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추구하던 일의 의미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순간

나는 그날 밤 간이침대에 누운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 위 나무 서까래들을 응시하며 자신의 세계가 재배열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데이비드를 상상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시답잖게 여겼던 어머니와 이웃들, 학우들을 설 득할 수 있는 말을 마침내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손에 꽃을 들고 해왔던 일들은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이거나 "야심 없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저명한 아가시가 정의한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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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일 많이 곱씹어본 문장. 평소 고민하던 주제와도 맞닿은.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해석이 수도 없이 주어져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처럼, 그 보편의 해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여기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생겨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삶을 상상하는 일에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한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애써 상상하는 일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쓰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 -김초엽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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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는게 신물나도록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사과를 시작했다. 이어지는 사과에도 나의 결심이 바뀌지 않자 그는 정말 모르겠다며 저런 말을 했다. 여태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용서해달라고만 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그 얼굴은 아주 말갛고 무해해 보였다.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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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데 웃겼다ㅋㅋ

나로서는 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있었다. 이를테면 요즘 한국 소설가들은 왜 대화에 큰따옴표를 쓰지 않는지, 그렇게 문법을 파괴해도 되는 것인지 물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목소리엔 힐난하는 듯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소설가가 아닙니다. 제가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라고 답하면 그래도 감독님은 예술가시니까 견해가 궁금합니다, 라고 끈질기게 물었다. 난 어색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을 더는 할 수 없어 손을 씻고 오겠다고 말한 뒤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씨발, 하고 덧붙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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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적

소년의 내면에는 거칠고 야만적인 무질서의 요소가 숨어있다. 먼저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그것은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꽃이다. 먼저 그것을 밟아 꺼버려야 한다. 자연이 만든 인간은 예측 불허의, 불투명한, 위험스러운 존재이다. 인간은 미지의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의 나무를 베고, 깨끗이 치우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하듯이 학교 또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기본 원칙에 따라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잠재된 개성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병영(兵營)에서의 주도면밀한 군기(軍紀)를 통하여 극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이 어린 소년 기벤라트는 얼마나 아름답게 성숙했는가! 길거리를 배회한다거나 장난을 치는 따위는 스스로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공연히 웃는 일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다. 정원 가꾸기와 토끼 기르기, 그리고 낚시질 따위의 취미 생활도 벌써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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