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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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초엽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생소했다. 아무리 리뷰대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어도 좋아하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고 리뷰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리뷰도 쓰고 있다.

 

 인터넷 서점 페이지에서 작가가 포스텍에 다녔다는 것을 발견한 후 바로 구매를 클릭했다. 포스텍이라는 단어를 보자 포항공대가 떠올랐고, 지곡동과 효자동, 학교 안에 있는 호수와 대학식당의 맛있는 메뉴, 한 바퀴만 돌면 초중고 동창 중 몇 명은 만나게 되는 작은 시내와 지금은 영일만 해수욕장으로 불리는 북부 해수욕장의 바닷냄새, 지금 한창 맛있는 과메기의 그 고소함 같은 것들이 연상되었다. 단순히 내 고향이 포항이고 포스텍에는 어려서부터 무수히 드나들었던 것뿐인데, 작가가 포스텍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구매욕이 일어났다. 그 어떤 첨단의 과학과 기술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그 어떤 끄트머리라도 잡고 싶다.

요즘 들어 부쩍 하게 되는 생각과 고민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이 전 사회를 아우르며 힘을 발휘하는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끄트머리를 떠올리는 일은 쉽다. 당장 매일 부대끼며 지내는 직장 동료, 가족, 친구 등등. ‘응답하라시리즈를 보며 맞아, 저 때는 저랬어라며 신기해하고 괜스레 콧날이 시큰거리는 그 어떤 것이다. 그것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싶어 한다. 그게 인생이고 사람이다.

 

맞다. 나는 작가가 포항에서 머무른 그 몇 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이 책을 읽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유명해진 이모셔널 솔리드는 곧 인터넷 커뮤니티와 문화면 기사를 휩쓸기 시작했다. 유튜버들은 감정의 물성을 직접 사용하는 리뷰 동영상을 찍어 올렸고, 얼마 뒤에는 공중파 방송에도 등장했다.” (p.201)

이곳에 있는 건 책도 논문도, 그 비슷한 자료들도 아니다. 이제 도서관엔 끝없이 늘어섰던 책장 대신 층층이 쌓인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하고 있다.” (p.223)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 또한 그 어떤 끄트머리를 놓지 않는다. 우주를 개척해 나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미래에도 이모셔널 솔리드마인드 접속기가 인기를 끈다.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기술의 끝이고, 층층이 쌓인 마인드 접속기가 아니라 홀로그램이나 뭐 완벽하게 재현된 입체적 물질(전혀 과학적 지식이 없어 설명을 못 하겠다)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조우할 수 있는 것이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의 기술일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 어떤 끄트머리를 계속해서 물고 늘어진다.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의 물성만으로 인간은 만족할 수 없다는 것과 마인드 접속기로도 완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부재(不在)한 가족에 대한 추억을 남아 있는 가족이 애써 찾아내고 발견하는 수고로움을 건넨다. 많은 독자가 비슷하게 느끼는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이다.

따뜻하다는 것.

 

 사실, 작가와 독자들의 바람인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해 내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나와 당신들, 혹은 나와 당신들의 후손이 맞닥뜨릴 미래는 따뜻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 말이다.

그 바람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터질 것 같던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 100년 동안 정거장을 점유하고 있다길래 어지간한 괴짜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과격한 노인네일 줄이야.” (p.176)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p.182)

    

 

  폐기해야 할 우주정거장을 점유한 노인을 결국 설득하지 못한다. 인체에는 해가 없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로 송환시킬 캡슐 이동 기술 같은 것이 등장하지 않는다. 젊은 남자는 애초의 임무조차 망각할 정로도 노인의 말에 공감하며 대화하지만 실패한다. 노인의 100년은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먼저 간 가족들이 있는 우주 저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린 것이다. 자신이 개발한 동면기술로 인해 조금씩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놓지 못한다. 그 어떤 끄트머리를.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연방정부에도 해가 되는 일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놓지 못한다. 자신을 설득해 지구로 송환시킬 목적으로 찾아온 젊은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따돌리고 우주 저편으로 그냥 날아가 버리는 것.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젊은 남자는 괴짜이며 과격한 노인네에게 당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마지막 낭만이었겠지만 젊은 남자에게는 임무의 실패다.

  젊은 남자의 호의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임무만 완수하면 그만이었다. 에피소드의 곳곳에 조금만 더 보태고 살을 붙이면 완벽한 임무 수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 또한 작가의 의도라 짐작된다. 여지를 두는 것.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p.49)

아무리 치명적인 병을 앓는 환자여도 한 10년쯤 얼어 있다 깨어나면 누군가가 해결책을 찾아두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시대였지. 마치 인류 지성의 황금기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 (p.159)

   

 

  작가가 그려내는 신인류나 하이테크 기술 또는 단어들이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그리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낸다.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는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현재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소식은 대부분 화나거나 슬프거나 어이없거나 황당하다. 배려해라, 이해해라,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듣고 이야기하고 가르치고 교육했는데, 갈수록 더 잔인하고 차가운 인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성세대인 아빠가 미안해~’라는 말은 상투적인지 오래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위에 불과하다. 비록 실패한 프로젝트로 저 너머 우주로 소멸해 버린 안나의 동면기술 또한 지금 바로 필요한 기술이다. 우한 폐렴으로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될 것 같은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몇 시간 단위로 인터넷을 뒤지면 감염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만 간다. 10년쯤 얼릴 수 있다면 이렇게 난리는 아닐 텐데 말이다.

    

 

어차피 출판사는 다 망해가고 있었어. 미디어 회사들에 모두 통합되어서 책 위주로 출간하는 곳은 사양산업이 된지도 한참 되었고.” (p.263)

    

 

  앞서 여러 번 언급한바, 작가는 나처럼 그 어떤 끄트머리를 계속 붙잡고 있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유일하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본 페이지다.

이야~ 저 때까지 책이 남아 있다는 말이야?’

책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에 종이책이라니? 헛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반가웠다. 작가의 유머로 읽혔다. 지금도 종이책은 사양산업이니 말이다. 계속 사양산업인 채로 수백 년을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은 나와 작가의 마지막 끄트머리.

   

 

  저 멀리 그때에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차라리 주변에 흩어진 그 끄트머리들을 붙잡아 늘어지고, 꿰매며 하루를 견뎌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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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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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인간이란 모름지기 약한 존재다.

강한 척 하며 낑낑거리며 몸부림치지만 약한 존재인 것은 틀림없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것을 깨닫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른 이를 둘러볼 필요도 없다. 가만히 이부자리에 누워, 아니면 소파에 멍하지 앉아, 혹은 신호 대기하고 있는 차 안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일이다. 겨우 일어나 눈곱을 떼어 내고 대충 씻은 후 출근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일련의 루틴처럼 일상적인 것이다. 특별한 존재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딴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나의 눅진한 일상 속에서 종종 알아채던 바다.



“다음 날 오리건에서는 비가 내렸다. 금지된 행동이기 했지만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는 포틀랜드 공항의 출구 쪽에 서서 에스터케이더로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애를 썼다. 웨스턴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솔트레이크 시티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왔다.” (p.179)


 아내에게 우스개로 하는 말이 있다.

“로또 되면 나 팔도유람 하면서 떠돌아다니게 해줘.”

귀찮다는 듯 아내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한다.

“팔도? 세계 유람하게 해 줄게. 되기나 해.”

주인공은 유리하며 유디트를 찾아다니고, 또 피해 다닌다. 짧은 편지를 쓴 후 긴 이별의 이유를 책의 중후반부터 소거해 나가는 플롯이지만 나는 그러한 일반적인 감상과 평가에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주인공이 돌아다닌 발자국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돌아다닐 수 있지?’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킹으로, 두 발로 북아메리카 전역을 떠돈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다니다 보니 애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유디트는 어디 있어? 연극평론가가 휴대용 구급약품 상자에서 꺼낸 알약을 삼키면서 느닷없이 물었다.” (p.155)

“실은 나도 유디트가 어디 있는지 몰라. 우리 헤어졌거든.” (p.156)


 유디트를 쫓아 대륙을 넘어 날아와 떠돌아다니면서 그녀를 찾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찾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일부러 잃어버리는 것 일지도. 처음엔 헷갈렸다. ‘이 사람 뭘 하고 있는 거야. 귀한 돈, 시간 써가면서 아내를 찾겠다는 거야 뭐야.’ 싶었다. 그런데, 문득 알게 되었다.

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구나!



 “오늘 난 미국에서의 두 번째 날을 맞는 거야.”

나는 말하면서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가 걷다가 곧 다시 인도로 올라갔다.

“내가 좀 변하긴 한 걸까?” (p.20)


 종종 내가 아내에게 던지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팔도유람 타령은 사실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다. 그렇게라도 한 번 질러보고 싶은 것이니까. 팔도유람을 한다고 해서 뭐 대단한 소설을 한편 쓴다거나 팔도에 흩어진 맛집유랑기를 쓴다거나 팔도에 숨겨진 특산물을 유통해 돈을 번다거나 하는 따위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하니 그의 발자국의 이면이 보였다. 기껏 날아온 대륙의 호텔 구석에서 자위를 하고 난 다음 날 길거리를 걸으며 “내가 좀 변하긴 한 걸까?”라는 자기긍정을 늘어놓는 것은 계속된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어딘가로 떠돌고 싶다는 마음은 일상의 숨 막힘의 이면이다. 회사 내 친한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방에서도 금요일이 되면 매주 같은 내용의 카톡을 올리는 형님이 있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 안 하면 알지? 퇴직금은 1/N로 나눠 가져라.”

다를 그렇게 피하고 싶은 것이다. 도무지 엎어버리지 못하는 일상의 버거움과 개인이 가진 나약함을 잠깐의 시답잖은 운에 기대 게워내려 하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클레어에게 유디트와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p.129)


 거짓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 두려움의 무게를 도무지 해결하지 못한 채 던지는 농이다. 회사 형님이 시답잖은 로또 운에 주말을 맡기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도 시답잖은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클레어와의 시간을 놓치기 싫은 것이다. 클레어라는 잠깐의 도피처 안에서 괜히 강한 척, 괜찮은 척 하고 싶은 거다. 가소롭기 짝이 없어 쓴웃음을 짓다가 클레어 앞에 선 그에게서 내 모습을 또 한 번 발견하게 된다. 내가 발가벗겨진 것은 아닌 가 흠칫 놀랐다. 등과 가슴, 팔다리에 요란한 그림을 그린 채 어깨를 떡 벌리고 사우나에 들어서는 아저씨들을 피해 다니기 위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쪼그라든 내 모습 같았다.

  일하기 싫으면 언제든 사표 가져오라는 사장의 추궁은 회의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그 메뉴는 늘 넘칠 정도로 충분해 소화가 되지 않는다.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몇몇이 모여 연기 굴뚝을 만들어 낸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당장 사표를 내던질 것처럼 하지만 아무도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장 이번 달 빠져나갈 카드 값에 대출금에 생활비에……. 호기는 담배연기와 함께 금세 흩어진다.



 “앞으로 내딛는 발은 날아갈 듯 가벼운 데 반해 뒤처지는 발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묘한 기분으로 나는 호텔의 짐꾼을 따라갔다.” (p.60)


 내딛을 때는 신난다. 뒤처지는 발을 끌어당기는 것이 숙제다. 누군가, 어떤 동력이 뒤에서 밀어준다면 발걸음을 한결 가볍고 발자국은 깊게 패이지 않을 텐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토요일 밤 로또 추첨 시간 직전까지다.

유디트의 행방을 좇는 그의 뒤처지는 발의 걸음이 유독 무겁고, 그 걸음이 딛는 발자국이 유독 깊게 패는 이유는 나와 당신들 또한 동일하게 경험하는 일상이다. 그렇게 나와 당신들은 그냥 ‘존버’하며 순간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신통한 방법이나 요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은 길거리에서 서로 목을 조른 적이 있어.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씻었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만에 다시 만났지. 처음에는 옛날의 다정함이 되살아나더군. 하지만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p.130)


 미워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그렇게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순간을 밀어내며 하루를 버티다 불현듯 나의 클레어를 찾아 잠시 쉬게 되고, 나의 연극평론가를 만나 뻔 한 거짓말을 내뱉기도 하며, 나의 영화감독을 만나 그가 늘어놓는 휘황찬란한 인생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출발은 유디트를 찾아 나선 주인공보다 내가 더 약한 존재일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 자각은 환각을 미연에 방지한다. 문란한 자기계발서 따위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하는 비현실의 환각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애초에 어디로 가는지 조차, 누구를 찾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도망 다니거나 쫓아다니는 존재가 기꺼이 되는 것이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순간을 밀어내며 하루를 버티다보면 불현듯 클레어를 만나 잠시 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존 포드를 만나 그의 장황한 이야기 안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이 주는 쉼과 위안은 나약한 나와 당신의 뒤처진 발을 밀어주는 용기가 될 지도 모른다.


 안개 같은 일상의 반복일 테지만 어쩔 수 있나,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그렇다면 

 나와 당신, 이제 그 자욱한 안개 속으로 까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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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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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 하는 고통을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의 궁핍과 절망은 닿지 않는 이상과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달달한 사탕발림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기계발은 유혹조차 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어쩌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전파되는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후기와 사연은 뜬구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자각이 당장의 고통을 직면하는 가장 현명한 길일 수 있다.



“내가 책에 빠져 있는 건 아빠에게도 자랑이었지만 엄마에게도 그랬다. 나는 책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통해 미래로 도망가고 싶어 했다.” (p.28)


 가장 가깝다고 인식되는 가족 간에도 생각의 차이는 크고 깊을 수 있다. 어쩌면 생면부지의 어떤 대상보다 더 가혹할 수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실재하는 고통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내재적 고통은 고스란히 당사자의 몫이 된다. 주변에서는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기도 하고 위로입네 떠들어 대기도 하지만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루하루 죽음 준비하고, 하루하루 소생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집단 자폐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 갇힌 쥐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할퀴고 상처 냈다. 그게 시간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p.129)


 이 부분을 읽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겪었던 고통의 경험을 남의 글에서 확인하는 것은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나의 고통이지만 도무지 내 말이나 내 글로 표현할 수 없었던 황망함과 거북스러움을 다른 이의 글에서 확인하다니, 정말 놀랐다.

내 아버지는 10년간의 암투병 끝에 작년 1월 돌아가셨다. 10년의 암투병은 곧 10년의 간병을 의미한다. 실제 암투병을 겪는 이의 가족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10년간의 간병은 병을 겪는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오롯이 겪는 고통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쥐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할퀴고 상처 냈다.’라는 표현은 실제 그 고통을 겪은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고 표현이다.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친지와 가까운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치레와는 차원이 다른 위로였다.

말 그대로 진짜 위로였다.



 “그 아이는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나는 그 아이의 냄새에서 놓여나지 못했고, 끝나지 않은 구원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내 행동이, 내 마음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 바탕에 놓인 건 오만과 치기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도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p.9)


 작가의 산문을 읽는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부러 꾸며낸 자학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을 확인하는 것은 매번 나의 그 고통의 경험을 마주하는 끔찍함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위로가 된다. 어디까지나 나는 내 기준에서 책을 본다. 작가의 말대로 그 누가 다른 이의 고통과 결핍에 쉽게 대일밴드를 붙여댈 수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에세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내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김현진 작가와 손홍규 작가에 이어 한지혜라는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그들과 동화되고 그들의 글과 문장에서 표현되는 나의 고통에 다시 한 번 직면한다. 그것이 분명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큼 이기적이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맞다.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쉽게 위로 하려 든다. 너무 쉽게 가르치려 한다. 가만히 돌이켜 돌아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얼마 전 입사한 회사의 후배는 나보다 열네 살이나 어리다.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크고 그가 가진 젊음의 기회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선배입네 하며 떠들어 댔다. 요즘 20대는 나의 20대 때와는 확연히 달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군에 입대하는 순간부터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진로를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들으며 놀라지만 그때뿐이다.

‘에헴, 그건 말이지……. 그럴 때는 말이지……. 그런 경우는 말이지…….’하며 꼰대 질을 늘어놓았던 것을 생각하면 쥐구멍에 숨고 싶다.


 ‘맞아, 나는 너를 몰라.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과거형으로 앞의 문장을 갈음하는 것은 부정의 의미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 ‘00야, 내가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너한테 되지도 않는 꼰대 질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야, 내일부터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고 하면 ‘이거 뭐야, 미친놈인가?’하겠지만,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당장 통화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참자, 참고 혼자서 부끄러워하자. 반복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이 최선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몇 번의 성추행을 더 경험했다. 자신을 아빠처럼 오빠처럼 대하라면서, 아빠이고 오빠라면 근친상간의 범주에 들어간 짓을 다정과 격려로 포장하는 남자들의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여자들은 성추행, 성희롱을 일상처럼 경험한다.” (p.163)


 여혐, 남혐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퇴보할 줄 몰랐다. 따지고 들어야 할 이슈가 아님에도 자극적인 미디어의 장난질에 넘어가는 성(性)분리에 의한 갈등은 불필요한 힘의 낭비다. 성(性)의 구분을 넘어 함께 사회를 지탱하고 어깨를 걸어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답답하다.

결혼을 하고 가지게 된 친구들 가정과의 모임에서 꽤나 놀란 사실이 있다. 친구들의 아내, 후배의 아내들이 털어 놓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잡아 탄 택시 안에서 겪은 성희롱,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겪은 성차별,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직면해야 했던 일상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노출. 나는 단지 그들과 다른 성(性)이라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봇물 터지듯 얘기하는 여성들을 보며 정말 놀랐다. 뉴스와 드라마, 영화의 극적 상황보다 더 리얼하고 소름끼치는 것들이었다. 하얀 책 위에 까맣게 인쇄된 작가의 단어와 문장에서 재차 확인 하는 일은 버겁다.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면, 힘의 낭비에 불과한 젠더 갈등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당연히 여성이 아니기에 잘 모를 수밖에 없고, 나는 당연히 남성이 아니기에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거창한 논리와 치밀한 설명은 불필요하다. 100분 토론을 보지 말고 이 책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



“이제 이 글이 어디까지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에 닿았으면 좋겠다.” (p.283)

“생존이란, 삶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속성을 가진 시간을 가리키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 (p.283)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작가의 겸손함은 그의 글의 힘을 배가 한다. 조심스럽게 기대한 글의 거리가 적어도 내게는 닿았음을 작가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바쁘시지 않다면 부족한 리뷰지만 이 리뷰를 꼭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꼭 내 마지막 문장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그렇게 끝내 버티는 만큼 나도 그 어딘가에서 순간을 버티고 일상을 밀어내며 살아갈 거라고,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닿고야 만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또 어딘가로 위로와 고백이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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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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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전두환이 한 말이다. 광주시민들을 향해서. 말문이 막혔다. 사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고 아픈 것처럼 연기하면서 입을 다물고 들어갔으면 싶었다. 전두환은 짜증을 내며 말 했다.

이거 왜 이래.


“그런데 각하,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원래 대중에게 알려진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p.51)


광주 시민들을 향한 헬기사격이 있었나 없었나에 유무는 이미 밝혀진 바다. 다만, 사격 지시를 내린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전두환의 “이거 왜 이래”발언 직후 폭로가 하나 있었다. 당시 5월21일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하고 떠난 직후 헬기 사격이 시작되었다고.

독재자 리아민은 자신과 자신의 통치 기반을 위해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작가 박상호는 자서전 집필을 위해 리리궁으로 불려 들어와 리아민과 독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독재자 리아민은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참 신나게 말을 쏟아내고 있는 도중, 작가 박상호는 독재자 리아민에게 되묻는다.

각하, 제가 알고 있는 거하고는 다른데요.

독재자에게 되묻다니. 민주화가 되기는 된 모양이다. 독재의 통치 기술 중 하나인 대중 선동과 선전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독재자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과 언론보다 더 다양하고 다면적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취합해 퍼뜨리는 대중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는 독재자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전두환도 그렇다. 이거 왜 이래 라니?


“내가 선생을 리리궁으로 부른 이유는 국민들이 좀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p.58)


전땅크. 전두환을 일컫는 말 중 하나다. 단어의 어감만으로는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전두환을 추억하는 단어다. 일부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는 전땅크처럼. 전땅크때 같이. 라며 좌빨, 종북, 사회 불손 세력들을 밀어붙이라고 부추긴다. 전땅크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것들이 말이다. 전땅크처럼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이 리리궁의 리아민도 자신을 미화하고 싶어 했다.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오랜 기간의 통치는 염증을 일으키게 마련인데, 그 염증을 걷어내고 더 친숙하고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서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통치에서 손을 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전두환 시절 언론은 죽었었다. 독재자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기사로 넘쳐 났다. 오죽했으면 “땡전뉴스”라고 했겠나. 9시 땡하고 오프닝 되는 뉴스에 매일 앵커의 첫 멘트가 “전두환 대통령은”이라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친숙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는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지금 어떤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일부 세력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미화되어 있는 대통령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이미지다. 어떤 면에서 전두환은 독재시절 언론을 잘 통제하고 자신의 이미지는 잘 세탁한 전직 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그를 추종하고 따르는 이와 세력이 있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그가 저지른 짓에 비해 너무 호화로운 현재를 살고 있다.


“수석비서관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만. 네놈이 겉멋만 잔뜩 든 허풍쟁이 작가라고 하더군. 실력도 뭣도 쥐뿔도 없으면서, 운 좋게 첫 소설 하나 성공한 것 가지고 평생을 징글징글하게 우려먹을 작가라고 하더라고.” (p.264)


이미지는 만들어 낸다. 리아민의 자서전 집필가로 박상호를 고른 것도 수석비서관이다. 자신도 문학 소년이었음을 은근히 내비치며 내면적인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박상호를 건져 올린 것도 수석비서관이다.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친근하게 박상호를 쥐락펴락 한 것은 리아민이 아니라 수석비서관이다.

수석비서관 같은 사람이 이미지는 만들어 낸다. 리아민과 전땅크는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자신의 주군에게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고 그렇게 산다. 그리고 그 주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주군의 의사에 반하는 것들은 가차 없이 잘라낸다. 자서전 집필 작가이든, 국민이든, 영부인이든.

결국 박상호는 리아민의 자서전을 집필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작가가 필요하지 않는 자서전이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우려먹을 수 있는 작가로 초이스 된 것이었다.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도 그들이 나를 아주 극진하게 대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위, 리아민 효과였다.” (p.215)


리아민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작가 박상호. 비록 문단에서는 권력에 빌붙은 박쥐라고 욕먹지만 리아민에게 잘 보이고 싶은 세력들에게는 땡큐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영화 관계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비록, 디아민 효과가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박상호가 리아민과 수석비서관이 원하는 자서전을 써 들고 왔다면 어떤 결론이 되었을까? 그는 계속해서 리아민 효과를 누렸을 것이다. 작가·지식인으로서의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세상에서 그가 리리궁의 마지막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단지 그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이 글은, 누가 봐도 전기라고는 할 수 없어. 이거 그냥 리아민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에 불과하잖아. 그것도 결론이 아직 모호한.” (p.249)


단지, 리리궁이 원하는 글을 써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와 장편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박상호는 리리궁이 원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좀 더 리아민에게 살살 거리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의 거창한 허세를 찬양했다면 독재자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독재자의 오른팔인 수석비서관에게 살갑게 다가가서 각하의 의중을 묻고 충성했다면 단 번에 오케이 받았을 것이다. 박상호가 뜬금없이 영부인에게 관심을 돌리고 정율리에게 휘둘리지 않았다면 그는 독재자의 대단한 자서전을 집필했을 것이다.

리아민과 박상호의 생각과 결론은 다른 것이었다. 수석비서관과 박상호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전두환과 국민의 그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당시 5월21일 광주에 갔었다는 어떠한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국에 보고하는 정보보고에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엄연한 사실을 가지고 또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 뻔하다. 신뢰할 수 없는 출처의 기록이다. 납득할만한 증거가 아니다. 등등.

그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아주 많이.


장세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리아민에게 수석비서관이 있듯이 전두환에게는 장세동이 있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 5공 청문회가 있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의원은 이 청문회에서 빛을 발했다. 또 한 명 있다. 바로 장세동. 끝까지 자신의 주군 전두환을 두둔하고 자신에게서 모든 선을 그어버리며 청문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세간에서는 의리의 사나이라고도 했고 전두환의 마지막 호위무사라고도 했다. 언론에서 그렇게 쓰면 또 그렇게 생각해 버린다. 그 생각은 믿음이 되어 각인된다. 국민된 자의 한사람으로서 처참한 심경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그들만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합리화하고 믿어버린 채 수십 년을 살아온 것이다. 한 올 만큼이라도 믿음의 실타래가 풀어지면 그들의 모든 과거가 부정되니까 그것만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일 테다.


29만원으로 호화 골프를 치고 29만원이 전부인 아버지를 둔 아들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물러난 독재자를 여전히 비호하고 두둔하는 세력이 있고 미화하며 그 시절을 그리는 못난 후세들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모두들 너무 많이 다르다.


“박상호씨가 작가라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더한 윤리적 인간이어야 할 의무는 없는 겁니다. 작품만 좋으면, 사실상 비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p.213)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그래, 작가는 비윤리적이어도 된다. 하지만 국가를 통치하는 자와 통치하는 세력 중심에서 일하는 자들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통치기반을 빼앗고 휘두르는 자들은 반드시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들의 통치기반을 미화하고 각색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면죄부 따위는 없어야 한다.

박상호가 쓰지 않은 독재자 리아민의 자서전은 불티나게 팔린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리리궁과 리아민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부분 말로가 비참한 독재자들처럼 리아민의 말로도 처참했으면 좋겠다. 개인적 희망이다.


이거 왜 이래. 라고 광주 시민들과 기자들에게 짜증낼 수 있는 독재자의 말로가 존재하는 이 나라의 현실은 차라리 비현실에 가깝다. 촛불혁명으로 수준이하의 대통령과 세력을 몰아내도 수십 년 전 독재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 소설의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정이 비윤리적이라면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심판받아야 한다. 결과만 쫓다가는 사고가 난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비록 29만원밖에 없지만 “이거 왜 이래” 짜증낼 수 있는 현실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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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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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원한 외출이, 14개월째다.


 

이 책을 구입하고 읽은 건 순전히 “아버지와 딸, 데면데면하지만 애틋한 관계”, “마스다 미리가 보인 솔직함에 우리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라는 출판사 리뷰와 책소개 글 때문이다. 나도 14개월째 영원한 외출 중이신 아버지, 아버지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회상하며 돌이켜 보고 싶다.


 

“아버지와 딸, 데면데면하지만 애틋한 관계”라고 하는데, 사실 아버지와 아들만큼 데면데면한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데면데면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주위에도 보면 40줄이 넘어서도 아직 아버지를 무척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틀어져 버린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 지 모르는 아들들도 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머니를 통해 말을 전달하는 아들들도 있다.


 

나는 아버지와 가깝지 않았다. 어릴 때는 많이 무서워했다. 한껏 기대를 받는 큰 아들이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을 무렵 나는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을 했다. 아버지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을 하셨다. 두 분, 서로를 위해 갈라서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절차를 밟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였다.

 


“오전에 오는 전화로 좋은 소식은 없다. 스마트폰에 뜬 이름은 엄마였다. 전화를 받기 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지의 용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앞으로 2,3일 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p.71)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하셨다.

“아버지가 암이래, 큰 병원에 당장 가보래.”

4기에 들어 선 직장암 판정. 2009년 봄이었다.

휴가를 내고 대구에서 부모님이 계신 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반쯤 갔을까. 시야가 흐려지고 콧날이 시큰거렸다. 팔다리도 후들거려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까운 휴게소로 급히 차를 세웠다. 터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디쯤 왔냐는 어머니의 전화가 없었다면 한참을 그렇게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잘못 같았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독한 말을 쏟아내고 분노로 가득 차서 아버지를 몰아세웠었던 내 모습과 말과 행동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아버지는 4번의 수술, 5번의 항암치료, 2번의 방사선 치료를 하며 투병하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10년 동안.


 

“아버지는 이 방에서 임종을 맞고 싶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 눈에 보였다. 들어줄 수 있는 것과 들어줄 수 없는 것. 앞으로 우리 가족은 하나하나 답을 내면서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 목에 작은 사탕이 걸린 것처럼 멍하고 답답했다.” (p.55)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는 골반 뼈와 허벅지 뼈의 일부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어 하체를 거의 쓰지 못하고 누워 계셨다. 아버지의 간병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80kg에 육박하는 아버지를 누이고 일으키고 씻기고 밥 먹이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기는 일을 50kg의 어머니가 떠안으셨다. 어머니의 몸에도 서서히 무리가 오기 시작했고, 어깨와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시며 간병을 하셨다.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한 번, 포항에 있는 병원에 내려 갈 때에야 어머니의 간병을 하루 덜어드릴 수 있었다.

10년의 투병 생활을 두고 병원에서는 열성적인 어머니의 간병이 아니었으면 벌써 돌아가셨을 거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서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 어머니를 나무랐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요양병원을 수소문 했다. 아버지와 같은 환자는 받아주지 않았다. 챙겨먹는 약도 많고 하반신을 아예 쓰지 못하고 이것저것 달고 있는 장치들이 많아 안 되겠다고 했다. 포항, 경주, 영덕에 있는 요양병원까지 알아봤지만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포항에 내려가는 날 저녁은 아버지와 나, 둘 만 병실에 있게 되었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다인실이었지만 개별 침대에 커튼을 다 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아버지와 둘만 있게 되는 것이다. 매 시간 소변을 체크하고 씻기고 심부름을 하고 휠체어에 태워 운동을 하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쓰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은 별 거 아니었다. 아버지와는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목구멍에 걸려 도무지 빠지지 않는 생선 가시처럼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쁜 생각도 들었다. 

호전되지 않는 아버지와 온 몸에 성한 곳이 없는 어머니를 보며 야금야금 들어 선 생각이었다.

 

‘차라리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아들이라는 놈의 생각이었다. 첫 아이라고 그렇게 좋아하셨다는데, 퇴근하면 품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셨다는데,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걸 늘 안타까워하고 아파하셨다는데, 손녀를 그렇게 예뻐하고 지 애비 닮아서 똘똘하다고 좋아하셨는데……. 나는 차라리 빨리 돌아가시는데 아버지를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도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생각보다 내 생각이 우선했던 것 같다. 1년 6개월 동안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내려갔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아침에 내려가 일요일 늦은 오후에 올라오는 일정을 반복했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싶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나쁜 생각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빨리 내려와라. 오늘 밤을 못 넘길 거 같대.”

 

2018년 1월5일 오후에 받은 어머니의 전화.

휴가를 내고 바로 내려갔다. 몇 시간 뒤 강원도에 살고 있는 동생이 내려왔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 입원하게 되는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더 흘릴 것도 없는 눈물이 어머니의 마른 뺨에 흘려 내렸다.

자정이 막 지날 무렵, 얼마 버티지 못하신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졌다.

어머니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셨다. 동생이 먼저 했다. 나는 콱 박혀버린 가시를 여전히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치를 채신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 손을 맞잡고 울며 얘기하셨다. 


“여보, 영규가 할 말이 있대. 내말 들려? 여보, 우리 큰 아들이 꼭 할이 있대. 내말 들리지? 엉?”

 

“아버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


터지는 울음에 섞여 절규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 기대 못 미쳐서 죄송해요. 그렇게 못되게 굴어서 죄송해요. 이제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셔서 휠체어 타지 마시고 껑출껑충 뛰어 다니세요. 그렇게 좋아하시던 탁구도 실컷 치세요.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새벽 1시20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영원한 외출이 시작된 거다.


마지막까지 아버지 몸에 연결되어 있던 각종 장치들을 떼어냈다. 하얀색 시트를 가져와 아버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으려던 찰나. 잠깐만요. 소리쳤다.

시트를 걷어내고 아버지 얼굴에 내 얼굴을 붐볐다.


“아버지, 애기 잘 키울게요. 어머니도 잘 모실게요. 정말 죄송해요……. 사랑해요. 아버지. 진짜 존경해요. 그 오랜 시간 고생하셨으니 편히 가세요. 죄송해요. 정말…….”

동생이 내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세울 때까지 무슨 말인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쏟아냈다.

그게 마지막이다.


 

“아버지가 죽고 반년이 지나니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p.131)


 

맞다.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작년 가을,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 어머니를 모셨다. 반갑게 할머니를 맞이한 딸아이가 할머니 품에서 얘기했다.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죠?”

할머니는 한참을 우셨다. 나도, 아내도 울었다. 돌아가시고 나니, 시간이 빨리 간다. 빨리 가는 시간만큼 아버지를 떠올리는 횟수도 줄어간다.


 

“아빠, 여기서 곧잘 묘목을 사 왔는데.”

“아빠, 여기 풀빵 좋아했었지.”

“여기 고기만두도 좋아했었어.” (p.146)


 

아직도 어머니는 아버지 얘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리신다. 그래도 본가에 내려가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작가가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듯 남아있는 우리 가족도 그렇다.

 

 


얼마 전, 외장하드를 정리하다 눈을 뗄 수 없었던 사진이다.

3년 전 봄이었다. 일산에 있는 암센터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실 때다. 그때는 병원 앞에 환자방(원룸처럼 되어있는 집)을 빌려 치료가 끝날 때까지 계셨었다. 우리는 대구에서 일산으로 갔었다. 저때만 해도 어느 정도 다리를 쓰시던 때라 병원 안에 핀 봄꽃 구경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때도 아마 나는 투덜댔을 거다. 왔다갔다 힘드신데 뭘 꽃구경이냐고. 아버지도 시큰둥했지만 쟤가 직접 하겠다며 작은 손으로 휠체어를 붙드는 손녀를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예쁘게 핀 꽃보다 우리 손녀가 더 예쁘다며 굳이 아픈 다리 위에 손녀를 올려놓으셨다. 모두가 기분이 좋아졌다. 꽃보다 더 활짝.

 

아직도 나는 목에 걸려 있던 가시로 인해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돌아가시던 새벽,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지만 아버지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걸 알고 있지만 또 다시 후회하게 된다.

내게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생채기 일 거다.


 

아버지, 그곳에서는 평안하시죠?

죄송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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