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의 기쁨과 허무

어릴 때는 그저 드나만 들다가 내 손에 돈이 한두푼 생기면서부터는 읽지도 않는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언제건 무슨 이유에서건 돈이 생기면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계산대 한켠에 마련되어 있던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곤 그 안에 책을 가득 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계산대로 가 돈을 지불할 때마다 나는 책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렸다. 물론 그 행복은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그날 산 책을 꼽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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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것들에는 녹이 슬고 거품으로 된 것들은 터질 때까지 부풀어 오를 텐데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거품의 표면에 아는 얼굴들이 비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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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괜찮게 살다가 좋은 부고가 되자,
그렇게 말하곤 웃었지요
당신이 견디면서 삼키는 것들을
내가 대신 헤아리다 버릴 수 있다면,
유독하고도 흡족할 거예요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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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 당한 세대와 끝나가는 세계

우리는 박탈 당한 세대였고, 세계는 우리에게서 박탈한 것을 영원히 돌려주지 않을 것이며, 그 단호한 거부로 결국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한계 속에서 감각만이 반짝이다 사라질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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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과 현실의 괴리

변덕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현실 세계의 연애가 참혹할 때 그것에 대한 환상을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 세상이 드물게 나쁜 사람들과 평이하게 좋은 사람들로 차 있다고 믿던 시절엔 마음껏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달콤하고 달콤해서 독할 정도인 소설을. 아라는 사랑을 믿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를. 모두가 무심히 지나친 특별함을 서로 알아봐주는 순간을. 연애소설을 사랑했고 연애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3일에 한 명씩 여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 성매매 산업의 거대하고 처참한 실태를 알아버린 다음에, 화장실에 뚫려 있던 구멍들이 뭐였는지 깨달은 다음에, 디지털 성범죄 추적 기사들을 내내 따라 읽은 다음에 아라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죽어버렸다.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시민이기만 해도 로맨스는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스스로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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