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취하는 기준

증류소마다 나름대로의 증류 레시피recipe를 가지고 있다. 레시피란 요컨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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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시간도 영원할까? 글쎄, 하지만 꿈을 너무 크게 가지면 정작 나 자신이 소외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난 이제 외계인이 준 교훈대로, 아니 이 모든 이야기가 내게 가르쳐 준 대로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 동안 내가 믿어야 했던 것은, 반드시 찾아올 ‘끝‘이 아니라 그 모든 지금, 바로 이 ‘순간‘들이었다는 것도.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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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척박한 땅에도 내려앉을 수 있는 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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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나 다른 동물이나 고통을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다.

동물 실험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언제인가? 시행되고 있는 수많은 실험들의 본질을 파악한 일부 사람들은 모든 동물 실험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치도 물러남이 없이 요구할 경우 실험자들에겐 다음과 같은 준비된 대응 방식이 있다. "그렇다면 한 마리의 동물에게 단 한 번의 실험으로 구할 수 있는 수천만의 인간들을 죽게 내버려둘 용의가 있는가?" 물론 이는 철저하게 가설에 바탕을 둔 질문이다. 단 한 번의 실험으로 수천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경우는 이제껏 없었고, 또한 있을 수도 없다. 이러한 가설적인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만약 수천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 실험자들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고아를 실험용으로 사용할 용의가 있는가?
만약 실험자들이 고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인간 아닌 동물을 사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입장은 종에 기초한, 정당화할 수 없는 형태의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장한 유인원, 원숭이, 개, 고양이, 주, 그리고 다른 동물들은 인간의 유아에 비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고, 그들에 비해 더 자발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최소한 인간의 유아 못지않게 고통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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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동물 실험 옹호자들은 동물들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물의 고통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험이 인간의 목적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주장하려면 인간과 동물들 간의 유사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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