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fancied님의 서재 (magokdongP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9 Jun 2026 06:56:48 +0900</lastBuildDate><image><title>magokdongP</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magokdongP</description></image><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잠실시위를 목도한 뒤 하룻낮과 밤을 더럽고 불길한 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24272</link><pubDate>Mon, 08 Jun 2026 2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24272</guid><description><![CDATA[잠실시위를 목도한 뒤 하룻낮과 밤을 더럽고 불길한 우울감에 휩싸여 잠만 잤다. 그런 뒤 폴리텍을 하루 빼먹고 &lt;K-를 생각한다&gt;를 읽었다. &lt;피투자자의 시간&gt;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변하면서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시민의 정체성이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서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임금노동자 정체성이 자기를 자본삼아 투기를 일삼는 투기꾼으로의 전환. 반면 &lt;K-를 생각한다&gt;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한정되었지만 90년대 생들이 2000년대 신자유주의적 변화와 진보정치의 개혁조치를 겪으며 형성한 정치적 정체성을 다룬다. 신자유주의적 변화, 디지털 기술 변화를 못마땅히 여긴 진보주의자들의 개혁이 실제 현장에서 현실과 괴리된 채 보여주기 식의 이벤트로 실현되었다(장학사가 참관하는 토론학습 수업, 최신 컴퓨터를 설치한 뒤 기술시대교육을 선언하는 학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8/pimg_70961637351479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24272</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피투자자의 시간. “마르크스에 따르면 산업자본주의의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18561</link><pubDate>Fri, 05 Jun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18561</guid><description><![CDATA[피투자자의 시간. “마르크스에 따르면 산업자본주의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자유주의적 인간학이 노동자에게 동일시 하도록 유도한 것은 자신의 노동을 최적의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는 거래자였다. 이런 식의 동일시는 노동이 창조한 잉여 가치에 대한 수취를 규범화 하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소외를 발생시키지만, 동시에 노동운동에 의해 전유되자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협상력을 높이고 지금은 빼앗겨 버린 일련의 사회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br><br>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은 개인의 노동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자의 인격, 그 사회의 전통적 가치놔 연동하던 중세의 유산을 허물고 만들어진 것. 자유주의적 인간은 노동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노동 시장의 출현을 위해 필수적. 상품, 교환 거래의 불공정을 제기하며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자 했던 것. 이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이해관계자, 이익과 돈이 오가는 교환방식이라는 시장의 기본적 룰을 따르는 것은 전제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5/pimg_709616373514481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31856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두 경제학의 이야기. 수요곡선은 가격과 수요의 곡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95184</link><pubDate>Sun, 24 May 2026 22: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95184</guid><description><![CDATA[두 경제학의 이야기. 수요곡선은 가격과 수요의 곡선. 공급곡선은 가격과 공급의 곡선. 가격이 너무 높게 소비자가 구매했다면 소비자의 재화가 낭비되어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이것이 불공정한 교환이라는 것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나?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적정한 이윤을 정할 수 없지 않나? 이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너무 높은 가격의 재화는 사지 않거나, 그보다 더 낮은 가격의 재화를 판매하는 기업의 상품을 사면 된다. 그런데 소비자가 얻는 것보다 기업이 이윤을 축재하는 것을 서로 간의 윈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이 막대한 부를 쌓는 것이 과연 윈윈인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4/pimg_70961637351337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95184</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현장을 취재했던 ap 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4522</link><pubDate>Mon, 18 May 2026 2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4522</guid><description><![CDATA[현장을 취재했던 ap 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는 시위진압을 위해 폭력을 쓴 게 아니라 체포를 위해 폭력을 쓴 것이다. 17년 뒤 1997년 대법원은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가 대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99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8/pimg_70961637351281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4522</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언어철학(이 말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온 철학에서 도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95</link><pubDate>Sun, 17 May 2026 17: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95</guid><description><![CDATA[언어철학(이 말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온 철학에서 도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영어가)의 경우,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념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학이나 정치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 ; ’단어의 의미가 변화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260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7/pimg_709616373512670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95</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고립된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견해는 어리석다고 주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89</link><pubDate>Sun, 17 May 2026 17: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89</guid><description><![CDATA[고립된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견해는 어리석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원래 하나의 속적인 존재, 즉 군집동물로 출현하며, 역사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개별화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교환 그 자체가 이 개별화의 주요한 동인이라는 것이다.<br><br>247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7/pimg_709616373512669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208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 책을 읽다보면 카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이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40</link><pubDate>Sat, 16 May 2026 2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40</guid><description><![CDATA[이 책을 읽다보면 카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이 열어재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평등과 자유의 세계질서를 희망하는 자신의 역사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역사는 진보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게 객관성은 현재와 과거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바람직한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의 연관을 역사적 사실들로 직조해 개념화 하는 것이고, 이는 분명하게 역사를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적 낙관과 윤리적 희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도그마적이지 않는데, 역사에서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과 가치판단은 해당 역사적 시기에서만 객관적으로 옳지(개념화가 가능하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카는 일반화(개념화)가 객관적인 것이지 정의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도그마를 두려워하며 어떠한 것도 진리가 아니라고 했던 반자연주의자 무어보다, 도그마에 맞서되 역사탐구와 윤리적 실천의 끈을 연결하려 했던 카의 사유가 훨씬 값지고 역사적이다. 왜냐하면 카의 주장은 여전히 자유와 해방을 위해 나아가는 오늘날 인류의 투쟁에 이바지 하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6/pimg_709616373512587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40</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메타윤리학은 한 언어(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길 요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00</link><pubDate>Sat, 16 May 2026 2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00</guid><description><![CDATA[메타윤리학은 한 언어(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길 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카가 역사의 객관성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역사의 객관성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해야 하고, 어느 시기에나 보편타당해야 하는데 카는 그 전제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역사란 진보적인 것이고, 진보적인 것만이 객관적이라는 카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진보적이지 못한 것은 역사가 아니고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진보적인 것은 변화의 흐름을 역사화하는 것이고 그것의 기준은 현재의 성취와 사건들을 과거와 엮어내면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진보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따라서 카에게 객관성은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퇴행이라 자조하는 기득권의 도그마적 한탄을 역사해설이라 둔갑하는 행위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어떤 진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 사건들이 과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실과 해석의 측면에서 정당해야 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사실이어야 하고, 해석은 일반화의 과정을 정당하게 거쳐야 한다(정확히는 개념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6/pimg_709616373512586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500</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는 진보적인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474</link><pubDate>Sat, 16 May 2026 20: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474</guid><description><![CDATA[역사는 진보적인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결과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로 전승된 사건들을, 지금까지의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 결과로 현재를 설명하기에 선후/인과의 설명틀을 가지며 진보적인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축적되어서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역사적 결괴-혁명이나 전쟁을 같은-로 나타난 것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은 사건의 흐름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건의 흐름들이 변화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전승된 역사적 실체를 형성한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6/pimg_70961637351258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80474</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대학생 때 처음 이 책을 읽었고, 군대에서 이 책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731</link><pubDate>Fri, 15 May 2026 2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731</guid><description><![CDATA[대학생 때 처음 이 책을 읽었고, 군대에서 이 책을 다시 읽었으니 그 사이의 간극이 무려 9년이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를 찾았다. 쿤데라는 사랑을 짐이자 운명으로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소설 속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왜나하면 나에게 사랑은 역사로부터의 도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랑이 운명인가? 그러나 체코 공산당의 독재에 저항하지 못하는 토마시, 망명도 하지 못하는 토마시, 그는 분명 무언가를 포기했고 그것은 사랑이라는 짐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09616373512511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73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일반화가 가능하고 보편화가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86</link><pubDate>Fri, 15 May 2026 1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86</guid><description><![CDATA[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일반화가 가능하고 보편화가 가능한 것. 즉 어느 상황에서나 적용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것. 비현실적이고 우연적인 것은 그 특수한 상황에서만 진실이고, 나머지 상황에서는 일반화 되지 않는 것.]]></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09616373512509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86</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카는 “그것은 결정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61</link><pubDate>Fri, 15 May 2026 1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61</guid><description><![CDATA[카는 “그것은 결정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결정론을 옹호하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카가 생각하는 결정론은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옥타비우스를 전쟁을 일으키도록 했다, 는 인과/선후 관계를 구명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카가 경계하는 결정론도 있다. 그것은 역사는 역사 외부의 힘에 의해서 어떠한 경로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선험적인 도그마가 그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09616373512508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66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리스토텔레스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을 구분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096</link><pubDate>Fri, 15 May 2026 13: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096</guid><description><![CDATA[아리스토텔레스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을 구분할 때, 사건의 원인이 외부에 있으면서도, 그 외력에 반응한 자신의 선택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카의 방식대로 설명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인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동에는 부정의한 것과 부정의한 행동이 있는데, 부정의한 것은 의도하지 않고 비자발적으로 벌어지되 그 사건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부정의한 행동은 그 인격이 부정의한 행동을 합리적 판단 하에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다. 따라서 그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은 그 행동 자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와 그 행동에 임하는 개인적 인격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같이 두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행동의 원인을 규명하고 분석하는 것은 그 행동을 도덕적으로 정당화 하는 것과 다르다. 그 행동의 원인을 용인하는 사람은 대게 그 행동의 결과를 용인하는 편에 가깝다. 독재자들에 대한 옹호, 성범죄자들에 대한 옹호가 그런 경우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09616373512480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8096</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와 과학은 인간의 환경을 연구하는 것. 역사는 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4529</link><pubDate>Wed, 13 May 2026 1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4529</guid><description><![CDATA[역사와 과학은 인간의 환경을 연구하는 것. 역사는 과학의 한 부분이 아니고, 과학도 역사의 한 부분은 아니다. 역사와 과학은 방법은 다르지만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 중의 하나이며, 그것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하나의 단일한 명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변화하는 인류의 발전을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으로 객관화 하는 것이다. 역사는 과학적이어야 하고, 과학 역시 역사적이어야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3/pimg_70961637351227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452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은 상호보완한다.
일반적인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3931</link><pubDate>Wed, 13 May 2026 13: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3931</guid><description><![CDATA[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은 상호보완한다.<br>일반적인 것만을 강조하면 개별 사건의 구체적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실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얻을 수 없게 된다. 반대로 특수한 것만을 강조하면 그 실체를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실체를 종합적으로 해설하고 사유해서 개념화 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br><br>그래서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것을 해석하게 해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특수한 것은 일반적인 것의 해석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질료가 된다.<br><br>마르크스는 일반적인 것을 강조한 사람이 아니고, 특수한 것만을 강조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상이한 역사적 사건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각 역사를 비교하기 위한 같은 개념적 범주(일반적인 것)을 갖춘 채로, 그 구체적인 역사적 특수성을 파악(특수한 것)하고자 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에게 일반적인 것이란 각 사건을 보편적 법칙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역사를 비교하기 위한 좋은 사유의 틀, 해석의 틀 같은 것으로서 각 역사적 사건의 차이를 규명해서 그 의미를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3/pimg_709616373512249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393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자유와 평등 사이의 정의 또는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49</link><pubDate>Tue, 12 May 2026 07: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49</guid><description><![CDATA[자유와 평등 사이의 정의 또는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긴장… 이제 하나의 거대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간의 잘못된 대립을 뜻하게 된 개인주의는 오늘날에 와서는 이익집단의 슬로건이 되어버렸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그것의 성격 때문에 세계를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이 되어버렸다.<br><br>개인주의, 자유방임주의는 정치의 폐지, 관계의 단절, 개인의 자유 극대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정책으로만 가능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2/pimg_709616373512116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4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이 강연에서 사실과 해석의 이분법과 똑같은 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34</link><pubDate>Tue, 12 May 2026 07: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34</guid><description><![CDATA[우리는 이 강연에서 사실과 해석의 이분법과 똑같은 이분법을 다른 모습-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br><br>역사철학은 서구의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립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 서구의 관념론의 역사는 서구학문세계의 역사(과학, 철학, 정치학, 종교학, 윤리학)과 큰 연관이 있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2/pimg_70961637351211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34</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에 끌려들어가기를 거부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11</link><pubDate>Tue, 12 May 2026 0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11</guid><description><![CDATA[“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에 끌려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유는 역사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br><br>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자연의 섭리이자 신의 섭리로 합리화 한 생각이 역사철학을 대신.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다양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현재의 상황을 비교적 상대화 하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도록 하는 것. 즉 과거를 객관화 하고, 오늘을 상대화 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 이를 통해서 현재를 성찰해서 더 나은 사회,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역사관은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식민지배를 영원무구한 신의 질서로 확신했지만, 그것은 20세기가 되자마자 세계각국의 혁명과 경제위기, 전쟁으로 인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통해서 산산히 부숴졌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2/pimg_709616373512114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7151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위수정 눈과 돌멩이를 읽고…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60871</link><pubDate>Wed, 06 May 2026 17: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60871</guid><description><![CDATA[위수정 눈과 돌멩이를 읽고…<br><br>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단 한순간에 깨어지는 창문처럼, 우연하고도 의도하지도 않은 폭력과 상처는 매일 반복된다. 자신을 의심하고 혐오하는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준 코요는 텍스트 바깥의, 텍스트가 가닿고 싶어하는 궁극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흰 눈 속에서 갇힌 유미와 재환을 상상하며 어떤 몰입을 했고, 어떤 감각들이 새로 되살아난 기억이었다. 더 연약해지고, 더 부드러워지는 경험. 위태로운 삶들을 유지하는 윤리는 단단한 돌로 언제나 깨어지는 것들이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더 약해지고, 그래서 산산히 부숴지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코요의 윤리를 계속 생각하기.]]></description></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그런데 그 모처럼의 희망과 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5911</link><pubDate>Wed, 29 Apr 2026 1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5911</guid><description><![CDATA[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그런데 그 모처럼의 희망과 신념이 또 다른 속박에로의 안내등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br><br>전 지금 이 섬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원장님의 동상이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장님 스스로 그것을 완성시킬 순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냥 섬을 떠나주십시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9/pimg_709616373510910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591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두 명의 의사가 아니라, 한 명의 의사와 한 명의 농...</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546</link><pubDate>Tue, 28 Apr 2026 1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546</guid><description><![CDATA[두 명의 의사가 아니라, 한 명의 의사와 한 명의 농부로 하나의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서로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으로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니까.<br><br>즉 평등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해 꼭 지켜져야만 하는 사회규약이다. 평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는 다름을 차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클 것이다. 평등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야난적 사회로 변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8/pimg_709616373510807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546</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익과 손해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 이익은 상대방의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455</link><pubDate>Tue, 28 Apr 2026 1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455</guid><description><![CDATA[이익과 손해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만큼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이윤을 착취하고 주장한 것이 기억난다. 일론 머스크가 수조원의 자산을 얻는 것은 정당한가? 그것이 과연 그 자신의 몫인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8/pimg_709616373510804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455</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정의는 완전한 탁월성. 탁월성은 개인의 행위이고, 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278</link><pubDate>Tue, 28 Apr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278</guid><description><![CDATA[정의는 완전한 탁월성. 탁월성은 개인의 행위이고, 정의는 타인과 관계할 때의 탁월한 행위. 정의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탁월하게 하는 것. 때문에 정의가 가장 고결하다. 그 이유는 사회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가 되니, 탁월성들이 모여 정의가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8/pimg_70961637351079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3278</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자발적인 행위는 후회한다면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559</link><pubDate>Mon, 27 Apr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559</guid><description><![CDATA[비자발적인 행위는 후회한다면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 질서, 응당 당연한 것을 어기거나 그것에 무지한 사람은 악덕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몰랐다고 할 순 있어도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것으로 얘기되지 않는다.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따지고 봐야 하는 것이다.<br><br>강제와 무지라는 두 조건에서 비자발적 행위가 이뤄진다. 강제의 경우에는 온전히 외부로부터의 강제이자 그 행위의 동기에 자신의 목적이 없어야 한다. 그 행위의 결과와 그로부터의 댓가를 고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지의 경우에는 후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하다.<br><br>이 대목에순 죄와 벌을 정하는 법률가의 고민이 보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7/pimg_709616373510771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55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탁월성은 합리적 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426</link><pubDate>Mon, 27 Apr 2026 2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426</guid><description><![CDATA[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탁월성은 합리적 선택과 결부된 품성상태로,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중용에 의존한다. 어려운 말 같지만 실상 내용은 탁월한 행동은 문자로 성문화 하기 어렵고, 실제 현실에서 적당함과 모자람 사이 그 즈음을 잘 분간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기능으로 이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동시에 이성을 현실에 적용할 방법을 찾는다. 이성과 현실은 서로를 압도할 때 옳은 게 아니라 이성이 현실을 돕고, 현실이 이성을 도울 때 서로의 존재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둘의 긴장은 정치학에서 잘 나타난다. 권력의 조율을 위해 여러 정체를 혼합할 것을 제안하는 그의 언사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흡사하다. 어떤 정체가 그 자체로 옳다는 것은 아리스토텔에스에게 없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7/pimg_709616373510765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2426</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30p 인간의 기능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1485</link><pubDate>Mon, 27 Apr 2026 13: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1485</guid><description><![CDATA[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30p 인간의 기능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좋음이다. 그러니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좋음이다. 그리고 인간은 폴리스적 인간이다. 인간의 이성 중 최고의 이성은 정치학적으로 탁월한 이성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7/pimg_709616373510714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41485</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당신들의 천국, 한민의 자살은 탈출할 필요가 없었기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38252</link><pubDate>Sat, 25 Apr 2026 1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38252</guid><description><![CDATA[당신들의 천국, 한민의 자살은 탈출할 필요가 없었기에 탈출이 아니고, 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에 섬에서 죽어서 평생 섬에 남아 있겠다는 귀의라는 것. 작가는 이 특별한 처지의 인간집단을 위해서 특별히 꾸며진 어떤 낙토도 이미 낙토일 수가 없었다, 고 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5/pimg_709616373510572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23825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