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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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내는 울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놀란 채 내 얼굴과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번갈아 보실 뿐이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마저 비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찬 바람을 쐬어도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본가에서, 그것도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그리고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한 행동이 더 가관이었다.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열어 보니, 엎드려 울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무슨 행동이야? 빨리 나와!”

  다시 앉은 저녁 밥상 앞에 나와 아내는 말이 없었고, 애면글면 어머니만 이것저것 물으시고 훈계하시고 위로하시며 시간이 지날 뿐이었다. 취기는 더욱 올랐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침을 맞았다.

나는 방에서 혼자 잠들었고, 아내와 어머니는 거실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의 문제는 당신 자신과의 문제와 같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할 수 있지만,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그 또는 그녀와 함께 눈을 뜰 것이다. 다른 시간대에 되풀이될 때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한다면 당신은 퇴행성 게임을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두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 문제는 미래의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문제와 내용이 다르지 않다. 결론이 같기 때문이다.” (p.157),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어 두고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냥 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언제든 활화산처럼 터져버릴 수 있는 위험을 머리에 이고 산 것이다. 묵히고 삭혀두던 것이 어머니 앞에서 터져버렸다. 이런, 젠장.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오후, 아내가 먼저 얘기를 하자고 했다.

아내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 아내 자신과 나의 문제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모조리 맞는 말이었다. 나는 변명을 할 수도, 할 마음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해결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처럼 진저리나고 경솔한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고 있었고, ‘효과가 없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대하는 퇴행성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 구석으로 밀쳐둔 문제의 근원들이 터져버리지 않았다면 내일, 다음 달, 10년 후에도 함께 눈 뜰 아내와 함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아내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 탓에 눈물은 계속 흘렸지만,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정적 동요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고 지혜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내와의 대화 직전까지도 내 마음 한쪽에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일의 근원을 아내에게서 찾으려 했다. 평소, 술자리 후 주사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둥, 네가 그렇게 했으니 오죽하면 내가 그랬겠냐는 둥,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 앞에서 그런 행동은 아니지 않냐는 둥.

 부끄러웠다.

아내와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내 생각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주방 식탁 위에서 드론으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철저히 객관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본가에서 벌어진 그 날 저녁으로 의식의 전환이 확장되었다.

파편화된 결혼 생활의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 정리되었다. 마침내 나는 입에 발린 사과를 하는 대신 앞으로의 각오를 세우게 되었다. 하나, 둘 내 각오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날의 1시간 정도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0년 동안 연애했고, 10년 동안 함께 살았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 책 질서 너머를 미리 읽었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아내와의 대화와 그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들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사실, 나는 고집도 있고 자기주장도 강한 터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조던 피터슨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찾아 읽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책에서도 저자가 여러 번 언급하는바, 30년의 결혼 생활을 한 선배로서 하는 이야기를 읽으니 우리의 경험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 같았다. 친한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좀처럼 진솔한 부부간의 상황은 잘 나누지 않게 된다. 굳이 그들 앞에서 부부가 발가벗겨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뿐이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 일주일에 90분씩 배우자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p.336)

결론적으로, 낭만적인 관계가 유지되려면 먼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에 대해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p.339), <법칙 10>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하라


  책을 읽고 <법칙 4><법칙 10>의 내용에 대해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 부부가 당면했을지 모를 큰 위기를 잘 넘겼다는 데 안도했다. 우리의 방법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관계에의 자신감을 얻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아내를 대하던 말투나 호칭도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바, 갈등 덩어리를 구석에 밀어 넣은 채 생활할 때는 호칭이 이상했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말투와 호칭으로 아내를 대했다. 표정과 몸짓은 더 심했을 것이다. 다정하고 따스한 대화나 스킨쉽은 거의 없었다.

 또다시 부끄럽고 미안했다.

 

 부부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케케묵은 감정싸움에서부터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겹치고 쌓인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스스로 약속한 각오를 지키려 노력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갑자기 표정과 말투, 몸짓과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이 사이즈가 하나도 안 맞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은 것처럼 이상했다. 한 달쯤 지나니 덜 어색해진 지금이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12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계의 낭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실히 계획하고 관리해야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고통과 배신 등 삶의 재앙은 비통함을 끌어들이는 중력 비슷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통해하기로 선택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며, 그 결과는 분명 나쁘다.”

감사는 원망의 대안이며,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지 모른다.” (p.423)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p.430), <법칙 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그 일을 겪지 않고 읽었다면 또 하나 마나 한 소리네. 종교 경전이야 뭐야?라고 했을 것이다. 일을 겪고 나니, 새롭게 읽힌다.

우리가 용기를 낸다면 상대방의 한계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비록, 아내의 용기가 나의 용기보다 몇 배로 크고 신속했지만, 나 또한 용기를 낸 것이다. 내 잘못을 오롯이 펼쳐내 들여다봤다. 나와 아내, 우리 부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샅샅이 살폈다. 어려운 일이었다. 꽁꽁 묵혀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용기를 통해 분명 우리는 이전보다 나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진전된 관계를 딸아이가 알아채기 시작했다.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정도 아니지만, 계속될 부부관계에서 또다시 닥쳐올지 모를 어려움에 맞설 용기는 발견했다.

용기의 영양제라고 하고 싶다.

 피하지 않고, 함께 맞설 것이라는 신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기가 좋았다. 다행이었다. 부부에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용하며 읽을 수 있었다. 소장해 한 번씩 꺼내 읽으며 상태와 상황을 점검하기 좋을 것 같다.

소개한 법칙들 말고도 인상 깊은 법칙들과 내용이 있었다. 간략히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

<법칙 2> 내가 누구일 수 있는지 상상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라

어떤 것을 겨냥하라. 현재 개념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정하라. 그 목표를 향해 비틀대며 나아가라. 그 과정에서 당신의 실수와 오해를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해 잘못을 바로잡아라.” (p.108)


<법칙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아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 (p.209)


<법칙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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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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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사, 나 따라다녀~”

 

 오전 내내 수십 미터 상공에서 곤돌라를 타고 용접을 하고 산소 질을 하고 내려오니, 어김없이 목수 사장님이 한마디 한다. 주차타워 설치작업이 워낙 위험하고 자재 자체가 크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다른 노가다 아저씨들에게는 호기심 거리였다. 참도 안 먹고 오전 내내 공중에서 고생이 많다며, 레쓰비 캔커피를 건네주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연배쯤 되는 목수 사장님은 특히,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젊은 나이에 기술 배우면 좋아, 좋지. 잘 생각했어.”

근데, 이거 너무 위험해. 목수일 배워~ 우리가 뭐 곤돌라를 타기를 하나~ 빔을 타기를 하나~ 못질하면 끝이야.~”

김기사 지금 배워서 10년만 지나 봐, 제일 젊은 오야지 되는 거야~ 잘 생각해봐~”

아직도 퇴근 안 해? 으이구, 소장새끼가 악덕이구만. 고생해~”

 

 처음엔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매일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주니, 하루걸러 목수 사장님이 안 보이면 궁금해 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장정 수십 명을 한마디 호통으로 긴장시키는 카리스마. 여튼, 내게는 참 잘 해주셨다.

 목수 사장님과 겹쳐 일한 기간이 대략 보름 정도. 모든 공정이 끝나고 인사를 하시고는 본인의 BMW7시리즈 트렁크를 멋지게 열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선 다시 우리 작업장으로 오셨다.

진짜, 목수일 배워볼 생각 없어?”

우물거리는 내게 무심한 듯, 명함을 주고 BMW7 시리즈는 떠났다.

 주차타워 설치일을 생각보다 빨리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목수 사장님께 전화했을 것이다. 210개월 전국의 노가다판을 돌아다니며 만난 노가다꾼들 중 가장 젠틀하고, 멋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가다꾼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많다. 별거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무언가 모르거나 못하면, 한마디로 어버버하고 있으면 쌍욕부터 날아온다.” (p.49)

 

 쌍욕, 참 많이 먹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일만 하다가, 정년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답은 기술밖에 없었다. 대학 때 3개월 정도 지하철 공사판 철근 보조공으로 일해 본 게 기술직(?) 경험은 전부였다. 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당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기계식주차장(주차타워) 설치직이었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많이 힘든 곳이라는 걸 일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알았다. 6개월까지는 온몸이 아팠다. 30년 동안 안 써본 근육들이 놀라, 적응하는데 걸린 기간이다. 3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던 고밀도의 쌍욕도 6개월 정도 먹으니 적응되었다.

 노가다꾼들은 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장은 전쟁터니까. ~무 시끄럽다. 2, 30년 되신 노가다꾼들은 대게 가는귀가 먹었다. ‘너무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싶을 정도로 소리쳐야 겨우 듣는다.

 노가다 현장 용어가 거의 일본 용어다. 정확히 말해, 일본어가 이상하게 변형된 것들이 많다. 책에서 재미있게 묘사되고 설명된다. 처음에 가면 당연히 모른다. , 저기 바라시 해~! 뭐래는 건지 알 수 없다. 욕을 먹으며 용어를 배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가다 칸타빌레연재를 딴지일보에서 접했다. 한 번씩 올라올 때마다 재미있게 읽었다. 40년 넘게 살면서 노가다 현장 경험을 해본 건 3년 정도가 전부지만,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작가의 글에 공감하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망치로 자기 손 때려보았는가.”

~무 아픈데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순도 100퍼센트 내 잘못이라, 화풀이할 곳이 없다는 사실 탓에 더 아픈 기분에 사로잡혀야 하는 고통이랄까.” (p.137)

 

 때려봤다. 많이.

 빔에 매달려 볼트를 체결하고 용접을 하고 산소질을 하다 보면 자세가 안 나온다. 안정된 자세가 아닌 채로 망치질을 하니 내 손 때리기 일쑤였다. 진짜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기분 잘 안다. 더군다나 나는 고공 작업을 하는 중이니, 아프다고 내려올 수도 없었다. 일단,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장갑을 벗어 상처를 확인해야 했다.

 사장이 용접한다고 잡으라고 해서 잡았더니 내 손 위로 용접 불똥이 우수수 떨어졌다. 양쪽 손등에 아직 화상 자국이 선명하다. 거길 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욕먹었다. 다치고 욕먹고. 1년쯤 지나 기공이 되고 나서 조공과 같이 용접을 할 때면, 꼭 내 상처를 보여줬다이렇게 되기 싫으면 내가 말하는 위치를 잡으라고. 나도 말해주고 잡으라고 했으면 안 다쳤을 텐데, 썩을 사장 놈.

    

 

땀 뻘뻘 흘리며 종일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념무상에 든다. 그런 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면 뭐랄까. 침대에서 5센티미터쯤 둥둥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볍고 산뜻하고 유쾌해지는 기분이랄까.” (p.165)

 

 이런 적도 있다. 두 개 현장이 겹쳐져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간작업까지 해야 했다. 자재가 크고 다루는 공구도 무거워 쉬면서 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효율 따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나니, 저녁밥도 일에 안 들어갔다. 일부러 술만 먹고 씻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모텔방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유체이탈이 되는 것 같았다. 몸이 붕 뜨면서 머리가 개운해지고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기 직전의 기분. 물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선입견 품고 바라봐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고상하게 볼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다.” (p.305)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노가다 경험이 그대로 투영되었던 영향이 크다. 일했던 현장, 목수 사장님, 매일 만진 철제 빔과 공구들, 노가다 현장의 소음과 먼지, 가득한 쌍욕들과 노가다 용어들.

 선입견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노가다가 돈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다만, 힘든 일이라 많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뿐이다. 주변에 노가다를 하며 나보다 3배 넘는 월급을 버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른 밥벌이 현장에서 살아가는 보통 아저씨일 뿐이다.

 가끔 생각난다. 내게 명함을 쥐어주던 목수 사장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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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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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진의 신간을 반갑게 구입했다.

“2라는 글자에 안도했다. 좋아하고 기다리는 작가가 몇 있는데, 김현진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다른 작가들은 대부분 유명한 사람들이라 몇 쇄이런 건 잘 확인하지 않는데, 김현진 작가의 책은 확인하고 싶었다. 1쇄가 몇 부나 출간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1쇄를 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출판시장이야 옛날부터 어렵다고 했었고,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2쇄를 구입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고종석씨의 책을 읽다 알게 된 김현진 작가의 글은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일견, 공감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다. 김현진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봄에 나의 살들은 최고점에 다다랐는데, 대중교통에 탑승하면 사람들이 자꾸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 임신 안 했어요하고 사양했지만, 나중에 정 피곤할 때는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다.” (p.31)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단다. 나는 한참 웃었다. 한두 번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하니, 더 웃겼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얇은 근무복을 입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전 아저씨였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당연한 아저씨지만 배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말이다. 근무복이 별로 타이트하지 않는데도 불룩 나온 앞 배와 옆구리가 도드라졌다. 겨드랑이 부분도 끼는 것 같고, 팔을 뻗으면 유독 손목 위로 옷이 올라왔다. ... 운동 할 때가 된 것이다. 임산부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날씬한 아저씨가 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 이런 노래를 부르며 아직까지는 육중한 몸집으로 물소처럼 트랙을 돌진하는 내 꼴이 우습긴 하다...(중략) 한 마디로 매일 아침 달리는 것은 그날그날 마음의 때를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p.36)

 

투쟁가를 들으며 운동을 한다는 작가의 소식이 반가웠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달린다.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면 행복하다. 물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여성이 날씬하면 손을 대고, 뚱뚱하면 막 대한다.” (p.40)

 

작가의 글은 내게 화두가 된다. 딸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100% 동의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말들을 하는데, 정말 그럴까 싶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간주하는 남성이 많다. 애인, 아내, 자식들에게도 그렇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오랜 실직 등으로 쭉 가난했다. 엄마가 내 저금통을 살짝 가져다가 생활비에 보태 쓴 뒤 도둑이 훔쳐 간 거라고 둘러댈 정도로 가정 형편이 최악이었다.” (p.180)

잔뜩 화가 난 아버지는 나에게 손찌검을 하다 말고 마루에 놓여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와 안방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아예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 살짝살짝 엿보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생일 케이크는 그렇게 엉망으로 짓눌려 북구 불가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p.182)

 

지난 책에서는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아서 몰랐다. 어떤 기분으로 저 내용을 책에 실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를 응원하는 팬의 마음은 단 하나다. 그저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원룸 한 칸에 둘이 사는 젊은 부부 사이에 끼어 살겠다고 내가 거기로 간 건 정말 도른자였다.” (p.210)

처제, 그래요. 뭔지 몰라도 씁시다. 쓸게요. , 내가 나중에 벽에 똥칠하면 처제가 간호라도 해주겠지? 내가 신장 아프면 혹시 하나 떼줄지도 모르고...” (p.218)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도른자였을 지라도, 가족이 된 식구들끼리는 도른자가 아니다. 작가를 진정으로 아끼고 감싸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작가의 2쇄를 구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작가에게 진정한 가족이 생겨 다행이다.

    

내가 세상에 호된 어퍼컷을 맞아 쓰러져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할 태세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다니는 인생이지만, 이 빚을 꼭 일부라도 갚고 싶다. 부디 기다려 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채권자들이여.” (p.222)

 

진정한 가족의 품 안에서 편하고 안정된 부레옥잠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적도 없고, 날씨도 궂지 않아 한참을 둥둥 떠다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의 과거얘기가 그만 등장하는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가족들과 겪는 소소한 일상만으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충분하다.

둥둥 떠 있는 부레옥잠이 훅 하고 가라앉지만 앉는다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빚은 갚지 않아도 되니, 부디 놓지는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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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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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스터션샤인에 푹 빠져 있다. 방영 당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다. 탄탄한 각본과 보석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한다.

어젯밤에는 13회를 봤다. 요셉이라는 선교사가 나왔다. 주인공인 이병헌이 연기하는 주한 미 공사대리 최유진 대위는 노비 출신으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이 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를 살려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이가 요셉이라는 선교사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유진 대위는 여전히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은인인 요셉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속히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요셉 선교사가 살해당한다. 요셉 선교사는 고종 황제의 특사로 청나라에 밀서를 전하려다 이를 미리 눈치챈 친일파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마침, 이 책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라!를 다 읽은 차였기 때문이다.

 

헐버트는 총칼로 일본과 싸운 군사적 영웅은 아니다. 세력을 이끄는 결사체의 지도자도 아니다. 그러나 헐버트는 1895년 을미사면 직후 고종 침전에서 불침번을 선 이래 필봉으로, 민권운동으로, 밀사 활동으로, 언론 회견과 기고로, 집회와 강연으로 반세기에 걸쳐 일본 침략주의에 맞서 싸운 한국 독립운동의 횃불이자, 어떤 결사체 못지않은 대일항쟁의 화력이었다.” (p.363)

 

미스터션샤인의 각본을 쓴 김은숙 작가는 분명 헐버트라는 독립운동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몰랐다. 전혀 몰랐다.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나도 헐버트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조선을 사랑한 사람

 

헌사에 이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악의에 찬 외세에 의해 시달림만 받을 뿐 올바른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한 국가와 민족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쓴 사랑의 열매(a labor of love).’라고 하였다.” (p.224)

 

헐버트는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대한제국의 종말>이라는 책을 국외에서 출간한다. 국외 출간의 이유는 한민족의 역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을사늑약의 억울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p.222) 그는 어떻게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겪는 불의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혼자서 동분서주했다.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다니고 기고를 했다. 일본의 침탈에 분노하여 분연히 일어선 조선인이야 내 나라니까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헐버트는 이방인이다. 고종의 청으로 학교를 만들어 신식교육을 하러 온 교사였다. 교사 생활만 하고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왜 조선을 위해 힘쓰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는 조선을 너무 사랑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전심을 다 하고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 말고는 헐버트의 생애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조선 사랑은 조선인과 조선 문화 조선의 글자인 한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헐버트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선어 공부는 의무라고 여겼다.” (p.50)

조선 사대부들은 한자를 많이 안다는 우월감에 취해 한글 쓰기를 거부하였다. 실학의 대가로 지칭되는 박지원, 정약용도 한글 서적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p.72)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원어민 강사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만 써도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여 년 전 헐버트는 그러지 않았다. 한글 공부를 당연시했다.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는 데 힘썼다. 또한, 최초로 <훈민정음> 서문을 영어로 번역해 발표했다. 나아가 한국어와 태평양 국가 언어·대만 토착어와의 유사성을 비교 연구하여 발표하고 한글 소설·희곡도 직접 쓰기에 이르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헐버트의 조선과 조선의 글, 조선의 문화에 대한 헌신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검프는 미국의 굵직한 역사에 매번 등장한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사건이 매번 역사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한철호 교수는 서재필이 단시일 내에 한글과 영문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헐버트의 삼문출판사 시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p.134)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주시경은 삼문출판사에서 밤에까지 일하며 학비를 보탰다.” (p.160)

 

헐버트가 운영했던 삼문출판사를 통해 역사적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비록 주권은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당했지만, 우리 글로 된 신문을 창간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이다. 또한, 삼문출판사에서 학비를 벌어 공부한 주시경은 역사적인 국어학자가 되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주시경을 국어학자가 만들어 내기 위해 출판사를 운영한 건 아니겠지만 결국 헐버트의 출판사를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완성된 것이다.

 

 

신앙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미국의 선교본부는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들에게 정치와 종교는 불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시달하였다. (중략) 헐버트는 미국 선교본부에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을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 개신교의 침묵은 한국인들을 고통에 빠트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p.234)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도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구한말 열강은 조선의 편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손쉬운 먹잇감을 가운데 두고 게걸스러운 침을 흘리며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특히,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꿨다. 일본의 조선 침탈은 어쩌면 제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선교를 위해 조선에 와 있던 선교사들과 미국 본토의 선교본부는 동상이몽이었을 테다.

헐버트는 참지 않는다. 자신의 신앙과 그에 기반 한 정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도 그러했다. ‘선교본부에서 명령했으니 따라야지.’가 아니었다.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을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고 개신교의 침묵을 비판했다.

비판과 회개 없이 양적 성장에만 함몰되어 온 지금의 한국교회에 울리는 경종이 크다.

 

 

일본에는 악몽이었던 사람

 

을사늑약을 전후한 한미일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 조치대학교 나가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헐버트의 반일운동에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헐버트의 특이한 한국을 향한 열정은 일본인들에게는 악몽이었고, 한국인들에게는 희망이었다.’라고 헐버트를 평가했다.” (p.317)

 

일본은 개방 이후 막후에서 외교에 온 힘을 쏟았다. 드넓은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구미 열강의 청나라와 러시아에 대한 견제 야욕이 일본의 욕심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헐버트의 꾸준한 기고와 서신, 강연에도 미국 본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쩌면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제국주의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야금야금 조선을 먹어 들어가며 대륙진출을 꿈꿨다.

다만, 헐버트만은 일본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이미 국외에 알려진 인사를 드라마에서처럼 쉽게 처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악몽이었던 만큼 조선에는 희망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

 

헐버트는 조선 말기 1886년에 내한하여 63년을 한민족과 함께했지만, 그의 유품은 많지 않다. 변변한 사진도 없다. (중략) 그가 남긴 저술이 그의 일생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p.12)

 

수많은 기고와 강연을 한 사람의 유품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이다. 사진조차 몇 장 없다니. 안타깝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상당수는 선친의 위대한 업적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 죄인처럼 궁핍한 삶을 살았고, 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 중 상당수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아직도 기세등등해 살고 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인식과 연구는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인 김동진 선생은 학창시절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을 읽고 헐버트의 한국사랑, 학문적 기품, 가치관적 삶에 매료된 김동진은 국제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도 끊임없이 헐버트를 탐구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헐버트라는 존재를 알게 되어 읽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김동진 선생은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이끌며 헐버트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헐버트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1999년 이래 매년 추모식 거행, 후손 초청, 학술회의 개최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다.

해방 7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은 제대로 된 역사를 세우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에 대해 재평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도 역사의 그늘 아래 감춰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많은 독립유공자를 찾아내어 제대로 된 감사와 예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자세다.

더불어 어린 학생들의 교과 과정에도 반드시 헐버트와 같은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 시대를 겪으며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현실이다. 아프리카 어느 국가, 남미의 어느 국가, 동유럽의 어느 국가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비리·침탈과 전쟁에 대해서 눈감지 않을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헐버트가 조선을 위해 한 숭고한 사랑의 생애는 그런 교육에 더욱 적절할 것이다.

 

헐버트의 죽음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헐버트가 장기간 여행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내한 7일 만에 서거하여 전혀 증언을 남기지 못한 점이다.” (p.418)

 

해방 후, 이승만은 헐버트를 초청한다. 이미 고령이던 헐버트의 건강을 걱정한 가족들은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80이 넘은 나이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뱃길은 무리였다. 내한 7일 만에 서거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굳이 왜 초청을 했나? 라는 의문은 쓸데없다. 헐버트는 해방된 조선의 산과 들, 땅과 공기,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다. 평생을 사랑하고 아낀 조선을 자신의 생애 끝자락에 온몸으로 새겨 넣고 싶었을 것이다.

 

좋은 책을 통해 훌륭한 독립유공자를 만나 뵙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7살 딸아이에게도 알려 줄 것이다. 나도 절대 잊지 않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 것이다.

 

헐버트 선생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계신 곳에서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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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행복사회 시리즈
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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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딸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축하를 건넨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오는 딸아이 만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5살 때부터 그랬다. 3년을 이어지다 보니 마치 나도 딸아이와 같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껴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있었던 일도 모조리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 미술학원, 교회 유치부 선생님들도 우리 집의 대소사를 거의 알고 있다.

나와 아내는 이런 딸아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지지하고 독려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자기 이야기에 반응해 주는 것에 기뻐한다. 요즘 가장 신나있다. 지금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반응을 가장 잘 해주기 때문이다. 이전 유치원 담임선생님이나 미술학원, 교회 선생님도 반응을 잘 해주셨지만 지금 담임선생님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며 빈도도 잦다.

 

종종 잊어버리죠. 아이들은 언제나 꼭 이렇게 느껴야 합니다. ‘우리 선생님에게 나는 중요한 존재구나!’, ‘우리 반에서, 우리 집에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중요한 존재구나!’ 이것이야말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요.” (p.156), <선생님, 엄마, 친구 메테 페테르센>

 

선생님의 반응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집에서 부모가 해주는 그것만큼은 아니겠지스무 명이 넘는 아이를 맡고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인사를 받는 일은 드문 일이다. 선생님의 관심과 반응이 부모와 아이를 춤추게 한다.

 

사실, 내년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살고 있는 동네에 우리와 같은 젊은 부부가 많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많다. 5분만 차를 타고 가면 군 소재지의 초등학교가 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동네 초등학교의 3분의 1일이다. 얼마 전, 군 소재지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학교 홍보를 했다. 몇 년 전, 폐교를 앞둔 학교에 뜻있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진학시키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아내를 통해 전해 들은 학교의 모습에 마음이 확 쏠렸다.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수업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불법을 저질러야 한다. 위장전입이 필수니까. 부모가 마음을 정한 후 동네 이장님을 만나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고 한다. 홍보를 나온 그 학교 학부모는 웃으며 아이가 나중에 고위 공직자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지 않는다면 문제없어요.라고 했다는데, 웃을 일인가 싶다.

우리 부부가 뭐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아니지만, 불법을 저질러 가면서 아이를 진학시켜야 하는지 의문이다.

 

교사가 핵심이다..

나와 아내 다 학창시절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다. 하지만 딸아이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적어도 내게 교사선생님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크다. 나는 학창시절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직업 교사만 만났었다.

위장전입을 통해 군 소재지 초등학교에 간다고 해서 딸아이가 지금 유치원에서 만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 내가 만났었던 직업교사를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 삶을 위한 수업은 물론 오연호 선생님의 이전 책들을 통해서 덴마크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모습에 환상을 지나 절망에 이르기도 했다. 당장 덴마크에 이민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 딸아이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이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코로나 펜더믹 하에서 한국의 방역체계와 국민의 의식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K팝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에만 있는 일종의 인생설계학교이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쉬었다 가는 기숙학교다.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1년 동안 국어, 영어, 수학 등 기본 과목만 가르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해보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p.192), <그냥 춤춰라 마리아네 스코루트>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는 진짜 환상적인 시스템이다.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선생님과 1년을 오롯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이후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책에 소개된 꿈틀리인생학교를 본 후,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여러 기사를 찾아봤다. 덴마크 정도의 거리감은 아니지만 그대로 아직 먼일이다. 덴마크처럼 공교육 자체 시스템이 아니기에 지방에 사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국가와 교육 당국에서 정해 놓은 일률적인 시스템과는 다른 대안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책을 통해서만 우와, 진짜 부럽다. 가고 싶다.’라는 감탄사에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대안학교나 대안적 교육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국가와 교육 당국이 주도하지 않는 한 그렇다.

학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바, 동네에 젊은 부부가 많이 산다. 소위 별난엄마들이 많다. 67살 아이들이 벌써부터 학원을 대여섯 군데나 다니기 일쑤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수시로 전화를 걸고 교육청·구청에 민원 넣는 것도 예사다. 오직 내 새끼를 위해 모든 구차함과 뻔뻔함을 감수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새끼를 위한 일이라 여긴다. 머리가 아프다.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 엄마, 친구가 되어준 덴마크의 메테 페테르센 선생님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결혼기념일을 기억해 축하까지 건네는 선생님은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찬가지로 공교육 시스템과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온전히 아이를 맡기는 덴마크의 학부모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학부모가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 담임선생님의 성함을 알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성함 정도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심에서 출발해야 신뢰에 다다를 수 있다.

 

딸아이의 초등학교 진학 여부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시간은 없는데, 고민만 쌓인다. 이 책을 다시 아내와 함께 읽으며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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