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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만약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통제된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여성에게만 적용된 법이라면.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에서는 여성들에게만 침묵하도록 통제된 수단을 사용합니다. 여성들에게만 ‘카운터’라는 애플워치 같은 팔찌를 채우고, 하루에 100단어가 넘으면 전기 충격이 오는 식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의사 패트릭의 아내인 주인공 ‘진’은 이러한 세상에 대해서 엄청난 반항심을 보입니다. 때로는 통쾌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소설의 장소는 미국, 이른바 ‘순수운동’을 주도하는 정치가가 권력을 잡고, 가부장적 마인드를 지닌 목사가 함께 결탁합니다. 순수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제한시킵니다. 하루에 100단어만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책도 읽을 수 없고, 메모도 할 수 없으며, 경제활동 조차 할 수 없습니다. 투표도 할 수 없고, 학교도 다닐 수 없으며,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자로 태어났으면 집에서 조용히 집안일을 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진 맥클렐런 박사는 언어학과 신경학의 권위자로 대통령의 형의 실어증을 살리는 목적으로 정부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습니다. 이 때, 하나 뿐인 딸 소니아에게(다른 세 명은 남자 아이) 손목에 찬 카운터를 제거해달라는 조건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초반부터 소설은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진’과 남편 패트릭을 비롯한 가족 분위기(첫째 아들 스티븐을 주목해서 보세요)를 느낄 수 있고, 중반 부분에서 제한된 공간에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과정 또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멋진 신세계>, <1984>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통제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박탈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끔찍한 기분을 분명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도 감시 카메라가 그들을 지켜보고, 손목에 찬 ‘카운터’가 그들의 언어를 통제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존재하고, 통제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등장을 하지요. 주인공과 함께 룸메이트였던 ‘재키’와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린’과 ‘로렌조’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주인공 ‘진’이 보여주는 대담함과 파격은 결말로 갈수록 흥미를 더해갑니다.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결말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었달까요. 소설 속 내용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 소니아가 도착하면 들려 줄 세 마디 ‘엄마는 너를 사랑해’라는 표현을 할 때 ‘진동 진동 진동’이라며 3번의 카운팅이 될 때, 언어를 고르고 골라야 하는 신중함과 함께 아무말도 하지 않게 되는 ‘소니아’같은 상황도 생긴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드는 처참함 같은 상황도 양가적 감정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내뱉는 언어에 대한 힘과 중요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한, 통제를 어긴 줄리아가 ‘당신이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다면, 행복이 곧 당신 것이니라’와 같은 내용이 담긴 ‘순수 선언문’을 읊는 장면은 어찌나 치욕스럽던지요,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 속 통제된 사회는 이 시대에도 은연중에 존재합니다.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것이 정치와 결탁하기도 하고, 종교와 결탁하기도 하면서 국민들을 흔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미국이라는 사회도, 평등을 부르짖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별이 극명하게 느껴지는 곳이지요. 남성과 여성의 차별, 흑인과 백인의 차별,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 등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저항’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현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담겨 있는 듯 합니다. 분명, 시대가 달라져야 함에도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한 답답함을 소설로 통쾌하게 풀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의 작가인 크리스티나 달처 또한 언어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음성학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책 속 주인공 ‘진’의 모습 속에 자신도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처럼 흡입력있는 소설을 만나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