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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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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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며 한 글자씩 그리움으로 채우는 기다림의 순간들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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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의 도입부 작가의 말 '천천히 와, 우리의 이야기로'에서 감동은 시작되었다. 책의 편집자인 소연 선배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5분이 남은 시간 동안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두어 사진을 찍는 유희경 시인. 그때의 사진-이미지와 텍스트-이야기를 남겨 두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계가 카메라에 찍혀 잠시 머무르게 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텍스트는 사진과는 달리 '순간을 영원의 방향으로 이끈다'고 표현한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순간을 영원의 방향으로 이끈다니. 이야기만이 텍스트는 흐름 속에서 편입된다는 것이라고.


<천천히 와>라는 제목도 나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필사를 하기로 펜을 들고 있는 당신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책 속에 담겨 있는 유희경 시인의 어머니 손글씨이다. 글씨 사진을 보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성경 필사 노트의 일부를 보내오셨다고. 유희경 시인 어머니의 흔적들이 손글씨로 남아 책 곳곳에 남아 있다. 시인 유희경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온전히 나의 것을 독자들에게 공개하기로 한다.



나는 기다린다.

약속이 되어 있다는 듯.

그런 기분이 들면 꼼짝할 수 없다.

시계탑 아래서 초조한 사람처럼.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는 어긋나버릴까 걱정하며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처럼

마음의 각도가 아슬해지고 애틋해지면,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가보는 것이 상책이다.

-<천천히 와> 32쪽, 유희경 -



유희경 시인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만이 꽂혀 있는 시집 서점. 누군가 찾아와서 시집을 구매하는 걸 기다린다. 고요함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때의 단상들이 '한밤 정류장의 의자처럼 기다림에서 놓여나 쉬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서점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꼭꼭 눌러 독자들을 기다린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점은 휴식의 공간이 된다. 시는 빼곡한 활자들 틈에서 여기 잠깐 쉬었다 가라고 손짓하는 텍스트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름답고 또 가치있는 일이다.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보는 엄마처럼 불안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멈춰선다. 혹시나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닌지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본다. 이내 엄마의 손가락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거구나. 아기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안도시킨다. 사랑한다는 말을 모양새로 표현하면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기는 엄마의 온 우주가 된다. 아기 코 아래 엄마의 손가락은 사랑이다.


'이제는 일요일의 저녁. 오후 5시 30분. 나는 기다립니다' 속에는 일요일에 대한 기분 좋은 단상들이 느껴진다. 일요일의 서점에서 구매한 일요일의 시집.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오후 6시가 되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유희경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월요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일요일만 생각하는 하루를. 포장해온 햄버거를 먹고, 여지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피클 한 조각이지만 여기저기 행복함이 묻어져 나온다. 일요일이라는 그 자체가 주는 행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 <밤에는 착해지는 사람들>이 늦은 밤 필사를 권한다면, 유희경 시인의 필사 에세이 <천천히 와>는 매일 오후 5시 30분에 필사를 권한다. 그 날이 일요일 오후 5시 30분이면 더더욱 좋고. 느릿느릿 필사를 하다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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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오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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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언젠가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심통을 부리다가도 12월이 되면 산타 할아버지께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는 마법 말이다.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산타 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신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언제쯤 착해질까.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에서 오은 시인은 말한다. 밤은 신기한 시간이라고. 시계가 새벽 2시를 넘어가면서 상념은 계속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시간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12월과 밤은 어딘가 닮아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시간이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고맙다고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중간에서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만나야 한다. 눈을 마주쳐야 한다.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아서 쓸 때면 어김없이 겸허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착해진다. 밤에만 착해진다. 
-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



오은 시인의 이야기는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아홉살의 일기 쓰기가 나온다. 1년 일기를 쓰자 일기 쓰기가 싫어졌다. 엇비슷한 하루를 다르게 쓰는것이 질려버린다. 선생님께서는 '상상한 것을 써도 좋다'고 적어 주신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날부터였다고 고백한다. 서울에 대한 일기를 상상하며 재미있게 여행했다는 것이다. 상상을 한다는 것은 마치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며 안부를 묻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작업은 느즈막한 밤에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밤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제안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어요. 
오늘에서야 할 수 있게 된 
이야기가 시작될 거예요.
-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



언어가 이리도 아름다웠나. 서성이는 것은 고민하고 있다는 것, 서성이는 사람은 늘 '있음'과 '있었음' 사이에 있다는 말이 마음 속에 맴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 서성이는 밤도 그러하다.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갈팡질팡함과는 다른 무언가. 오늘도 '말줄임표가 마침내 마침표를 만날 때까지 서성이는 사람은 늘 도중'에 있는 것이다. 에세이임에도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밑줄 그으며 따라 적고 싶어진다. 오은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조용히 읽으며 문장들을 필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밤에만착해지는사람들 #오은 #필사에세이 #필사책추천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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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의 사랑 달달북다 12
이미상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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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넷플릭스 <84제곱센티미터>에는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윗층을 의심하며 아랫층은 다시 윗층을, 윗층은 그 윗층을 의심하며 이웃간의 불신을 담아냈다. 층간소음으로 몇날 몇일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극도의 예민함이 남자를 미치게 만든다. 수면욕은 매슬로우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다. 충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다음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 <잠보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달달북다의 소설을 보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HSP(High sensetive person), 매우 예민한 스물 다섯살의 남자가 있다. 사립고 민영 주차장 관리인이었던 아버지의 예민함을 닮아 신경이 늘 곤두서있다. 아버지는 소리, 빛, 냄새, 에너지에 민감했다. 집에서는 꼬마 소등 감시원 활동으로 작은 빛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냉장고 전자 패널의 온도 표시, 전자레인지 시계, 인터넷 공유기 점멸등까지 종이로 붙여 빛이 새어나오지 않게 막았다. 아버지가 죽자 누나들을 비롯한 가족들은 반동하듯 튀어올라 스위치를 강으로 끝까지 돌려버리는 행동을 한다. 아버지처럼 '나'는 예민함이 극대화되고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구옥을 얻어 따로 살게 되며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어한다.


여기까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HSP인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밤에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한 암막 커튼이 떠올랐다. 나 또한 잠을 좋아하는 잠보이기에 '나'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기대가 되었다. '나'가 구옥을 따로 얻어 산 곳은 아랫층이다. 윗층에는 어떤 누나와 유기 불안을 앓는 개가 살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윗층 누나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누나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윗층집 개를 잠시 돌봐주는데.



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등장할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36쪽부터 누나와 연인이 되고 나서부터, 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누나네 집에 온수물이 나오지 않아 한 욕조에서 목욕도 한다. <잠보의 사랑> 단편 소설의 전개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스무살 차이가 나는 누나와 잠보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행복 대신 잠, 삶 대신 잠, 죽음 대신 잠. 모든 순간을 회피하며 살던 잠보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한번도 키워본 적 없는 개를 키우며 누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사랑도 잠시, 54쪽에서는 누나와 두 해 사귀고 헤어진다.


누나가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 만들어 낸 놀라운 관점의 변화가, 시간의 반격을 맞아 본래의 한심한 내 눈으로, 범속한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줄 모르는 둔감하고 빤한 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는 잠을 버리고 삶에 뛰어들려 노력했던 일들이 지겹고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서 다시 잠으로 회피하기 시작했다.

- 잠보의 사랑, 55쪽 중에서 -





누나는 그대로다. 하지만 누나가 마흔 살로 보였다가 서른 살로 보였다가 스물 다섯살로 보였던 것은 사랑의 힘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니 누나가 아니라 '나이든 여자'가 보였다. 이별에 가까워지면서 실망을 거듭하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나'는 누나가 지겨워졌고 누나는 와이프가 아니라 '장모뻘'이라며 이야기 했던 기억들이 상처가 되어 떠오른다. 마지막에 나오는 최근 근황은 행복으로 마무리 된다. 누구도 돌보지 않으려했던 잠보의 사랑은 어리숙한 남성이 지혜로운 연상 연인의 힘으로 회복하고 성장하는 통과의례 서사의 함의 그 뿐이었다고 전한다. 손바닥만한 60쪽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강력하다. 잠을 소재로 해서 사랑 이야기로 엮어내는 서사의 힘이 좋다. 달달북다 시리즈를 격하게 응원한다.

#잠보의사랑 #북다 #달달북다시리즈 #이미장

#단편소설 #잠 #사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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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일러스트 에디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정윤희 옮김 / 오렌지연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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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정여울 작가가 사랑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직접 미국 콩코드 보스턴에 위치한 월든 호숫가와 오두막을 보고 쓴 책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에서는 월든에서 사온 엽서를 서랍에 두고는 이렇게 표현했다. 남몰래 서랍 속에 우주를 숨겨놓은 기분이라고. 오렌지연필 출판사에서 출간된 국내 최초 영구 보존판 수록 <월든(일러스트에디션)>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책 중간 중간에 월든과 관련된 호수, 새, 나무, 오두막 등 아름다운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마치 월든 호숫가에서 산책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생생한 일러스트 에디션과 함께 월든 호숫가를 걷고, 오두막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 기분으로 <월든>을 마주했다.



1854년에 출간된 책. 지금은 2025년이다. 약 180년 전에 28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지은 책이다.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산다. 멕시코 전쟁에 사용되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겠다는 불복종의 표시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무언의 제스처이기도 하다. 2년 2개월 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적게 노동하고, 가장 적게 자연을 파괴하며, 가장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삶을 살 것인가(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표지 수록 글 중)에 대한 고민을 한다.



철학을 가르친다는 자체만도 칭송받을 일이지만,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난해한 사상을 만들어 학파를 세운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지혜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즉 관용과 신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 <월든>, 29쪽 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경제에 대한 이야기로 <월든>을 시작한다. 물질 만능주의, 소비 사회에서 소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는 굉장하다. 옷이 낡아서 해지면 그저 묵묵히 뒤집어 입으면 된다고 말한다. 어떤 옷을 살까 다양한 옷들을 골라 입어보며 거울을 봤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옷과 집도 간소하게 입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발을 털 수 있는 깔개를 친구가 선물해주려고 했는데 거절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에게는 발 깔개조차 필요하지 않다. 세 개의 의자, 침대,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하나면 충분하다. 자발적 가난, 명랑한 은둔자였던 소로의 모습을 보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소박한 식단으로도 건강과 체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옥수수밭에서 쇠비름을 캐서 소금을 뿌려 살짝 데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오랫동안 어디에도 구속받지 말고

살아가라 당부하고 싶다

-<월든>, 136쪽,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서 소로는 말한다. 최대한 오랫동안 어디에도 구속받지 말고 살아가라고.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도 구속 받지 않기 위한 행보였다. 하버드 기숙사에서 기숙사비를 내는 것보다는 월든 호숫가에서 사는 것이 훨씬 좋다며 주변에 있는 새, 나무, 식물, 달, 별에 시선을 옮긴다. <월든> 곳곳에는 고전이 등장하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그것이다. 간소한 삶과 동시에 고전을 읽으며 영혼의 양식을 채웠던 소로의 모습을 그려본다. 매일 찾아오는 아침은 자연처럼 소박하고 순결하게 삶을 살아가라고 나를 초대했다(142쪽)는 표현이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현대인들이 꿈꾸는 것 아닌가. 월든 호숫가로 간 이유도 그러하다. 빈곤하게 살기 위한 것도 호화스럽게 살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살기 위함이었다고. 농장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유주의 아내가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꿈은 무산되고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월든을 다녀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방문객>이 인상적이었다. 소로와 소로의 집을 보기 위해 물 한 잔만 달라고 청할 때가 많았다고. 그럴 때 소로의 대답이 기발하다. "그러면 나는 호수를 가리키며 저기서 물을 떠 마신다고 대답하고, 필요하면 물을 떠 마실 수 있도록 통을 빌려주겠노라 말한다.(247쪽)"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유명세(!) 덕분에 그리 되었다고 서술한다. 어느 날, 월든에 가난한 남자가 찾아와 소로처럼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그와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다. 또 한 번은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방명록을 준비하는게 어떻겠냐는 방문객의 제안도 단박에 거절하는 칼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딸기를 따러 오는 아이들과 숲을 찾은 정직한 순례자들에게 만큼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소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방문객들과의 시시껄렁한 얘기에 지쳐갈 때 소로는 호숫가를 산책한다. 호수의 색깔이 그날의 하늘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미묘한 변화도 알아차린다. 월든 호수는 콩코드 지역의 왕관에 박힌 가장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296p)는 극찬을 남긴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산책이 아닐까 싶다. 산책하는 그곳이 새들이 지저귀고 호수 위의 잔물결이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빌딩 숲 산책이어도 좋으니 두 발을 땅에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1845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2옆에서 단순하게 살아, 자연과 함께 사색을 해 봐,라며 건네는 소로의 악수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월든>을 읽은 보통의 여름날을 기억하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한 당신에게 <월든(일러스트 에디션)>의 일독을 권한다. 휴가지에서 읽어도 좋고, 혼자 만의 시간에 읽어도 좋다.



#월든 #월든(일러스트에디션) #헨리데이비드소로

#번역정윤희 #정윤희옮김 #오렌지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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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당신 탓이 아닙니다 - 100가지 의학 연구로 밝혀낸 아토피 치료의 오해와 진실
오츠카 아츠시 지음, 박수현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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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목을 벅벅 긁고 있는 책표지. 나 또한 매일 보는 장면이다. 아토피라는 세 글자와 함께 손톱으로 간지러운 곳들을 벅벅 긁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너진다. 얼마나 가려울까. 뭘 잘못해서 그런 걸까. 임신 중에 먹었던 음식들이 떠오르고, 혹시나 아이에게 해를 끼친 일들이 있었나 생각한다. 그런데 책 제목이 툭하고 나에게 위로를 거넨다. <아토피, 당신 탓이 아닙니다>라고. 100가지 의학 연구로 밝혀낸 아토피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서 오츠카 아츠시 선생님은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동안 아토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했던 시간들이었구나.



스테로이드에 대한 통념을 깨고

희망을 주는 책

- 현명기(피부과 전문의)

아토피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오해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존에 갖고 있었던 통념들이 등장할 때 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스트레스와 아토피에 대한 연관성.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가려워지는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아직 유의미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임신 중 스트레스는 아토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일, 우울, 고통, 업무상의 긴장을 갖지 않도록 임산부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즐거운 것만 보고 즐거운 생각만 할 것. 비만과 아토피에 대한 연관성도 유의미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아이가 손톱을 세우고 박박 마구 긁는 모습을 부모가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은 이해한다. 무심코 "긁으면 안 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다만, 이쪽의 의견을 말하지만, '그런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본인도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긁으면 안 돼."하고 꾸짖는 것은 아이를 몰아붙일 뿐이다. 혹시 무의식적으로 긁고 있었다면 "지금 긁고 있었어."하고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된다. - - 아토피, 당신 탓이 아닙니다, 225쪽 중에서


오츠카 아츠시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아토피 치료의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스테로이드 외용제를 사용하는 치료다. 그동안 많은 연구 결과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임을 입증했다. 모든 아토피 환자는 표준 치료 = 스테로이드를 출발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테로이드 사용에 있어서는 개인이 무분별하게 바르는 것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권고에 따라 적정량을 사용해야 한다. 도포 용량(FTU=finger Tip Unit, 성인 손가락 끝 마디 길이에 해당하는 양)을 잘 지키도록 하자.

아토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토피 때문에 힘든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아토피는 당신 탓이 아니다. 지금도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분명 좋아질 것이다. 충분한 치료를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책장을 덮는다.

#아토피당신탓이아닙니다 #오츠카아츠시

#현익출판 #아토피 #아토피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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