말에, 아니, 난
포르트상페레를 더 사랑해.라고 대답한 것이다. 나에게 맞서 세상을 옳다고 하지 마. 그녀가 사정했다.그런데 그는, 아니, 난 딱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비이성보다는 아스팔트와 표지판을 택하겠어.라고 대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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