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몽골 여행 중에 홈스테이 하던 가정의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같이 따라간 적이 있다. 큰 아이 다기마가 13살이고 작은 아이 사롤이 5살이었는데 한국처럼 부모가 차에 태워 병원에서 접수시키고 약을 타오는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둘이 손잡고 놀러가는 것처럼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병원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고 진료비와 약값은 모두 무료였다. 몽골하면, 우리보다 당연히 못사는 후진국이라 생각하던 내게 완전한 충격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의료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오! 당신들의 나라」를 읽으며 그 몽골 병원 생각이 많이 났다.
얼마 전 날치기로 통과된 FTA의 많은 독소조항들 가운데 정치권과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이 ‘의료보험의 민영화 추진’이다.
“한 지역 병원이 보험 적용 환자에게는 6783달러인 맹장수술비를 비보험 환자에게 2만9000달러로 청구했다고 보도했다.” (p.185)
“응급실에 한 번 갈 때 드는 비용은 1000달러를 웃돈다. 천식 발작이 일어나거나 아기가 열이 날 때마다 1000달러 넘는 돈이 든다는 뜻이다.” (p.212)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 제도가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병들고 약한 사람을 체계적으로 돕는 의료제도는 문명의 진정한 표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의료 제도가 건강을 위협하는 제도로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민영화, 부당 이익 추구, 보험사가 주도한 관료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p.211)
“개인 파산의 첫 번째 원인이 의료비로 인한 빚인 만큼 전 국민 의료보험을 즉각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조차 그런 서민층 중심의 정책 실행을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p.70)
미국인이 쓴 책이다. 이것도 괴담인가? 수십 년에 걸친 민영화 추구가 가져온 결과가 개인과 가정의 파산이란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돈만 많이 주면 기가 막힐 정도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를 제외한 이들은 이제 아플 사치도 부려서는 안 된다.
아버지께서 5년째 암과 싸우고 계셔서 누구보다 잘 안다. 현재의 의료보험체제가 없었다면 우리 집도 파산했을 것이다. 지금도 일부 고가의 약과 검사는 보험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의 의료보험체제가 없다면 암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돈 없으면 완치는 꿈도 못 꾼다.
그런데 우리보다 의료보장체제가 미흡한 미국의 방식을 따라가려 한다. 정말 개같은 짓거리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는 기술이었다.” (p.11)
“꿈에 그리던 집을 사세요! 집을 담보로 재대출을 받으세요! 신용 등급이 문제라면 자동차 담보 대출을 받으세요! 모두들 대출을 받으세요! 가난한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을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p.65)
글로벌 경제위기를 몰고 온 월스트리트의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대출이었다. 한국도 가계부채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첨병이던 미국은 그들이 처음에 부르짖던 경제성장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부의 봉우리들은 점점 더 높이 솟아올라 구름을 뚫었고, 빈곤의 골짜기는 더욱 깊이 가라앉아 어둠에 묻혔다.” (p.9)
그런데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려 아주 환장을 한다. 아무리 국가의 고위 경제 관료와 경제학자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해서 미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도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닌 것은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지상 최강의 군대가 가난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많은 구호단체들이 미군 가족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p.81)
난 미국이 최소한 군대만큼은 제대로 굴러가게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많은 수의 군인 가족들이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니 놀라웠다. 보수를 기치로 내건 집권자들이 보수의 가치를 지켜낼 가장 큰 힘인 군대를 등한시하는 이 간사함,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에서도 지금의 사병 월급이 이정도로 대폭 인상된 것이 오히려 노무현 정권시절이라는 사실을 읽었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보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 챙기기 바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왜 FTA를 반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책이 재미있다. 저자인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어렵지 않고 글에 리듬감이 있다. 풍자와 조소 또한 일품이다.
계속해서 그녀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찾아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