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OBC를 전라남도 장성에서 받았다. OBC는 (Officer's Basic course) 흔히 초군반 교육이라 부른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소위 계급장을 단 상태로 초급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벌써 15년 전이다. 세월이 빠르다. 영천 3사관학교에서 4개월 동안의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10월 말부터 이듬해 2월 중순께 까지 OBC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병과가 보병이었으므로 광주 상무대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했다. 그곳이 바로 OBC교육을 하는 장소였다. 통칭 광주 상무대라고 했으나 행정구역으로는 전남 장성군에 위치해 있었다. 초겨울에 시작되어 한겨울을 지나는 교육이었으나 남도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추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남도의 추위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내 생전 그렇게 많은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 게 이전까지 인생의 전부였다. 지리적 특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렸다. 전남 장성, 영광, 함평, 전북 고창 부근에 아무튼 무진장 눈이 내렸다.

 

소령 진급을 앞둔 훈육장교의 훈육을 받는 탓에 우리는 눈이 펑펑 내리는 아침이면 웃통을 까고 보병학교를 2바퀴씩 돌며 뜀걸음을 하곤 했다. 다들 담배 2개비에서 나올 만한 엄청난 양의 입김을 토해내는 동시에 각자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면서 뛰었다. 특히,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 앞을 지날 때면 더 목청껏 군가를 불러대곤 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도 시키는지 청소부터 얼차려, 총기 수입 등등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었다.

반쯤 나간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수십 번 반복될 때쯤 동기들 사이에서 비슷한 생각이 싹텄다.

아니, 우리도 이제 장교인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훈육장교라고 해봤자 대위인데?

야금야금 우리들 피도 안 마른 머리에 반항기가 물들 때쯤이었지 싶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동기간에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마침, 진급을 앞두고 우리를 정예장교로 만들기 위해 혈안(자기가 진급하기 위해)이 되어 있었던 그 훈육장교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많이 맞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훈육대 뒤편에서 하얀 눈을 등허리로 맞으며 엎드려뻗친 채로 참 많이도 맞았다.

많이 아팠다.

그 일로 훈육대 전체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정말 따뜻한 날 맞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아팠던 것 같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하얀 눈 위에 서서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웃통을 까도 하얀 입김에 욕설을 더하지 않았다. 높은 계급이 모여 있는 본관을 지날 때면 훈육장교의 핏대 세운 ‘더 크게’ 소리를 듣지 않아도 너나 할 것 없이 방금 배운 군가처럼 그렇게 목 놓아 군가를 부르며 달렸었다.

 

 

“연세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연희교차로 근처에서 백골단에게 죽어라 얻어맞았다. 추운 날 맞으면 따뜻한 날 맞은 것보다 두 배는 더 아팠다.” (p.184, 대학 시절)

“체포되었다. 장안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싸대기를 좀 맞았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p.185, 대학 시절)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흥미롭다. 아무래도 소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가 김훈에 흠뻑 빠져 그의 소설을 탐독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그를 모르겠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우연찮게 김훈의 산문을 읽으며 그와 그의 소설을 더 알게 되었었다. 손홍규 작가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의 소설을 읽기 전 그의 산문을 먼저 읽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적인 표현이 즐비한 글부터 위에 인용한 글처럼 배꼽을 잡을 만큼 재미있는 글도 있다.

 

‘아는 대로 불었더니 더는 때리지 않았다.’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내 슬퍼졌다. 작가의 대학생활이 나의 대학생활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연배도 5년 정도 차이가 나고 나는 어디에 끌려가 싸대기를 맞을 만큼 열심히 운동하지도 않았지만 대학가에서 더 이상 정의와 대의의 가치가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아 가던 운동의 끄트머리를 비슷하게 겪었던 것 같다. 함께 운동에 뛰어들었던 동기는 단과대 학생회장이 되어 여러 운동에 참여했고 구속까지 되었었다. 같은 학회에 속해있던 동기 및 선후배들은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경찰이 찾아와 만나기도 했는데, 1년도 채 몸담지 않았던 내게는 그 어떤 공권력의 접촉도 없었다. 그때 내가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지, ‘왜 나의 열렬한 투쟁의식은 공권력이 알아주지 않는 건지’라고 불평했는지 적확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지금 이렇게 졸렬하고 비루하게 일상을 버티는 꼴을 보면 전자가 100%다.

 

 

“어디로 갈래? 묻기에 휴전선으로 보내주세요, 했다. 왜? 하고 묻기에 전 글을 쓰려는 사람입니다. 분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그는 내게 좆까!라고 했으나 정말 휴전선으로 보내줬다.” (p.186, 대학 시절)

 

 

‘좆까’라고 했으면 보내지 말아야지, 참 야속한 사람이다.

 

 

“이듬해 2월 졸업을 하루 앞둔 날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선이라고.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등단했다고 말했다. 축하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월급은 얼마냐?” (p.188, 대학 시절)

 

 

‘월급은 얼마냐?’에서 또 배꼽을 잡으며 뒹굴었다. 작가 본인에게는 웃픈 경험일 수 있겠지만 어지간해선 책을 보며 웃겨서 나뒹구는 일이 없는 나를 나뒹굴게 했다면 이 작가, 참 글 잘 쓰는 사람이다. 아! 비슷한 친구의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네팔에서 NGO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8∼9년 되었다.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친구다. 1년이나 2년에 한두 번 한국에 들어온다. 귀국해서 본가인 대구에 내려오면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너 언제 취직할래?” 9년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우리를 만날 때마다 친구는 우리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월급은 얼마냐?” 작가의 아버지도 내 친구의 어머니도 이해된다. 그 바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의 속상함 또한 이해된다. 나도 그러니까. 당신도 그럴 테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당신의 오른쪽 뺨에 부딪혔다가 중심에서 밀려나며 가장자리에서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 같은 햇살의 덩어리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p.64, 어머니와 나)

“슬픔과 고통으로 한번 구겨진 사람은 제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p.195, 기억이 우리를 본다)

 

 

한 달 전쯤, 이사한 새집에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일주일 정도 계시다 내려가셨는데, 토요일 오후의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멍하게 TV를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뺨을 관통하듯 비추던 찬란한 햇빛의 눈부심.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순간 마주쳤다. 슬픔인지 죄스러움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저녁을 먹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여전히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의 뺨이 너무 야위고 깊게 패인 주름이 너무 얄미웠다. 구겨진 은박지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읽고 나서(특히 64페이지)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 번호를 눌러 통화했다.

보편적인 감정과 경험인지 작가와 나만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좋으면서 싫었다.

자꾸만 되돌아봐야 하니까.

 

“글쓰기처럼 독서 역시 그런 행위다. 나는 아직 행복한 책읽기가 무언지 잘 모른다. 내게 독서는 고달픈 행위였다.” (p.139,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다)

“아무리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쓴다 한들 결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내게도 있다.” (p.311, 바람이 분다)

 

 

절망으로 써온 문장들이 아직 내게는 없다. 그만큼 절실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흉내만 냈던 것 같다. 이제는 이직을 하고 절대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끄적일 시간도 모자란 판이라고 혼자 자위하며 지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독서가 고달프고 절망으로 문장을 써야 한다니, 더 겁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읽는다. 가끔 글도 끄적인다. 아직 절망의 나락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처음 만난 작가와 글이었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글을 너무 잘 쓴다. 미학적이며 현실적이다. 유머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기 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그의 소설 2권을 담았다. 얼른 읽고 싶다.

올 해 만난 최고의 작가다.

 

 

 

‘아짐찮다(p.44)’, ‘묵새기며(p.57)’, ‘넛할아버지(p.54)’, ‘갈쌍갈쌍 했다.(p.79)’, ‘햇살이 은성했고(p.100)’, ‘벼리어진(p.286)’

처음 만난 단어와 표현이 많았다. 하나하나 찾아가며 뜻을 반복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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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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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 사람 왜 저렇게 딱딱해

 

 

미디어에 노출된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의 대부분이 그랬다. 질문자가 무안해 할 정도로 대답을 단답형으로 하고 절대로 미사여구를 말 위에 얹지 않았다.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와 나눈 인터뷰는 보는 내내 내가 긴장이 다 될 정도였다. 새 정부, 새 도지사가 들어선 후 이곳저곳에서 중증외상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많아져서 좋겠다는 덕담 정도였는데, 이 교수는 한겨울 메마른 장작 같았다. 그 어떤 표정이나 감정 없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대답도 부정적이었다.

사실 나는 이국종 교수를 그 이전에 알고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MBC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를 봤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그 영상을 통해 중증외상, 소방헬기를 이용한 중증환자 수송, 이국종 교수 등을 처음 알게 되었다. 40분이 넘는 분량이었는데, 단 한 순간도 지루함 없이 몰입하여 봤었다. 마치 슈퍼맨 같았다. 태풍으로 인해 출동을 주저하는 소방 관계자에게 짜증을 내거나 환자의 보호자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손을 잡거나 하루 종일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담배 피우러 가는 뒷모습 등. 인간적인 모습을 미리 봐서인지 요즘 미디어에 나오는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 내게는 더 낯설다.

왜 그런가 했는데 해답은 이 책에 있었다.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세상

 

 

“조직에서 나를 내치지 않는 한, 스스로를 깎아먹고 갉아먹으며 버티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것은 ‘타의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뿐’이라고 수술 방에 들어서며 나는 생각했다.” (p.71, 1권)

“나는 고립되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보았다. 물러설 곳이 없이 하루를 버텨나갈 때였으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p.102, 1권)

 

 

책에는 이런 표현이 많다.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차라리 숨어버리는 이국종 교수의 모습. 국정감사장이나 대통령과의 만찬자리, CNN앵커와의 인터뷰 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이교수의 모습이다. 저런 표현이 정말 많다. 중복되는 표현과 문장이 여러 군데 있지만 이교수도 출판사에서도 일부러 편집하지 않은 것 같다. 아덴만 여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군사작전의 또 다른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도 이국종 교수다. 차를 끌고 우리 땅으로 넘어오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을 살린 이도 이국종 교수다. 두 사건 이후 이국종 교수는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여러 번 TV에 나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와 시청자들은 TV에 나온 이교수의 모습만 기억할 뿐이다. 두 사건의 중간 과정과 이후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공격, 비난과 비판을 받아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책에서 담담히 드러내는 이교수의 말은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조차 이교수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바빴다. 처음 중증외상외과를 정착시키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래 왔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비로소 이 교수가 왜 그렇게 표정이 없고 감정이 없이 보이는지 알게 되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감정을 차단해 버리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아 온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체념해 왔다.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돋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p.17)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응이 없었다. 대답이 없었다.

 

 

“여러 번 소견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304, 1권)

“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별도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처우 또한 개선되는 바가 없다. 무엇으로든 보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p.395, 1권)

 

 

이교수의 말대로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너무 많았다. 미국·영국·일본의 외상센터에서는 자연스레 되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전혀 되지 않았다. 이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반복되고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석해균 선장을 살려 내고 귀순한 북한군을 살려 내 전국민적은 관심을 받아도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헬기 파일럿과 교신도 안 되는 무전기를 들고 있어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는 현실이다. 목숨을 걸고 헬기로 환자를 실어와 살려 내도 쌓이는 건 병원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다.

 

 

"그런 민원은 막아주셔야 합니다."

라고 피를 토하듯 국정감사장에서 흥분하던 이국종 교수를 100%이해하게 되었다.

 

 

 

 

네 주제

 

책에 간간이 등장하는 이국종 교수의 어머니와의 대화를 보면 그가 어머니를 닮았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밥 벌어먹고 살게 되었으면 돈 욕심은 더 내지 마라. 얼마만큼이면 충분합니까? 시장기를 스스로 없앨 정도면 된다. (p.425, 1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면서 고생하는 아들을 향해 오히려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거나 눈물을 흘리셨다면 이교수도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교수의 어머니는 담담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한다.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MBC스페셜에서는 이교수의 어머니가 "별 볼일 없는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네가 참 하바리인데"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며 이교수가 웃는다. 어머니의 그런 태도와 반응이 깜깜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리라 짐작한다.

 

 

"오른쪽 어깨가 부서져나갔고, 왼쪽 다리도 성하지 않은데 이제는 한쪽 눈도 멀고 있구나... 돌보지 못한 몸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p.154)

“나와 정경원, 장정문, 김지영은 모두 한 달 넘도록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p.263, 1권)

 

 

이교수를 비롯한 외상센터의 직원들 모두는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노동시간에 짓눌려 있다. 간호사들은 유산을 반복적으로 하고, 마음과 몸의 스트레스는 경악할 지경이다.

 

 

“큰 수술은 성취감이 컸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p.45, 1권)

 

 

이 교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대단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아무렇지 않게 표현되는 그들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난기류와 폭풍우를 친구삼아 사선을 넘나드는 소방헬기를 탄다고 해서 수당이 더 나오거나 명예를 더해주지 않는다. 오버하고 쇼한다고 욕을 먹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맡겨진 일, 하고 싶은 일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시스템이 없는 곳

 

 

"선박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고요 했다. 욕조에서 장난감 배가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p.62)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p.67)

 

 

당연히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도 팽목항으로 날아갔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첫 날, 그는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무도 구조에 나서지 않던 장면.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TV에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국종 교수가 직접 날아가 본 팽목항과 세월호는 시스템이 없는 비현실이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외상외과 일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일하며 겪는 허무와 무의미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p.107, 1권)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 (p.53, 1권)

 

 

미국과 영국의 선진 시스템을 이야기하면 잘난 체하면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쇼맨으로 치부되었다. 스스로가 점차 삭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지 못했다. 내가 손을 놓으면 팀원 모두에게 부담이 돌아가니까. 그들은 그렇게 10년을 버티었다. 다시금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도지사가 소방헬기를 위한 많은 금액의 지원금을 약속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죽기 직전의 중증외상 환자의 숨을 붙여놓아야 하고 밀려드는 행정업무와 비난을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내일 당장 이국종 교수를 상대로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담담하고 메마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있는 저들이 살얼음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장경원에게" (p.5 1권)

“집에 자주 가지 못하는 정경원을 위해 때마다 부인이 병원에 들어 세탁할 옷을 가져가고 먹을 것을 놓고 갔다. 가끔 그의 어린아이들이 동행했다. 내가 쓰고 있던 수술용 모자를 벗어 정경원의 아들에게 씌워주었다. 아이가 신기한 듯 재미있어 하며 복도를 뛰어 다녔다.” (p.437, 1권)

 

 

정경원 교수가 자신의 뒤를 이어 외상센터는 물론, 미비한 중증외상체계를 보완·발전 시켜줄 것을 기대하는 이국종 교수의 바람이 이뤄질까?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이국종 교수의 가족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궁금하다.

 

 

"나는 우리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어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p.312)

 

 

허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모래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출발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여러 번 고백한다. 부유하는 말들만 많을 뿐 시스템의 중심으로는 전혀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 건 너무 잔인한 바람일까?

모쪼록 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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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출판 2018-12-1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흐름출판입니다.
<골든아워> 리뷰대회에 당첨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래 링크에 비밀 댓글로 성함, 주소, 연락처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http://naver.me/FON5W4f2
 
창작과 비평 181호 - 2018.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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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대학생 토론 동아리 학생들을 초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주제 중 하나가 ‘통일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이었다. 총 학생 수는 5명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대다수가 통일을 찬성하고 반가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는 4대1. 4명이 비관적이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4명이 비관적인 가장 큰 이유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통일이 돼서 얻게 될 이득은 불확실한데, 통일이 돼서 받게 될 불이익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친 세대라고 해도 촛불혁명을 함께 겪은 세대인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건지, 그들이 너무 현실적인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백낙청의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 - 촛불혁명 시대의 한반도>를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아! 이 책을 그 친구들이 읽어봐야 하는데~!’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적인 사건이 남북 화해를 이끌어내고 남북화해가 다시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대변화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이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느냐 하는 위기를 불러옴에 따라, 일본의 아베 정권도 뒤늦게나마 북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세계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p.33)

 

 

실로 엄청난 변화다. 교황을 만나 힘을 얻었다. 아시아 변방에 불과하던 한국 대통령에게 유럽 정상들의 미팅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세계는 이미 한반도의 변화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데, 딱 두 군데만 모르고 있다. 한국 내 수구세력과 한국 국민들.

 

 

“한반도의 당면 목표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이다.” (p.18)

 

 

백낙청 선생님은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을 제시한다. 서두르면 실수하게 된다. 허겁지겁 우겨 넣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충분한 동의와 사안에 대한 인식의 성숙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반대가 반대를 낳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향해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가장 싫어할 수구 세력과 자유한국당의 무논리, 무경험, 무모한 공격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이 시간을 끄는 데는 비핵화라는 과제 자체의 복잡성을 빼놓을 수 없다.” (p.21)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풍계리 시험장을 폭파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과 세력은 거짓말쟁이다. 한반도의 영구적, 항구적 평화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거짓 뉴스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 역사 공부는 물론, 정치 공부도 해야 한다. 통일이 가져다줄지도 모를 불확실한 이득에 대해 예측하고 판단해야 한다. 더불어 정말 이득이 될지 안 될지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좀 떠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다소 재미는 없더라도 계속해서 말해줘야 한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 않나. 말해주고 가르쳐 주고 이해시켜 주고 난 다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회사 앞에서 지나가는 중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질문을 했다.

“왜 해야 해요? 굳이?”

어떤 이들에게 통일은 절실하고 당연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통일은 그저 귀찮고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일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에서 출발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분단체제의 고질병 중 하나가 상대방을 욕하며 자기개혁을 회피하는 습성인데, 영구분단에 동의한 두 나라로 바뀐다고 해서 그런 습성이 사라질 확률은 낮다.” (p.28)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학 때부터 거의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대학 때 다투던 그 문제로 지난주에도 다퉜다.

70년을 분단되어 있었다. 허리가 두 동강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상체와 하체를 맞춰보려 애쓰고 있다. 새로 기름칠도 하고 떨어져 나간 살점과 신경과 근육도 이어 붙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백낙청 선생님이 제안하는 ‘낮은 단계의 남북 연합’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교육하고 홍보하고 전파하고 가르치면서 우리 안에서도 천차만별로 갈라진 이견들을 추슬러야 한다. 그것이 통일 후 맞게 될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과 갈등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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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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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를 그렇게 우연히 만난 건 6년만의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지나친 것이다.

업무 차 나간 외근 길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지나치는 순간 그녀가 흠칫 놀라는 걸 보고서야 그녀인 줄 알았다.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웃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운 것은 아니었다. 아니, 울었을 수도 있다. 예측할 수 없던 우연한 만남에 서로 경황이 없었다. 우물쭈물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황망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나는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이었다. 귀로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는 아득한 부름만 계속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통화를 마저 한 후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런, 그녀는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문자를 남겼다. 문자메시지 창을 띄어 놓고 아마 50번은 넘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건 나를 피하는 건가, 아마 바쁜 일이 있을 거야, 진동으로 해놨나, 그녀도 반가웠을까, 내 번호를 잊어버려 안 받은 건가, 문자를 보내면 반가워할까, 반가워하겠지, 반가워할 거야. 문자를 보냈다.

물론, 답은 없었다.

근데, 살이 많이 쪘네……. 임신했나?

 

 

 

 

“나는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수전을 보았다. 눈에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접수대에 들러 가장 가까운 주유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접수대 남자는 매우 친절했다.” (p.380)

 

 

 

폴은 마지막으로 수전을 보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은 무미건조한 작별이다. 세상의 가치, 편견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심정으로 시작된 그들의 기괴한(내게는 기괴하게 읽혔다)사랑이 결국 이렇게 늦가을 낙엽보다 더 찰나에 바스라 져버렸다. “반면 수전은 아이가 둘이었고 사반세기 동안 결혼 생활을 했지만, 미숙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 (p.35) “나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사랑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시간과 퇴색에 내력이 있다고 믿었다.” (p.102)

중년 유부녀와 어린 청년의 연애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는다. 그들이 만난 테니스장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입원한 병실에서의 기억들도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거기서 폴은 주유소를 생각한다. 그리고 접수대 남자의 친절을 생각해 낸다. 이 무슨 정신 나간 놈이냐고? 아니. 아니다. 폴은 정신 나가지 않았다.

 

 

 

5년 만에 만난(잠시 지나친)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려 찌질 하게 문자를 썼다 지웠다 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진심이었다. 그것이 아직도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한 병신 같은 태도인지, 결혼식 전날 ‘이제 나는 어떡해…….어떡해’ 라며 울던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에 대한 책임질 수 없는 미안함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제대로 인사하고 싶고 어떻게 지냈는지 잘 지내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러면서 ‘근데 쟤 왜 저렇게 살이 찐 거지?’라는 생각을 해댔다.

폴이 정신이 나간 거라면 나도 정신이 나간 거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너무’가 얼마나야?”

“수전의 경우에는 마시는 것 자체가요.” (p.210)

 

 

 

그녀는 늘 주위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친구들, 언니들, 오빠들, 부모까지도. 늘 당했다. 나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출장 차 먼 지역으로 간 날 늦은 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 주인이 성폭행을 하려고 달려드는 걸 겨우 뿌리치고 식당 화장실에 숨어 전화한 것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늘 무슨 일이 생기고 아프고 울고. 그녀를 공격하는 사람 중 몇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와 판이하게 달랐다. 그녀는 완전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허언증에 과대망상까지. 하지만, 나는 돌이킬 수 없었다. 동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이 이미 그녀에게 닿아 있었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만이라도 그녀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스물다섯이고, 이런 종류의 상황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신문에는 ‘중년의 여성 알코올중독자 애인을 감당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없다.” (p.224)

“그쪽은 환자분의....?”

“대자입니다.” (p.263)

“내가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아들인가요?” (p.275)

 

 

 

중년의 여성 알코올중독자 애인을 둔 스물다섯 청년 폴. 사랑하는 여인의 대자가 되기도 하고 아들이 되기도 하고 가까운 친척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식어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는 절벽이다.

 

 

 

 

그녀의 개인 홈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 노트북으로 보다가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것이다. 사진과 날짜를 몇 개만 살펴보았다. 그녀는 거짓말쟁이였다. 내게 한 말들 중 많은 부분이 거짓이었다. 그녀를 공격하던 무리들의 말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보지 않은 척, 모른 척 하는 것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 맞다. 나중에 만나면 이것도 꼭 물어보려 했었다.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없어?”

 

 

 

그녀를 열심히 변호했었다.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허언증 환자가 아니라고. 니네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나쁜 년놈들이라고.

그런데, 내가 속고 있었다.

 

 

 

“하지만 물론 수전을 사랑한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후회한 것은 자신이 너무 어렸고, 너무 무지했고, 너무 절대주의자였고, 자신이 사랑의 본질이자 작용이라고 상상한 것에 너무 자신만만하다는 점이었다.” (p.365)

 

 

 

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인지 동정인지 의리인지 모를 둘 사이. 지금 돌이켜 보면 분명하다. 사랑이었다. 물론, 내 혼자 생각이다.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담긴 것이 진실인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때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너무 아껴서 내가 돌을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가까웠던 사람들이 내게서 멀어져도 아쉽지 않았다. 미친 사랑이었다.

폴도 정말 수전을 사랑한 것일까?

 

 

 

“그는 가끔 자신에게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 가운데 어느 게 더 진실할까? 그는, 결국,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p.289)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행복한 기억이 진실이다.

그래야 현재가 덜 비참하니까.

 

 

 

그래야 그녀에 대한 내 연애의 기억이 더 이상 남루해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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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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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오너가 구속되는 것을 내 생애 보게 될 줄이야~!”

 

라고 리뷰의 첫 문장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재용씨에 대한 영장은 기각되었다.

제대로 된 의지와 능력을 가졌다면 현재 박영수 특검과 같은 신속하고 적확한 수사를 할 수 있는 집단이 검찰이라는 것을 목도하는 요즘, 이재용씨의 영장 기각을 바라보는 심정은 갑갑하다.

‘결국 삼성이 이기는구나’ 싶다.

긴 시간을 고민하고 새벽에야 발표를 했다지 아마.

해당 판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는 모양이다. 그 판사가 이전에 내린 판결을 찾아내고 프로필이 떠다니고, 난리다.

하지만, 다른 판사였다고 해도 기각이 아닌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해당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하는 판사가 3명이라고 하는데, 업무 상 돌아가면서 심사를 한다고 한다. 특검이 재청구해서 다시 심사를 받으라느니, 국민적 저항으로 사법부를 압박해야 한다느니, 말이 쏟아진다.

다른 2명의 판사가 재청구된 이재용씨의 영장을 들고 무슨 판단을 내릴까?

 

이 뉴스를 접한 이후 「미스 함무라비」를 읽으니 장르가 바뀌어 버렸다. SF가 돼 버렸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SF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의 소송 사건, 중재, 판결, 인물. 현실로 보이지 않는다. 주된 인물인 한세상 부장판사, 박차오름, 임바른 판사 같은 사람들이 실제 사법부에 존재할까 싶다. 그렇다고 세 사람이 모두 SF나 아동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절대적 선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현실의 한계와 조직의 논리에 부합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가지는 동정심과 감정에 판결의 기준이 흔들리기도 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내가 아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모습은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다.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이 대부분이다. 천종호·김지연 판사와 같은 인물도 있다. 책에서의 묘사처럼 법조계 전관이나 다른 여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판결을 하는 판사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게 당연한 거다.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워낙 그렇지 않은 판사들의 모습만을 지켜봐온 나를 비롯한 국민들이기에 지금처럼 사법부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말 그대로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사법부다.

    

 

“이 나라에 유일하게 평등한 게 있다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이치라고요.”

“그래도 법원 돌아가는 건 좀 다르다고 하던데…….” (p.231)

 

법조 브로커를 앞에 둔 중소기업 사장의 순수한 질문은 우리들에게도 해당한다.

에이~ 그래도 아직 사법부는 괜찮지 않아?”

“검찰하고는 다르지 않겠어?”

“그래도 법원은 아직 살아 있잖아?”

 

괜찮기는 개뿔.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앱도 있고요.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p.20)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경우 없이 끼어드는 사람들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는 거죠? 왜 반칙을 응징하지 않는 거죠?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p.127)

 

박차오름 판사는 골칫덩이다. 돌출행동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사인 부장판사 한세상은 여러 번 주의를 주고 자중시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골치 아프지만 한편으론 고맙고 대견하기도 했을 것 같다. 앞뒤 가리지 않는 열정을 가진 후배 판사를 바라보는 선배 부장판사의 속마음이 불편하기만 했을까 싶다.

하지만, 박차오름 판사를 대하는 국민 중 한사람인 내 마음은 한세상 판사보다 더 불편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

우리는 우리 권리가 뭔지도 모르고 사는데? 우리는 잠 잘 시간도 없는데?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놓았다고 치자. 당장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내 몸을 더듬는 놈이 있는데 앱을 켜서 신고하라고? 길게 늘어선 차량 줄을 보란 듯이 새치기하는 고급 세단을 향해 신고하라고? 그냥 못 본 척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성폭행·추행 사건만 따지고 보자. 피해자가 겪는 2차,3차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가 술에 취해 있으면 감경이 되는 사회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폭행·추행은 더 심각하다. 친딸에게 수 년 동안 인면수심의 성범죄를 저지른 아버지가 겨우 5년 구속되었다가 출소한다. 길어야 징역 9년, 10년이다. 그런데 뭐? 권리 위에 잠자지 말라고요? 박차오름 판사님.

일단, 제대로 판결을 하는 모습을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면 한다. 물론, 그런 판결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알려지지 않고 보도되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스트레스가 덜하다.

충분히 사법부·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건의 시비를 법대로 가리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조건들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요원한 희망이다.

    

 

“저 힘들다고 남들 힘든 건 보려고도 안 했네요. 괜찮냐, 다친 데 없느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꼬투리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네요. 제가 미쳤었나봐요. 죄송합니다.” (p.78)

“오빠와 남동생들이 아들이랍시고 집안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는 동안 딸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힘들게 살았는지 한 맺힌 목소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p.223)

 

결국 해결은 우리들이 한다. 검사, 변호사, 판사님들이 계시지만 우리가 한다.

이거, 피곤한 일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속 고소·고발·소송, 부모의 유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갈등. 제발, 책에서만 우리들이 해결하는 것이었음 좋겠다. 진심으로.

실제로는 더 훌륭하고 강단 있으며 합리적인 판사님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믿어 보고 싶다. 장사도 하지 못하고 재판정에 다니느라 고생하시는 고기집 사장님이 잘못을 뉘우치기 전에, 양자로 들인 막내아들의 진정한 효심으로 사건이 해결 국면으로 바뀌려 하기 전에, 원고·피고·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나왔으면 한다.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책에서도 판사들이 겪는 고충은 충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다. 더 이상은 기댈 곳이 없다.

    

 

“법복 차림을 하니 근엄한 풍모였다.” (p.9)

“그 옷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에 위임한 임무를 상징하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p.10)

 

정말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다.

처음 사법고시에 합격한 순간, 처음 법복을 입는 순간은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각오를 할 것이다. 그 ‘처음’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

자꾸만 ‘좋겠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확신한다면 이 리뷰의 내용과 방향은 180도 달랐을 것이다. 확신이 없으니 희망이라고 해보는 거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초임 판사인 박 판사가 아니라 재판장인 내가 더 져야지.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돌아가서 다음 주 선고할 판결 초고나 빨리 가져와!” (p.327)

 

한세상 부장판사. 은근히 츤데레다.

초임인 박차오름 판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배다. 평소에 아무리 잘해주고 따뜻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조직 논리를 들이댄다든지, 가차 없이 꼬리자르기를 하는 것이 세상 현실이다. 꽉 막히고 보수적이며 때론 성차별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한세상 판사. 은근 매력 있다.

마지막 국민참여재판이 끝난 후 판사직에서 사임하게 되는데, 대형 로펌을 낀 노회한 변호사로 법정으로 돌아와 임바른 판사와 박차오름 판사에게 무언의 전관을 요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정농단과 대통령의 뇌물죄를 다루는 뉴스가 오래 되다보니 피곤했는데 이재용씨의 영장 기각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촛불이면 끝날 줄 알았던 순수한 마음을 회개하는 이도 줄을 잇는다. 제발 횃불까지 드는 일은 없었으면 싶다.

속도를 내며 치고 나가는 특검을 돕지는 못할망정,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지는 말아야 한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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