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 - 아르키다모스 vs 페리클레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6
육혜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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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 ?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지연되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키게된다.   100만 대군과 맞서는 무모한 싸움. 그러나 스파르타의 위대한 용사들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 불가능한 이 전투에 맹렬히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건다! . 전설이 된 전투, 그들의 용맹함이 마침내 빛을 발한다! 모두들 각오하라!!

 

- 이상은 2007년도에 개봉한 영화 300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 용맹함과 전투력에 무척이나 놀랐었던 기억이다.

 

 

200여개의 폴리스로 구성되었던 그리이스의 고대문명은  영화 300의 주 배경이 되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발전된 나라였다. 하지만 우린 민주정치를 비롯하여 영화 300의 배경인 페르시아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이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은 늘 아테네가 되고있을뿐더러 무서운 나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왕은   세계사법정에서 그 억울한 편견을 해소하고자한다.

 


 

 

서족으로는 발칸반도 동쪽으로는 아나톨리아 해안을 비스듬히 낀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 그리이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한 폴리스 동맹국이 형성이 되었었다.

 

그리이스를 침공한 페르시아를 막기위해 두 나라의 중심은 델로스 동맹으로 하나가되어간 후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하나 그 후 다시 분열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44년간 지속되었던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이스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이 깨져가는 과정엔 공동기금인  공납금을 둘러싼 분쟁과 불만등이 누적으로 의도는 아니었으나  결과론적으로  아테네의 발전을  바라봐야만하는스파르타의  불편한 심기도 한몫했음을 알게된다.

 




 

 

그렇게 27년간 그리이스는 또 전쟁중이었다. 결국 페르시아의 자본원조를 받은 스파르타가 최종 승리하는 순간까지~

그러한 전쟁의 과정을 통해 우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두 나라의 상황과 문화 정치에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만난다. 역사가 그러하지만 특히나 세계사를 공부할때면 전쟁을 이해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되는데 펠로폰네소스전쟁의 배경과  과정 결과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발전해간 그리이스의 역사가 있었다.

 


 


 

 

민주정치와 과두정치의 대비, 문화와 군사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통해 두 나라를 알아가게되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이 그리이스와 로마인데 그 중  그리이스의 역사는  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을까, 왜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을까, 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라는 시리즈를 만나다보면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는데는 아주 큰 도움이 되고있었음이다,

 

스파르타는 10%의 시민이 90%의 노예를 통제하기위해 평생 전사가 되어야만 했던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폭력과 전쟁만을 일삼았던 나라는 아니었으니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을 통해 그 진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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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민왕의 개혁 정치는 실패했을까? - 기철 vs 공민왕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0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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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무신의 배경이 되고있는 고려시대,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논하다.

 

무신정권과  몽골침입에 시달리다 위화도 회권으로 멸망해간 나라 고려는 그러한 위기속에서  강력한 개혁정치로 잠깐의 횃불을 밝혔던 시대가 있었으니 바로 공민왕 집권기였다.

 

고려라는 나라를 그냥 놔두는 조건으로 왕의 옹립과 폐위등 내정간섭을 일삼았을뿐 아니라 공녀와 공물을 요구하는 등 수많은 수탈을했던 원,  오랜 전쟁과 무신정권 체제하에서 약해질대로 약해져버린 왕권을 강화하고 침략과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왕은 결국 계획했던 개혁들이 실패로 돌아가며 자멸하다시피 최후를 맞이했었는데.

 

노국공주, 신돈, 기철과 기황후, 성리학의 출발등 역사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복잡했던 공민왕시대의 고려역사는  아이들에겐 외우는 공부가 아닌 이해해야만 하는 어려운 공부이기도 하다.

 

요즘 그러한 공민왕 시대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있으니 배우 이민우의 팬임을 자처하는 큰 딸 덕분에  월요일과 화요일만되면 재미없다, 재미없다를 연발하면서도 꼭 챙겨보는 신의가 그것이다.

 

하늘의 의원이라는 여인만이 첨가되었을뿐 덕성부원군 기철과 , 덕흥군, 노국공주, 공민왕등 역사속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줄거리 또한 원과 내정간섭속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공민왕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역사적 도움이 되던차  자음과모음의 한국사법정시리즈 20번째 이야기였던 왜 공민왕의 개혁 정치는 실패했을까 ? 라는 책을 통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시리즈는 역사속 맞수였던 2명의 인물이 피고와 원고가 되어 벌이는 법정다툼속에서 사실을 기반으로 한 배경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게 만드는데 20번째 두 인물이 바로 공민왕과 기철이었다. 

 

공민왕은 정말 개혁을 했던것일까, 아님 왕권을 강화하여 일신의 안위와 권력만을 가지길 원했던것일까?

기철의 반론을 통해 공민왕의 개혁정치와 당신의 고려사를 조목조목 정리해가게된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기철과 기황후, 그 둘의 대립속에서 첫번째로 조명하고 있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총독부와 내정간섭이 심했던 원 시대의 정동행성의 비교였다.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명령에서 공민왕이 하고자했던 개혁들이 가능하게 하기위한 현실을 말한다.

 

  

 

 

 

변발을 하고 몰골의 옷인 호복을 벗어버리기까지의 과정,  기철을 제거했음에도 10년 동안이나 계속하여 조공을 바쳐야 했던 이유, 권문세족으로부터 토지를 압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업적,  공민왕의 개혁과 죽음이 고려의 멸망에 미친영향등 무조건 외워야만했던 지식들이 이젠 이해가 된다.

 

이어 공민왕을 논할때면 함께 등장하는 노국공주와의 사랑은  타지마할과 비교, 세기적 사랑으로 그려내고 있었으니... 

 

 

 

 

 

 

신돈의 처형으로 살펴 본 왕의 자질, 사후 문제가 되었던 우왕과의 관계등 그를 둘러싼 의문들을 완벽하게 정리를 해갈수 있었슴으로  알고있던 사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한번 더 뒤짚어보는 과정은 있었던 사실들을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단 자신들의 생각을 집어넣는 연습을 할수도 있었던 듯하다.  고려사속에서 가장 공부할것이 많은 시대의 확실한 이해는 고려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조선개국의 과정또한 엿보게 만들었었다.

 

중학교 2학년 제대로 된 역사수업을 버거워하던 아이에게 한국사법정은 재미를 주는 동시에 확실한 이해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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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 이규보 vs 최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8
최연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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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 (고려사)

 최우와 이규보의 대결속에서 팔만대장경의 제조 배경을 찾아가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때가  고려시대이다

 

역사 유적지가 없다라는 이유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그동안은 드라마에서 다루어지지 않던 시대였다가   무신, 신의와 같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면서 부쩍 고려시대에 관심을 가지게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덕분인지 아이가 요 근래 참 재미있게 만난책이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8편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였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나면서 느낀건 그동안  팔만대장경이 있다라는 사실만을 인지했을뿐 정확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다라는 사실이었다

 

알려주는 사실만을 주입했던 방식의 상식들이 아직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라는...

그렇게 당연한 역사를 왜라는 생각속에 몰아넣으며 사고하게 만들고 되짚어 보며 지식의 깊이를 주고 있어 역사공화국 시리즈가 참 좋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시기는 1236년 몽고장군 살리타이가 고려를 침공했을 당시였다.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있던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당하던 1011년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약으로 불에 타 소실된 후 4년 뒤 고려는 팔만대장경 조판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는 우리나라의 우수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합천  해인사의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중이다. 





 

고려자기와 함께 고려의 위상을 말해주는 팔만대장경, 거기엔 고려와 몽고, 무신정권과 고려왕조, 강화도 피신과 같은 당시 고려사의 모든것들이 집약되어있었다.

 

고려는 불교의 국가였었다. 게다가 거란의 침입당시 초조대장경을 완성하며 침략으로부터 벗어났던 경험은 대장경의 힘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리타의 첫번째 침입때 불에 타 소실되면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칠 새로운 힘이 필요하게된다.  책에서는 그  팔만대장경 제작은 과연 누가 주도했을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속에서 당시 고려와 몽고의 관계, 백성과 무신정권 왕권의 3각구도를 들여다 본다.  


 

 

 


국보 32호로 지정된 불교경전의 총서 1237년에 시작하여 1248년까지 무려 11년에 걸쳐 간행되었으니 8만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 대장경이라고 불리운다

대장도감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여, 강화도 성 서문 밖 선원사를 거쳐 ㅈ선 태조때 해인사에 옮겨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것이 백성의 주도였을까, 아님 제 2대 무신정권이었던 최우인가? , 미약한 권력이나마 왕권을 유지했던 고종의 명이었을가 ?

 

그동안 살펴볼 생각을 못했던 대장경의 간기엔 그 비밀이 숨어 있었다.

 

 


 

 

누가 언제 조판을 했는지, 왜 했는지에 대한 비밀들, 그 속에서 우린 누구 한사람이 아닌 (최우) 권력을 쥐고 있던 없고의 상관없이  고려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염원했던 작업이었음을 알게된다.

 

또한 "  황제의 명을 받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 라는 문구를 찾음으로써 고려가 화에의 나라임을 알게되었다.

 

 

 

 

 

가장 흔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벚나무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 그 유물의  제작과정에서 우린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접한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풀어가는 역사지식 역사공하국 한국사법정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편견을 갖기 쉬운 역사를  전방위적 접근으로써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지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가 아닌, 팔만대장경을 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제작과정에서의 정성과 마음,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담긴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그 속에서 팔만대장경을 제대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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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을까? - 콘스탄티누스 1세 vs 메메트 2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22
김차규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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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을까 ?

 

아이들에게 역사는 어떤 나라가 있었으며 어떤인물이 있었고 몇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공부입니다. 생각할것도 없이 무작정 외우기만 하는 공부이지요.

헌데 앞에 왜, 라는 한 글자를 붙여놓으니 암기가 아닌 사고가 되어갑니다.

주입식이 아닌 생각하는 공부, 재미있는 공부가 되어줍니다.

 

자음과모음의 역사 학습서리즈 세계사법정은 그렇게 고정관념으로 박혀버린 역사적 사실들을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 22번째 이야기는 1000년의 번영을 누렸던 비잔티움 제국입니다.

해상, 육상교역의 요충지인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십자로에 위치해 상업적 부와 함께 제국의 번영을 누렸던 제국은 왜 멸망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짚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비잔틴 제국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뒤, 동·서로 분열된 중세 로마제국 중 동로마 제국을 말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얼마 못가고 멸망한것과 달리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1000년의 번영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다 오스만제국의 메메트 2세 술탄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지요.

 

 

 

 

세계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로마사였던만큼 그 배경은 어렵고 폭넓습니다.

절대 영원할것 같았던 제국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게르만족과 페르시아, 투르크족으로 확장되는 이야기, 그리고 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 십자군원정등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튀르크족의 소아시아 정복은 정단한가 ?

오스만 튀르크족의 발칸반도 정복은 정당한것일까 ?

매메트 2세는 왜 콘스탄티노블을 함락시켰을까  ?

 

총 3번의 재판을 거쳐 메메트 2세와 콘스탄티노플 황제가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정복과 멸망의 과정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능한 싸움을 위한 전략도 있었으며, 배경 또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밀라노 칙령입니다. 313년 비잔티움제국을 새운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발표한 명령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법안이었습니다.

그건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보호되고 장려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또한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였습니다. 

  

 

 

몽골인의 침입을 피해 비잔티움 제국에 스며들었던 튀르크족을 받아주었던 비잔티움 제국은 결국 그들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그 기나긴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는 주변 정세, 원정의 손길이 닫지않던 국가위상, 새로운 국가의 부상등 충분한 배경지식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멸망을 했다가 아닌 왜 멸망을 했을까 ?

침략을 했다가 아닌, 왜 침략할 수밖에 없었던걸까 ?

밀라노칙령을 발표했다가 아닌 , 그 명령으로 인해 어떤 변화가 있었던것 일까를 알아가는 공부입니다.

그 이야기 중간중간 다양한 상식이 이어지고 교과서엔 어떤식으로 수록되어있는지를 알려주니 교과와 연계하기에도 좋습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돌려주시오, 해결해야 될 역사의 과제가 아직도 많군

 

3번에 걸친 모의 재판 결과 역사적 사죄와 이스탄불 반환 요구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사지만 중국와 일본의 영토분쟁, 일본과 우리나라간의 독도문제가 불거진 지금의 현실과 맞물려 우리의 역사와 지금의 처세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역사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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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세 농노는 해방되었을까? - 와트 타일러 vs 리처드 2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21
문우일 지음, 이남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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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21권 왜 중세 농노는 해방되었을까 ?

 

 

우리나라에  소설속 홍길동과 의적 임꺽정이 있었다면 영국에는 전설적인 의적 로빈훗이 있었다. 셔우드의 숲속에 부하와 함께 은거 귀족과 승려등을 습격하여서는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인물로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 미국의 로빈 후드의 모험들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 로빈훗이 살았던 시기가  중세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의미는 달랐으나 지배자인 영주를 중심으로 지금의 촌락과 같은 형태의 장원이 중심이 되었던 사회, 농민의 대다수가 평생 영주에게 예속되어 각종 의무만을 떠 안아야 했던 고달픈 삶을 살았던 시대말이

 

학창 시절, 봉건사회와 장원, 영주와 기사도와 같은 단어들을 주억거렸던 그 시대... 참 많이도 암울했었다. 그림과 문학등 예술작품을 만나도 어둡기만 한 시대였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21권 왜 중세 농노는 해방되었을까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이제서야 제대로 바로본다.

 

대립된 두 인물이 벌이는 모의 법정에서 역사를 알아가는 공부는 왜,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 리얼하다. 반론이 이어질때면 답답하다가도, 정당한 판결을 이끌어가는 과정엔 역사의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니 말이다.

 

 

 

 

 

 

농노해방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리처드 2세를 항하여 영국 역사상 최대 농민 반란을 주도했던 와트타일러가 소송을 제기했다.

왜 리처드 2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일까?. 그 과정에서 중세의 유럽문화의 이해 함께 당시의 사회구조를 들여다 보게된다. 먼저 책은 한국사 연표와 세게사 연표를 통해 한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하게 만든다.

 

  

 

 


 

 

번성기를 누렸던 로마제국이  둘로 갈라지면서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이 된 후 지금의 발칸반도와 소아시아 지방 일부로 영토가 확장된 동로마는 비잔틴 제국이라 불리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유럽의 중세시대였다. 그리고 그후 몇백년의 시간이 흘러 리처드 2세까지 변화해가는 중세의 문화를 들여다 보게된다.

 
 

 

 

 

 

 

황제는 영주이자 귀족이 주군이었으며,  그러한 영주는 황제를 받드는 동시에 농노들을 지비했던 관리였다. 농노들은 군사의 의무를 안하는 대신 농노는 경작의 의무, 부역의 의무, 공납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으며  그 외로도 다양한 의무에 속박당한 삶이었다.

영주의 욕심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아왔으며 의무를 수행해야했는지  흑사병의 창궐로 인해 인구감소, 농사법의 발달로 인한 농작물의 증가등과 같은 사회적 변화속에서도 소외당했었는지를 배경지식들을 통해 이해해 가게된다.

 


 

 

 

 

 

감히 절대권력에 도저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맞서 왜 농노 해방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주장하는 와트 타일러의 모습은 흡사 조선말 우리나라의 동학혁명이 떠오로는데 결국 그들은 성공을 했고 우리는 실패했음이 비교가 되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껏 만나왔던 역사공화국가 달랐던 점이 있었으니 옳지않음을 알면서도 변호하고있는 인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그건 법체계의 허점과 함께  유럽의 중세사회가 얼마나 많은 폐단과 영주의 욕심이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이해할수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실생활에서 접할 일이 없었던 세계사를 만나며 많이 당황스러워들 한다. 그 때 좀 더 체계적이면서도 논리정연한 이야기로 이해의 폭을 넓혀지고 재미를 찾아주는 책이 자음과 모음의 세계사법정시리즈였다.

대립된 두 인물의 자기방어적 진술안엔 역사에 대한 사고력과  함께 제대로 된 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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