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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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산다. 알아야 산다.

 

화생방 교관이 땀에 찌든 나를 포함한 교육생들에게 한 첫마디다. 이론 교육을 끝내고 실기 교장으로 구보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왼발 구령에 맞춰 알아야 산다.”를 외쳤다. 육군 화학병과의 모토이기도 하다. 십수 년 전, 무시무시한 화생방 훈련을 앞두고 수백 번 외친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화학전이 발생할 경우 방독면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진다. 방독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쓰는지 알고만 있어도 생명을 건질 수 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말 알아야 산다.”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즈조차 가짜뉴스에 넘어갔다. 북한 이탈 주민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두 사람은 확신했다. 모두 잘못된 정보였다.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은 처음 그런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줄곧 특이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을 이탈한 지 수년이 지나거나 북한에서의 위치가 VIP의 신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을 단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보도했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가짜뉴스를 가지고 일주일 넘게 난리를 치고 나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조차 없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알아야 살고, 알아야 거짓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일상적인 느낌이 진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아직 나는 북녘을 잘 모르고 있었다.” (p.37)

“‘석유 한 방울, 나사못 하나 들어오지 못하는물 샐 틈 없는 제대 국면에 이렇게 자동차가 많이 보일 줄 몰랐다.” (p.139)

 

이 책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기자가 쓴 책이다.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기록하는 카메라를 든 기자다. 적어도 카메라에 저장된 이미지는 반드시 사실이다. 그런 기자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몰랐다.”, “모르고 있었다.”

가장 기자다운 표현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사실로 포장해 전달하는 것은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2017년 가을, 하루하루 위기로 치닫는 국제 정세와는 동떨어진 대동강 변의 모습은 며칠 전까지 내가 있었던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핵미사일을 쏘는 날에도 서울에서는 주식시장이 서고, 학교에서 수업하고, 프로야구가 열리고 (중략) 이곳 대동강 강가에서도 평양시민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p.71)

 

더군다나 이 책은 남북 관계가 극에 치달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시기가 배경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이후 줄곧 평행선만 달라던 남과 북이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기에 바빴다. 그런 와중에 북한으로 들어간 최초의 민간인이 있었다. 참 대단하다. 함께 방북하기로 한 미국 기자들은 입국 허가가 나지 않아 홀로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실을 기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17년 만에 평양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 때 이곳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 살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p.169)

우리는 70년 동안 제재를 받아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해왔습니다.” (p. 225)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표현은 위험했다. 북한과 그 체제를 옹호하거나 찬양·고무하는 표현이 될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김일성이 죽었다.”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교사가 외쳤다. 모두 기겁했다. 학교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평소 EBS 강의 말고는 틀어본 적이 없던 교실 내 TV를 교사가 직접 틀었다.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교내 방송이 나오고 우리는 모두 하교했다. 자전거로 하는 하굣길에는 중고등학교 몇 개가 걸쳐 있었는데,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짐을 챙기고 있었고, 아버지도 회사에서 곧 오신다고 하셨다. 우리 모두 그랬다. 김일성이 죽으면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줄만 알았다. 선거를 앞두고 돈을 건네주며 휴전선 인근에서 총을 쏴달라고 했다. 이후에 사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진짜 북한에서 전쟁을 위해 총을 쏜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수구세력이 만들어 낸 북풍을 믿지 않는다. 더 정확한 정보를 손안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의 가짜뉴스를 두고도 수구세력과 수구 언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고,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모르던 때는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진짜 알아야 산다.” 화생방 훈련에서도,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진 선생에게 우리의 체제를 무턱대고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 기자로서 양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보도해달라는 겁니다.” (p.111)

평양에서는 집의 크기를 평수가 아니라 방의 개수로 계산한다고 한다. 2개짜리 집, 3개짜리 집, 4개짜리 집 등으로 집의 크기를 짐작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집을 배정해주기 때문에 방이 몇 개인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방의 개수는 집주인의 권력 관계나 사회적 지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가족의 숫자로 결정한다고 한다.” (p.258)

 

북한의 아파트에 대한 정보는 처음이다.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관심도 없던 부분이다. 한국의 수구 언론은 진짜 평양과 평양사람들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상한 모습, 경직된 이미지, 부족한 상태, 이질적인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러니 사실은 필요 없었다. 이 책의 저자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동행한 안내원의 요구는 무척 단순한 것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보도해 달라는 것. 기자라면 당연할 텐데, 그러지 않았었다.

책의 저자가 아닌 수구 언론 기자가 같은 아파트를 취재했다면 기사 제목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연봉 차, 3배에도 같은 평수에 사는 처지

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북한은 아파트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단순한 주거의 수단이기에 평수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양가족의 숫자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진다고 한다. 우리와는 참 다른 부분이다.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평양에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만의 사례라 일반화시킬 수 없다. 평양과 지방 도시와의 편차도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주거에 대한 개념과 접근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통일이 될 텐데, 이미 포화 상태인 부동산 시장에 신물이 난 남쪽의 업자들과 부자들이 얼마나 단기간에 북한의 부동산 시장을 망쳐 놓을지에 대해서다.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시작되는 즉시 참고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남과 북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북측이 201855일 날짜로 표준시를 변경했다. 2015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선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맞춰진 표준시를 30분 당겨 우리보다 30분 빨리 가게 했던 시간을 다시 늦춰 서울 시간과 맞춘 것이다.” (p.10)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우리와 북한의 표준시가 달랐다는 사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상징적 의미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대했던 것만큼의 관계 진전이나 뚜렷한 발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표준시 변경,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 도보다리 회담 등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하나가 새로운 역사가 되고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둘러싼 가짜뉴스의 팽배에도 지속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내보낸 문재인 정부의 일관됨도 북한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 예전처럼 그렇게 단번에 모든 것이 수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없어야 한다.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유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기억한다. 5000년에 비해서는 짧은 70년이지만 불과 2-3년 안에 콩 볶듯이 간단히 뛰어넘을 수는 없는 기간이다. 7년도 아닌, 70년이다. 지속해서 노력하고 꾸준하고 일관된 모습을 서로 확인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교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난 10여 년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꿈은 평양 상주 특파원이 되는 것이다.” (p.45)

나는 통일TV’를 준비하고 있다. 통일TV는 어떠한 체제나 주의·주장과는 무관한 남과 북이 모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역사물, 자연 다큐멘터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 등을 제작·방영하는 케이블채널 전문 방송사이다. 이러한 영상물을 함께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점차 거리를 좁혀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91)

 

저자인 진천규 기자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평양 상주 특파원”. 분명 진기자님이 최초가 될 것 같다. 통일TV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바, 70년을 헤어져 지냈지만, 함께 한 5000년이라는 시간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유산이다. 공유하고 있는 정서나 역사가 분명 존재한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급한 일이지만 같은 것을 하나씩 확인하는 일은 분명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북한 이탈 주민이 여러 명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좋지만 남과 북이 함께 공유하고 교감할 수 주제를 담은 프로그램도 분명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청률이 아닌 통일을 준비하는 채널 말이다.

 

그래야 우리는 북한을 알 수 있고, 북한은 우리를 알 수 있다.

알아야 산다. 자꾸 반복하게 된다.

이념과 체제를 비판하고 견제하기 위한 잣대로 걸러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 봐야 하고, 서로의 모습을 진실과 사실의 잣대로 봐야 한다.

 

알아야 함께 산다.

통일된 한 나라에서 함께, 또 다른 5001년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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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북극 출장 중
이유경 지음 / 에코리브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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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A플러스 받았어!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던 아내가 뛸 듯 기뻐한다. 방송통신대학교 학기 과정 과제 결과였다. 코로나로 인해 학기 전 과정이 과제로 대체되었다. 2달 정도 아내는 끙끙거리며 과제를 해냈다.

 

계획에도 없던 임신을 했다. 젠장!” (p.157)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이제 과학자로서 생은 마감하고 엄마로 변신해야 하나, 하며 내 처지를 불평했다.” (p.157)

 

아내도 경단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 중, 당연하게 경력은 포기했다. 기를 쓰고 이어가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엄마는 북극 출장 중의 저자는 과학자다. 여성 과학자. 과학자라는 단어도 생소한 사회에서 여성이 하나 더 붙으니 더 낯설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과학자도 계획에도 없는 임신을 하면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다.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하물며, 내 아내와 같은 일반 직장인은 더하다. 가장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계층에게 가장 잔인하고 냉정하게 잘라낸다.

집에서 애나 키우시죠.” 라며.

여성과학자조차도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큰애에게 이런 것을 배우냐고 물어보았더니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배운 적도 없는 실험 보고서를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러면 결국 아이들은 수행 평가를 위해 학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p.199)

 

어쩌면 우리 사회는 기초 학문에 아예 관심을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입시 위주로 돌아간다. 아이가 7살 인데, 또래 학부모를 만나면 학원 이야기부터 한다. 7살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2곳 정도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 아직 7살인데도 중학교 걱정을 한다. 조금 더 좋은 학군의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학부모들의 의식이 문제냐 정부의 교육 정책이 문제냐. 단기간에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좀 다른 교육을 하자.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지 말자. 라고 결혼 전부터 아내와 합의를 했던 터라, 주위의 야단법석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리만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나, 둘 중 한 명은 집에서 아이 교육에만 매진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단이 쉽지 않다. 딜레마다.

 

심지어 그중에는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혐기성 미생물도 있었다. 춥고 얼어붙은 데다 햇빛도, 산소도 부족한 곳. 바로 화성이다. 지구의 동토에 미생물이 있다면 화성의 동토에도 혐기성 미생물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p.151)

 

7살인 딸아이는 과학에 문외한인 엄마 아빠와는 달리 과학에 관심이 많다. 길을 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발과 손이 먼저 간다. 공부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은 엄청나다. 묻고 또 묻는다. 꿈이 우주비행사다. 명왕성이 왜 태양계 행성에서 사라졌는지 직접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남들은 대단하다 하지만 딸아이의 저런 호기심을 얼마큼 지켜주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다.

과학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건 분명한 것 같다.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니. 나 같은 과학 문외한은 꼭 북극까지 가서 힘들게 연구해야 하나?’싶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 그렇다.

 

책의 저자는 학창시절 끊임없는 질문에 친절하고 일관되게 답을 해준 선생님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건 대학입시에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다면 극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여성과학자 한 명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여섯 살 정도가 지나면 엄마 왜? 아빠 이건 뭐야? 라는 질문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는데, 딸아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온종일 대답해야 할 때도 있다. 귀찮기도 하고 잘 모르는 걸 묻는 경우도 많았는데, 명왕성의 자취를 연구한 최초의 한국 여성 과학자의 길을 막을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은 우스개에 불과하지만.

지난 주말 아이를 데리고 경주에 다녀왔다. 첨성대, 천마총, 경주박물관을 들렀다. 2년 만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뛰어다니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미리 공부해 놓지 않으니 대답을 절반도 못 해줬다.

공부만 잘해서는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사례는 책에서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성평등 지수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한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그저 젠더 갈등으로 치부하는 성의 없는 미디어의 무책임함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좋은 학교 나와 안정적인 직장이나 공무원이 되는 게 최선인 구조가 언제 바뀔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유경 박사가 걸었던 길 보다는 평탄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 이전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뒤따라 걸었던 것처럼, 또 다른 여성 과학자들이 선배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느리고 험하고 가파르다 하더라도, 조금씩 평탄해지고 낮아지고 넓어질 것을 기대한다. 과학 문외한인 부모 사이에서도 우주를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후과학자들은 빠르면 2050년 여름에 북극해에서 얼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늦어도 2100년에는 얼음 없는 북극해를 볼 거로 예측한다. 여름철 얼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북극 대기로 흘러 들어가면 과연 우리나라 날씨는 어떻게 변할까.” (p.258)

 

책 일부분인데, 딸아이에게 그대로 읽어줬다. 무척 신기해하며 되물었다.

아빠! 그럼 북극 얼음부터 연구해 봐야겠어.”

그래, 그러렴.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 한켠과 현장에서 지난한 실험과 난해한 논문, 끝이 없는 샘플링 등에 매달려 있을 모든 여성 과학자들과 과학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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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 괴짜 과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죽음 실험실
코디 캐시디 & 폴 도허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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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주로 찾아보는 채널과 관심사에 대한 영상을 한참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나와는 전혀 다르고, 그 분야에 관심조차 없었던 채널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게 빠진 채널이 과학 관련 된 채널 몇 개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 단어만 봐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썸네일로 가득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정말 쉽게 설명하고 재미있게 편집해 놓았다. 물론, 내가 관심 있는 채널을 한참 동안 찾아보다가 지루할 때면 한 번 들어가 보는 수준이지만 과학이라 하면 과의 자도 관심이 없었던 내게 이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은 과학책이다. 내가 절대 읽지 않았을 과학책. 하지만 이 책은 재미 있다. 흥미롭다. 키득거리며 책장을 넘긴 과학책이라니.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는 딱이다.

    

 

마이클 스미스가 꿀을 따려고 벌집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모험심 강한 꿀벌 1마리가 스미스의 바지 안으로 들어가 그의 고환을 쏘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궁금해졌습니다. ‘고환에 쏘인 게 최악이 아니라면,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 (p. 41)

    

 

마지막으로 벌에 쏘인 게 언제일까?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1학년 추석 연휴,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시골 신작로에서 사촌들과 정신없이 놀다 쏘였을 때다. 뒤통수에 쏘였는데, 할머니가 진짜 시골된장을 발라 주셨었다. 엄청 아팠던 기억이다.

만약 다시한번 고환에 쏘였다면, 내 인생 최악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스미스라는 양반은 어디에 벌이 쏘였을 때 가장 아플까?’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단다. 한참을 웃었다. 역시 나는 과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스미스는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꿀벌을 집어 피부에 댄 후 침을 쏠 때까지 눌러 자극을 했습니다. 이렇게 스미스는 매일 5번씩 벌에 쏘였습니다.” (p.42)

벌에 쏘였을 때 가장 덜 아픔 부위는 두개골, 가운뎃발가락, 팔뚝위쪽이었습니다. 스미스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겨우 2.3을 기록했지요. 반대로 통증이 심한 부분은 얼굴과 음경, 콧속이었습니다.” (p.42)

    

 

음경이라니. 일부러 침에 쏘이다니.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슈미트의 통증 지수에 따르면 벌에 쏘이는 고통은 4점 만점에 고작 2점입니다. 슈미트가 감히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직접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기 때문입니다.” (p.44)

    

 

그런데 슈미트라는 양반은 더하다.

고환이든, 음경이든 벌에 쏘였다고? ! 그까짓 벌에 쏘인 걸 가지고!”

150종 이상의 곤충에게 물려보았단다. . 과학의 세계는 실로 오묘하다.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발명하기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별로 인기가 없는 기구였습니다. 아무리 굵은 케이블이라도 사람들은 줄 하나에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자 안에 몸을 싣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오티스가 제동장치를 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p.78)

    

 

엘리베이터 보수 업을 하는 내게는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특정한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이 갇히면, 가능한 한 빨리 현장으로 이동해 갇힌 사람을 꺼낸다. 갇혀 있던 대부분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뻔했어요.”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영화와는 다르다고, 안전장치가 23중으로 되어 있어 떨어질 일은 없다고 설명해도 잘 듣지 않는다. 처음 엘리베이터가 발명될 당시 제동장치가 없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 같아도 그런 엘리베이터에는 근처도 가지 않을 거다. 영화나 TV에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하는 엘리베이터 추락 장면은 대부분 가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벌에 쏘이고 곤충에 물리고 엘리베이터에 갇혀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가속도를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썰매 실험에서도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갈비뼈가 바스러졌으며 발목이 모두 부러졌지만 살아남았다. ‘존 스탭이라는 사람 덕분에 인간은 40g이상의 감속도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과 접근이 생소하고 재미있다.

    

 

실제 그렇게 죽은 사람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2008, 영국의 한 엔지니어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종이에 팔뚝을 베이는 바람에 0.6센티미터의 상처가 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몹시 피곤을 느끼며 쇠약해졌습니다. 이후 의식까지 혼미해졌지요. 그는 결국 괴사성 근막염으로 6일 뒤에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p.147)

    

 

 반대로 전혀 죽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어처구니없이 죽는 사람들도 있다. A4용지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종이에 베이는 경험. 피부에 살짝 상처가 남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영국의 한 엔지니어는 종이에 팔뚝을 베어 죽게 되었다. 고작 0.6센티미터의 상처로 말이다.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겁이 나는 병으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앞에서 계속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니. , 운명이라거나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논리로 종이에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뒤통수가 쭈뼛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됐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으니 말이다. 누구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 대륙을 이 잡듯 뒤져 불로초를 구하려 한 진시황제도 결국 죽었다. 진시황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현대에는 첨단의 과학이 불로초를 대신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살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과연, 불로(늙지 않는)와 불사(죽지 않는)는 가능할까? 언제 닿을지 모를 미래의 과학에서는 가능한 일 일까?

요즘 자주 들여다보는 과학 유튜브 채널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채널 운영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겠지만 내게는 난해했다. 결론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 이동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지만, 추정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

    

 

  작년 초, 아버지의 임종 전·후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10년의 투병과 남은 가족의 10년의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 묵은 감정과 경험의 집합체여서 존재하는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죽음은 단번에 찾아왔다. 아내와 아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그것은 지극히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이었다. 온갖 의료장치를 몸에 달고 있었지만 우리 이야기를 듣고 눈꺼풀을 바르르 떨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단지 심장 박동을 기록하는 그래프가 평행선이 되었을 뿐인데. 정신없이 상을 치르고 나니,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시공간을 초월할 과학적 시도가 존재하고, 종이에 살짝 베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눈 앞에서 생과 사가 갈라졌던 비현실, 꿈에 나오신 아버지의 또렷한 음성과 모습. 이것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과학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있고, 증명하고 탐험하여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앞서도 언급한바, 이 책은 재미있다. 과학이라는 것에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펼쳐 들어도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아무리 쉽게 써도 재미가 1도 없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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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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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은 욕받이다.

매일 아침 사장이 퍼붓는 욕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는 것으로 사무실의 일과가 시작된다. 하지만 멘탈은 최고다. 과장님은 그렇게 욕을 먹고도 사무실 밑으로 내려와서는 직원들과 실없는 농담을 한다. 과장님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 아재개그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별명을 만들었다. 보살님이라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넘쳐나는 욕에 파묻혀 죽을 것만 같아서 안 그런 척 하시는 건지, 진짜 욕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다 보니 익숙해져 욕을 받아내지 않으면 뭔가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게 한바탕 욕잔치가 벌어지면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 직원들의 기분과 사기도 축축 처진다. 서로 눈치 살피다 하나둘씩 담배를 피러 나가거나 용무도 없는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사건은 지난 주 화요일 일어났다.

평소 그렇게 사장의 욕받이로 활동하시면서도 보살의 경지에 이른 과장님과 함께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전 주에 다른 작업을 하며 왼손 엄지를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고장인터라 사무실에 있는 다른 자재를 가져와 교체해야 했다. 운이 없었던 건지, 재수가 없었던 건지 마침 그 자재만 없었다. 사장에게 전화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당일 오전에도 한바탕 욕잔치를 받으셨던 터라 내가 전화했다.

이번 한번은 내가 대신 욕받이 하자.’

딱 이 마음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께서는 내게 휘황하고도 찬란한 욕을 퍼부었다. 나는 자재를 가지러 두어 번 사무실을 왕복했던 터라 자세한 작업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휴대폰에 통화중 스피커를 키고 녹음을 눌렀다. 이거 해봤어! 저거 해봤어? 묻는데, 나는 작업을 안 했으니 모를 수밖에. 과장님이 옆에 있는 걸 모르는 사장은 내게 쏟아냈다. 함께 그 소리를 듣는 과장님은 옆에서 자신의 폰 메모장에다 대답 내용을 적어 주었다. 한바탕 회오리 같은 욕 시전이 지나갔다. 결론은 교체해야 할 자재가 없다는 것.

수 십분 후 사장이 왔다. 자재를 사 와서 그것으로 교체했다. 또 다시 시작된 욕잔치. ? 과장님은 왜 가만히 있지? 진짜 나만 욕 먹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과장님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거절당한 게 무안해서가 아니었다. ‘거봐, 안 될 거라고 했잖아하고 말아버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더 매달려볼 여지가 없어서 그랬다. 배낭 안에서 잔뜩 긴장한 채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그녀의 실망감이 짐작돼서 그랬다. 숨을 죽이고 내가 어떻게든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그녀가 안쓰러워서 그랬다.” (p.317)

 

민주의 배낭 속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그녀, 지니와 진이처럼 과장님을 생각한 걸까?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오늘은 내가 대신 욕받이 하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꼬여가고 면전에서 펼쳐진 욕잔치 앞에서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과장님이 작업 하시고 저는 자재 가지러 갔다 왔는데요.”라고 했으면 더 나은 상황이 펼쳐졌을까?

선택의 기로는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너무나도 자주 출몰한다. 오늘 점심 뭐 먹지에서부터 지긋지긋한 회사 언제쯤 그만두지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엇을 꿈꾸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뭘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다루고 연구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그날 밤에야 알아차렸다.” (p.77)

불길 속으로 서서히 전진하는 관을 보자 어찌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자전거를 멈추고 문을 열어 봤더라면…….” (p.91)

 

진이와 민주처럼 극적인 선택의 기로는 물론 더 어려울 거다. 돌이켜보면 후회만 남는 시간이다. 하지만, 얼마나 달라졌을까? 과거의 다른 선택으로 현재의 불만족을 대체할 수 있을까? 희망사항이다. 진이와 민주, 나와 과장님처럼. 사장이 제풀에 지쳐 나간 직후에라도 미안하다고 한 것이 과장님의 최선이다. 내가 그 다음 날 사장에게 사직서를 내민 것도, 민주가 노숙을 하고 진이가 영장류센터를 떠나려 한 것도 최선이다. 그게 최선이 아니라면 인생은 지나치게 비극이다.

 

지붕이 있으면 어디서나 잤다. 비닐하우스, 폐가, 들판 거푸집, 터미널이나 병원 대리석 등등. 일회용 음식이나 통조림으로 허기를 채웠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p.48)

볼 때마다 기억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다정한 그녀였다. 사진 밑엔 그녀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 (p.100)

 

그렇게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지난한 고통을 감내하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순간을 잊어야 하루를 통째로 버텨낼 수 있다. 진이는 다정한 그녀, 민주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마침내 어디에게 찾는 것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처럼 꽉 들어찬 비극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그냥 사는 것이다. 아니, 살아내는 것이다.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p.91)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타임머신이다 4차 산업혁명이다 떠들어 대도 불가능한 일이다. 진이와 민주의 후회도, 나와 과장님의 후회도 소용없다. 착각이다. 혹여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라는 헛된 기대. 그것이 나를 조금씩 좀 먹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출구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인격체로 그나마 버텨나가는 일상이 송두리째 망가진다. 경계해야 한다.

 

막다른 곳에 불시착하는 때가 있다.” (p.7)

자네한텐 동물의 감정을 파악하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 알고 있을 텐데.” (p.79)

 

사실, 우리는 행운에 기대야 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월요일 오전부터 로또 한 장을 사서 지갑에 넣어두면 일주일 내내 마음이 든든하고 세상의 행운이 모두 내 것인 양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귀인이 나타나 나의 빛나는 재능을 알려주고 지금 연봉의 수 배가 넘는 멋진 회사에 면접도 없이 쑥 하고 넣어준다면 정말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이 실재한다면 말이다.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아가라는 호칭에 속이 거북했을까, 아니면 착하지라는 말에 비위가 틀어진 걸까. 진이는 꼭지가 돌아버렸다. 입술을 귀 밑까지 찢어 이빨을 모조리 드러내더니 창날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벤치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p.198)

 

한숨과 후회와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것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물고 뜯는 것의 일상이다. 몇 년 동안 한 사무실에 책상을 맞대고 앉은 동료가 사실은 수 년 동안 내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흔한 일이다. 오랜 투쟁으로 비로소 법적으로 정규직 신분이 된 노동자들의 회사 복귀를 가장 반대하는 무리가 바로 기존 노조의 노동자들이었다는 이야기도 흔하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너를 죽여야 하는 아비규환이다.

지니가 된 진이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영장류센터에 속한 전문가들도 손조차 대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도 그렇다. 아프리카 열병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야생 멧돼지를 궤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결국 사람에 의해 생긴 바이러스로 인해 죽게 된 그들의 삶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좀 더 고등한 동물이 살아야 한다는 진화론적 관점 내지는 현실적 판단은 전적으로 고등한 동물의 입장이다. 그들의 판단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은 꽤 충격적이었다.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응시한 채 죽어가는 진이, 지니에게 어깨를 건 채 끝내 소멸하고 마는 진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 낸 사회에 직격을 날린다. 바로 옆 사람의 어깨에 팔을 걸지도, 내 어깨를 옆 사람에게 내어주지도 못하는 나와 당신들이 맞은 어퍼컷이다. 슬픈 사실은 어퍼컷이 카운터블로우가 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맞은 직후에는 온 몸이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이거 뭐야, 어쩌라는 거야 싶었다. 슬프게도 그 순간뿐이었다. 고작 10분 정도를 뒤척인 채 잠들었다. 그리고 숙면을 취했다.

 

모르겠다. 이게 이 책을 읽은 내 결론이고, 현재까지의 내 상황이다. 선택의 결과로 퇴사 했다. 뭔가 진이처럼 세상과 당신들을 향한 어퍼컷을 날려 보고 싶은데,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여전히 구인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어설픈 어깨 걸기를 시도할 능청도, 마주치면 인상 쓰기 바쁜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애기 이름이 뭐예요?”라고 할 오지랖도 없다. 현재까지는.

실수로라도 한 번 휙 지나쳐 버리는 일 없이 정확하게 또 다시 닥쳐오는 일상을,

그저 버텨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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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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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사했다.

질질 끌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뛸 듯이 기뻐야 할 텐데 이건 뭐 영 싱숭생숭한 것이 찌뿌드드하다. 사장이라는 자가 그렇게 쉽게 내 퇴사를 받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사직서를 썼다.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함이라고 써 놓고 내려와 차에 앉으니 억울하고 분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이유를 다시 작성했다. “잦은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장님의 화와 짜증을 견딜 수 없어 퇴사 함이라고 적었다. 적어 놓고 계단을 내려오는 몇 초 동안은 속이 후련하고 뭔가 골탕을 먹인 것같이 통쾌했는데, 그것도 잠시. ‘혹시 사장이 열 받아 퇴직금을 안 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후회까지는 아니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된다. 아이씨,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함이 더 깔끔하고 단정한데...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p.5)

 

퇴사를 하고 난 후 처음 읽게 된 책이 김훈의 책일 줄이야. 나는 또다시 그의 글과 표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치밀하고 빽빽한 그의 단어의 배열과 배치는 숨이 넘어갈 듯 가파르지만 기어코 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가볍게 읽고 싶었다. 가볍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라는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큰 위로가 되었다. “괜찮아, 걱정 말고 좀 쉬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겨울이었다. 하늘이 찢어질 듯이 팽팽했다.” (p.343)

 

한 겨울에 맞는 갑작스러운 팽팽한 하늘.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본 일이다. 본 하늘이다. 하지만 김훈처럼 표현하지는 못한다. 찢어질 듯 팽팽한 겨울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퇴사를 한 후 텅 빈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 책은, 글은 그대로 내게 투영된다. 굳이 나를 투사할 수 있는 문장과 단어를 찾지 않아도 눈에 툭 하고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사실, 김훈의 글과 단어는 거의 다 눈에 툭 하고 들어온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위로를 받고 힘을 낸다.

물렁하고 아리송한 문장으로 심령술을 전파하는 힐러healer들의 책이 압도적인 판매량을 누리는 독서풍토에서 외상외과의사 이국종 교수의 저서 골든아워에 모이는 독자들의 호응을 나는 기쁘게 여긴다.” (p.376

 

이국종 교수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골든 아워는 진작 읽었다. 평소 그의 인터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말을 짧게 하고 단어 선택이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역시 김훈의 팬이었다. 그의 글에서 김훈의 냄새가 났다. 이국종 교수가 자신의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훈은 이 책에서 이국종 교수와 그의 책을 소개하고 칭찬한다. 부러웠다.

물렁하고 아리송한 문장으로 심령술을 전파하는 힐러healer들의 책한참을 웃었다. 시원하게 웃었다. 자기계발서 말고는 적절히 표현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명확하게 할 말을 찾았다. ‘물렁하고 아리송한 문장으로 심령술을 전파하는 그런 책 볼 필요 없어. 김훈 작가 알지? 차라리 그 사람 책 읽어~’

 

그는 현실과 사명 사이에 찡겨 있다. 내 눈에는 그가 중증외상환자처럼 보인다.” (p.376)

 

골든아워를 읽고 내내 답답했던 마음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무저갱 속에 던져진 그들을 향해 흔한 파이팅 조차 하기가 미안했다. 김훈의 눈에는 그들이 중증외상환자처럼 보였다니. 역시 한 문장으로 해결해 낸다. 글과 표현의 힘이 넘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스며든다. 알게 모르게 그의 것을 따라하게 된다. 가랑이 찢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겨우 쓰는 글은 오직 굼벵이 같은 노동의 소산이다.” (p.34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글을 겨우 쓴다니. 아리송하고 약 올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문장 또한 위로가 되었다. 그도 겨우 쓴다는데, 나는 뭐. 이정도면. 겨우 쓴다는 그의 너스레를 흘려 보지 못하는 건 내 초라한 글쓰기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습관이고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라 여기고 굼벵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이어가야 한다.

퇴사를 하고 이틀이 지났다. 아직은 좋다. 맞지 않는 옷을 5년 동안 입고 있었더니, 원래 뭐가 내게 맞는 옷이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잃어버린 것도 많다. 세월은 첫 번째고. 건강도 많이 상했다. 회복하려면 쉬어야 한다. 아내와 충분히 대화한 후 한 달 정도 쉬기로 했다. 근데 분명 1주일만 지나면 또 불안해 할 게 뻔하다.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더 쉬는 게 맞나? 아내가 안 그런 척 하지만 너무 힘들어 하는 거 아닌가?’ 귀 막고 눈 가리고 살아야 한다. 퇴사 후 첫 번째로 읽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충분히 나를 위로하고 토닥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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