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뛰는 사람>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소한 사건이 꾸준히 쌓여 마침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연의 운영 방식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들이 땅에 떨어지고, 꾸준히 시간이 흘러 거대한 숲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작은 습관을 꾸준히 쌓으면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이 내공으로 운을 만들 수도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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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간과하거나 알아도 외면하고 싶어하는 팩트

당신은 돈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든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무장하든가.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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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 한은형

내 수첩과 노트북에는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나? 그 글은 시작되지 않았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떻게든 뻗어 나갈 수 있다. 단, 내가 하는 거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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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인간 중심 사고로 인해 어느새 식물을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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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전고운 감독의 글

글과 나 사이에 차가운 강이 흐른다. 글로 가기 위해서는 그 차가운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한다.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두고, 신발도 벗고 헤엄쳐 가야만 글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결코 죽지는 않는다. 견딜 수 있을만큼의 고통만 있을 뿐이지만, 제정신으로는 누가 그 고통을 반복하고 싶을까. 그 강을 자꾸 건너는 사람들은 현실이 그 강만큼 추운 사람들이거나 고통 자체를 즐기는 특이 체질일 것이다. 예전에 그 강을 자주 건너갔던 것은 그때는 현실이 강만큼 추워서였다. 혹은 그 추위를 견뎌서라도 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달려 들어갔다. 지금은 그때보다 춥지 않고, 얻고 싶은 게 간절하지 않으며, 그곳 말고도 갈 곳이 늘어나기도 했다. 남편이나 광화문시네마 동료들, 그리고 영화를 하며 만나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소수의 동지들. 내가 살기 위해 만든 나의 울타리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을 건너지 않게 하는 방해물이 되었다. 불안함을 해소하는 도피처를 굳이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될 곳에 만들어두었던 것은 나의 권리였다. 좀 더 편안해질 권리. 행복을 자주 느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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