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1시간 독서법 - 시간관리 전문가 정소장의 직장인 특급 독서 전략
정소장 지음 / 미다스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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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런 책을 읽고 나서 항상 느끼는 바지만,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자기계발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제목이 독서법, 그것도 퇴근 후 한 시간 독서법이라고 하니 독서 시간 확보가 가장 중요한 직장인으로서 호기심이 생겨 빌리고 말았다.

역시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독서를 하는가?

저자는 계속 목적이 있는 독서,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강조한다.

49세가 평균 은퇴 나이인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무기로서 독서를 하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진짜 실력을 쌓으려면 이런 자기계발서 읽을 시간에 업무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실력은 단순히 책을 읽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일처리를 잘 해냈을 때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다.

트렌드에 관한 사회과학 서적을 볼 수는 있겠지만 하여튼 이런 자기계발서 읽어서는 절대로 앞날을 준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책은 저자처럼 자기계발 강사가 될 때는 필요하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쓰는 것, 더 나아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 최고의 생산활동이라는 말은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요즘 범람하는 책들을 보면서 너무나 많은 책들이 쉽게 출판되어 책공해에 시달리지는 않나 의심스럽다.

1인 미디어, 개인 블로그의 진화라고 이해해야 할까?


저자의 말에 동의했던 점

1) 새벽보다는 퇴근 후 독서가 낫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실패 확률을 보면 알 수 있다.

퇴근 후에 한 시간씩 읽겠다고 시간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읽으라는 말에는 반대한다.

한 권의 책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것이라 단숨에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매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덩어리 시간을 확보하여 적어도 하루 이틀 내로 끝내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10분 20분 이런 자투리 시간은 한 권의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파편화 된 시간들이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게 생각보다 눈이 많이 피로하다.

나도 젊어서는 차에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요즘에는 절대로 안 본다.


2) 저자는 속독을 경계하는데 책 읽는 속도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수준과 내가 갖고 있는 배경지식에 달려 있다.

이런 자기계발서는 한 시간 안에도 다 읽을 수 있다.

내용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려운 책은 아무리 빨리 읽으려고 해도 진도가 안 나간다.

속독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쉬운 책은 빨리 읽히고 어려운 책은 저절로 천천히 읽히기 때문이다.


3)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발췌독을 하라.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으라고 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데 지루하고 어려운 책은 중간을 읽고 앞뒤를 읽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저자는 책을 사서 지저분하게 보라고 하는데 한동안 나도 책을 구입해 열심히 메모를 하고 밑줄을 그었었다.

그런데 몇년 후 다시 보려고 하니 너무 지저분해 보기가 힘들었다.

다시 읽을 때는 반드시 그 부분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책을 사서 보관하면 자주 볼 것 같지만 계속 신간이 나오기 때문에 생각만큼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나도 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궁금해 확인해 보고 싶을 때가 있어 빌린 책들은 이 점이 아쉽다

그렇지만 정 궁금하면 다시 도서관에서 빌리면 된다.

나는 많은 독서를 하고 재독도 하지만 기껏해야 두 세 번 정도 더 읽을 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고양이 빌딩 같은 거대한 서재를 갖지 않는 이상 책 구입은 확실히 공간의 한계가 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왕성한 호기심 때문애, 또 책 자체가 너무 좋아서다.

궁금한 게 많아서 알아 보려고 책을 읽는다.

독서 자체가 너무 좋고 일종의 취미인, 순수한 의미의 독서다.

그러니 수단으로서의 독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와는 별 상관이 없는 셈이다.

내 생각에 단순히 책을 읽어서 경쟁력 있는 직장인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처럼 자기계발 강사로 나서지 않는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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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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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에 나온 책인데 아마도 2002 월드컵 열풍 때문에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에 관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무나 좋아하는 주경철 교수의 책이라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너무 옛날에 출간되서인지 시의성에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본 파리 역사는 본인이 유학을 한 곳이라 그런지 훨씬 생동감 있고 재밌었는데 반해 네덜란드 편은 수박 겉핥기 느낌이 든다.

네덜란드 사회에 관한 1부는 솔직히 너무 뻔했고 대신 역사를 다룬 2부는 역시 전공 분야라 그런지 상세하고 분석적이라 도움이 많이 됐다.

16세기의 독립운동과 17세기 시민사회의 형성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18세기부터 진행된 인도네시아와 아메리카 식민 지배의 역사도 같이 나와 유익했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하멜 표류기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중국으로 파견된 마태오 리치 등의 선교사들이 학문이나 기술적으로 우수한 인력들이라 황실에 고용된 반면, 표류된 선원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 국왕 행차시 의장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재밌다.

지금도 평균 신장이 180을 넘는 인종이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우람해 보였을 것 같다.

하멜 표류기가 출간된 후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조선은 너무 가난해 특별히 교역할 것이 없다는 평이 실렸다고 한다.

확실히 군자가 다스리는 나라라 청빈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초기 자본주의 시절 노동자들이 14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판단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정작 도시에는 먹고 살려고 농촌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실제로도 시골에서 보다 삶의 질도 나아졌다고 하니 표면적인 현상만 가지고 비판할 일은 아닌듯 싶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하는 오랜 독립전쟁 과정을 보면서 독립은 외교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수반하는 강력하고 끈질긴 투쟁 끝에 쟁취하는 엄청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영세중립국이자 알프스 산속의 평화로운 나라일 것 같은 스위스가 가장 용맹한 용병들의 나라였다는 게 생각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 복지정책의 많은 부분이 가스 발견에 의한 소득 상승에 있음도 슬쩍 언급한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와는 다른 경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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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 / 수막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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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계속 읽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지루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이 책도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두껍기도 하고 지루해 보여서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읽었는데 매우 만족한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과연 원시 시대가 낙원이었을까?

아르카디아는 환상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계급이 없던 원시시대가 사실은 국가시대 보다 훨씬 잔혹했다고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밝히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제도와 협의를 통해 제어하지 못하던 무문자 시대, 비언어적인 시대였으니 갈등이 생기면 쉽게 폭력으로 번졌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 법정 소송에 관한 책을 읽으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폭력이 동원되고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일어나면 살상력 때문에 현대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 같지만 전체 인구 집단의 비율로 보면 오히려 원시시대가 더 높았다고 한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집단의 규모가 작아 전사들이 죽고 여자들이 포로로 잡혀 가면 금방 와해되고 만다.

인구 규모가 큰 현대 사회는 아무리 큰 전쟁이 일어나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원시사회는 말 그대로 사회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원자폭탄이라는 끔찍한 참살 이후에도 다시 일본이 재기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부양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포로들을 잡아 놓지 않고 즉시 죽이는 쪽을 택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여러 원시 사회들을 연구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원시사회는 전투력 자체만으로는 딱히 현대 국가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나 전쟁이라는 전체 규모에서 보면 인구수와 보급에서 딸리기 때문에 졌다고 한다.

군사들을 계속 보급해 주고 식량을 댈 수 있어야 장기전이 가능한데 원시사회는 총력전이 불가능한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말핬다.

그러고 보면 국력이 곧 전투력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매우 호전적인 일본이나 독일이 결국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진 것을 보면 말이다.

낭만주의 원시인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이상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용맹한 전사도 전쟁 자체를 즐기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로운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 잘 협력하여 갈등을 풀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국제기구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총격 대신 외교술의 발달을 통해 매우 어려운 균형인 평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인간 발전의 중요한 문제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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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 석학인문강좌 54
김경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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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이 책도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라 잘 쓰여진 역사책은 마치 한 권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3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밀라노 칙령의 배경과 비잔티움 제국의 성립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알기 쉽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번역서가 아니라서 더 쉽게 다가오는 듯하다.

저자는 내용이 너무 자세하여 교양서로 부적합 할까 봐 우려하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잘 쓰여 있다.

좋은 책은 내용이나 형식과는 상관없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하면 기독교를 공인하고 십자가의 환영을 보고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개종자가 아닌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를 찾아내 교회를 지어 성녀로까지 추앙된 분이다.

꼭 기독교적 측면이 아니라 해도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4황제 체제의 난립상을 해결한 중흥 군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저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점진적으로 바뀌어 갔다고 설명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밀라노 칙령이 당시에는 없었고 16세기 이후부터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황에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영토를 기증했다는 문서가 가짜였음이 훗날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갈레리아누스 황제 때 내려진 기독교 관용령을 밀라노 회담 때 동방 황제였던 리키니우스와 함께 다시 지키기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지러진 제국을 다시 그러모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천도까지 한 이 강력한 권력 의지를 가진 황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만으로 기독교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제국 내에 널리 퍼져 있고 동방 황제와의 경쟁 속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해 전대에 있었던 관용령의 시행을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게 진실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태양신을 숭배했는데 313년 이후에 발행된 주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고대의 여러 잡다한 신들이 점점 하나의 최고 신, 즉 일자론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가장 상위의 높은 신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유일신이 좀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양신도 그러한 일자론의 표현인 셈이고 예수 탄생일이 태양신 축제에 맞춰진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바뀐 셈이다.

권력 의지가 강했던 콘스탄티누스는 경쟁자들을 다 처단한 후, 이복아들과 아내마저 반역 혐의로 죽이고 말았는데 이런 강력한 왕권의 지지를 위해 유세비우스의 황제교황주의를 선호했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론이 확립되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아리우스파는 쫓겨 나지만, 마치 호국불교처럼 황제를 신앙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는 유세비우스의 정치신학을 받아들인다.

그가 정말로 추구했던 것은 기독교적 신앙이 아니라 제국의 통합, 안정화, 절대 권력이었던 셈이다.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듯 흡인력 있는 문장에 빨려 들어 단번에 읽었다.

역사는 정말 너무너무 재밌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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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의 美 - 일본미술의 혼
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이세경 옮김 / 이다미디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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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키요에에 관심이 생겨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 리뷰를 보니 2011년에 읽었던 모양이다.

문득 다시 봐야겠다 싶어 빌리게 됐는데 재독인데도 더 어려운 느낌이다.

한국인이 쓴 책이 아니라 일본인이 직접 쓴 우키요에 이야기라 그런지 훨씬 복잡하고 상세한 느낌이다.

특히 각주가 친절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여러 문화 관습이나 양식들이 일본어 그대로 실려 있어 직관적으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워낙 일본 문화에 대해 무지해서인 것 같다.

또 일본어 이름은 입에 잘 붙지가 않는다.

겨우 확실히 아는 화가 이름이 안도 히로시게와 가츠시카 호쿠사이 정도인데 가츠사와라고 꼭 잘못 발음을 하게 된다.

스승의 이름을 물려받아 계보를 잇는 전통 때문에 더 헷갈리는 것 같다.

겨우 10개월을 불꽃처럼 활동하다가 사라져 버린 도슈사이 샤라쿠가 사실은 조선에서 건너간 김홍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황당해서인지 이 책에는 언급이 없다.

우키요에의 본류는 미인도와 가부키 배우들 그림인 것 같은데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큰 감동이 안 생긴다.

특히 우키요에의 일본 미인도는 아름답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가 않는다.

왜 얼굴을 크고 투박하게 그리는 걸까?

아마도 우키요에만의 개성있는 표현방식인 것 같은데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가녀린 느낌도 아니고, 서양화의 화려한 미인도 아니라 아주 개성있으면서도 감동이 일지 않는다.

반면 안도 히로시게나 가츠시카 호쿠사이로 대표되는 다색 풍경화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사실 나는 판화에서 별 매력을 못 느끼는데 이 다색판화의 풍경화만은 과연 고흐가 똑같이 묘사했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구도도 그렇고 서정적 풍경화라는 용어에 걸맞는 분위기와 색감이 정말 아름답다.

어떻게 이런 판화 양식을 창조해 냈을까?

18~19세기 에도의 초닌층, 즉 상인계급은 유럽의 중산층과 비슷한 개념인 것인가?

그들의 경제력이 이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인 서민문화를 창조해 낸 것일까?

조선 역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유행했다고 하지만 일본의 우키요에처럼 대량 생산되어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민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엘리트 고급 예술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키요에의 성장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인층의 경제력 덕분인가 싶다.

우키요에의 시작이 소설에 딸린 삽화였고 유명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발전한 걸 보면 출판 문화나 공연 문화가 아주 활발했던 것 같다.

1부는 12명의 우키요에 화가들을 소개하고, 2부는 목판화 우키요에, 3부는 직접 그린 육필화를 소개한다.

좋은 도판 덕분에 잘 감상했고 안도 히로시게의 풍경화는 색감이 너무나 매혹적이라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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