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fancied님의 서재 (magokdongP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6:37:18 +0900</lastBuildDate><image><title>magokdongP</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magokdongP</description></image><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단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7959</link><pubDate>Tue, 06 Oct 2026 2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7959</guid><description><![CDATA[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단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촉발한 무한경쟁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빠른 속도의 감정 교환은 우리가 일상에서 열등감과 결별할 수 없는 조건을 형성했다. 대중의 열등의식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의 과정에서 냉소를 키우는 계기를 맞게 되었고, 동시에 이는 소비주의적 행동양식의 일반화를 초래했다. 냉소주의와 이를 통한 소비적 세태는 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진지한 의미로서의 진보 정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br><br>무한 경쟁,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결정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함. 경쟁사회에서 효율성이 지닌 가치가 재해석, 재구성 그리고 더 높은 가치로 여겨짐. <br><br>효율적 사고관과 소비주의적 행태와의 연관성. 정치도 상품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협상하고 조율하는 등의 공론장에서의 정치는 사라짐. 보다 간편하게 극단적 해결책을 실현하길 주장하거나 정치 자체를 냉소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투표만 함(행정에관 관심을 가짐)<br><br>경쟁과 영등의식은 나 자신의 열등감 극복을 위해서 타인을 공격해야 하는 것. 혹은 타인과의 공정한 지위 확보, 속지 않고 손해보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의 강화. 이는 여러 버전의 공정성 담론을 낳고, 더 나아가서 ‘진정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함. 개인의 손해를 보고 진정성을 판단하거나, 손해와 이익을 젓대로 어떤 가치와 원칙을 판단하려 듬. 손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br><br>냉소, 열등의식, 소비주의. 서로가 각자를 자신에게 손해를 줄 위험 대상으로 판단하면서 서로를 검열하고 감시하는 사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91944872399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795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정치에서의 실패는 사람들의 욕망과 의지가 어떤 말들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6079</link><pubDate>Mon, 05 Oct 2026 2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6079</guid><description><![CDATA[정치에서의 실패는 사람들의 욕망과 의지가 어떤 말들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br><br>냉소사회. 211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83198157447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6079</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서 오늘날의 피지배계급은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914</link><pubDate>Mon, 05 Oct 2026 19: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914</guid><description><![CDATA[그래서 오늘날의 피지배계급은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확신을 얻고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대신에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기득권에 대항하는 손쉬운, 즉 효율적인 길을 선택한다. 최소한의 ‘양식’만 지키면 대부분의 투쟁은 “안 산다”는 선언으로 대치될 수 있다.<br>176p<br><br>후진국 대한민국. 효율을 강조하며 성장해온 나라의 역사. 개발독재 기간 빠른 성장, 효율적 성장 이제율로기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변화. 이제는 서로 간의 경쟁과 자기 계발을 강조. 효율 아래 다른 가치를 희생시켜온 사회, 냉소와 허무주의가 만연하게. 인터넷은 경쟁과 허무를 체험하고 드러내는 공간으로 기능. 이득과 진정성이라는 구도, 갑과 을, 사이버 민중주의(테러주의), 열등감 키워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82582803329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914</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냉소사회&amp;gt; 155p
하지만 대부분은 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783</link><pubDate>Mon, 05 Oct 2026 17: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783</guid><description><![CDATA[&lt;냉소사회&gt; 155p<br><br>하지만 대부분은 그 행위가 떳떳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세상이 다 그렇지. 북한도 이렇게 하잖아?’란 마음가짐으로 윗선이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게 분명하다. 바로 이런 사례가 ‘속는 것을 즐기는‘ 경우다.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온몸을 바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결과로 이들은 상대의 기만에 기만으로 대응하면서 기만적 세계관에 따라 상대에게 또 다른 기만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819942915269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55783</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르시시즘의 고통&amp;gt; 6장 나르시시즘적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498</link><pubDate>Tue, 29 Sep 2026 22: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498</guid><description><![CDATA[&lt;나르시시즘의 고통&gt; 6장 나르시시즘적 ‘도덕’<br><br>요컨대 나르시시즘적 ‘도덕‘을 이루는 모든 것이 자기 정체화에서 하나로 묶인다. 자신의 사회성에 대한 부정, 자아의 무제한적 자기 정립, 보편 범주의 거부. 그리고 동시에 그 귀결인 모순,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에 동반하는 사회적 인정의 필요성까지.<br><br>280-281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318472319799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498</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금지에서 벗어나 이상을 향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억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52</link><pubDate>Tue, 29 Sep 2026 2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52</guid><description><![CDATA[금지에서 벗어나 이상을 향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억압적 금지가 아니라 요구하는 이상이 존재한다. 규칙이 도달 불가능한 이상을 말하자면 번역한다고 할 때,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상을 향한 욕망을 규칙을 향한 욕망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오히려 도달 불가능한 이상을 충족하는 것이다.<br><br>“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시다.”는 말은 욕망을 금지하는 행위가 갑자기 어떻게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충족하길 원하는 자아이상이 규칙과 금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했다는 것, 거꾸로는 자아이상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아가 규칙과 금지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뜻.]]></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31630129405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52</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가 스스로 부과하거나 수용하는 이 규칙은 어쨌거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21</link><pubDate>Tue, 29 Sep 2026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21</guid><description><![CDATA[우리가 스스로 부과하거나 수용하는 이 규칙은 어쨌거나 보편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규칙이며 오직 그러한 규칙으로만 작용한다.<br><br>초자아에서 자아이상으로의 이동의 결과는 법에서 윤리(규칙)으로의 이동. 초자아로부터의 해방일까? 고대 그리스에서 자기향상의 윤리(생활규칙)이 자기 자신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절제와 금욕이라는 자기 부정을 통해 윤리를 수행한다. 이 대조에서 전자가 더 자유롭고, 진보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오늘날 개인주의의 강화는 전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을 만들어낸다.<br><br>그러나 이 책은 자아이상으로의 이동이 나타났다는 것을 이미 전제로 삼으면서 논거를 진행하고, 때문에 오늘날 자기 배려는 자기 해방 뿐만 아니라 복종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개인은 자아이상에 복종되는 상태가 심화되어서 자유를 더욱 잃었다고 진단하는 것 같다. 즉, 고대 그리스와 근대 초기의 자기 수영과 현대의 자기 수영을 비교하면서 현대의 그것이 나르시시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315928892190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432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지도자와 집단은 다양한 변종으로 존재한다. 파시즘적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174</link><pubDate>Mon, 28 Sep 2026 2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174</guid><description><![CDATA[지도자와 집단은 다양한 변종으로 존재한다. 파시즘적 지도자부터 프로이트가 스케치하는 지도자까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와 그 신봉자들이 있고, 바로 스타와 그 팬들이 있다. 후자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관계다. 207p<br><br>자기 홍보(?)를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 성공. 자신이 노력해서 타인의 관심을 얻는 것은 실패 위험이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자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자신의 자아이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아이상을 타인에게 투여하는 것. 외주화 하는 것.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신을 투영한,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존재를 사랑하며 나르시시즘 만족을 얻는다. 그것이 지도자와 집단의 관계이고, 오늘날에는 지도자의 정치사회적 권위가 해체됨에 따라 대중스타와 팬의 관계가 우세해졌다.]]></description></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런데 자아의 힘들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제지하기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097</link><pubDate>Mon, 28 Sep 202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097</guid><description><![CDATA[그런데 자아의 힘들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제지하기 위해 또 덧붙는 것이 있다. 성공이라는 나르시시즘의 목발은 약속일 뿐 아니라 위협이기도 하다. 위협이란 성공의 부재다. 다시 말해 실패다. 나르시시즘적 인정과 경쟁이 서로 교차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89p<br><br>나르시시즘적 성공을 위해서 개인들이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더라도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나르시시즘적 성공이란 기본적으로 전방위적 경쟁이라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르시시즘적 사회는 상호간의 경쟁으로 통제된다.]]></description></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르시시즘의 고통&amp;gt; 4장 나르키소스와 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035</link><pubDate>Mon, 28 Sep 2026 2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035</guid><description><![CDATA[&lt;나르시시즘의 고통&gt; 4장 나르키소스와 타자들<br><br>즉 나는 이제 세사의 중심을 나에게 두는 것으로 하나 됨을 체험한다. 성공은 나를 중심에 놓는다. 이것을 나는 아주 개인적인 내 우주의 완결로, ‘완성‘으로 체험한다.  184p<br><br>성공은 곧 관심이다. 경쟁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는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변화했다. 혹은 성공의 목적이 그것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습득한 기술, 행운, 남모르게 얻은 통찰 같은 것보다는 더 값어치가 적더라도 타인의 관심을 얻게 해주는 것이 더 큰 성공을 준다고 생각하게 된다.<br><br>나르시시즘의 사회에서 성공과 관심이 크게 결부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6228157011743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42035</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르시시즘의 고통&amp;gt; 116p
자기 동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6200</link><pubDate>Fri, 25 Sep 2026 13: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6200</guid><description><![CDATA[&lt;나르시시즘의 고통&gt; 116p<br><br>자기 동력의 무조건적 ‘자기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의 경영자 개념이 숨기여 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것은 대상 됨에서 나온다. 스피노자가 구상한 것처럼 자기가 대상이라는 느낌에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5939193881877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6200</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나르시시즘의 고통&amp;gt;
“개입하는 정치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6161</link><pubDate>Fri, 25 Sep 2026 1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6161</guid><description><![CDATA[&lt;나르시시즘의 고통&gt;<br><br>“개입하는 정치는 경쟁을 방해할지 모를 매커니즘만 제거해야 한다. 푸코의 말처럼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br><br>달리 말하면 이러한 자본주의에 맞섬으로써 그것을 촉진하고, 이러한 자본주의를 제한함으로써 그것을 강화하는 두 번째 조직 원리, 제 2의 논리가 있으면 안 된다.“]]></description></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신체적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아이는 거울에서 인간의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81</link><pubDate>Thu, 24 Sep 2026 1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81</guid><description><![CDATA[신체적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아이는 거울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단절되고 통제되지 않는 신체들의 부조화를 느끼는 감정을 버리고, 완성된 하나의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이미지는 통합적이고, 통일적인 것으로 피사체를 통일하고, 하나의 관점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 발생한다. 여러 모순되고, 결함이 가능한 복잡하고 구체적인 신체적 생리작용을 부정하고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로 모든 신체 작용을 환원한다.<br><br>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정당화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미지와 감각. 그 중에 이미지가 더 유리한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584332908272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81</link></image></item><item><author>magokdongP</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르시시즘, 자아이상, 사회적 요구.
인간은 왜 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78</link><pubDate>Thu, 24 Sep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78</guid><description><![CDATA[나르시시즘, 자아이상, 사회적 요구.<br>인간은 왜 사회적 질서가 실제로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것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br>인간의 나르시시즘은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자기애가 아니라, 외부세계와 주관적 자아가 통일된 그래서 개인이 전지전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아기를 벗어나면서 쉽게 파괴된다. 때문에 외부세계와 주관적 자아를 통합하고자 하는 근본적 욕망이 존재하고, 이는 유아기에서 사회적 존재인 성인을 거치면서 개인과 사회적 관계의 통일로 더 구체화 된다. 개인이 사회적 관계들(국가, 제도, 공동체)와 통일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떠한 이상적 관념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그 사회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진실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아니라 그 사회와 자신을 통일시켜주는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기능은 유아기에 상실한 외부세계와 주관자아의 통일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인과 외부 세계를 통일시키는 것으로, 이는 외부 세계의 폭력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세계를 해석하고 믿고 열광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63925842992074481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9616373/1753457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