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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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장군의 귀환이 전례 없는 전염병의 시대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다. 잊힌 장군은 나라가 없어졌을 때도 백성과 나라를 위로했고, 머나먼 타국에 묻혀 계실 때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로했다. 장군의 귀환과 추도는 아직 봉합하지 못한 현대사의 생채기를 다시 드러냈으며, 국민이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각인케 했다. 감사해하고 죄송해했다.

장군의 추모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기가 막힌 고발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보수 정권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극우단체와 인사들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었다. 천지가 개벽하고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야 할 일인데, 너무 조용하다. 피를 토해야 할 역사학계나 언론계는 더욱 조용하다. 긴 시간 자료를 준비하고 크로스 체크하여 보도한 매체가 오히려 이상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 국민들은 별 관심도 없다. 장군의 귀환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시울을 적시던 국민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작금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조정에 든 벼슬아치 태반이 친일종자들인 점이라 한다. 태반의 친일종자들이 임금을 옹성처럼 감싸 가두고 옴짝 못하게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p.206)

 

나는 우리의 전체 역사 중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반민특위의 실패로 꼽는다. 나라를 버리고 점령국의 편에 섰던 자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폐단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사회 전반에 반민족행위자들이 힘을 펼쳤고, 그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기득권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가난하게 살고, 친일을 하면 잘살게 되는 기형적인 역사가 대물림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반민특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되었다면, 수십 년 돌고 돌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반나절 새에 홍범도 부대는 일군 131명을 죽였다.”(p.155)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연전연승 했다. 부단한 훈련과 실전 경험은 점령군을 차례로 무찔렀다. 아무 힘이 없는 나라와 조정은 총 한 자루 지원할 수 없었다. 홍범도 부대는 일본 무기를 뺏어 일본 것들을 물리친다.”라는 기조로 전투에 임했다. 분명한 한계가 있는 전투 기조였다. 점령하러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의 기세는 파죽지세였기 때문이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었다. 열을 죽이면 백이 들어왔다. 백을 죽이면 천이 들어왔다.” 천이 들어와 천을 죽이면 전투를 벌인 인 곳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가했다.

끝을 모르는 전쟁을 하는 것도 절망적이지만, 끝이 정해진 전쟁을 하는 것은 더욱 암울하다.

 

정작 일본군과 붙어 이겨서 소총을 갖게 되고, 동패가 늘어 소대라도 이루게 된다면 그때부터 먹을거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먹을거리뿐이랴.” (p.63)

그런데 어리둥절하다. 얼얼한 것 같고 서러운 것 같기도 하다. 처음으로, 마침내 우리, 혹은 내가 뭔가를 해낸 게 아니라 꼭 무슨 일을 당한 것만 같다.” (p.75)

 

홍범도 장군과 같은 독립운동가와 의병들은 하루를 살았다. 밀고 올라오는 일본군을 죽여 소총을 얻고, 커지는 부대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금을 대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울고 웃으며, ‘얼얼하고 서러워하며독립을 위해 총을 들었다. 무수히 죽어간 일본군 곁에, 차마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으실지 가늠할 수 없다.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같은 깃발을 들었지만, 여전히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반 출신 독립군들에게 차별과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양반한테 덤비고 주먹질 한 죄로 부대 지휘관을 같은 독립군에 의해 잃기도 했다.

여기 계신 지휘부원들 외에는 대개 상놈 출신들이지요. 그런데 반상을 따지면서 구국 충정을 말씀하십니까? 누구를 위한 구국인데요? 구국하여 양반 노릇 계속하기 위해서요? 저는, 애초에 그러했듯 제 방식으로, 이제 만민이 평등해질 조선을 위해서 싸워나가겠습니다.라는 장군의 절규와 의지는 그의 생애 내내 이어졌다. 반상의 차별이나 신분의 차이, 출신과 생각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았다. 안으로는 단단하게 군대를 이끌고 밖으로는 단호하게 전투를 치러 승리했다.

 

면목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보가 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이 이렇게 귀신처럼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p.344)

같은 깃발을 들고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째 이리 뜻이 맞지 않을까?” (p.423)

 

바짝 당긴 활시위의 한쪽에 삭으면 내가 다친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기에 대비할 수 없다. 안으로의 균열은 절망으로 치닫는 싸움의 끝을 앞당겼다. 비단, 독립군 부대뿐만이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세작과 친일부역자들의 행위는 독립운동을 안에서부터 망가뜨렸다. 그렇게 하고도 해방된 국가에서 처벌받지 않았다. 그들의 반민족행위는 어쩔 수 없었던 일혹은 오래전 잊힌 일쯤이 돼버렸다. 슬픈 일이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홍범도 장군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해방 후 70년이 훨씬 지나서야 고국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아직도 만주와 러시아, 중국과 한반도 전역의 땅 깊은 곳에 묻혀 계실 독립운동가들이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찾을 의지가 없는 것이다.

 

왕비나 나라가 포수들한테 뭘 해줬다고 그게 헷갈립니까?”

나라는 그냥 나라인 거지, 나라가 뭘 해줘야 나라인가?” (p.18)

 

왕비가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이 일어났다. 개중에는 의병 활동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목숨을 바쳐 일본군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민비와 구한말 조정의 악행과 무책임은 당시를 살았던 백성들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양반놈들 물러나고 일본놈들 들어와도 바뀌는 거 하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장군은 분명히 말했다. “나라는 그냥 나라라고. 뭘 해줘야 나라가 아니라, “나라는 그냥 나라다.”라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게 나라는 무엇인지. 100년 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부족한 힘이라도 독립운동을 하게 될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적어도 세작이나 점령국의 부역자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이후,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일부 극우 정치인과 극우 언론, 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과 기득권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증명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코로나에 완전히 초토화된 일본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 해냈고, 잘해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있다.

홍범도 장군님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께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있는 것 같다.

 

장군의 유해를 모신 수송기가 우리 영공에 진입하자, 수송기를 양옆으로 호위한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보고가 인상 깊었는데, 그대로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내 마음과 후손들의 진심을 담은 충정을 그대로 담는다.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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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도 궁금해하는 바다상식 - 해양학자 김웅서의 바다 이야기, 2017년 제 16회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 (전국독서새물결모임) 지정도서
김웅서 지음 / 지성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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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첫 MT를 포항으로 갔다. 바다를 보고 일출을 보는 것에 큰 의미를 둔 사람들이 신기했다. 대학 입학 전까지 포항에서 줄곧 살았던 내게, 바다와 일출은 그냥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통학버스 차창 너머로 매일 아침 보는 것이 동해바다의 일출이었으니까. 초등학교는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었다. 하교 후 백사장에서 뒹굴고 조개 줍는 것이 일과였다.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질문.

, 그럼 너 회 엄청 많이 먹었겠다. 삼시 세끼로 회만 먹기도 했냐?”

, 바다가 고향이니까 수영은 엄청 잘하겠다. 잠수도 잘하고.”

아니, 비록 고향은 바다가 있는 지역이지만 부모님이 충청도 분이라 회를 거의 먹지 않았다. 여름 휴가는 늘 충청도 계곡으로 갔다. 수영은 아예 못한다.

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그들의 상식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다에 접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이 책 플랑크톤도 궁금해하는 바다 상식을 읽고 난 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2%는 바닷물이고, 2.1%는 극지방의 얼음이며, 0.6퍼센트는 지하수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표수는 0.01%에 불과하다.” (p.183)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은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당연하니까.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은 먼 이야기로 여겼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70%를 차지하며,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생물이 살 수 있는 면적은 육지보다 약 2.3배 넓다. (p.71)” 라는 사실을 텍스트로 읽으니 눈에 확 들어왔다. 모르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체감되는 위험이나 결핍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버리면 현재의 해류 형태가 바뀌게 된다. 그러면 따뜻하던 지역이 추워질 수도 있고 폭설이 내릴 수도 있다.” (p.103)

10여 년 전만 해도 공기청정기가 흔하지 않았다.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사막에 폭설이 내리고 40도 이상의 불볕더위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시베리아 모기로 인해 순록이 떼죽음을 당하는 등, 이상기후와 환경파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바다의 해류가 바뀌는 하나의 이유로 전 지구적인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는 책의 경고가 무섭다.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땅보다 훨씬 넓고 큰 바다를 더 알아야 하고 공부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바다에 대한 상식이 멀게만 느껴진다.

 

중국이 심해유인잠수정 자오룽호를 만들기 전까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깊이 바다를 탐사할 수 있는 심해유인잠수정 신카이6500을 보유한 나라였다.” (p.236)

 

중국의 유인잠수정이 7000미터 잠수에 성공하면서, 기존 일본의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의 심해잠수 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도 한다. 인류에게 남아 있는 화석연료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해양탐사를 일찍부터 시작한 국가들에 의해 수심 4000-6000미터의 심해저에서 주로 발견되는 망가니즈단괴와 같은 자원이 발견되었다.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고도 남을 노다지로 책에서는 표현된다. 망가니즈단괴를 비롯한 다른 자원들 모두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북동 태평양에 대한민국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5000제곱킬로미터의 광구를 확보했다.”라고 한다.

심해자원의 확보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정학적으로도 바다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탐험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다. 강대국들 사이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채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지리적·경제적·산업적 측면 모두에서 바다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해양선진국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책에서도 언급된바, 세계 5대 갯벌로 인정되는 남해와 서해의 갯벌이 가진 가치를 최대한 살릴 방안도 연구되어야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단지 개발의 가치로만 갯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환경을 보호하면서 미래자원을 확보하고 더불어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을 가능케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본가인 포항으로 간다. 늘 봐왔던 동해 바다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백사장에서의 모래 놀이를 유독 좋아하는 어린 딸아이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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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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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동주의 십자가’.”

라고 대답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 가장 감동한 시, 가장 인상 깊은 시 등을 물었을 때 늘 하던 대답이다. 실제로 그랬다.

대학 1학년 봄, ‘십자가를 읽고 펑펑 울었다. 처음 본 것이 아니었지만, 한 구절 한 단어 가슴에 박혔다. ‘라는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들지 못했던 밤이었다. 작은 자취방의 작은 책장에 꽂힌 시집을 꺼내 들고 십자가를 읽었다. 내 두려움에 대해 폭풍과 같은 위로를 받았다.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마지막 시구를 떠올리면 여전히 콧날이 시큰해져 온다.

그렇지만 이후로 시를 탐닉하거나 시집을 사 모으지는 않았다. ‘십자가가 유일했다. 유일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대답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한 번씩 빅데이터를 공개할 때가 있다. 사이트에 가입한 이후로 내 구매 패턴을 제공해주는데, 내가 구매한 책의 종류는 딱 2가지다. 문학과 정치·사회. 문학 중에서는 소설이 90% 이상이다. 시집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솔직히 시는 어렵다. 압축적이고 상징적이기에 소설처럼 죽죽 따라 읽어 내려가기 쉽지 않다. 물론, 인상 깊은 시를 읽게 되거나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면 그 시가 실린 시집을 구매한다. 하지만 꼼꼼히 읽지는 않게 된다.

그래도 나는 시를 좋아한다. ‘십자가를 읽고 펑펑 울며 경험한 완전한 감동과 전인격적 황홀경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째 시 강의라는 이 책의 부제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십자가를 읽고 특별한 삶의 변화가 있거나 만나는 사람마다 시를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내 삶의 영향을 끼치는 시의 힘을 알아서다. 책에서 소개된 시를 읽으며 현재 내 삶의 조각과 닿아있는 내용이 있는 내용에 특별히 눈이 갔다. 몇 편의 시를 소개하며 감상을 적는 것이 이 독후감의 방향이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

 

풀어봐도 뾰족한 답이 없는 우리 집

재정 상태를 고민하느라 밤을 새느니

타자의 행복이라도 빌어주는 편이

맘 편하게 다시 잠드는 방법이란 걸

그래야 가난한 식구들 아침상이라도

차려줄 수 있다는 걸 햇수 묵어

유해진 타짜인 내가 감 잡은 거지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김혜수의 행복을 비는 타자의 새벽

 

몇 해 전, 시인과 비슷한 고민으로 밤을 새는 일이 잦았었다. 몸을 혹사하며 일을 해도 형편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도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양 드르렁 코나 골며 편히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이 캄캄하고 왜 나만, 우리 집만 이래야 하나?’싶었다. 밤을 새는 날이 잦아지니 피곤이 쌓였고, 피곤이 쌓이니 스트레스가 복리 이자처럼 불어났다. 짜증과 화는 늘어나 가장 가까운 식구들에게도 조절이 되지 않았다. 시인처럼 김혜수의 행복이라도 빌어주지 못했다. 차려주는 아침상도 거들떠보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돌이켜 보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애면글면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나를 집어삼키도록 방치한 것이었으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상황이 다소 나아진 후, 식구들에게 사과했다. 돌이켜보면, ‘병 주고 약 주고였다. 또다시 미안하다. 나도 묵을 만큼 묵은 햇수인데, 아직 멀었다 싶다.

 

지나온 오십 대를 돌아봅니다. 대체 누가 아프니까 청춘이라 그랬습니까? 정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되게 아프니까 오십입디다.” (p.109)

 

저도 되게 아프니까 사십입디다. 햇수를 묵을 만큼 묵고, 흰머리는 늘어나는데 계속 아픕디다. 삶이 아프고, 상황이 아프고, 내 몸도 구석구석 아프다. 직장과 가정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해내더라도 결과는 여전히 아플 때가 많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만 깨달아가는 나이다. 다만, 저자가 오십이 되어도 아프다는 고백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 그렇지 않구나.’라는 위로다.

 

어른이 된다는 것.’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최지인, 나는 벽에 붙어 잤다, ‘비정규

 

솔직히 청년층의 빈곤 문제가 와닿지 않았다. 20대 남성들의 보수화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또한 IMF 직후 성인이 되었다. 대학은 무한경쟁과 토익·공무원 시험에 혈안이었다.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청년층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 극우 정권의 잘못된 교육정책과 유튜브의 영향이라 치부했다. 그리고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고 있었다.

지들만 힘든 줄 아네. 나 때는 진짜 얼마나 힘들었는데. 참나.’

최지인 시인의 비정규라는 시를 읽고 나서 사과했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에게 사과했다. 역사의식 없고, 의지가 없고, 생각이 없다고 치부했던 그들에게.

나도 누런 밥알오래 씹은적이 있다. 좁은 자취방에서 며칠이나 지난 밥을 오래 씹은 적이 있다. 잘 넘어가지 않아 김칫국물을 들이부어 후루룩 마셨던 적이 있다. 그래서 미안했다.

왜 나는 그들에게 어른이 될수 없었나 생각했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힘내라고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없었을까.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을 매도했다. 부끄러웠다. 내게도 어른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도 어른, ‘스승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라고 하는 것은 핑계다.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 중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나는 어른일까, ‘꼰대일까 생각해보다가 얼른 접었다. 자신이 없어서.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p.198)

 

나는 전혀 어른이지 못했다. 세월을 밖으로만 아득바득 드러냈다. 생각은 꼬여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매년 흰머리만 더 울창해졌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최지인 시인의 비정규를 읽으며 또렷하게 깨닫는다. 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흰머리만 무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내 잣대로만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잔잔하고 푸르른 위로를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다.

 

책에는 좋은 시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나처럼 시를 어려워하거나 평소에 곁에 두지 않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의미를 해석하고 행간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선배가 툭툭 던지는 조언처럼 와닿아 책과 시가 잘 읽힌다. 지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저자의 열네 가지 강의도 일방적이지 않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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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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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특혜였다.”

 

서울의 공공기관 사장 후보자로 내정된 사람의 해명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차라리 비문이었으면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득권 중 기득권에 있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해명에 나는 아연실색 했다. 공공기관 사장 후보에 나오지 않았다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되었을 문장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그 사람이 얻은 특혜를 왜 나와 당신들은 얻지 못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남일동을 떠났지만, 결코 떠나지 못한 이 책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시대적 특혜 따윈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는 남일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어디 가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p.29)

 

남일동에 살았지만 살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어려서부터 홍은 너는 이 동네 애들과 달라.”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함께 놀던 아이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어머니의 말은 홍에게 그대로 체화된 것일 테다. 한여름 땀에 흥건히 젖은 셔츠 깃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땀 냄새처럼 말이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또렷해지는 욕망의 덩어리를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어머니의 걸음에 맞추느라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도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무섭도록 뜨거운 체온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든 탓입니다.아이였던 홍은 어머니의 손을 놓을 수 없다. 주변부로 밀려난 부모의 손을 놓으면 그대로 낭떠러지다. 시대적 특혜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사소한 실패와 가치 있는 실험 정도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배제다. 제외되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이다. 부모의 작은 몸짓과 사소한 표정을 아이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재생산한다. 그런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건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의 기운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감정이란 언제나 더 부풀려지고 또렷해져서 아이들에게 가닿는 법이니까요.” 부모가 남일동에 살면서도 마치 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어린 홍은 양가적 감정을 가져야 했지만, 너무 어렸다. 그냥, 이상했던 거다. 분명 나와 다르지 않은 아이들인데, 달라야만 했던 것.

 

괜찮아요. 홍이 씨, 힘들면 그만 해도 돼요.” (p.43)

 

그런 홍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주해가 나타난다. 직장에서 바른 소리 하다 퇴사 당한 채 백수로 빈둥대며 살아도, 남일동을 떠났지만, 여전히 남일동을 떠나지 못한 채 지내도 괜찮다고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엄마의 손은 더더욱 놓기 싫었던 것처럼 홍은 주해와 그녀의 딸에게 멀어지듯 친밀해진다. 비로소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부다.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나서는 주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주해를 모르는 사람도 마을버스 들여온 새댁이요, 하면 곧장 주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p.52)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주해는 살기 위해 남일동으로 들어왔다. 홍은 공간적 남일동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남일동에서 안주한다. 주해 모녀와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지만 가까워졌고 급기야 주해의 딸을 돌봐주며 수고비를 받기까지 했다. 애초 의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까워지며 서로를 의지한다. 배제된 이들은 서로 어깨라도 내어주고 있어야 어김없이 찾아오는 악다구니 같은 일상을 버틸 수 있다.

 

나 그 새댁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무서운 사람이데. 그쪽도 감쪽같이 몰랐지? 그래서 그 일은 결판났어요? 어떻게 됐대요?” (p.162)

 

악다구니를 더욱 처절하게 만드는 것은 불신과 왜곡이다. 주해로 인해 폐허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함께 기뻐한 것도 잠시.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달콤한 조장과 왜곡은 배제된 이들의 악다구니를 단숨에 폭발시킨다.

결국, 주해 모녀는 남일동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홍은 결심한다. 부싯돌에서 마침내 조그마한 불꽃이 솟아나고 주해로 인해 바뀌어 가던 남일동의 모습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불꽃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주해가 떠난 후, 남일동은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남일동 사람들은 주해가 일으킨 불꽃을 짓이겨 꺼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배제된 악다구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홍의 결심은 행동으로 옮겨졌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지난달, 남일동 제일약국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남일동의 구심점이던 제일약국이 철거되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남일동에서의 과거를 부정하는 홍의 부모, 살아남기 위해 어딘가에서 애를 쓰고 있을 주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멋지게 재개발될 남일동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배제시킨 채 살아가는 남일동 사람들. 남일동에도, 부모가 사는 중앙동에도 발을 딛지 못한 채 표류하는 홍에게도 변하는 것은 없다.

 

시대적 특혜였다.”

라는 비문을 해명이랍시고 당당하게 밝히는 기득권, 부자들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공기관 사장 정도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아주 쉽게 잊히니까.

 

시대적 특혜라는 비문을 남긴 후보자가 공공기관 사장이 되어 남일동에 대한 선심성 공약을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일동 사람들은 180도 바뀔 것이다. 남일동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와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 대책과 백신 접종에 대해 무수한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막상 백신 접종 예약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예약하던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똑같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업무 태만과 지속되는 파업과 시위에 대해서 욕하는 한편, 그 노조에 속하고 싶어 한다. 심리학적으로 가지기 어려운 양가적 감정이 나와 당신들, 우리들에게는 너무 쉽고 간편하다. 온갖 거짓과 가짜 정보가 판을 치고,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악다구니 속에서 칼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은 채 하루를 산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악다구니의 틈바구니에서 씨익 한 번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당신들,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존재적 무력의 확인뿐이다.

오늘도 살아내야 할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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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lmicah 2021-11-30 19: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1-0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micah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lmicah 2021-11-30 19:49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요.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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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공터나, 놀이터, 뒷산 같은 곳에서 놀았다. 몸으로 부대껴 가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함께 노는 무리 중 꼭 바보형이 있었다. 놀다가 다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 그 무리에도 꼭 바보형이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바보형이라 불렀을 뿐, 같이 놀 때는 이름을 불렀다. 바보형이라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그냥 같이 놀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시절 바보형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용어도 몰랐을뿐더러 같이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도 꼭 “OO하고도 친하게 잘 지내야 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바보형이 사라졌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히 동네에서 어울려 놀 시간도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한 후에도 동네에서 바보형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p.251)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가 있는 분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늘 몇 명이 추가로 확진되었는지,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것들에만 집중되어 있다. 중증장애인의 백신 접종은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다. 이 독후감을 작성하는 828일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다.

 


특수안경을 쓰면 보이는 가상현실처럼 자녀가 장애를 입는 순간 그녀들 앞에 놀라운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처에서 엄마의 무릎을 꿇린다.”

장애인 다 싫어하잖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 (p.109)

 


 TV를 통해 본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뇌리에 박혀 있었다. 2017,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들의 야만과 무자비함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자각을 한순간이었다. 경제는 발전하고 국가와 정부의 복지는 개선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와 뒹굴던 동네 바보형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었다. 장애를 격리하고 분리하며 특별한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정책을 펼쳤을 때, 딱 지금과 같은 한국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은 숨어야 하는 존재다. 특수학교·복지기관·요양병원 등으로 내몰린 것이다.

 


“‘손 벌리는 자이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p.124)

 


 물론, 나의 어린 시절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복지 정책 자체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을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살아 온 저자의 고백 앞에서는 한낱 공수표에 불과하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p.216)

 


 성인이 된 후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경석 씨의 고백은 함축적이다. ‘불쌍한 장애인들이라는 인식이 그냥 사람이 되려면, 같은 장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투루 손을 내밀거나 금방 말라버릴 동정심을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동네 바보형도 우리에겐 그냥 사람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함께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p.242)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꽃님씨가 저자의 야학에 기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자신처럼 시설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달라.’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가 미비하지만, 갇힌 채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사회 주요 이슈로 만들어 내기 위해 서울 광화문역 지하 보도에서 이어가는 노숙 농성, 최저생계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온 뇌성마비 장애 여성, 2017년 현재, 전국의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통틀어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던 현실 등.


 애써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죄다 몰랐던 터라 부끄러워할 겨를조차 없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면 사회실험을 하는 채널들이 있다. 장애인을 돕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밝히고 왜 도왔냐는 인터뷰를 하면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그냥요.”, “당연하니까요.”, “제가 가까이 있어서요.”, “도와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사람이라서 돕는 것이다. 그냥 같이 노는 동네 형이니까. 동네 바보형이라 부르며 놀아도 그것이 전혀 차별이나 따돌림이 아닌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냥, 어울려 같이 사는 사회. 너무 먼 미래인 것 같아 아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홍은전님과 같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연구하고 부딪히며 사는 분들 말이다.

온 마음을 담아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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