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세계사 아이세움 배움터 33
히로시 후지노 지음, 오근영 옮김, 조혜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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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 따라 세계사 *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역사를 만든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경제도 길 속에 있었고 삶도 생활도 진리 또한 그 길 위에서 완성이 되었다.

 

한국사에 익숙해질 즈음 아이들은 세계사를 시작하게 되지요. 헌데 한국사와 세계사의 공부법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대별로 이어지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는 한국사와 달리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이어지는 시대가 있는가하면 그리이스, 로마,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문화가 있고, 게르만족 , 훈족과 같은 민족도 있으며 동서양을 잇는 무역로와 세계를 제패한 무역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작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탓에 정리가 안되고 있는 것이 세계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를 알았다 싶으면 그 다음 역사와 연결이 안되고, 서양 역사를 공부하면서  동양 역사와 연관성을 찾고 싶은데 싶지가 않습니다.  다 이해했다 싶다가  다음 순간 돌아보면 아리송해지는것이 바로 세계사입니다.

 

그래서 길 따라 세계사가 참 좋았습니다. 세계사를 만날때 많이 아쉬웠던 그 부족한분을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전쟁의 역사, 나라를 구했던 영웅의 역사,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던 문명의 역사등,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여러관점들이었지요.

헌데 그 모든것들을 길에서 만났답니다.

 

세계사의 장을 연 태고의 길, 세계의 틀을 만든 고대의 길, 세상을 뒤흔든 중세의 길, 세계로 뻗어 나간 대항해 시대의 길, 인류의 삶을 바꾼 근대의 길, 오늘에 이르게 한 근현대의 길 까지 시대별로 잘 정리된 지도속에 있었습니다.  

 

 

 

 

지구는 원래 하나의 판 이었다고 하지요. 빙하기를 거치고 판구조에 변화가 있으면서 지금의 5대양 6대주로 정착이 된 것이구요. 지구가 원래 하나의 판 이었던 시절 인류의 시조는 온난한 기후의 아프리카 땅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조상은 10만년 쯤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했던 바로 그 신인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갔슴이구요.

 

그건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아시아로 진출하고 아메리카로 진출하며 인류의 역사를 만든 최초의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알아가고 이해하는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길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사의 분쟁사가 되고있는 유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모세가 이끈 이집트 탈출의 길, 종교를 이해할 수 있었던 예수가 걸어간 슬픔의 길과 아시아로 확산된 불교 전래의 길 ,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 세갈래로 개척된 동서교류의 발전을 짊어지고 문물을 오가게 한 실크로드 , 동서 문화를 융합시킨 알렉산드로 대왕의 동방 원정의 길등  길을 쫓다보면 역사가 보입니다.

 

 

 

 세계사를 한번쯤 접했던 아이들이라면 지금쯤 보고 듣고 배웠던것을 완전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될 듯하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세계사를 접한다면 앞으로의 공부가 아주 재미있어질 듯 했습니다.

 

그 길을 통해 아이들은 세계사를 정복한 번영을 가져다 주었던 길이 폐망에 이르게 하는 모습과 마주하는가 하면 유럽을 습격했던 죽음의 공포였던 폐스트의 역사 또한 제대로 이해합니다.  

 

 

 

 

그렇게 아주 다양한 세계사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지식위주의 길이 되는가하면, 재미 위주의 이야기도 되고 상식과 교양을 넓혀가는 길 또한 되어줍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어른들에게도 참 유익한 이야기였답니다.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역사를 만든다,

그 단순한 문장이 왜 진리인지를 깨닫는 순간, 세계사가 아주 재미있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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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 쿠푸 왕 vs 헤로도토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
차영길 지음, 진미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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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

 

이집트하면 피라미드가 생각납니다. 그리스 스핑크스가 있고 나일강이 있습니다.

모두들 고대문명을 이끌었던 이집트의 대표 유물이요 자연혜택입니다.

7대 불가사이 중 하나인 경이로운 유물은  5천년이 지난 현대사회까지 이집트를 인식하게 만드는 절대 강자로써  이집트를 대표하고 있답니다.

 

이집트의 역사속에서 그러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다라면 모든 나라의 역사속에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살지않았던 고대 중세 근대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통로라 할 수 있지요. 거기에 어떤 기록이 남겨졌느냐에 따라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을 이집트로 이집트로 불러들이는 피라미드 , 그것에 대한 평가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광이냐, 착취냐,  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지었을까를 통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무슨 이유로 만들었고 그것을 만들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는가라는 구체적인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았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둘러싼 세계사 법정인 원고는 기원전 2500여년전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제4왕조 파라오로써  카이로 남서쪽의 기자 지역에 세계 최고의 피라미드를 쌓은 것으로 유명한 쿠푸왕이고 피고는 그리스 역사가로 역사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는 헤로도토스 ( 수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것을 기록한 ' 역사 ' 라는 책으로 잘 알려졌답니다)

 

 

나는 사명감을 안고 ' 역사' 를 완성했습니다. 대 헤로도토스는 진실을 확인하는데 좀 더 공을 들여야 했소.  함부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역사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시게 !"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통해 쿠푸왕 자신이 피라미드의 제작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노예를 동원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한 파라오로 왜곡되었음을 바로잡기위해 소장을 제출했던 것입니다.

 

 

 

 

 

둘의 치열한 공방전속에 우리가 알아가는 것은 참 많았습니다.

피라미드를 짓는 과정에서 정말로 노동력착취가 있었는지, 고통에 죽어간 노예들이 엄청났던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사실을 넘어 고대 이집트 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왜 피라미드를 지었을까

쿠푸는 극악무도한 왕이었을까 ? 라는 주제속에서 역사서의 기록에 대한 본질과 이집트 최고 문명에 대한 모든것을 살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를 이야기 하기위에서는 이집트 인들이 신봉했던 신들의 이야기가 전제가 됩니다.

 

이집트인들은 여러 신을 숭배한 것으로 유명한데 태안의 신 라, 죽음의 신 오시리스, 악의 신 세트, 또다른 태양의 신 호로스등이 있습니다. 그 중  이집트의 모든 국왕은 살아있는 호루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국왕인 파라오가 신으로 불리운데는 이집트의 축복이었던 나일강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1년에 한번씩 범람하는 나일강 , 꼭 비가 와야만 했던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신의 뚯에 따른 자연 현상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써  그 신에게 가까운 존재인 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나일강의 범람은 또한 피라미드의 제작을 둘러싼 선과 악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도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살아 있을때는 반 신으로 모셔졌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신이 되었구요. 그렇기에 죽은 후 묻히게 되는 피라미드는 신의 제단이었던 것 입니다.

즉위하면서 시작한 공사는 죽을때 까지 이어졌고 죽은 후에는 완전한 무덤이 되어 왕가의 계곡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러한 피라미드 공사는 정말 헤르도토스의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쿠푸왕의 폭정이었던걸까 ?

 

거기에선 우린 역사서 기록에 대한 본질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인이 쓴 이집트의 역사, 그리스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누군가가 들려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 아닌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 확인을 거친 진실들만은 기록해야 된다라는 것을요.

 

 

 

 

 그 이야기는 중학교 사회 역사와 역사연구, 오리엔트의 고대문명과 고등학교 세계사 문명의 발생과 연계되고도 있었으니 배경 지식을 통한 폭넓은 상식과 지식의 습득에서 교과와 연계한 학습으로까지 확실한 학습의 마무리를 해 주었답니다.

 

 

 

왜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들을 지었을까 ?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속에서 아이들은 역사와 역사서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대로 익힐수가 있었음은 물론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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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을까? - 크세르크세스 vs 레오니다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3
박재영 지음, 조진옥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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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부터 불어닥친 한류열풍은 갈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를 거쳐 현재는 유럽까지 우리나라를 알리는 매개체가 되어서는 세계각국의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등공신이 되었지요.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올림픽 또한 세계속에서 자국을 알리는데 큰 역활을 하곤 합니다.  문화 아이콘은 그렇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홍보대사가 되어주곤 하는데 그것이 좋은 모습이 아니라면 ~~ 좋았을 때 누리게 되는 효과보다 훨씬 더 악 영향이 있을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영화 300을 아시나요 ?. 영화에 그닥 관심이 많지 않은지라 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이슈가 되었던 영화인지라 그러한  영화가 있다라는 사실만큼을 확실하게 알고 있답니다.

 

그 영화의 배경은 바로 페르시아와 그리스간의 싸움이랍니다.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 군사를 맞이한 스파르타 정예부대의 맹렬한 전투였지요.

 

사실에 근거를 둔 영화일 경우 흥미와 호기심을 블러일으키기 위해 좀 더 극화한다는 것 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특정 직업과 나라를 다루는 경우 누구의 입장이냐에 따라 정말 첨예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세번째 책  ' 왜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을까 ? ' 는 영화 300을 모티브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간의 치열했던 전재의 배경속에서 당시의 세계사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세계사를 공부할때면 꼭 거쳐야 하고 중요하게 공부하는 시대와 나라가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이지요.

그리스와 로마가 유럽을 대표한다면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지역에서 부흥했던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답니다. 초반 페르시아가 부흥기를 맞이하며 세계를 이끌어 갔으나 결국엔 그리스 로마에 의해 세계가 평정화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유럽 중심으로 흘러갔지요.

 

그 결과 헤르도토스의 역사서 ' 역사' 속 오류가 있는가하면  영화 300과 같은 문화아이콘이 생성되기도 하지 않았나 싶답니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가 수백개의 폴리스로 분류되어 있던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고의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종목으로 선택된 마라톤의 유래가 된 마라톤 전투, 영화 300의 배경이 되고있는 테르모필레 전투등 이겼음에도 결국은 패배한것으로 비춰진 역사를 통해 많이 왜곡되었음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는 전제주의와 노예제도에 입각한 야만과 폭력의 세력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그리스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갔다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되었구요.

똑같은 나라요, 똑같은 사람이요, 똑같이 전쟁을 치뤘음에도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 하기위해 상대편을 더욱 나쁘게 몰아갔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정복전쟁이 펼쳐졌던 시대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왕 크레르크세스와 그리스의 영웅이요 스타르타의 왕인 레오니다스, 그 둘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가는 동시에 아시아와 유럽, 정권의 흐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역사 속에서 진실을 바라보는 눈까지 읽어나아 갔습니다.

 

누구의 편이 아닌 진실된 역사였지요. 

   
 

 

 

 

역사를 알아갈수록 세력의 힘이 너무나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으니 왜 배워야 하고 지켜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미까지 되새겨 볼수가 있지 않았었나. 그렇게 공부의 의미를 알고나니 더욱 재미있어 지는 공부가 되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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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 우씨 왕후는 두 번 왕후가 되었을까? - 발기 왕자 vs 우씨 왕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6
김용만 지음, 이동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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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중심이 되어있는 역사속에서 등장하는 여인네들은  그 숫자가 너무나 미미합니다. 그나마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바자면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천추태후, 장희빈등 주로 악역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지요. 빈번한 전쟁과 권력의 소용돌이속에서 연약한  여자가 견뎌내기란 너무나 힘들었을 터 그래서 역사속에서 여인은 언제나 약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그렇게 버거운 정치판에서 고구려 시대 두번이나 왕후에 올랐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9대왕이었던 고국천왕의 부인이자 그의 동생인 산상왕의 부인이었던 우씨왕후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두형제를 지아비로 섬긴일이 가능했었냐구요 ?. 네 고구려시대엔 형사취수혼이라는 전통이 있었기에 흠잡힐만한 일은 아니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순리였던 시대였지요.

 

허나 그렇게 두번의 황후 자리에 오르는동안 피해를 본 사람이 있었으니  고국천왕의 바로 아랫동생 발기왕자 였지요. 우씨왕후가 고국천왕 사후 두번째로 결혼했던 산상왕은 두번째 동생인 연우왕자로 그건 형사취수혼의 전통에도 어긋날뿐만아니라  차기 왕의 서열 또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둘이 한국사법정에서 만났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초등고학년 역사서 , 역사속 여인들의 이야기 . 왜 고구려 우씨왕후는 두번 왕후가 되었을까 ? 라는 책 이야기지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책, 중학교 국사, 고등학교 국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그 법정투쟁속에서 자세하게 조명을 해갑니다.

 

 

 

 

 

초기 고구려는 소노, 절노, 순노, 관노, 계루의 5개부족에 의한 연합국가의 성격이 강했었습니다. 그에 반해 왕권은 미약했었지요. 우씨왕후가 살았던 고국천왕시절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왕후는 자신의 부족세력을 믿고 왕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었다는군요. 결국 왕권을 넘보는  연나부에서의 모반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는데 결국엔 5부족 체제의 멸망을 부르며  왕권강화의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속에서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황후는 자기의 살 방도를 찾기 시작했지요

거기에서 발기왕자와 대립이 생겨났으며 후일 역사적 심판을 받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린 당시의 증인과 증언들을 참고로 고구려와 고려 조선에 이르는 역사서의 집필방향과 여인네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그리고 고구려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가 있었습니다

 

 

 

 

법정에서의 대립된 두 모습사이로 교과서 안과 밖의 이야기등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주는 것 또한 간과하지 않은 채로요.

 

 

 

고구려 10대  임금이 되었어야 할 발기왕자는 우씨왕후의 음모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니  잃어버린 왕권을 되찾기위해  후한의 세력을 끌어들이며 되려 반역자로 낙인찍히기에  그 모든것이 우씨왕후탓이라 법정투쟁을 벌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에 대응하여 우씨 왕후는 자신의 행동은 정당했으며 역사속에서 여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평가 또한 잘못되었다 주장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렇게 대립된 상황에서 마주하는 역사는 보편적인 지식으로만 받아들일대보다는 더 깊이감이 있고 재미있습니다. 또한 분면 둘만의 이야기였건만 산산왕과 돼지를 잡은 여인네와의 인연,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고구려 최고의 재상인 을파소등 등장하며 역사적 연결고리가 완성되어 갑니다.

 

더불어 고구려시대의 주택,의복, 음식, 벽화등 다양한 문화까지 짚어줍니다.

 

 

 

 

역사 속 여성 정치가는 정말 무능했을까 ?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 우리 민족은 여인에 대한 평가와 신분이 달라지지요. 우씨왕후의 모습에서 그렇게 시대에 때에 달라지는 여성상 또한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우씨 왕후의 행실은 비판받아 마땅한지. 나의 결정은 고구려를 위한 것이었다라는 주장이 맞는건지

3번에 걸쳐 진행되는 재판과정속에서 스스로 판단해 가봅니다.  그렇게 책은 선과 악으로 분명한 구분을 짓고 있는 역사보다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전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역사를 일깨워 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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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제의 칠지도가 일본에 있을까? - 백제인 vs 야마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
이희진 지음, 박종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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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의 비밀 / 백제는 황제의 나라였을까 ?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교과서 속 역사이야기, 법정에 서다

 

일본에서 발견된 백제의 칼. 칠지도  백제의 왕은 왜왕에게 하사한 것일까 아님 진상한 것일까 ?

일본과 중국에 얽힌 역사를 만날때면 무언가 답답함이 가슴 한켠을 누르고 있곤 합니다.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것과 같은 맥락으로 칠지도 이야기를 만났으니까요 .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감각과 사고력 논술을 정리해 갈 수 있는 풍부한 바탕지식들을 토대로 칠지도에 얽힌 상반된 주장을 증명해가는 한국사법정을 만나면서 아 ~ 지금껏 아이들이 만난 역사는 특별한 사건과 연표등 외워야하고 기억해야하는 객관적인 사실들뿐만 이었구나. 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서가 아이들의 논술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되겠구나 !.

 

 

 

 

 

 

칠지도가 발견된 곳은 이소노카미 신궁이었으며  백제의 부흥기를 맞이했던 근초고왕과  일본서기라는 최초의 일본서를 편찬했던 진구 황후와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칠지도에 얽힌 두 나라의 입장을 읽어나가면서 내내 마음이 답답했던것은,  역사라는 것은 분명 객관적인 기술이어야 마땅하나  자국이 유리한 입장에서 쓰여졌음이요, 받아들여졌을것 이란 사실 또한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사실 속에서 일본보다 백제가 우위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신라와 고구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평가받고 있는 백제의 우수한 문화에 대한 사실들을 보게 된 듯 합니다.  

 

 

 

우리의 옛 역사는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일본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구려,백제, 신라 삼국으로 형성되었던 시대는 그 복잡함이 더해졌구요.

헌데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기록들은 극히 미비하지요.  거기에서  기록문화의 꽃을 피웠던 조선시대의 문화유산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랜시간동안 이어지고 있고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분쟁, 게다가 정확한 답을 찾기는 더욱 힘든 역사, 그렇기에 알려진 객관적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하여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문제가 칠지도는 하사인가 진상인가 였습니다.

 

1873년 금기의 문이 열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를 드려낸 칠지도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역사의 진실과 함께 역사서를 바라보는 시각과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본질에 대한 사고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 주입식 역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역사였지요.

 

 

 

 

객관적인 고증자료들,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편견들, 거기에 교과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라는 상황까지 포괄하여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그 시선의 질을 높여줍니다.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 했었고, 그 속에서 신라의 후손이었던 대신들은 신라의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헌데 삼국중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 백제는 애석하게도 우수한 문화를 꽃피웠음에도 남겨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제 백제의 문화를 잘 모르고 있는 이유였지요.

 

과연 백제는 황제의 나라였을까 ?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각종 자료와 논제들을 통해 그 마지막 결론은 내는 것은 아이들 각자의 몫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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