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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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살 딸아이는 거울을 자주 본다. 현관에 있는 전신거울, 자기 방에 있는 손거울, 안방에 있는 화장대 거울. 자기가 제일 예쁜 줄 안다. 외출 한번 할라치면 딸아이 치장 시간이 가장 길다. 원피스를 입고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샌들을 신고, 운동화를 신고, 구두를 신어 본다. 팔불출 아빠인 내 탓이 가장 크다. 아무렴, 누구 딸인데.

나도 내가 잘 난 줄 알았다. 술어가 과거형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오늘은 만원 더 넣었어요.”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p.146, <도움의 손길>)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내 집을 장만했다. 이 정도면 다 된 거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웃돈을 얹어 주기까지 한다.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오긴 했다. 칠만 원짜리 무드등을 사달라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사만 원짜리 토스터를 받자니 왠지 억울했다.” (p.23, <잘 살겠습니다>) 눈치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빛나 언니에게 받을 결혼 선물 또한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정도다. 이 정도면 다 한 거다. 그렇게 한 사회와 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해 나가는 것이다. 배달 앱을 열고 조금 더 싼 곳을 찾느라 한참을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쓸 데는 쓸 줄 알고 내 몫은 챙길 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옥상 온천에 올라가기 전, 방 안에서 푸시업을 했다. 오십개쯤 했을까, 귀밑에서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손바닥에는 다다미 자국이 깊게 남았다.” (p.78,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우연히 만난 그녀를 취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이다. 그녀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나 정도면 충분히 매력 있고, 매력을 발산할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푸시업을 오십개나 하는 건 대단한 거다.

 

 

2. 당신

 

그런 기이한 작별인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그렇게 끊는 자와 끊지 못하는 자의 실랑이가 한참을 더 이어진 끝에 통화가 끝났다.”

세상 질척거리는 통화였다. 심지어 나는 울고 있었다. 최악이었다.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버리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p.97,<나의후쿠오카가이드>)

 

진짜 최악이다. 내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아니 주도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의 손아귀였다. 취하기만 하면 옛 애인에게 카톡 하고 전화하는 질척거림이다.

나와 당신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너무 다르다.

 

내가 그럼 안 되겠네요’‘아쉽네요라고 채팅창에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려는 순간, 언니의 메시지가 또다시 도착했다. 우리 둘은 따로 봐야지.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점심 어때?” (p.9, <잘 살겠습니다>)

 

어쩌면 빛나 언니는 눈치 없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고~ 겨우 그 정도야? 누구는 뭐 정말 만나고 싶은 줄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는 것일지도.“어휴,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집은 새집 냄새가 너무 나. 화학물질 냄새가 확 올라와요. 인테리어 새로 한 건가?” (p.140, <도움의 손길>)웃돈까지 얹어 준 도우미 아주머니는 이래저래 참견이다. 그냥, 정해진 일만 해주고 미리 그어놓은 선을 넘지 말았으면 싶은데, 매번 넘어온다.

아니, 도우미 아주머니의 선은 내 쪽으로 훨씬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당신이 그렇다.

 

 

 

3. 나와 당신

 

언니 전입 신고는 했어요?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안 받았어요?”

확정일자? 그게 뭔데?” (p.18, <잘 살겠습니다>)

거기서 물어보더라고. 이 집 계속 나가고 있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지 뭐.”

내가 거짓말은 또 못하겠더라고. 주님 믿는 사람이라.” (p.156, <도움의 손길>)

 

확정일자조차 제대로 모르는 빛나 언니는 결혼도 잘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다. 웃돈을 얹어 주는 마음까지 베풀었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나와의 비밀을 몽땅 까발렸다. 주님 믿는 사람이라 거짓말을 못 하겠더란다. 결국, 같이 살아야 한다. 내가 볼 때, 내 관점에서, 내 경험에서 당신을 판단하는 것은 패착이다. 당신들만의 삶의 궤적이 있다. 술 몇 잔 기울이며 털어놓는 취중 진담 정도로는 안 된다. 말짱한 정신으로도 당신이 내 쪽으로 그어놓은 선이 어디까지인지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당연히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더 신이 나서 말했다.”

큰아들은 벌써 결혼해서 손주 봤고, 둘째는 이번에 취직했고, 막내는 군대 가 있고...” (p.141, <도움의 손길>)

 

궁금함이 1도 없더라도 한마디 거들었으면 나을 뻔했다. “, 그래요. 손주도 보고 좋으시네요.” 정도. ! 그 정도. 물론, 그렇게 반응했다고 해서 나와의 비밀을 몽땅 까발리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정도는 반응해 줄 수 있는 거 아닌 거 싶다. 내 집을 청소해 주시는 당신에게라면 말이다.

고장 난 기계를 고치고 나면 대부분의 반응은 고맙다.’,‘수고했다.’

정도다. 더는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느니, 더 높은 놈 데려오라느니, 업체를 바꿔야겠다느니 지껄이면 고칠 맛이 똑 떨어진다. 더운 여름날 냉수나 음료수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마디면 된다. 적당하게.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이 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p.50)

내가 회사 생활 십 오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진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p.51, <일의 기쁨과 슬픔>)

왜냐면, 우린 모두 이 차장 같은 사람들이니까. 월급을 포인트로 준다는 기발한 갈굼을 발명해 낸 그놈이 큰 문제지만, 바꿀 수 없지 않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지만, 우린 절을 쉽게 떠날 수 없다. 어쨌거나 오래오래, 진득하게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와 당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방송국이고 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p.207, <탐페레 공항>)

 

내가 꿈꾸던 그 곳, 그 선까지 가 닿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조금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선을 넘어오지 않았으면, 내가 선을 넘어간 것을 아닐까? 온갖 잡생각은 그저 공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 공상들로 채워가는 것이 일상이다. 그 일상을 단번에 벗어 던질 수 없다면 4대 보험과 연차와 상여금으로 가득 찬 연봉계약서에 당장 서명해야 한다.

그것이 나와 당신, 우리들의 당연한 삶이고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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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7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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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동상 뒤에서 잠시 만났을 뿐입니다.”

 

온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광화문 집회 참석 여부를 놓고 한 야당 국회의원이 한 변명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순신 장군께 죄송할 따름이다. 질서도 상식도 없이 모여들어 국난을 초래한 그 광화문 집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을 테니 말이다. 얼마나 괴롭고 원통하셨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황망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 위인전 이후 처음 읽는 난중일기다. 이순신 장군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것은 위로가 되었다. 책을 통해 발견한 장군의 효심과 절제, 충성의 모습은 두고두고 지침으로 삼아 마땅하다. 하나씩 이순신 장군의 진면모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1. 효심

 

“329일 맑다. 아산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p.38, 1592)

 

전쟁 중에도 이순신 장군의 마음속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간결한 문장에 가득한 효심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탐색선이 들어와 어머니의 소식을 들으면 다행스럽다고 표현했다. 혹여 며칠 소식이 늦으면 끓어오르는 걱정을 어찌할 수 없다(p.230)라고도 표현했다.

 

“413일 맑다. 중략. 조금 있자니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p.337, 1598)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라는 표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지지는 않았다. 내 효심은 장군의 그것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일 테다.

 

2. 절제

 

“317일 밤에 식은땀이 등을 흠뻑 적셨다. 옷 두 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도 젖었다. 몸이 몹시 좋지 않았다.” (p.288, 1597)

“2월 초2일 맑다. 동헌에서 공무를 보았다. 쇠사슬을 걸어매는 데 쓸 크고 작은 돌 80여개를 실어 왔다. 10순을 쏘았다.” (p.27, 1592)

 

이순신 장군은 전쟁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활쏘기다. 1순은 활쏘기 5번이다. 10순이면 50.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전신 운동이자 훈련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게을리하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활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과 국가의 위기가 눈앞에 있었다. 전쟁의 향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한낱 인간이 품지 못할 사명과 책임감이었다. 임금과 조정은 도망갔고 모리배들의 간계와 질투는 흘러넘쳤다. 어쩌면 장군에게 활쏘기는 단순한 훈련 이상이었을 것이다. 활쏘기를 통해 무너질 듯한 마음과 고통을 다잡고 부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도 흐트러짐 없는 리더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힘껏 당겨 앞으로 튕겨내는 화살처럼 앞으로 나가 왜적의 배를 맞부딪혀야 하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그것을 활쏘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4월 초1일 맑다. 옥문을 나왔다.” (p.331, 1598)

 

절제의 백미다. “4월 초1이 맑다. 옥문을 나왔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일기에 쓸 수 있었을까? 인간적인 면모 자체가 나의 그것과는 너무 멀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싶은데, 장군의 말은 한결같이 짧다. 대단한 절제다. 따를 수 없는 절제다. 너무 먼 과녁이라 보이지 않는다.

 

 

3. 충성

 

“8월 초3일 맑다. 임금이 내린 교서, 유서와 유지를 가져왔는데,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교서에 절을 한 뒤에 받은 서장을 써서 봉해 올렸다.” (p.374, 1598)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켜 놓고 중책을 맡겨 버린다. 도망간 왕은 중심이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뜨리지 않는다.

 

“9월 초8일 맑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일개 만호직에나 맞겠으며 수사의 자리를 받을 만한 인물이 못되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분이 두텁다고 하여 마음대로 임명해 보냈다. 이래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때를 못 만난 것만을 한탄할 따름이다.” (p.382, 1598)

나라가 망하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조정과 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전란인 것을 조정 대신들은 모르고 있었나? 기강과 중심이 무너진 조정과 대신들은 필요악이다. 이순신 장군은 책의 전반에 걸쳐 이 부분을 지적한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 이렇게 갈 데까지 갔다. 나랏일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평정될 리가 없다.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다.” (p.151. 1595)

그러나 표현은 이 정도일 뿐이다. 부하들이나 세력을 모아 반란은 모의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조선왕조도 그렇고 현대의 군사정권도 그렇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역사가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거나, 때를 못 만났다는 표현 정도일 뿐이다. 억울한 옥살이 이후 마주한 현실은 비참했다. 군함과 병사는 없고 왜적과 암울한 패배감만이 득시글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중책을 떠맡긴 왕과 조정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장 포기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모두가 알다시피 포기하지 않았다.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우고 주어진 것에서 최선의 전략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전투 중에 전사했다.

 

어쩌면 참 불행한 인생이다. 늦은 나이에 급제하여 변방으로만 떠돌았다.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었다. 능력에 비해 평가를 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백성을 위하고 병사를 돌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함과 비방뿐이었다.

만약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지만 정치적 군인으로 둔갑되었을 수도 있다. 난중일기는 정말 중요한 자료다.

 

지금도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정치인들은 여전하고 언론은 제 기능을 못 한지 오래이며 사람의 목숨을 손에 쥔 의사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다. 난중일기의 이순신 장군 같은 국가적 영웅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위기를 극복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늘 그랬듯이, 국민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 주변과 사회를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더불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중 한 분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작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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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그래 괜찮아
오광진 지음 / 미래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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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이나 어린 남자친구가 있는 사무실 여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지는 회식 자리에서 술도 몇 잔 마시지 않은 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평소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장난치기도 하는 사이라 넌지시 물었다.

 

? 요즘 사이가 안 좋아?”

 

질문은 한마디였고, 대답은 수십 마디였다. 마치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한참을 쏟아내고 나서 속이 시원하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헤어져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직원에게 내 얘기를 시작했다. 대학 과 커플로 10년을 사귀고 다음 달이면 결혼 10주년이 되는 나와 아내의 얘기. 기질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하며 무엇보다 유머 코드가 99% 일치한다는 얘기. 잠잠이 듣고 있던 여직원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치며 이야기했다.

진짜 맞아요! 걔랑은 유머가 안 맞아요. 유머가!”

 

웃음이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죽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야.” (p.7)

 

얼마 전, 힘든 일이 있었다. 부부간의 일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와 아내 둘 다의 잘못이었다. 한동안 아내와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20년 동안 친구로 연인으로, 부부로 지내오면서 처음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은 은연중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였다.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입을 먼저 떼지 않겠다는 찌질함이었다. 한 달이 지났다. 이대로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던 어느 날 밤, TV 앞에서 둘 다 피식 웃어버렸다. 가장 좋아하던 TV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 화면이었다. 피식대던 웃음이 박장대소로 발전된 후 대화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못했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힘든 일이 해결되었다.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이다. 나는 피식 웃었는데, 그 꼴을 보고 아내가 더 한심해하거나 화를 냈다면 아직도 우리는 침묵 속에 있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 사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나니 더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상대방을 다치게 하기 싫어서 나에게 결함을 찾게 되지. 이것은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p.161)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내 속이 그랬다. 아내에게서만 이유를 찾으려 했다. 직접 쏘아붙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원망하고 무시하고 외면했다. 한참을 뒤척이던 잠자리에서 문득 내 잘못이 또렷하게 눈앞을 맴돌면 애써 외면했다. 나는 아직 많이, 너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에게서 좋은 일들이 생긴다지.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하면 안 좋은 일들이 몰려온대. 잘 살고 싶으면 고치면 돼. 좋은 기운을 가지고 싶다면 오늘부터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을 끊어봐.” (p.144)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아내와의 침묵과 부부에게 닥쳤던 힘든 일이 해결되는 걸 보고 너무 애면글면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더 험한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고되게 애쓰고 비교를 시작하고 원망을 가중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짜다.

 

우리는 단 한 번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인생에는 연습이 없지. 실수 좀 하면 어때? 실패 좀 하면 어때? 우리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데. 그래서 괜찮아.” (p.121)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책으로 보니 더 각인된다. 애처가와 츤데레의 중간 정도는 된다고, 센스도 만점까지는 아니지만 90점 정도는 된다고 자임했었다. 근데, 아니더라. 힘든 일이 지나간 후 또 얼마간 자책을 했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집안에 흐르는 냉기류에 눈치 보던 딸아이의 걱정스러운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처음이다. 실수하고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만 알았다. 괜찮다는, 네 탓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남편, 아빠 노릇이 처음이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것도 처음이다. 타인과 사회가 괜찮다고 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어야 했다. 자책하지 말라고 토닥여야 했다.

어쨌든 괜찮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내 삶을, 나를 둘러싼 다른 이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강박적으로 애쓸 필요도,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괜찮아,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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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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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저 아줌마들 월급 얼만 줄 알아? 너보다 많이 받을걸?”

 

강 부장님은 한수원 본사에서 승강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1회 승강기 정기점검 시 대구에서 경주로 지원을 갔었다. 점심을 먹고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청소업무를 하시는 분들 열댓 명이 모여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 부장에게 전해 들은 그분들의 월급은 나보다 훨씬 많았다. 오후 4시 칼퇴근이라는 것까지. 지역주민이 1순위이고, 혹시나 그만두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엄청나다고 했다.

공기업이라 돈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원자력 산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치 일반 주민의 의견인 듯 언론에 글을 싣는 건 대중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것. 언론을 통해 조금씩 실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지금껏 계속 반복돼왔다.” (p.249)

 

이 책을 읽고 왜 그렇게 한수원 본사 건물 청소노동자나 청원경찰들의 월급이 많은지, 강 부장님의 월급이 왜 나보다 2배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경향신문>, <한겨레> 역시 각각 3,600만원, 2,300만원의 협찬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p.237)

철두철미한 계획하에 뿌려진 돈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그들의 철두철미한 계획에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세뇌되어 온 것이다.

처음 한수원 본사로 승강기 점검 지원을 가라고 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원전? 위험한 거 아냐?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본 한수원 본사는 전혀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경주에서도 토함산 방향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본사 건물은 멀리서 보면 우주선처럼 생겼다. 크고 현대적이며 깔끔하다. 내부는 두말할 것 없다. 한수원 본사라는 간판을 모르고 간다면 흡사 대형 박물관이나 과학관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착시를 일으킨다.

강 부장님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가 새삼 부끄럽다.

청원경찰이든, 청소든 자리 나면 꼭 얘기해 주세요. 당장 경주로 주소지 옮기게요. 하하

 

정부가 월성원전과 주변의 단층이 어떻게 분포돼 있고 어떤 위험성이 있으며, 위험성 대비 원전의 안전성은 어떤지 설명해야 하는데, 단층 분포에 대한 조사 자체가 없다.” (p.64)

정부·연구원·규제기관·학계가 똘똘 뭉쳐 있다. 이런 마피아도 없을 거다.” (p.219)

부품을 100퍼센트 주문 생산하고, 수요도 한수원으로 제한돼 있는 핵 산업은 담합하기 굉장히 좋은 구조” (p.226)

 

무시로 겪는 착시는 노골적인 담합과 그들만의 비밀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견제를 하고 감시를 해야 하는지, 정말 원전을 대체할 수단은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제대로 된 수습이 되지 않는 위중한 상황임에도 똘똘 뭉쳐진 그들의 카르텔은 원전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화석연료 남용과 에너지 과소비는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로 돌아와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다.” (p.12)

한국의 국토 면적 대비 석탄발전용량은 이미 OECD회원국 중 가장 크다.” (p.166)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확신하게 된 것이다. 차량운행이 현저히 줄자 대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세계4대 깡패국가에서 벗어나려면 바짝 긴장하고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책에는 석탄과 원전을 대체하는 유럽의 사례를 소개한다.

 

프라이부르크가 이렇게 태양광을 활용한 생태도시 건설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중략)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한국의 일조량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태양광이 절대량보다 어떻게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335)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 유럽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석탄과 원자력이 아닌 것에 주목했고 성과를 이루어 냈다. 반가운 것은 한국의 일조량보다 적은 도시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이 기후 깡패국가가 맞았구나! 자각하게 되었지만, 한국만큼 코로나에 잘 대응하고 있는 국가가 없는 것을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의 풍력 제도는 풍력 자원의 공공적 관리 기반을 구축하고 개발 이익의 공유를 제도화한 소중한 경험” (p.403)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과 이익 공유 체계를 갖추면 태양광, 풍력 등이 훨씬 빨리 확산될 것이다.” (p.509)

 

절친한 친구가 서귀포 대정읍에 살고 있다. 그 덕에 지난 2년 동안 6차례 제주도에 갔었다. 친구 집 동네에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내륙에서 그 바람을 맞았다면 분명 태풍이 온 줄 알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주도를 여행할 때 풍력발전기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이미 제주도에는 풍력 자원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소개가 반가웠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산업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발 이익의 공유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나도 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기를 사고판다고?’, ‘전기는 한전에서만 관리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동네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직접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팔 수 있다는 것.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생각의 전환이다.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의 유해성에 대한 허위 정보가 퍼지는 것은 친 원전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p.430)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아주 오래되고 아주 큰 조직이다. 노련하고 야비하게 계속해서 착시를 심을 것이다. 멋지게 포장하고 간사하게 설득할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한수원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노동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게 만들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적어도 후세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 책 마지막 비상구와 같은 책이 많이 읽혀야 할 텐데, 괜한 걱정이 앞선다.

제주도에 내려가 사는 친구를 보며 우리 가족도 제주도 이주를 계획 중이다. 그것을 위해 올 초 이직도 했다. 이직한 직장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해서 제주도로 향할 계획인데, 자격증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자격증.

한수원 외주 건물 관리직을 하며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 부장님께 다시 전화해야겠다. 자리 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 학생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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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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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광역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나의 절친한 친구가 사는 곳이다. 그의 제주 이주는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갑자기 그만두고 내게 통보했다. 몇 개월 여행하다 돌아오려니 했는데, 4년이 흘렀다. 농사도 짓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지낸다. 덕분에 우리는 휴가만 생기면 제주도로 날아간다. 8번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비싸고 복잡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갔다가 오니, 다시 안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매력적인 곳이다.

 

제주도의 매혹적인 풍광에 사로잡혔다 하는 이들, 제주도의 상처를 느끼지 못하였다면 어찌 제주도를 다 본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p.21),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제주경찰의 3·1절 대민발포는 천 프로, 만 프로 경찰이라는 국가권력의 잘못이다. 변명한 여지는 0.000001프로도 없다.” (p.220),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나는 제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지지하고 존경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 제주 4·3을 알게 된 계기다. 그리고 친구의 제주 이주가 없었더라면 그전처럼 잊고 지냈을 거다. 몰라도 내가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p.45),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걸어 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것은 살려두지 않았다. 세 살, 네 살 난 아이가 기어서 도망가는 것도 쏘았다. 이 밭에도 저 밭에도 냇가에도 죽은 사람뿐이었다.” (p.192),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청산하지 않은 잘못된 역사는 현대를 망가뜨린다. 우리는 지난 현대사를 통해 이것을 체험했다. 독재자와 그가 남긴 독재의 파편을 말끔히 제거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분명히 경험했다. 대통령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둔 채 마스터 오브 퍼펫이 국가를 경영했고,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되돌아오고, 그렇기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언젠가, 서귀포 사계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이야기했다.

제주, 여기도 진짜 적응하기 힘들다.”섬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조금 지었는데, 도시 출신이 아는 게 뭐가 있었으랴. 좋지 않은 작황에 임대료도 제때 지불하지 못했는데, 땅 주인인 제주 도박이 할머니가 그렇게 매몰찰 수 없었다면서 연거푸 술을 속으로 밀어 넣었다.

 

조병옥은 제주도민은 이미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되어 있다고 선전하면서, 제주도는 좌익의 본거지라고 규정했다.” (p.222),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20세기 끄트머리 199912월에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때 허영성 시인은 이제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느냐며 울먹이던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p.10)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책을 읽고 친구와 다시 통화했다. 여전히 그 제주 토박이 할머니 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책을 읽은 겸, 넌지시 물었다.

그 땅 주인 할머니 가족 중에 4·3 피해자 있으셔?”

, 오빠도 있고 친척 중에 여러분 있으시대

반 백 년이 훨씬 지나서도 마음껏 울먹일 수 없었던 그들의 고통과 한을 나는 단 한 치도 가늠할 수 없다. 건방지게 판단할 수도 없다. 친구의 답답함과 서운함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직접 겪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군대에서 만난 전라도 광주 출신 동기에게 들었던 5·18은 생생한 것이었다. 삼촌이 5·18 때 희생돼 매년 518일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는 동기의 말은 차라리 꿈 같았다.

지난 총선 직전, 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관련 막말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역사는 유효하다. 100년 전이든, 4년 전이든 그 역사는 오롯이 현대사다. 반복되고 재현되며 구체화된다.

 

그땐 사람들이 다 이레도 붙고 저래도 붙고 했어요. 그 모양으로 약하게 흐름 따라다니던 사람들입니다. 바람 부는 양, 이쪽으로 세게 불면 이쪽으로 붙고, 저리로 세게 불면 저쪽으로 붙고 했습니다. 산에서 말을 하면 그것도 옳아 보이고, 또 아래서 오는 말 그것도 옳아 보이고. 어느 쪽에 붙어야 좋을지 몰랐어요.” (p.118),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결국, 피해는 양민이다. 그저 땅을 일구고 거친 바다를 맨몸으로 들어가던 사람들. 사계리 친구 집 거실에서 산방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반대쪽 사계 해변을 따라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송악산이 나오고 섯알오름이 나온다. 대표적인 학살 장소다.

4살 된 딸아이와 처음 간 송악산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상쾌하고 달콤했다. 송악산 초입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차라리 신선했다. 군데군데 일본군이 파놓은 벙커와 땅굴을 보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좌익이라고, 빨갱이라고. 수십 년이 지나도 쉬쉬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친구 덕에 여러 번 가본 제주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은, 적어도 내 눈에는 신기하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투리, 거친 듯하지만 정겨운 그들의 행동.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기껏 제주 몇 번 가봤다고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있었다. 가소로운 짓이다.

이런 책, 두 권 읽었다고 제주와 4·3을 이해 했다 하는 것도 가소로운 짓이다. 그저 먼지가 켜켜이 덮인 첫 장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제주의 숲, 바람, , 바다, 모래, 오름, 하나하나에 박힌 제주 사람들의 한과 슬픔, 눈물과 탄식, 아픔과 설움을 나는 1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제주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 이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기가 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제주에 가서 살고 싶다. 제주의 숲을 거닐고, 바람을 맞고, 돌을 만지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모래를 쓰다듬고 오름에 기대고 싶다.

    

제주4·3민중항쟁 지도부의 몇 사람이 남로당에 헌신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허구적인 정체성이었고 실제 제주민중항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제주민중항쟁은 오직 핍박받는 제주민중이 피압박의 막다른 골목에서 분노를 표출한 사건일 뿐이다.” (p.234),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통나무

    

요즘 들어 제주 이주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도가 많이 되고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 배타적인 원주민, 부족한 일자리 등. 갖다 붙인 이유가 많았다. 이주민이든, 언론이든 제주를 이용하려고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좋은 소재, 흥미로운 주제니까. 반드시 검증하고 짚어내어 재평가해야 할 제주4·3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아직도 빨갱이, 빨치산 반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제대로 평가하고 처벌한 경험이 없다 보니 왜곡된 역사가 고스란히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의 굴곡은 대부분 그렇다.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이나 재평가가 없다 보니 이념의 가면을 쓴 갈등이 산재한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정교과서조차 이념 갈등으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국가의 역사려면 어느 정도 동의가 된 방향이 필요할 텐데, 한국의 현대사는 그렇지 못하다. 슬픈 현실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5·18, 군부독재에 의한 의문사, 세월호 참사 등등 제주4·3을 포함한 미완의 역사가 산재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와 당신들은 최소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동생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직도 제대로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한 역사가 너무 많다고, 잊지 않아야 한다고.

 

대한민국 국민이었으나 국민이 아니었던 그 시절, 수 없는 꽃 목숨이 참혹하게 떠났습니다.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 강요당한 망각의 역사가 마침내 왜곡의 무덤을 뚫고 나와 파도처럼 솟구칩니다.” (p.4),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속솜허라,

이제는 제주 사람도, 대구 사람도, 서울 사람도 속솜허지 않아야 한다. 떠들고 외쳐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청산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추락한 KAL858기 동체를 미얀마 바닷속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공중폭발해 잔해를 찾을 수 없다던 당시 정부의 조사 발표와는 180도 다른 증거가 30년이 지나 드러나고 있다. 속솜한 채 살아온 유가족의 한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다. 비극의 현대사를 숨기지 않고,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어 또 다른 비극의 현대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 속솜허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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