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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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김 서방 축하하네! 축하해

장모님의 격한 축하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기껏해야 기능사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데, 일주일 동안의 요양보호사 일의 피로가 가신다며 나와 아내보다 더 좋아하셨다. 어머니, 이 자격증으로 선임을 걸고 몇 년 더 있어야 제가 계획한 자격증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뿐입니다. 별거 아니에요. 이거.

장모님은 너스레로 들으시는 것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일하면서 이렇게 공부해서 자격증을 떡 하니 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장한 거야. 이거는 장해. 가만 있어 봐. 형님(아내의 큰어머니)을 내일 뵙기로 했는데, 자랑해야지. , 자랑할 일이야. 그리고 이제 밖의 일은 하지 말게.

장모님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수년 후에 도전하게 될 자격증을 이미 딴 것처럼 좋아하시는 장모님의 아이 같은 모습이 그저 보기 좋았다.

배달해 온 치킨을 어느 때보다 맛있게 드시며 손수 내 맥주캔도 따주셨다. 민망하고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뒤섞여 치킨에 밴 양념처럼 진득했다.

 

나의 과거와 힐빌리

내 고향은 지방의 공업 도시다. 대규모 공업단지는 도시를 완전히 바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충북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생전 처음 내 고향으로 오셨다. 말도 설고 물도 선 그곳에서 40년을 사셨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유독 부모님은 향우회 모임이 많았다. ‘충청 향우회에서 체육대회와 물놀이, 야유회를 갔던 기억이 많다. 명절이 되면 버스 창문에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 이름이 적혀있고, 옆에는 목적지가 적혀있었다. 전국으로 향하는 수십 대의 버스를 배웅하는 회사의 높은 분들이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 주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한 반의 학생 수가 60명이 넘었는데, 학생 중 절반 이상의 아버지가 공업단지에서 일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밴스가 어린 시절,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는 암코의 존재를 그저 당연하게”(p.104) 여겼다. 누구나 암코에서 일했고, “암코에 취직하면 다행인 거로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p.104)라고 할 정도였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같은 상투적인 일상이었다. 러스트벨트로 표현되는 미 북부와 중서부 공업제조업 지역이 쇠퇴하면서 암코를 당연히 여겼던 그들은 힐빌리가 되었다.

내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시던 즈음, 뉴스에서는 내 고향 공업단지의 쇠퇴가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밴스처럼 유년 시절을 몹시 가난하고 비극적인 가정사 속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공업단지의 회사에서 3교대를 하시는 아버지의 헌신 덕에 가난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은 없었다. IMF가 터지고 아버지가 큰돈을 주식으로 잃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는 격언 비슷한 것은 나를 피해가지 않았다. 나는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망쳤고, 갑자기 나빠진 가계로 인해 재수를 할 수 없었다. 점수에 맞춰 진학한 대학은 이름조차 낯선 것이었다.

그래도 나의 과거를 밴스의 힐빌리와 동치 하려는 욕심은 없다.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셨고, 어머니도 일을 시작하셨다. “자그마한 우리 고향 동네에서 작년에만 수십 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p.22) 와 같은 약물 중독은 들어보지 못했고, “잭슨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는 인구가 빈곤층이며” (p.51) 점차 쇠퇴해가는 공업 도시였지만 주위에 빈곤층이 많지는 않았다. IMF로 전 국민이 힘들어하던 시기였기에 나 또한 내 인생의 미래궤도가 잠시 이탈했을 뿐, 망가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신적·물질적 빈곤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길 바랐다.” (p.23)

나는 분명히 물질적으로 빈곤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 빈곤은 겪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종종 다투셨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시댁 문제, 교육문제 등등.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완전히 다른 기질의 사람이었다. 한쪽이 불이면 물, 물이면 기름이었다. 정년퇴직 몇 해 전 아버지의 암 발병이 없었다면, 나와 동생이 나서서 두 분의 이혼을 진행했을 것이다. 두 분은 늘 헌신적이셨지만 늘 나와 동생을 불안하게 했다. 어린 시절 두 분의 다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늘 하던 다짐이 있었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2. 나의 현재와 힐빌리

표면적으로 나의 정신적 빈곤이 밴스의 그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나의 현재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혼을 앞두었던 남편의 간병을 10년 동안 해낸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는데, 2년이 걸렸다.

밴스는 여러 명의 새아버지를 거친다. 어머니는 약물에 중독되어 있었고, 자신의 직장에서 약물 검사를 하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아들인 밴스에게 대신 소변을 받아오도록 종용한다. 칩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명의 새아버지를 겪으며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마침내 내가 배운 유일한 교훈은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것이었다.” (p.157) 하지만, 밴스에게는 헌신적이고 강인한 할모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한 청소년기의 “3년의 세월이 나를 절망에서 구해냈다.” (p.231) 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해병으로 복무한 동안 힐빌리의 시골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에 직면하며 자신감만 얻은 게 아니라 계획을 짜고 실행할 능력도 갖추게 됐다.” (p.297)이라고 했다.

할모라는 존재의 든든한 응원을 안고 상황에 함몰되지 않았다.

 

나도 그래야 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을 바로잡아야 했었다. 아버지의 투병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간병을 매주 지켜보며 그 상황에 함몰되지 않았어야 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만의 골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장교로 복무하며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다. 몇 년 동안 도전한 작가의 꿈은 줄어드는 잔액만큼 허무한 일이 되었다.

밴스가 해병대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해 로스쿨 진학을 꿈꾸었던 것처럼 내게도 반전이 필요했다. 결혼이었다. 상황에 함몰돼 가망 없는 허상을 좇던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 대출까지 있던 내가 결혼을 고민하고 있을 때 손을 잡아 일으켜 준 건 지금의 아내다. 밴스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스스로 터득해 일어났는데,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3. 나의 현재2와 힐빌리

결혼 후 밖의 일을 시작했다. 장모님이 언급했던 밖의 일이다. 책과 도서관, 키보드와 공모전 사이트를 멀리했다. 기계와 철골, 공구와 장비, 산소와 용접, 전기회로와 결선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위험하고 힘들고 출장이 많은 일을 시작했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온몸의 상처도 많아졌다. 그리고 2년 전부터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전기 및 영선분야 주임으로 일한다. 기계와 건물구조 설치 쪽 일을 하다 보니 목표와 계획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전의 일을 하면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상의해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이전의 일보다 월급은 적지만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목표에 계획을 위해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 현재2.

 

밴스는 새롭게 생긴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p.313)처럼 힐빌리에서 용이 났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해 “‘사회적 자본으로 표현되는 인맥을 형성” (p.345) 해 높은 연봉을 받고 훌륭한 아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힐빌리의 암흑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주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니, 가르쳐 줄 수 없었다. 여전히 천조국으로 불리며 영어를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이런 힐빌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몇 해 전 트럼프가 이런 힐빌리를 위시한 백인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을 떠올려본다. 그들의 피해의식과 울분이 트럼프를 향한 지지로 몰렸으나, 러스트벨트와 힐빌리는 트럼프 시대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국가와 사회의 도움만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성공스토리를 으스대며 자랑하는 정도로 읽을 수 없는 이유는 나의 과거와 현재에 맞물리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밴스처럼 멋진 성공신화를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차근차근 내 길을 찾아 노력 중이다.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 밴스에게 에이미 추아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멘토링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자본자체의 격차가 크다. 내게 이런 길이 있으니 준비해 보라.’고 한 사람도 없다.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심한 끝에 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작가가 되겠다는 허상을 좇던 것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제는 아내와 딸아이가 있다. 지치고 넘어질 때 나를 일으켜 줄 따뜻한 아내의 손과 아빠, 멋져라고 응원해 줄 자그마한 딸아이의 얼굴이 있다.

 

4. 나의 미래와 힐빌리

우리는 저녁 뉴스를 신뢰할 수 없다. 정치인도 신뢰할 수 없다.” (p.316)

저녁 뉴스는 물론 아침 뉴스 오후 뉴스도 신뢰하지 않은 지 오래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밴스는 가난을 타고났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에 관한 나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겠다”(p.332)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했다. 적어도 그의 경험담이 수천 킬로를 건너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아저씨인 내게는 큰 도움과 도전이 되었다.

이 책을 지난 대선 직후 읽은 것도 적절했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고 난 후 혼란스러웠다.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들, 동료들, 가족들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밴스의 경험담을 들으며 다짐했다. “내가 믿고 지키고 지지해야 할 존재는 내 가족이다. 이제 나와 아내, 딸아이만 보고 산다.”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을 탓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매달려 봐야 나와 내 가족에게 도움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목표와 계획이 뚜렷해졌다. 뚜렷해진 것은 그대로 가슴에 새겨졌다.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딛는 나의 경험담이 이후에 나의 딸에게만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힐빌리의 노래가 아닌 아빠의 노래를 들려주리라 다짐한다.

 

다음번 자격증 합격 후에는 일부러 장모님을 초대해 근사한 저녁을 대접해야겠다. 장모님의 부산스럽지만 과분한 칭찬을 내심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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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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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버지가 꿈에 나왔어.”

5년 만이다. 유독 내 꿈에만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를 포함한 네 식구가 등장한 꿈은 환하고 따뜻했다. ‘10년의 투병‘10년의 간병이라는 동전의 앞면이다. 원망도 체념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은 줄곧 힘들었다. 임종과 장례의 과정에서도 마음껏 울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5년 만의 재회에서는 그간의 일 따위는 표백된 듯 무의미했다.

 

집 안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떠도는 말은, 부유하는 먼지일 뿐이다. 먼지가 떨어지기 전 집 안에서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기한의 사건은 실족 사고로 결론 났다.” “기한은 흔히 사람들이 식물인간이라 말하는 상태가 되었다.” (p.91, <ZIP>) 결혼 생활 내내 참으며 벼르던 영화의 복수는 허무했다. 그리고 기한의 병수발은 위태롭지만 오래도록 유지됐다.” (p.93, <ZIP>) 위태롭고 지루한 병수발을 치러냈다. “한때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단단하게 응집된 결심.” (p.75, <ZIP>)은 먼지처럼 부유할 뿐이었다.

 

<세상은 엿 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똥파리>를 한마디로 표현한 카피다. 학대를 당한 아들은 늙은 아버지를 학대한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는 핏줄이라는 끈에 자신의 목을 감은 채 부유하다 떨어진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로 집 밖에서는 알 수 없다. 알아서도 안 된다.

<상자 속의 남자>의 남자가 형의 비극을 보며 누군가를 돕기 위한 손길도 내밀어서는 안 된다.”라고 결심한 것은 삶이 그에게 가르쳐 준 씁쓸한 관성” (p.175, <상자 속의 남자>)이다. 상자 속의 남자를 상자 밖으로 꺼내어 줄 도움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4월의 눈>의 위태로운 부부가 맞은 집 안의 상황도 알 필요 없다. “세계 각지로부터 팬레터” (p.12, <4월의 눈>)가 쏟아지는 와중에서 그들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지고” (p.12, <4월의 눈>)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의 간병의 결과는 고스란히 어머니의 몸에 기록처럼 상처를 남겼다. 안 아픈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은 나빠졌고 급격히 늙어갔다. 충분히 하셨다고 더 할 수 없을 만큼 잘하셨다고 집 밖의 말들이 부유해도 지난 5년간 내내 우셨다. 미안하고 불쌍하다고. 나는 자식이지만 엄마,아버지 부부의 일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괴물들>의 여자는 사랑 없는 결혼과 부부생활, 능력 없는 남편으로 인한 악다구니를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육교사 자격증” (p.44, <괴물들>)을 따고 직장 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쌍둥이를 키우는 것이 해가 지나갈수록 두 배, 네 배 자라나면서 여덟 배, 열여섯 배” (p.54, <괴물들>) 로 힘들다는 것을 누가 이야기해 주었다면 여자는 그렇게 아이를 가지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부모와 남편의 사랑과 관심이 배제된 여자는 스스로 그것을 개척해 내고자 자식이라는 존재를 도구로 삼으려 한 것은 아닐까? 뭐라고 떠들어 대든 내 자식들만큼은 잘 건사해내 나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그것 또한 부유하다 떨어질 먼지 같은 허망한 욕심일 것이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아빠를. 죽일 거야. 오늘, 저녁. 우리 손으로.” (p.41, <괴물들>) 라는 비극적 메타포를 귀에 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만 비난할 수 없다. 우린 모두다, 누구나 현재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니까. 집 안의 일조차, 부부간, 부모와 자식 간 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주정뱅이처럼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애쓰며 산다. 유튜브를 들여다보면 반지하 월세방에서 5년 만에 수십억 자산가가 된 성공 스토리가 넘쳐난다. ‘왜 아직 너는 가만히 있어. 패배자처럼.’이라며 쿵쾅거린다. 주식, 코인, 부동산 등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널려 있다고 떠든다. 그래. 거짓말은 아니겠지. 근데, 왜 내 주변엔 아무도 없는 걸까. 유튜브엔 널려 있는데.

<타인의 집>에 등장하는 희진과 재화언니, 쾌조씨와 나에게도 유튜브의 세상일 뿐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집주인에게 를 주고 사는 이상한 집의 형편을 들키지 않으려 연기를 한다. “거실로 집합! 막 놀러 온 것처럼 합시다, 친구인 것처럼.” (p.163, <타인의 집>) 허둥대다 친구 배역이 여긴 제 누나고, 여긴 누나 친구들이에요.” (p.163, <타인의 집>) 누나가 되고 누나 친구들이 되는 발연기를 펼친다.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일 수도 있는 30대의 집주인은 그런 발연기에는 관심조차 없는 데 말이다. “미리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집을 내놓게 됐어요.” (p.164, <타인의 집>)라는 말 한마디면 족하다.

애쓰며 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이 사람들의 상황 모두 그렇다. 애써 아버지를 좋은 기억으로만 가두려 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학대를 앙갚음하며 똥파리처럼 사는 영화의 주인공 또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애써서 되지 않는다.

저기는 타인의 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의식하며 거리를 두거나 거리를 좁히려 애면글면 말아야 한다.

 

그저, ‘내 집에서만은 편하기를 꿈꾸자. 누구의 간섭과 허망하게 부유하는 말들과 의도된 알고리즘으로 시야를 흐리게 하는 스토리들은 타인의 집일 뿐이다. ‘내 집의 위치를 제대로 찾고,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덜 아프고 덜 피곤할 것 같다.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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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지음, 송경진 옮김 / 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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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근무를 하는 날 저녁 7시가 도면 어김없이 9살 딸아이와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얼굴을 보며 저녁 메뉴를 묻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는 한다. 어젯밤 통화 때는 딸아이의 얼굴에 동물 캐릭터가 겹쳐졌다. 수년간 영상통화를 하면서 처음 본 기능을 딸아이가 한 번에 실행한 것이다. 처음 실행한 기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딸아이와의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3차 산업혁명에 머물러 있고 딸아이는 이미 4차 산업혁명에 닿아있구나.’

전기차가 보급되는 속도가 눈이 부시다. 국산 차 제조업체가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동시에 여러 대를 쏟아냈다. “4차 산업혁명의 큰 특징은 과거에 인류가 경험했던 어느 산업혁명에 비해 더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이라는 점이다.” (p.5) 테슬라로 시작된 전기차 시장은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먼 현실로만 생각하던 자율주행도 코앞이다. 딸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읽어주던 과학그림 동화책의 미래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맞닿고 있다. 동화책 작가들과 출판사도 이 속도를 따라잡지 않으면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딸아이의 학급 학생 수가 24명이다. 그중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는 2명뿐이다. 하굣길의 풍경은 3차 산업혁명에 머물러 있는 나와 같은 학부모에게는 낯설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마음껏 운용하며 하굣길을 나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사용하게 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책에 따르면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동이 사회에 나와 갖게 될 일자리의 거의 70퍼센트가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전혀 새로운 일자리가 되는 시대가 올 것” (p.6) 이라 하는데, 딸 아이를 포함한 그 세대의 아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책은 완전히 다르고 새로워야 할 경제적, 조직적 구조” (p.64)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존재는 지속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는 새로운 경쟁 권력 구조들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더욱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완벽히 변신해야 할 것이다.” (p.115) 라고 한다. 정부와 국가의 완벽한 변신만이 닥칠 미래의 부정적인 예측과 위험에 완충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기존 3차 산업혁명에 지배자였던 기업들의 매출 및 인지도 영향력을 뛰어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 기업인 우버는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미디어인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소매업체인 알리바바는 물품 목록이 없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 제공업체인 에어비엔비는 소유한 부동산이 없다.” (p.44)

 

완전히 새로운 시장과 세상이 시작되면 완전히 새로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웹에 쉽게 액세스하고 온라인상에서 비즈니스 접근을 쉽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영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위험의 거의 모든 영역에도 노출되어 있다. 얼마 전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출금하는 수법을 동원해 스마트폰 원격조종 앱을 설치한 악성 사기 집단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아파트 홈네트워크를 해킹해 사생활을 침해하는 뉴스도 있었다.

“2019년까지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는 35억 명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러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50퍼센트에 달할 것이다.” (p.191) 라는 책에서의 예측보다 더 큰 폭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는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 분석업체 스톡앱스(StockApps)’에 따르면 “20217월 휴대폰 사용자들의 수는 거의 53억 명에 이르렀으며 이는 세계 인구의 67%에 해당한다.”라고 한다. 미래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예측을 비웃는 폭발력이다. 보안의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될 것이다.

 

또한,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불평등이다. 여전히 대륙 간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 도구의 사용은 격차가 크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고 운용할 기반 산업과 플랫폼 기업 같은 제반 시설에의 접근이 어렵다면 그저 웹에 접속하고 통화와 SNS만으로 스마트폰의 운용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의 진화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저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다만 두 가지 개념적 접근을 명시하는데, “하나는 명백하게 금지된 것을 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명백하게 허용된 일이 아닌 것은 모두 금지하는 방법이다. 정부는 이 두 가지 접근법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한다.” (p.117) 너무 어려운 개념이다. 또 하나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국가와 경제 조직을 제외한 기득권, 이미 4차 산업혁명 안으로 들어가 일정 부분 그것의 효용을 점유한 집단에 대한 문제다. 그들이 개인인지 집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이미 차지한 파이를 나누고 가르쳐 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미 가진 파이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해 독점하거나 서로 과점하려 한다면 불평등과 보안의 문제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소수의 개인과 집단을 위해 다수의 개인이 희생하고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들의 윤리적·상식적 인류애에 전적으로 기댈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은 분명, “완전히 새로워져야 할국가와 국가 간 협의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누군가는 4차 산업혁명을 마음껏 즐기고 누군가는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의 끄트머리에서 험난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을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닿을 것 같은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로 기다리는 가까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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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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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편식을 즐기는 터라 김혜진의 책은 언제나 구매리스트 상위에 위치한다. <중앙역>에서만큼의 강렬함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지만, 현실에 천착한 그녀의 집요한 글은 숨 막힐 듯 흡입력이 있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의 제목처럼 줄곧 의 시선은 에게 향해 있다.

 

태비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귀찮고 번거로운 숙제처럼 여겨졌지만, 막상 너와 있으면 시간이 잘 갔다.” (p.20, <3구역, 1구역>) 처음의 는 항상 반갑고 막역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불문율은 언제나 그렇듯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었고 격차였다.” (p.31, <3구역, 1구역>), “이대로 십 년이 가고 또 십 년이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에 오싹해지면서도 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86, <너라는 생활>), “그러니까 이 순간에는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게 너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건 이 낯선 동네가 아니고 바로 너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실은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가 바라온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p.114, <자정무렵>)

 

깨닫고 또 깨닫지만, 도무지 고칠 수 없는 모양이다. 가족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며 친구도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 아니,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른 체할 수 있는 존재. 파트너다. 파트너? 직장 동료를 칭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나와 너와의 생활에서는 어쭙잖게 얹힌다. 하지만 김혜진의 소설에서는 굳이 성 소수자를 부각하지 않는다. 성별의 문제와는 무관히 나와 너 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실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나는 무수히 많은 너를 쉬이 끊어내지 못한다.

 

나로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버티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였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조금은 편해지겠지” (p.184, <아는 언니>)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조금은 편해지겠지. 분명히 알고 있는 답과 결말을 나도 모른 체한다. 당장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하니까. “그럼에도 어느 주말 저녁 나는 또다시 너를 만나러 갔다.” (p.168, <우리는>) 또 너를 만나러 간다.

 

그해 겨울에 너는 이직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두 번째 좋은 일이었다.” (p.212)

광장은 이듬해 9월에 완공됐다.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세 번째 좋은 일이었다.” (p.221, <팔복 광장>)

<팔복 광장>이 완공(완공은 되지도 않았지만)되기까지 만 2년 동안 나와 너에게 일어난 좋은 일이 세 가지뿐이라니. 암울하지만 현실이다. 그저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재개발을 두고 찬반 싸움을 하는 아저씨의 이봐요. 그쪽은 어느 쪽이오?” (p.14, <3구역, 1구역>)라는 무던히 저급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혐오와 배제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 편이 되어 달라는 그 흔한 부탁조차 하지 못하는 나와 너. 그리고 당신들의 현실에 응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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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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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닌데, 여성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한동안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또 공부해야 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는 것은 안 비밀책을 소홀히 했는데몇 주 동안 실컷 읽었다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골라 사 읽었다김현진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그녀의 글은 웃프다웃긴데 슬프다슬픈데 웃기다그래서 마음이 간다.

적어도 그의 책은 출간할 때마다 산다한 권을 더 사 다른 이에게 준다그냥 그러고 싶다.

이 책 녹즙 배달원 강정민」 또한 여지없이 웃프다웃기고 슬프다작가가 실제로 녹즙 배달을 한 것처럼 강정민의 삶과 김현진의 삶이 비슷하다.

 

강정민은 녹즙 배달원이다만화를 그리고 게임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녹즙 배달원이다.

내가 엄마의 강렬한 희망이었던 간호학과를 버리고 어릴 때부터 꿈꾸던 만화가그러니까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만화과를 택한다고 하자 엄마는 등록금을 단 한 푼도 대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p.23)

등록금을 단 한 푼도 대주지 않은 부모 때문에 홀로 모든 것을 견뎌야 했다열심히 일하며 공부해 회사에 들어갔지만게임 캐릭터를 오로지 성 상품화시키는 것에 혈안이 된 회사에서 그림이 망가진다그림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같이 일하던 신대리라는 놈은 일부러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가져오기도 하는 성희롱을 한다.

나도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성차별성희롱성추행 이런 것들이 남의 일로만 여겼다여성들이 반복적무차별적으로 겪는 일상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급하게 잡아 올라탄 택시에서 씨발오늘 첫 개시 조졌네.”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등하교 버스 안에서 무시로 뻗쳐 오는 남성들의 시선과 손길을 견뎌야 했다는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단지 남자기 때문에 인생을 살며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일이 여자에게는 너무나 많았다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그런 일이 흔했다고 하더라가 아니었다지금도 여전한 일이다김현진은 이 소재를 그의 작품 내내 소개한다캐릭터와 사건에 녹여 낸다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각인한다.

 

그래맞다이년아네가 어쩔래?”

남이면 고소라도 할 텐데진짜.”

고소얘 말하는 꼬라지 좀 봐가족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지네 오빠가 너 결혼할 때 가만있겠냐?” (p.158)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이거다그래도 부모님인데그래도 가족인데.” (p.159)

 

그래도 가족에게 늘 치인다불쌍할 정도로 치인다뼈 빠지게 벌어온 돈을 훔쳐 하나님이 준 거라고 발뺌하는 그들 때문에 하나님과도 친해질 수” 없다유일한 친구는 술이다.

알코올중독자라고 시인할 정도다한 번씩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실 때마다 술자리에 함께한 남자와 모텔에서 함께 아침을 맞는 끔찍함을 매번 겪는다하지만 그 끔찍함을 또 깜찍하게 이겨내는 것이 술이다.

 

그래서 오늘은 소맥너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어그냥 냉장고에서 오래 묵은 아무 반찬심지어 신김치 쪼가리만 곁들여도 나를 기꺼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너.” (p.9)

기꺼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너는 술뿐이기 때문에정민아너를 어쩌면 좋냐.

 

오늘도 익숙한 메일이 왔다강정민님 님께서는 저희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어쩌고저쩌고 귀하의 건승을 빕니다.” (p.255)

지원하는 회사에서는 매번 귀하의 건승을 빈다는 거짓부렁의 메일만 받는다잠시만잠시만 하던 녹즙 배달이 주업이 되어 버렸다자신은 절대로 앉아 일할 수 없는 대기업의 높은 빌딩 안에 있는 콧대 높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조롱을 견뎌내며 술로 버틴다술이 아니면 무엇으로 버티나.

 

“24개월을 술을 한 방울도 드시지 않았다이러면 이건 알코올 완치 판정으로 봅니다.” (p.395)

 

그런 강정민이 알코올 완치 판정을 받았다뜬금없었다나는 실패할 줄 알았다뭐 조금씩 줄여가는 정도면 좋겠다강정민은 건강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 술을 마셔주었으면 했다아니이건 또 무슨 고약한 심술인가건강을 해치지 않는 술은 없는데 말이다술을 끊은 강정민의 앞길이 어떨지는 모른다좋은 곳에 취직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것인지녹즙 배달로 전국 1등을 할 것인지여전히 버는 족족 가족에게 돈을 뺏길 것인지녹즙이고 그림이고 아무것도 개선이 없는 채 또다시 술에 빠져들지.

나는 좋은 쪽으로 기대하고 싶다작가가 아프지 않고 오래도록 글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는 것처럼강정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가족과 술에만 매여 강정민 자신을 잊은 채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 이르렀던 편안함은 판타지다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이지안이 마지막 장면에서 보였던 작은 웃음 정도는 강정민도 보여주기를 바란다녹즙이 든 큰 가방을 메고 있든머리를 쥐어 짜내며 태블릿 PC에 그림을 그리고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가장 고마운 것은 바로 당신이 책을 집어 들어준 독자 여러분게다가 역병이 도는 바람에 다들 먹고살기 어려워 책 한 권 사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 굳이 이 책을 사준 당신당신이야말로 나를 늘 살아 있게 해준살아 있어도 된다고 해준계속 살라고 해준바로 그 사람이다당신 덕분에 계속 살고웃고쓸 것이다.” (p.416)

 

언제나 그렇듯재미있고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마울 따름이다책 한 권 사는 것이 아직은 사치가 아닌 형편이라 다행이기도 하다.

고되게 쓰시고햇살처럼 웃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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