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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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여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느날 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 다르게 ㅡ 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 ㅡ 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 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화두 삼아, 살기 위해 찾아낸 발걸음이다. 다윈이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곡진하게 주장했던 진화론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늘 오류를 인정할 수 있음이 과학의 미덕이라던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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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 202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미래주니어노블 5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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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도 무서울까봐 걱정스럽던 무서운 이야기.
추워지면 산에 깃들어 사는 야생고양이도 새들도 힘들겠다 싶던 산책길에서 야생개들 이야기를 듣는다. 무서워서 가슴 졸였다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닐까 싶다는 말도. 야생 동물들 앞에서 사람들은 무기력하다. 무리와 무기로 무장했을 때 빼고는. 애당초 그 아이들이 거기 살게 된 연유도 사람이 제공했을텐데.

야생 여우들이 살아가는 자연도 모든 것이 함정이다. 사람은 잔혹하고. 온갖 것들 중에 사람에 제일 잔인하다. 약육강식도 아닌 다른 목적으로 괴롭히고 죽이니 말이다.

동화?!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성대묘사까지 해가며 읽어주고 싶어지는데 나 조차도 심장이 쫄깃하니 아이들의 반응도 대단하겠다.

아이들의 세계도 허술하지 않음을 단단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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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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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멀로는 이야기꾼이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삼았으니 당연하다 싶긴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엔 군더더기가 없다. 모든 이야기가 아귀가 맞아서 마지막 장을 읽을 땐 매끈하고 결에 따라 화려한 비단 한복 치마가 떠올랐다.

이야기꾼의 솜씨란 새삼 술술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딱 그것이구나 싶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제우스의 불을 건네주고 신들에게 비웃음과 조롱, 매서운 채찍과 벌을 받으면서도 남몰래 다가간 키르케의 ˝왜 그러셨어요?˝ 란 질문에 ˝모든 신이 같을 필요가 없지 않으냐.˝라고 대답한 것이 이 전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고 이 약속이 끝까지 지켜지는 것이 맘에 들었는 지도 모른다. 요즘 빠져있는 ‘연인‘이란 드라마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모티브란 사실을 떠올리며 쉬울 수도 혹은 너무 어려울 수도 있는 외줄타기란 생각을 한다. 성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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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1-0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 작가들이 부러운 게
이렇게 마음껏 비틀고 우려
먹을 수 있는 원천이 있다는
게 아닐까요.

게다가 저작권 문제도 없구요.

모든 인간이 같을 필요는 없
지 않냐로 읽히네요.

treehyun 2023-11-0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도깨비의 변주를 볼 때의 반가움이 그런 반영인가 봅니다.

그렇게 고집스레 다른 모습이 좋았나 봅니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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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글이 좋아서 읽어내릴 수가 없다.

가슴이 아릿하다. 로빈이 느끼는 지구의 인간이외의 존채들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운 슬픔과 경이가 아이를 얼마나 분노하게 하는 지 알 것 같다. ‘겨우‘여서 몸둘 바를 모르게 한다.
이렇게 작가는 한 작은 존재로 지구의 98% 생명체를 나무란다. 하나는 모두라고.

사람들이 인간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당혹‘‘어리둥절함‘ 이라고 해석한다. 그럴지도, 이렇게 나빠지리란 걸 몰랐을지도.그렇지만 그렇게 봐주기엔 욕심이, 욕망이 너무 과했다고. 귀한 것들을 하나 하나 제껴가며 이뤼낸 결과는 벽을 이룬, 바람길 조차 차단당한 아파트같은 욕망덩어리아니냐고.


‘사람들이 이걸 알아?‘
˝아마 그럴 거야. 대부분은.˝
‘그런 데도 고치지 않는 건 왜......?‘
보통 나오는 대답은 ‘경제학‘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친 소리였다. 나는 학교에서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배웠다. 그리고 여전히 놓치고 있었다.

나는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온 인류하자에게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까짓 기술력에 빠진 이까짓 종족이 사는 역기에서는, 단순한 머릿수 세기조차도 불가능해졌다. 우리가 내전을 벌이지 않는 것은 오직 ‘어리둥절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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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 - 사르담호 살인 사건
스튜어트 터튼 지음, 한정훈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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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집어든 해양물인 줄 알았던, 삼총사와 애거사 크리스트의 이야기의 합작 같은 분위기가 물씬나는 소설.

1634년 동인도회사. 식민지 착취의 근간이 되었던 회사. 부에 대한 욕망이 스스로 부패의 냄새로 넘친다.
더 갈 곳 없는 거칠디 거친 선원들, 그들의 공간엔 군인도 들어갈 수 없다. 하층민의 선실은 쥐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이들 중 몇 명이나 목적지에 닿을 지는 알 수 없다. ㅡ인간세에는 평등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소유라는 개념은 불평등과 함께 존재했다는, 결국 물질은 편리가 아니었다는 것이 슬프다.

우연히 생겨난 상처가 불러온 재앙이 누군가에겐 부의 실마리가 되고, 결국은 누군가의 복수를 불러오는데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에 조금의 두려움만 뿌려주면 바다 위 배 한 척을 공포의 아수라장으로 몰아넣는 것은 절로 될 일이다. 나약함인지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죄 때문인지, 이럴 거라면 모두 좀 선하게 살지. 참 거칠게, 조악하게 살아내는 세상이다.

숱한 군상들 중에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작은 무리가 있으니 애거사 크리스티의 솜씨로 해결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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