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사연표 그림책>, <어제저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사 연표 그림책 한눈에 펼쳐보는 그림책
정연 지음, 이병용 그림 / 진선아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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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연표들과 자주 바뀌어가는 시대별 상황들의 이해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지요. 그렇기에 연도와 사실들을 연결하여 줄줄이 열거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와 정말 대단하다 한없이 부럽기만 했는데요 그때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해놓은 연표가 있으면 한결 공부가 쉽겠구나 생각했었답니다. 한데 그러한 책이 이렇게 출간되었네요.

진선아이의 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사 연표 그림책입니다. 그 책을 통해 세계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책은 B4사이즈쯤 되는 큰 팝형으로 세계사 지도를 펴쳐놓은 상태에서 세계사를 아메리카, 유럽 ,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의 총 8개지역으로 나누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역사가 시작되고있는 기원전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5000여년의 시간을 4쪽에 펼쳐 보여줍니다.

3쪽에 걸쳐서는 연대기별로 각 지역의 사건들을 중심으로한  나라별 개국과 패망을 설명하고  1 쪽의 내용엔  한번 더 짚어주어야 할 주요사건과 주요인물 주요문화재를 다루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똑똑해지는 세계사 퀴즈 문제로 정리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한눈에 쏙 들어오던 페이지에서 한번 더 강조 했던 내용들을 보자면 주요 인물엔 공자와 당태종 주원장과 서태후, 마오쩌둥으로 이어집니다. 이름만으로도 중국이라고 하는 큰 나라의 흥만성쇠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들임을 알수 있지요.  그 나라의 주요문화재로는 만리장성과 진시황릉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별로 알게된 내용들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확인 할 수 있었던 똑똑해지는 세계사 퀴즈문제입니다.
퀴즈형식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주어 내용을 좀 더 심도있게 살펴보게 만드는 부분들입니다.




우리나라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중 으뜸은 중국이요, 다음은 일본인데, 역사를 공부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참 많이 등한시 했던듯 합니다. 그래서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지금에서야 만나게 되는데 기원전 200년경의  야요이시대를 시작으로 1467년에 시작된 전국시대, 임진왜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어 일제 식민지를 지나 1951년 미국과 안전보장조약체결까지의 전체적인 흐름을 만날 수 가 있었습니다.    





그밖에   한족을 중심으로 했던 중국역사속에서는  비켜가 있었으나  우리의 역사속에서 절대 무시할수 없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소수민족의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변화과정을 한 눈에 확인해 볼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역사속에서 잘 접하지 못했던 지역인 현재의 베트남,타이,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가 위치한 동남아시아의 흐름을 보는것도 좋았으며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중 하나인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선 고대 문명의 변천사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세계사대 한국사의 연표를 비교해주는 역사연표를 포함 책의 총 페이지수는 39쪽이요 하나의 지역을 이야기하고있던 분량은 총 4쪽으로 그 이야기속에서 세계사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다소 버거웠지만
세계사의 다른 책들과 병행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가는데는 참으로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세계사를 공부하기전 흐름의 맥을 잡아갈때나  교과목으로 세계사를 공부한후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 더 정리할때 아이들이  이 책을 만난다면 낯설기에 실타래 처럼 엉켜버리기만하던 세계사적 지식들이 시원하게  정리되어가는 느낌이 들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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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의 탄생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나의 고전 읽기 18
막스 베버 원저, 김성은 지음, 김태권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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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전읽기 근대인의 탄생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단어와 자본주의 라는 글자속엔 심오한 사상이 담긴듯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위력을 뿜어내고있다. 그래서 쉽게 접근할수가 없다. 과연 내가 이책을 통해 뭔가를 얻을수 있을까 ? 스트레스만 왕창 떠 아는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워 선뜻 읽을 엄두를 못낸다

내가 그러했었다. 하지만 근대인의 탄생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 책은 그런 편견을 지워준다.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교 사상에서  발전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를 다져주고 그 와중에 칼뱅, 루터라는 두 종교인을 통한 종교개혁을 보여주고 마르크스 주의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막스베버라는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종교학자의 학문적 사고를 통한 한 위인의 일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처음 이 책을 나로 하여금 손에 들게만들었던  중학교 1학년의 딸아이에게 선뜻 읽어보라 내밀수 있을만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을 이렇게 쉽게 만날수 있단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근대주의를 주도한 서양 사람들의 중세는 카톨릭이란 종교가  전부였으니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생활의  전부를 간섭하고 통제했으며 예술도 사상도 정치도 생활도 그 모든것들을 카톨릭이 지배했었다. 그러한 환경은  사람들로하여금 좀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는데 저해요인으로 작용  하루벌어 하루를 살았고 그날 번 돈 모두를 흥청망청  맥주마시는데 모두 쏟아부어버리는 자본주의 정신에 입각했을때  너무도 무의마한 하루를 보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종교지도자가 모든것을 통제하고 돌봐주는 상황에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유를 몰랐고 필요성을 찾지 못한것이다.





 

그 시대, 그러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쇄공이 있었으니 미국에서 건너온 벤자민 플랭클린이었다.

그는 어렵게 번 돈을 맥주값으로 모두 날리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을뿐만아니라 일에 대한 열의도 성의도 보이지 않는 일상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큰 독점은 폐단을 부르고 있었으니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카톨릭은  비어버린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해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부패한 종교계를 보다못한 16세기  루터와  캘빈을  주축으로 한 개혁자들이 가톨릭교에 반항하여 이루어진 기독교 사상이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그러한 종교걔혁 사상가중 한명이었던 베버는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느긋함과 삶의 목표가 없다라는 사실을 지적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출발한다. 베버는 여러 통계자료들을 통해 프로테스탄트들이 자본주의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반면 카톨릭 교도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현상을 파악하는등 오랜시절 많은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생하며 발전해가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종교와 자본주의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있었단다. 다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려 했던 사람이 사회과학자였던 베버로 그 이론은 20세기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걸작이 되어 이렇듯 우리앞에 서있게 된것이었다. 

같은 개혁속에서도 다른 두얼굴 베버와 칼뱅 ,  전통적인 귀족의 종교가 프로테스탄티즘이란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떠오른 부르주아 계급의  종교가 되면서  성격이 변화되어 온 모습과  자신은 선택된자요, 자기 직업에 충실해야만 한다는 칼뱅주의와의 이론 비교도 쉽게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의 최절정에 서있다. 그동안 많은 발전속에 우리의 입맛에 맞는 변화를 겪어오면서,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으로 자리잡아 온것이다. 구 소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금 자본주의가 최선이라 생각하게도 되는데  그러한  지금의  우리 모습이 되어온 배경을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속에서 보게된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론을 쉽게 풀어준 덕택에  그 근본을 만날수 있었다. 아이들이 현 사회를 내다보는 밑바탕을 이루어가는데 이 책이 참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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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은 왕 - 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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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인조반정을 떠올릴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군주가 있었으니 조선의 14대왕이었던 선조다. 명석했었다 인정하는 기록들과 우유부단했었다라는 평가가 엇갈리며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하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시대요 군주... 그 시대를 낱낱이 조명하는 한권의 책을 통해 난 조선의 골깊은 당쟁사와 함께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갈수록  흔들려버린 왕권을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한다.

 

그러한 선조가 조선의 실질적 왕이었다면 이 책의 제목이 말하고 있는 조선의 숨은왕은 송익필이었다. 아버지 송사련의 과오와 천비였던 어머니신분이 평생의 업보가 되어 (비록 정계에 진출못할 허울만의 양반) 많은 유생들의 우러름을 받는 사림의 선비로 대접받다가는 하루아침에 사노비인 천민으로 전락하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600년 조선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것은 사회 분열주의의 근원으로 현재에는 지역주의,학벌 문벌주의로 나타나는 당쟁의 역사로 이 책은 그것의 시작점을 논하면서 선조라고하는 군주와 동인 서인의 파벌이 형성되어가고 왜 막지못했는지를 소상히 파헤치고있었다. 

 

그 시초를 논하자면 선조가 적자 정통성에서 비켜난 최초의 군주라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13살의 순회세자를 앞세운 명종이 후사없이 젊은나이에 승하한후 중전은 12대 중종의 7번째 아이들인 덕흥군의 3째아들 하성군을 다음 왕재로 지목했고 거기에 이준경이 힘을 보태며 하성군은 선조로 즉위할수 있었다.

 

그리고 신왕은 명철하긴 하지만 그릇이 큰 인물은 아니다. 예의 바르긴 하지만 겸손한 성품은 아니다. p32  선조즉위당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가를 가늠하는 이준경의  이 독백은 앞으로의 당쟁사를 예고하는 복선이 되어버린다.

 

서자도 아닌 서손이란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의구심이 컴플렉스로 자리한 군주는  즉위후에도  신하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휘둘리며 너무도 우유부단한 처사로서 동인과 서인의 판가르기에 일조하고 있었으니 조광조의 현신을 등에업고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기대승과 원로대신  이준경의 대결이었다. 그후 심의겸을 기준으로 정철,이이,성혼의 서인과 김효원을 중심으로한  이발, 이산해, 유성룡으로 이어지는 동인의 끝나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으니 여기에서 왜 그들은 나뉘어질수 밖에 없었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앞으로의  권력대세를 가늠하는 이조정랑의 벼슬자리를 차지하기위한 암투가 시발점으로 주모자인 김효원이  서울동쪽의 건청동에 살았기에 동인이요 또다른 주모자인 심의겸이 서울 서쪽인 정릉에 살았기에 서인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한나라의 군주를 평가하고 지저분한 정치사에 곪아버린 조선의 안타까운 역사를 논하는데이어 어찌보면 이책은 서인 송익필이 주인공이기에 서인입장에서 정치를 바라보았다 할수도 있겠으나  난 그 두 세력사이의 이해관계를 떠나 사림세력들간의 처절한 암투와 그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처신으로 너무도 많은 상채기를 내고있는 선조를  바라볼수 있었다.

 

먼저 책은 서인세력의 주축둘인 송익필과 함께 이이, 성혼의 파주세력으로 시작된다. 당시 최고의 천재로 불리우며 어린시절부터 유명세를 탓던 이이와 조선의 8문장중 한명이요,450여수에 이르는 시를 남긴 최고의 시인이면서도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정계이 진출할 수 없었던 송익필, 그와는 반대로 정치의 미련은 버린채 한평생 도를 추구했던 성혼 그들의 첫인연은 같은 동리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평생을 걸어가는 동지로 발전하면서도  첨예한 대립을 보인 학문적 견해와함께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한평생 한번만 마주했을뿐인 임금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읽었던 송익필, 그는 스스로가 정계에 진출할수 없었다 뿐인지 친구와 제자를 앞세워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길을 향해 내달린다. 예학의 시초이자 서인의 뿌리요 당쟁의 뿌리였던 송익필의 한평생은 조선당쟁사의 역사였다.   군자가 아니면 소인으로 전락할수 밖에 없었던 당파싸움을 뒤에서 조종했던 요주의 인물이었다.  조선최고의 학자로 알려진 이이를 조정했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

 

우리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정철과 이이 이산해라는 조선 최고 문신들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만날수있었고 안타깝기만했던 선조시대를 제대로 이해할수 있었다.

화석정 모임, 격몽요결의 저술에 얽힌 비화, 해주의 은병정사는 물론이요 정여립 반란사건의 전모등 픽션보단 사실에 가까운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권이면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있어 큰 힘이 될것같다. 난 그 이야기를 통해 조선역사를 만날때마다 답답하기만했던 당쟁의 전말을 속 시원히 풀어볼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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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도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5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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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리정보를 만날때면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야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지리학적 특성일까 아니면 문화, 인물 ,여행이 되어야하는걸까 그렇게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내가 한달에 사달이는 책만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기만했다. 그러던차 만난책이 신정일님의 신택리지였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무슨내용인지도 모른채 작가와 제목만을  외워두었던 책중 하나였던 이중환의 택리지가 생각나매 나의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여기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부터 알아보자면  정감록과 함께 조선후기에 가장 맣이 필사된 베스트셀러였단다. 현장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지리정보들이 역사 문화 생활과 연계되며 장사하는 사람들,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 산수 유람가들등 다양한 소구대상층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란다. 그 다양성들이 현재에 적용되어 한 지역에 대한 모든것들이 포괄되어 있던책이 바로 신정일의 신택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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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권의 기획이라는데 난 작년 여름 살고싶은곳을 첫 인연으로 전라도와 경상도편에 이어 4번째로 충청도편을 만났다. 충청도는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요 남편의 고향이기도하다. 하지만 등잔밑이 어둡다고 찾아가고싶은곳을 꼽을때면 항상 등한시했던곳이었다. 충청도하면 다른곳에 비해 특색이 없다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을 조선 역사속에서의 의미를통해 진가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모습과 연계해가면서 지리적 특성과 풍수지라학적 모습들은 물론 여행의 길라잡이로까지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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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영남과 호남에 미치지 못하나 산천이 평팡하고 아름다우며 서울과 가까워 예부터 양반이 많이 살았단다 또한 조선 개국당시 조선의 도읍지로 낙점되기도 했었으며 서쪽은 바다와 인접해있어 바다물품들도 풍족했다. 한마디로 살기가 편안했던 땅이었음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반을 둔채 인문지리 내지는 역사지리학의 측면에서 이 책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 그대로 생활모습에서의 땅의 의미와 명당으로서의 풍수지리학  조선 위인들의 면면과 여행답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그 땅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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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충청도의 12대 길지부터 찾아보자면 서쪽으로 서산시 운산면의 보원사와 아래쪽으로 내려와 부여군 외신면의 무량사,  충청도의 동쪽인 충주시 소태면의 덕은리에서 가장 아래쪽으로 내려온 보은군 외속리면 한계리등으로 총 9개지역의 테마를 선정 충청도의 역사와  특성들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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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의  들머리에 실린 기록에 위하면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시대상황에 따라 영토 변경이 잦았던 땅이기도 하다.   태조 4년에 충청도라는 이름을 얻어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제의 제 2,제3의 도읍인 웅진과 사비성의 중심이었기에 충청도를 논할때면 백제왕국이 터로서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조선시대 선비와 고종이 왕이 되기까지의 남연군 묘에 얽힐 일화등이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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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첫번째는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고을을 일컫는 내포땅이었다.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곳으로 예산 당진 서산 홍성등이 이곳에 속한단다. 조선시대엔 임진왜란과 병자혼란의 두차례 난리때에도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던 땅이요 지금은 삽교호 방조제가 완성되며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낸곳이다. 1913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 예산에 세워졌으며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천하의 길지인 남연군묘가 있는곳, 추사 김정희와 윤봉길 의사의 고향이요 서산은 한해 농사지어 세해 먹고살수 있는 땅이었단다. 그곳은 또한 만해 한용운의 숨결이 어려있는곳이었고 다산의 정취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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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왜목마을 갯벌과 가야산 보덕사 남연군묘의 모습이다)

 

 

공주는 백제의 두번째 도읍지로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삐앗긴 백제가 475년에 새로이 건설한 땅이었다. 그후 538년 지금의 부여인 사비서으로 도읍을 옮긴 백제는 122년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후 멸망하게된다, 그 땅은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을 키워냈다. 그 역사와 더불어 마곡사 갑사.고란사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이 남아있던 무량사 까지 유서깊은 사찰이 있었으며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의 고향이기도했다.   

 

 



 

 

충청도는 또한 주요한 어업전지기지로써의 역활을 담당하는 대천항과 강경포구 내륙지방의 관문이었던 부강포구도등이 있고  여러 물줄기가 이어지는 속리산 , 민족의 정기가 이어지는곳 계룡산,  갑천의 발원지인  대둔산등이 있었다.

 

 



 



 

 

또한 껍데기라는 시인으로 유명한 신동엽, 옥천의 정지용 생가. 현충사의 이순신, 천안 병천의 유관순 ,조선상고사의 신채호와 조선 최고의 학자 송시열등이  얽혀있는 지역이기도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의 매력은  내고장이자 내고향에 대한 오랜 역사를 알아가매 더욱더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 12대 길지를 통해 얼마만큼 살기 좋았던 땅이었는지를 알려주고 그 유래에서 오래전 역사를 들추어내며, 한곳 한곳 천천히 내딛는 걸음속에서  우리 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업적를 찾아간다.

 

인문서요, 지리서요, 역사서요, 인물서였으며 답사길라잡이로서의 여행서까지 참으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찾아보는 다양한 매력들은  참으로 많은것들을 보게 만들고 느끼게 만드는 여러 시선들을 만들어 주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완벽한 길라잡이요, 인문서였다.  

 

 



 

 

 



 

 

그 책을 만나고  우린 첫번째로 소개한 내포땅으로  첫번째 여행코스를 잡았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 서산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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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 서울까지 - 수도의 생성부터 현재까지 파란마을 5
원시인 글.사진 / 파란하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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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수도라는 단어를 잘 알기전 난 우리나라의 서울은 왜 서울인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본의 서울은 동경, 프랑스의 서울은 파리,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모두 다른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이름없이 서울을 그냥 서울로 부르는구나, 그후 서울이 아닌 수도라는  말을 알고 된뒤에도 그냥 서울은 서울이었다.

 

그 서울은 우리나라의중심으로 시골아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꼭 가야하는곳, 떠올리기만해도 우러러보이는 동경의 땅이었다. 그후 하루의  반을 보내며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린 지금도 서울은 여전히 꿈이 이루어지는곳이며 거기에 하나더 나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역사의 중심이었다.

 

한양에서 서울까지는 600년이란 긴 시간동안 사람과 역사 궁궐등 여러 주인공들을 품었왔던 서울이 처음으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한 나라 의 수도로써 역활을 해온 상세한 이야기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1부 한양 500년 역사의 시작에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떠나 서울에 도읍을 정하게된 배경을 시작으로 궁궐터를 정하고 나라의 발전에 따라 함께 변화해온 수도의 변천사가 있었다. 이어 2부 위기의 수도 한양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위기에 몰렸던 한양, 경술국치로 피폐해져간 아픈 역사가 있었으며 3부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에선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있는 그대로의 친근한 서울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당연한 중심이었던 서울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부해보기는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을까? 수도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간 600년의 시간속엔 작은 우리나라가 있었다. 한양에 도읍을 정했던 태종이 경복궁의 기초를 다진후 태종, 세종조를 지나 면서 궁궐다운 면모를 갖추어갔고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으로 영역이 넓어진것처럼 도성을 중심으로 청계천과 마포까지  아우루던 한양은 그후 조금씩 조금씩 팽창하다 급기야 강남을 아우르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어갔다









한편으로 정조는 새부대에 새 술을 담기위해 정착한 땅이었던 한양에서 새정권 구축을 위한 또다른 술을 담기위해 그곳을 떠나려 하기도 했었으며 과거 중국은 한성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고 가까운 나라 일본은 전쟁을 빌미로  우리의 도읍을 짓밟았었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은 그렇게 600년의 우리 역사속에서 영광보단 아픈 상처가 더욱 많았던 듯해 안타까워지기도 했지만  현재 가장 우리다운 모습으로  세계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있어 안심이된다.

 

이렇듯 조선역사의 시작점 대한제국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져진곳 , 600년 서울의 모습과 문화속에서 난 우리의 민족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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