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tormpy의 서재 (stormpy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17 Aug 2026 23:16:23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ormpy</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ormpy</description></image><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존 리) - 베가북스 - [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경제 독립 선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42048</link><pubDate>Mon, 10 Aug 202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420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0122&TPaperId=17442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0/48/coveroff/k68213012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0122&TPaperId=174420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경제 독립 선언</a><br/>존 리 지음 / 베가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lt;엄마, 주식 사 주세요&gt;에서 사교육비 보다 금융 자산을 모으고 금융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존 리의 새 책을 읽어 보았다. 여전히 장기 투자를 권하면서 아이들에게 금융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nbsp;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다. 지난 코로나 이후로 '벼락 거지'라는 말이 탄생했고 세상은 화폐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데, 고정된 자산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뒤로 가는 길이다. 결국 움직이는 자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nbsp;&nbsp; 존 리의 투자방식은 늘 장기 투자이다. 펀드나 ETF는 물론 개인 투자의 경우에도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라는 여타 다른 투자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복권 같은 것을 사는 것이 아닌 기업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고 그 일부를 인수하는 마음으로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투자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기업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자본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nbsp;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는 정보 부족이나 기업 분석 능력 부족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은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차트에 요동치기 때문이다. 가격이 가치가 아닌데 불안한 감정은 컨트롤해 내기 쉽지 않다.&nbsp; 주식 시장은 원래 불안정하다. 하루 단위로 보면 모든 것이 우연 같지만 길게 보면 기업의 성장에 수렴하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을 맞추는 투자를 하게 된다.&nbsp;&nbsp; 돈을 운용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매매가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는 것이다. 좋은 구조에 들어섰다면 결정을 줄여야 한다. 돈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유지해 줘야 한다. 게다가 투자를 옮길 때마다 생기는 '방향 전환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투자의 전체 수익을 갉아먹는다. 한번 투자하면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nbsp; 복리의 본질은 '수익률'이 아니다. '중단되지 않는 시간'이다. 시장이 아무리 완만하게 성장하더라도 자본이 그 위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다면 결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진다.&nbsp;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보다 얼마나 일찍 투자를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적은 금액이라도 바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0/48/cover150/k68213012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04803</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멸종 위기의 사고 (에릭 사댕) - 헤이북스 - [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36981</link><pubDate>Fri, 07 Aug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369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21&TPaperId=174369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98/coveroff/k1521301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21&TPaperId=174369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a><br/>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nbsp; 벌써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생성형 AI의 시대다. 2022년 12월에 발표된 chatGPT는 우리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패러다임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다. 준비하고 있던 많은 생성형 AI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것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nbsp; 최대 이득, 최소 손실을 미학으로 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산업화로 인해 이것들이 크게 확산된 이후 우리는 많은 저항들을 멈추고 그저 그 기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미래를 약속받았다고 믿어야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자본주의가 내놓은 것을 누구보다 빨리 취하려 하는 풍토가 생겼다. 자기 보상의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nbsp; 이런 세상은 근대적인 사치를 제공하고 개인의 역동성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펼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이 원하는 재능만을 계발하라고 압박받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된 권리는 점점 회복할 수 없다. 집단적 의지가 되어 버리면 더 이상 개인의 저항은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다수가 강화되고 개인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된다.&nbsp; '소비사회'가 되어 버린 세상은 점점 더 강렬하게 소비와 소유를 갈구하게 되었다. 시스템이 무자비하게 착취를 감행하더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방관하게 되었다. 쾌락은 쇠와 개인주의를 확산시켰고 공정과 책임감에 대해 등을 돌리게 했다. 우리가 잃어가는 다양성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저 세상이 좋아졌다고 얘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nbsp; &nbsp;세상이 자동화될수록 개인의 책임감 상실은 심화되면서 또한 도구화되었다. 인간은 점점 시스템에서 주변으로 밀러 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고 현실이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다. 사람보다 기술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다. 사람마저도 유용성이라는 가치 판단 아래 놓이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 고립된다. 감수성은 사라진다. 다른 인간과의 교류가 끊어지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알고리즘이 안내해 주는 협소한 세상, 빈약한 관점을 가질 뿐이다.&nbsp; 문명화는 우리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로부터 차단시켰다. 자동화는 우리를 사회 자체로부터 차단시키는 듯하다. 사람과 얘기하지 않고 AI들과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 청소년들을 보면서 개인주의를 넘어서 고립을 선택한 듯 느껴진다. 자신의 능동성을 뺏기고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nbsp; AI의 학습은 인간의 학습과 닮아 있다. 인간의 학습은 부모와의 관계와 일상생활의 다양한 맥락을 겪으며 이뤄진다. 동시에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교육이란 사회적 공동 유산과 같은 다양한 것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경험하며 이뤄진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어떤가? 자신이 클릭한 첫 번째 영상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의 시작은 빠져나올 수 없는 취향과 학습의 강요가 될 수 있다.&nbsp; 타인이라는 존재는 중요하다. 독창성을 가진 타인과의 접촉은 우리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정신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관심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일상 규범에서 벗어난 탐험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이런 열망들이 모여 문화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것에 좋아요/싫어요 같은 단순한 평가만 하고 있다. 긴 감상평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취향이 아니면 넘기고 취향만 남긴다. 무한한 선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점점 더 편협한 세상으로 들어간다. 취향이 권력 같아 보이지만 그저 비슷한 알고리즘의 결과를 받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nbsp; 며칠 시끄러웠던 영화의 호불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취향은 점점 편협해진다. 예술의 영역에서 미학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확립된 자신의 심리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신. 그게 답이어야 한다. 개인들에게 외부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느끼든 그렇지 않든 알고리즘이 이끄는 여정 위에 놓여 있다. 자신이 학습은 것만이 그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진리로 가득 차면 분노가 들끓는 집단이 된다. 나의 세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 폭력이 앞선다.&nbsp; 인터넷에서는 종종 예전 세상과 지금의 세상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등장한다. 그 감상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는 것이 바로 '세련된 죽음'이었다. 다양했던 색상은 무채색이 되었고 개성 넘쳤던 디자인은 모두 심플이라는 미명 아래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멋스럽게 보이지만 똑같아지고 있다. 대중의 취향은 다수의 취향으로 모여지고 개인을 압박한다. 소비가 몰리는 곳에 공급이 몰리니 취향은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모아진다. 인간은 어쩌면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말은 멸종일지도 모르겠다.&nbsp;&nbsp;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색한 것과 마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98/cover150/k1521301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99876</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도서협찬) 비인간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 이비 - [비인간 - 시간에 관한 사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47397</link><pubDate>Sun, 21 Jun 2026 2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47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617&TPaperId=1734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70/coveroff/k92213961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617&TPaperId=17347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인간 - 시간에 관한 사유</a><br/>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이승현 외 옮김 / 이비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 이것이 정통 철학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비전공자인 나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다. 까마득한 사유의 끝점에서 노닐고 있는 신선들의 얘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을 살아내기도 빠듯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 것일까.&nbsp;&nbsp; 인간의 삶이 기계의 발전과 동조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인간은 편해지기 위해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 기계를 더 잘 다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계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계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인간에게 인간적이지 않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것에 대해 리오타르는 얘기한다(하지만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nbsp;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원초적인 것인가 아니면 어른스러운 것인가. 때로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인간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로 학습된 인간의 행동을 보고 인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진짜 인간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인 사실이다.&nbsp; 모든 교육은 제재와 두려움 없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다. 아이는 성인 공동체의 볼모이면서도 인간성이 부족한 성인 공동체에 더 인간적임을 촉구할 수 있다. 어른은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다. 철학자들의 깊은 문답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nbsp; 인간의 사유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묻고 답하면서 철학과 사유는 지속된다. 하지만 절멸이라는 단어 앞에서 지켜낼 수 있는 사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지만 태양의 죽음과 함께 다가올 혹은 그보다 훨씬 일찍 마주하게 될 인류의 절멸.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생길 수 있을까? 존재할 이유가 없는 질문 아니 질문할 존재조차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죽음에 대한 사유는 존재하지만 종말에 대한 사유는 불가능하다. 유한한 것을 유한하다고 말하고자 하려면 영원히 지속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인간 없음의 사유가 진행되어야 한다. 바위가 사유할 수 있다면 인간 절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계속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AI라면 가능할까?&nbsp; 철학적 사유를 천천히 살펴보면 마치 과학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어떤 학문이든 꼭대기에 이르러면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 걸까. 찰나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물질에 대한 것도 비슷하다. 일어나는 것은 '지금'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남은 그대로 포착할 수 없다. 인지의 순간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고 그전이라 하면 예측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된 현재는 과거다. 뇌수용체가 정보를 파악한 지금도 이미 과거다. 사건을 구성하기 위한 지금 역시 과거의 조각들의 모음이다.&nbsp; 책은 굉장히 심오해서 활자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내가 여러 철학서를 조금 더 잘고 있었더라면 꽤나 재밌는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수박 겉핥기 수준의 지식으로는 충분히 즐기기 어려웠다. 모든 이야기는 결론이 있을 때 이야기가 성립된다. 비밀은 비밀이 아닐 때 비로소 비밀임이 성립되고 결국엔 비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무엇에게 인지될 때 그것은 성립된다.&nbsp;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것들은 결국 인간에게 인지됨으로써 밖에 존재할 수 밖에지만 그러면 더 이상 비인간적인 게 아니게 된다. 결국 비인간적인 것에 의해 인지되고 사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그저 사유가 멈춰지지 않을 것만 알게 되는 게 최선인지도 모르겠다.&nbsp;&nbsp;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더 공부해 보는 걸로 하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70/cover150/k92213961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37056</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탁월한 리더의 성공 법칙 - 러스 래러웨이 (한국경제신문) - [탁월한 리더의 성공 법칙 - 구글, 트위터 전설적 관리자가 알려주는 3가지 원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15504</link><pubDate>Wed, 03 Jun 2026 2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155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49924&TPaperId=173155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37/81/coveroff/89475499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49924&TPaperId=173155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탁월한 리더의 성공 법칙 - 구글, 트위터 전설적 관리자가 알려주는 3가지 원칙</a><br/>러스 래러웨이 지음, 신솔잎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01월<br/></td></tr></table><br/>&nbsp; 너무 바쁜 시절에 인증만 해도 된다고 해서 받아뒀다가 그래도 언젠가는 읽고 리뷰해야지라고 말한 지가 벌써 일 년이 지나버렸다. 책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마케팅에 도움이 될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한 번 읽고 정리하는 시간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 리더의 성공에 필요한 것은 바로 팔로워의 성공이다. 이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생각은 바로 '성공하고 싶다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관리자에게 필요한 역량 또한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우수한 인재를 곁에 오래도록 둘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nbsp; 이런 간단하고 명백한 방법은 기업에 자주 외면 당한다. 왜냐면 돈 들여 키워서 남 좋은 일 시킬 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육성보다는 채용에 더 많은 고민과 돈을 들인다. 자연스럽게 고용 시장은 능력과 경력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성장에 대한 목마름은 있다.&nbsp;&nbsp; 리더가 팀원의 성공 그 이상에 집중한다면 팀원들은 명확하게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무엇일까? 한참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다녔던 '목적'과 '비전'이다. 목적은 미션이라는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방향성, 코칭 그리고 커리어다. 관리자는 결과 달성과 팀원의 성공을 지원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킨다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한 일이 조직의 결과에 도움이 되었다는 메커니즘의 구성은 정말 중요하다.&nbsp; 그리기 위해서 리더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직원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기대치를 측정할 방법을 제시하고 팀을 관리해야 한다. 방향 설정은 리더가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방향이 설정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nbsp; 미션이나 비전과 같은 거대한 담론처럼 느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용어에 얽매지 않으면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왜 일하는 가'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만 제시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확답은 리더가 존재하지 않아도 모두가 스스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게 해 줄 것이다.&nbsp; 시간, 도움, 성공이라는 키워드로 문장을 만들어 보면 '그는 시간을 내어 내가 더욱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가 된다. 코칭을 한 사람은 그들이 업무를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돕거나 미래의 꿈이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운다. 관리자가 직원들과 관계를 개선해 줄 방법은 많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마음을 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바로 직원의 장기적인 목표와 커리어에 깊이 개입하는 것이다.&nbsp;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꺼내 발전시키도록 압박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책임감도 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꿈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내가 도울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은 없다. 자신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또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nbsp; 나의 성공을 위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존재에 대한 기대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런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관리자가 그런 공식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휘둘리면 아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의 성취를 위한 이기심이 아니어서 회사는 그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것을 실행하려면 최고 경영자부터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대부분의 경영서들이 최고 경영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듯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nbsp;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성공에 대한 정확한 기대와 목표 그리고 계획에 대한 생각은 스스로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37/81/cover150/89475499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378132</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읽기의 위기 (크리스토프 엥게만) - 헤이북스 - [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04434</link><pubDate>Fri, 29 May 2026 1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044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8200&TPaperId=173044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91/coveroff/k6021382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8200&TPaperId=173044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a><br/>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 매년 독서량이 줄고 있다. 독서의 편중을 생각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다. 읽는 사람만 더 읽는 독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다. 독서가 외면 당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둘 정도다. 하나는 숏폼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먹고살기 바쁜 일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전자는 오래전부터 있던 이유로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독서 인구를 설명할 수 없다.&nbsp;&nbsp; 그렇다고 숏폼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면 끝날까. 그러면 너무 허무하겠다 싶기도 하다. 사회적 현상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가 변했으니 사람도 변했다. 반대로 사람이 변했으니 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기도 하다.&nbsp;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바로 현대 사회에서 텍스트가 가지는 위치다. 텍스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높다. 그리고 저장 가능하다는 점과 검색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지적 갈증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가지는 장점들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nbsp; 텍스는 한때 독보적인 위치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화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일에 많이 노출된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전단지부터 관공서의 문서까지 우리는 끝없는 텍스트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변화가 읽기와 쓰기의 의미 변화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변화시켰을 수도 있다.&nbsp; 우리가 읽기와 쓰기에 기대하는 역할이 더 이상 서사나 정보 전달이 아니게 된 것이다. SNS와 톡을 주로 이용하게 된 현대의 인류에게 읽기와 쓰기는 사람들과의 '관계 수행'을 돕는 역할로 쓰이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더 고고한 것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많은 노력을 들여 읽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텍스트 역시 '책'이다.&nbsp;&nbsp; 바로 소통이 되는 지금의 텍스트와 달리 독서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수년이 될지도 수십 년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해석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nbsp;&nbsp; 사람들은 더 이상 책에서 얻는 것을 개인화 않아도 된다고 느낀다. 랜선으로 이어진 우리의 소통 능력은 절대 소수가 발신하는 것을 절대다수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에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행위를 위임해도 괜찮을 정도로 좋은 발신자를 만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구술의 언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한다는 아이들의 행태가 이해 가는 대목이다.&nbsp; 이제 구술자와는 랜선과 연결되어 있다. 자기 고립으로 쓰였던 이어폰, 헤드셋 같은 도구는 이제 새로운 연결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옆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목소리와의 연결이다. '말하기 도구'는 매우 중요해졌다. 구술자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nbsp; 지식에 대한 갈망과 지적 호기심은 특정 소수에게만 남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자가 되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텍스트를 접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지적 호기심에 대한 노력을 특정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얘기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했을 때 신뢰하고 지지를 보낸다. 발신자는 더욱더 텍스트를 깊게 연구할 수밖에 없다. 독서의 편중 현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nbsp; 텍스트의 과잉은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방대한 양의 책과 텍스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길을 헤매기에 딱 좋다. 책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 존재가 발신자가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댓글이나 좋아요로 그들을 지지하게 된다.&nbsp; 텍스트와 독서는 이중의 위기에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인 AI와 유튜브와 같은 매력적인 플랫폼과 겨뤄야 한다. 게다가 사람과의 소통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의견을 형성하고 비판 능력을 키우기 위해 거대한 텍스트 덩어리와 시름하는 행위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nbsp;&nbsp; 독서는 결국 이 노력을 기꺼이 해낼 생각이 있는 사람만 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가 된다.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청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더 많은 독서를 하게 되고 '청자'는 모든 독서를 위임한다. 그렇게 지금의 시대의 독서 편중 현상은 완성된다.&nbsp; 그저 책 읽으면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렇다고 그들이 설득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왜 책을 읽지 않을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 되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이유와 그럴싸한 안도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91/cover150/k6021382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6913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