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tormpy의 서재 (stormpy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8 Sep 2026 01:35:03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ormpy</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ormpy</description></image><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존 리) - 베가북스 - [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경제 독립 선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42048</link><pubDate>Mon, 10 Aug 202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420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0122&TPaperId=17442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0/48/coveroff/k68213012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0122&TPaperId=174420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New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경제 독립 선언</a><br/>존 리 지음 / 베가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 &lt;엄마, 주식 사 주세요&gt;에서 사교육비 보다 금융 자산을 모으고 금융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존 리의 새 책을 읽어 보았다. 여전히 장기 투자를 권하면서 아이들에게 금융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nbsp;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다. 지난 코로나 이후로 '벼락 거지'라는 말이 탄생했고 세상은 화폐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데, 고정된 자산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뒤로 가는 길이다. 결국 움직이는 자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nbsp;&nbsp; 존 리의 투자방식은 늘 장기 투자이다. 펀드나 ETF는 물론 개인 투자의 경우에도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라는 여타 다른 투자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복권 같은 것을 사는 것이 아닌 기업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고 그 일부를 인수하는 마음으로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투자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기업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자본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nbsp;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는 정보 부족이나 기업 분석 능력 부족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은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차트에 요동치기 때문이다. 가격이 가치가 아닌데 불안한 감정은 컨트롤해 내기 쉽지 않다.&nbsp; 주식 시장은 원래 불안정하다. 하루 단위로 보면 모든 것이 우연 같지만 길게 보면 기업의 성장에 수렴하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을 맞추는 투자를 하게 된다.&nbsp;&nbsp; 돈을 운용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매매가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는 것이다. 좋은 구조에 들어섰다면 결정을 줄여야 한다. 돈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유지해 줘야 한다. 게다가 투자를 옮길 때마다 생기는 '방향 전환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투자의 전체 수익을 갉아먹는다. 한번 투자하면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nbsp; 복리의 본질은 '수익률'이 아니다. '중단되지 않는 시간'이다. 시장이 아무리 완만하게 성장하더라도 자본이 그 위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다면 결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진다.&nbsp;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보다 얼마나 일찍 투자를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적은 금액이라도 바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0/48/cover150/k68213012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04803</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협찬) 멸종 위기의 사고 (에릭 사댕) - 헤이북스 - [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36981</link><pubDate>Fri, 07 Aug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4369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21&TPaperId=174369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98/coveroff/k1521301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21&TPaperId=174369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a><br/>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nbsp; 벌써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생성형 AI의 시대다. 2022년 12월에 발표된 chatGPT는 우리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패러다임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다. 준비하고 있던 많은 생성형 AI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것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nbsp; 최대 이득, 최소 손실을 미학으로 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산업화로 인해 이것들이 크게 확산된 이후 우리는 많은 저항들을 멈추고 그저 그 기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미래를 약속받았다고 믿어야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자본주의가 내놓은 것을 누구보다 빨리 취하려 하는 풍토가 생겼다. 자기 보상의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nbsp; 이런 세상은 근대적인 사치를 제공하고 개인의 역동성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펼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이 원하는 재능만을 계발하라고 압박받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된 권리는 점점 회복할 수 없다. 집단적 의지가 되어 버리면 더 이상 개인의 저항은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다수가 강화되고 개인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된다.&nbsp; '소비사회'가 되어 버린 세상은 점점 더 강렬하게 소비와 소유를 갈구하게 되었다. 시스템이 무자비하게 착취를 감행하더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방관하게 되었다. 쾌락은 쇠와 개인주의를 확산시켰고 공정과 책임감에 대해 등을 돌리게 했다. 우리가 잃어가는 다양성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저 세상이 좋아졌다고 얘기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nbsp; &nbsp;세상이 자동화될수록 개인의 책임감 상실은 심화되면서 또한 도구화되었다. 인간은 점점 시스템에서 주변으로 밀러 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고 현실이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다. 사람보다 기술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다. 사람마저도 유용성이라는 가치 판단 아래 놓이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 고립된다. 감수성은 사라진다. 다른 인간과의 교류가 끊어지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알고리즘이 안내해 주는 협소한 세상, 빈약한 관점을 가질 뿐이다.&nbsp; 문명화는 우리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로부터 차단시켰다. 자동화는 우리를 사회 자체로부터 차단시키는 듯하다. 사람과 얘기하지 않고 AI들과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 청소년들을 보면서 개인주의를 넘어서 고립을 선택한 듯 느껴진다. 자신의 능동성을 뺏기고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nbsp; AI의 학습은 인간의 학습과 닮아 있다. 인간의 학습은 부모와의 관계와 일상생활의 다양한 맥락을 겪으며 이뤄진다. 동시에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교육이란 사회적 공동 유산과 같은 다양한 것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경험하며 이뤄진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어떤가? 자신이 클릭한 첫 번째 영상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의 시작은 빠져나올 수 없는 취향과 학습의 강요가 될 수 있다.&nbsp; 타인이라는 존재는 중요하다. 독창성을 가진 타인과의 접촉은 우리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정신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관심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일상 규범에서 벗어난 탐험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이런 열망들이 모여 문화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것에 좋아요/싫어요 같은 단순한 평가만 하고 있다. 긴 감상평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취향이 아니면 넘기고 취향만 남긴다. 무한한 선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점점 더 편협한 세상으로 들어간다. 취향이 권력 같아 보이지만 그저 비슷한 알고리즘의 결과를 받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nbsp; 며칠 시끄러웠던 영화의 호불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취향은 점점 편협해진다. 예술의 영역에서 미학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확립된 자신의 심리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신. 그게 답이어야 한다. 개인들에게 외부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느끼든 그렇지 않든 알고리즘이 이끄는 여정 위에 놓여 있다. 자신이 학습은 것만이 그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진리로 가득 차면 분노가 들끓는 집단이 된다. 나의 세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 폭력이 앞선다.&nbsp; 인터넷에서는 종종 예전 세상과 지금의 세상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등장한다. 그 감상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는 것이 바로 '세련된 죽음'이었다. 다양했던 색상은 무채색이 되었고 개성 넘쳤던 디자인은 모두 심플이라는 미명 아래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멋스럽게 보이지만 똑같아지고 있다. 대중의 취향은 다수의 취향으로 모여지고 개인을 압박한다. 소비가 몰리는 곳에 공급이 몰리니 취향은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모아진다. 인간은 어쩌면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말은 멸종일지도 모르겠다.&nbsp;&nbsp;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색한 것과 마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98/cover150/k1521301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99876</link></image></item><item><author>stormpy</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도서협찬) 비인간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 이비 - [비인간 - 시간에 관한 사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47397</link><pubDate>Sun, 21 Jun 2026 2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0181233/17347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617&TPaperId=17347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70/coveroff/k92213961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617&TPaperId=17347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인간 - 시간에 관한 사유</a><br/>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이승현 외 옮김 / 이비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 이것이 정통 철학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비전공자인 나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다. 까마득한 사유의 끝점에서 노닐고 있는 신선들의 얘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을 살아내기도 빠듯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 것일까.&nbsp;&nbsp; 인간의 삶이 기계의 발전과 동조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인간은 편해지기 위해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 기계를 더 잘 다루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계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계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인간에게 인간적이지 않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것에 대해 리오타르는 얘기한다(하지만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nbsp;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원초적인 것인가 아니면 어른스러운 것인가. 때로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인간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로 학습된 인간의 행동을 보고 인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진짜 인간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인 사실이다.&nbsp; 모든 교육은 제재와 두려움 없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다. 아이는 성인 공동체의 볼모이면서도 인간성이 부족한 성인 공동체에 더 인간적임을 촉구할 수 있다. 어른은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는 없다. 철학자들의 깊은 문답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nbsp; 인간의 사유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묻고 답하면서 철학과 사유는 지속된다. 하지만 절멸이라는 단어 앞에서 지켜낼 수 있는 사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지만 태양의 죽음과 함께 다가올 혹은 그보다 훨씬 일찍 마주하게 될 인류의 절멸.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생길 수 있을까? 존재할 이유가 없는 질문 아니 질문할 존재조차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죽음에 대한 사유는 존재하지만 종말에 대한 사유는 불가능하다. 유한한 것을 유한하다고 말하고자 하려면 영원히 지속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인간 없음의 사유가 진행되어야 한다. 바위가 사유할 수 있다면 인간 절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계속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AI라면 가능할까?&nbsp; 철학적 사유를 천천히 살펴보면 마치 과학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어떤 학문이든 꼭대기에 이르러면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 걸까. 찰나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물질에 대한 것도 비슷하다. 일어나는 것은 '지금'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남은 그대로 포착할 수 없다. 인지의 순간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고 그전이라 하면 예측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된 현재는 과거다. 뇌수용체가 정보를 파악한 지금도 이미 과거다. 사건을 구성하기 위한 지금 역시 과거의 조각들의 모음이다.&nbsp; 책은 굉장히 심오해서 활자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내가 여러 철학서를 조금 더 잘고 있었더라면 꽤나 재밌는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수박 겉핥기 수준의 지식으로는 충분히 즐기기 어려웠다. 모든 이야기는 결론이 있을 때 이야기가 성립된다. 비밀은 비밀이 아닐 때 비로소 비밀임이 성립되고 결국엔 비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무엇에게 인지될 때 그것은 성립된다.&nbsp;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것들은 결국 인간에게 인지됨으로써 밖에 존재할 수 밖에지만 그러면 더 이상 비인간적인 게 아니게 된다. 결국 비인간적인 것에 의해 인지되고 사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그저 사유가 멈춰지지 않을 것만 알게 되는 게 최선인지도 모르겠다.&nbsp;&nbsp;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더 공부해 보는 걸로 하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70/cover150/k92213961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3705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