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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진작에 사두고 읽지 못하다가 올해 마지막에 맞추어 읽었다. 그냥 읽을 수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분의 직접적인 얘기도 아니지만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렵게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읽고 싶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p.99)
잠정적인 대권 후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짐작되고 있는 문재인씨는 두 번의 민정수석과 한 번의 비서실장을 거치며 완전히 원칙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어준 총수가 한 눈에 훅 가버린 영결식 장면이 절정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참여정부 내내 흩뿌려 놓은 조중동의 유언비어는 많았지만 도덕성 하나만은 원칙적 합의로 지켜냈다.
“저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습니다.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밑천일 뿐입니다.” (p.279)
“민정수석 자리에 있는 나의 원칙주의가 여러모로 불편했던 것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찰의 수사 등에 대해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만, 당 쪽의 인사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 (p.281)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이 만들어놓은 시대의 스트레스와 결핍은 이제 도를 넘었다. 며칠 전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이 화룡점정이었다. 내년에 분명히 바뀐다.
4년 가까이 이명박을 겪으며 그 전 참여정부에서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였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외교·안보·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수십 년을 퇴행한 4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자신과 몇몇 졸개·재벌 각하들의 수익모델로 삼는 파렴치도 보았다. 최소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참여정부 시절 이루어 낸 정치개혁, 지역주의 타파, 청와대의 탈 권위화, 검찰의 중립성 강화, 국세청·감사원의 중립성 보장과 역할 확대, 과거사 위원회를 통한 진실 규명 및 명예 회복, 인사검증 시스템의 선진화 구축, 미·중과의 외교를 통한 6자회담 등 수많은 성과를 한꺼번에 헌신짝 취급했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뒤에서 조종을 했느니, 사주를 했느니 노무현 콤플렉스로 4년을 보냈다.
역사 상 최악의 대통령을 겪으며 국민들로 많이 지쳤다.
문재인씨가 전면에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정말 기쁜 마음으로 투표하고 개표방송을 숨을 죽이며 시청하고 당선소식에 미친 듯이 기뻐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책의 말미에 다음 총선과 대선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다. 분명히 말하는 건 참여정부 시절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많은 일과 힘을 합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경험들은 면밀히 반추해서 다음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참여정부 시절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와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명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이었는데 딴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미지근했다. 분명한 실수다. 다음번에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p.467)
문재인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떼어놓을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든 숙제이든 꼼짝 못하게 되었다. 문재인씨 본인에게는 두렵고 부담되는 일이겠지만 또 다른 밝은 미래를 갈망하는 우리에게는 분명 희망적인 운명이다.
자꾸만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나서 힘이 든다. 현실의 피폐가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회상에 대한 리뷰를 한 페이지 정도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내게도 생채기가 될 뿐이다.
날이 많이 어둡다. 새로운 해가 동트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