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서평이 신문에 났을 때 정말 사고 싶었지만 워낙 비싸 엄두를 못 냈다

서점에 가 보니 아예 비닐로 싸여져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아쉬워 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빌려 왔다

책값이 비쌀 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 크기도 대단히 크고 두껍고 그림의 인쇄 상태도 아주 좋다

그림 보는 재미에라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천재라는 확신을 가질 만큼 그 놀라운 그림 솜씨에 탄복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현직 화가인 저자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사람의 기술로 사진처럼 완벽하게 그리는 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특히 드로잉의 대가인 앵그르의 드로잉 전시회를 본 후 저자는 절대 눈과 손만 가지고는 저같은 완벽한 그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담하게 마치 사물을 대고 그린 것처럼 한 번에 그려 낸 앵그르의 솜씨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호크니가 발견한 르네상스 화가들의 비법은 바로 카메라 루시다와 카메라 옵스큐라이다

즉 광학의 원리인 것이다

사실 정확한 원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를 잘 못했다

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에 그 쉬운 안경의 원리도 이해못했는데, 거울-렌즈나 카메라 장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무리다

어쨌든 결론은 이런 장치들을 이용해 화가들이 종이에 투영된 상을 직접 대고 그렸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만 그린 게 아니라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모작을 하듯, 광학 장치를 이용해 종이 위에 투영된 인물을 따라서 그렸다는 것이다

호크니는 실제로 당시의 광학 장치들을 이용해 인물을 그려 본다

 

광학 장치를 이용했든 안 했든, 그런 사실들이 대가들의 위대함에 손상을 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인 장치들은 대가들의 그림에 위대함을 더해 줬다

그런데도 그런 장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르네상스 걸작들의 가치를 깍아 먹는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의 세태를 아쉬워 한다

사실 나도 그 부분이 참 궁금했다

책에도 나왔지만 13세기 조토의 그림을 보면 지극히 평면적인데, 15세기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 있고, 빛의 대가답게 명암의 차이를 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갑작스런 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천재이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광학 장치를 이용해 그린 갑옷은 사진으로 찍은 갑옷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광학으로 그린 그림을 흑백 사진으로 찍자, 정말 사진처럼 보였다

카라바조가 그린 풀밭 전경은 2000년대에 찍은 사진과 조금도 다를 게 없고, 흑백으로 처리하자 거의 완벽하게 똑같았다

서양화가 동양화와 다른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길을 간 것은 이와 같은 과학의 힘이 숨어 있던 셈이다

 

광학 장치를 이용해 투영된 상을 따라 그리기 위해서는, 인물 하나하나를 콜라주 기법으로 각각 그린 뒤 합체하는 방식을 썼다

심지어 얼굴과 몸통 등도 따로따로 분리해서 그린 뒤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기 때문에 머리가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팔다리가 길어 보이는 비례상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했다고 알려진 베르메르는 주로 하인들을 그렸는데, 귀족들은 여러 포즈를 잡으라고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한 모델을 돌려가며 여러 인물을 완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루벤스의 그림이 위대한 까닭은 (걸작에 이유가 있겠는가마는) 단순히 눈 굴리기를 통해 어림짐작 만으로도 완벽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루벤스가 그린 기둥이나 인물의 얼굴들은 여러 차례 드로잉으로 완성한데 비해, 카라바조나 앵그르의 그림을 X-ray로 비춰 보면 한 번에 대담하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처럼 보이는 위대한 기술 뒤에 이런 과학 장치들이 숨어 있었다니,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 아닌가!!

비밀을 밝혀 내기 위해 애쓴 호크니의 노력도 대단하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임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13세기 조토의 평면적인 그림과 19세기 고흐의 자화상이 나란히 배열된 모습이다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즉 같은 기법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광학 기구를 이용해 사진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대상 묘사에 집착하던 서구의 화가들은, 카메라가 발명된 후 사진처럼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지자, 다시 인간의 눈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인상파의 발로는 사진처럼 그린다는 기존의 미술 사조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사진이 있는데, 화가가 사물을 똑같이 그려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잔은 가히 혁명적인 화가라 할 만 하다

세잔은 입체파의 시조가 되는데 그가 그린 사과는 뒤로 물러날수록 더욱 형태가 선명해지는데 비해, 광학 장치로 그린 카라바조의 사진과 거의 비슷한 사과 그림은 뒤로 물러나면 형태를 잃어 버린다

호크니는 이 차이를 거울-렌즈가 하나의 초점을 갖는데 비해, 인간의 눈은 두 개의 초점을 하나로 합해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사물을 더욱 똑같이 묘사하려고 애쓰던 노력들은 광학 장치를 넘어 이제 TV와 영화 등으로 발전했고, 화가들은 다시 인간의 눈으로만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기술과 예술의 분화를 낳은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르네상스 화가들 역시 직업인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호크니는 주장한다

오늘날 헐리우드의 배우들처럼, 사진이 없던 시절 르네상스 화가들은 귀족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욱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에 골몰했고, 그 결과 여러 광학 장치들이 개발됐다고 본다

예술가라면 이런 광학 장치의 도움 따위를 받아선 안 돼,라는 식의 생각은 라파엘로 같은 거장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가 하면 고흐처럼 세상사와 동떨어져 독야청청한 길을 가는 외롭고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궁핍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관람자들의 이기적인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도 역시 크게 보면 하나의 직업인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들도 돈을 바라고 작업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거장들은 돈에 초연하고 예술만을 위해 살았길 바란다

 

앞쪽은 호크니가 르네상스 그림들에서 보여지는 광학 이용의 증거를 찾는데 투자하고, 뒷쪽은 문헌적 증거들과, 호크니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것에 관해 교류한 서신들로 구성됐다

절반은 화려한 그림들로 채워지고, 나머지 절반은 깨알같은 글씨들로 가득하다

독특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대작들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그의 시도 자체가 독특하지만 말이다

그의 이론이 학계에 받아들여져 르네상스 대가들은 광학 장치를 이용해 실제와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식의 내용을 앞으로 미술 개론사에서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마지막 결론처럼 광학 장치를 이용했다고 해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 장치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훌륭한 걸작들을 감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0-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이 책에 관해서 읽고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구립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봤습니다. 정말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 리뷰들을 읽었지만, 가장 정리가 잘된 리뷰인 것 같습니다 ^^;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홍세화의 전작,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쎄느강은 동서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인상 깊게 본 나는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몹시 읽고 싶었었다

어찌어찌 해서 미뤄 오다가 최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음, 솔직히 과히 즐겁지는 않았다

그가 제기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전작에서 이미 충분히 써 먹은 얘기들의 재탕으로 느껴진가는 게 문제였다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보수성 내지는 수구성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지만, 주장이나 논거가 감정적이고 논리정연한 맛이 없어 참신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좀 더 세련되고 시원한 문체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욕심일까?

내공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세련된 필체의 비판이 듣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아르테마 003
최정은 지음 / 한길아트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저자의 해박하고 지적인 감상 솜씨에 감탄해 정신을 못차렸다

나도 저자처럼 지적이고 우아하게 그림을 분석하고 감상할 수 있는 교양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시달렸을 정도

그렇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있는 책이다

일단 내용이 지나치게 세밀하다

17-18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 책 한 권에 걸쳐 논하다 보니 자세하기 그지 없고, 어쩔 수 없이 지루해진다

차라리 네덜란드 전 그림을 상대로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그림 속 사물이 주는 상징을 깨우쳐 가는 재미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는데, 여러 장에서 반복되다 보니 억지스럽고 그림을 지나치게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어느 정도 그림이 주는 상징성에 대해 안 상태로 감상하는 건 좋은데, 본말이 전도되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차치하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만 주력하는 듯 해서 읽는 게 부담스러웠다

작가는 물론 전공이기 때문이겠지만, 모든 그림의 소품 하나하나를 다 분석한다

이 분석대로라면 저자는 화가의 머릿속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난 정말 모든 화가들이 정물화나 풍경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에게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 그렸는지 의심이 된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는 상징도 있겠지만, 정말 모든 소품들이 다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

그림의 도판도 마음에 안 든다

저자가 얘기하는 소품들의 상징성에 대해 제대로 보려면 그림이 좀 커야 하는데 한 면도 아니고 윗쪽에 그림을 배치하고 아래 절반은 설명하는 식이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책 싸이즈를 키우고 전면에 그림을 배치한 후 뒷장에서 설명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지적 쇼크를 많이 줬다

다소 내용이 어렵고 현학적이지만 서양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와 의학의 만남 -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명화 속 삶과 죽음 명화 속 이야기 3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자기 분야가 아닌 쪽의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 책이다

한번에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이나, 깔끔하고 선명한 도판 상태와는 다르게 그림에 대한 감상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을 못 벗어난다

해석이 내 수준이나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

의사가 그림을 분석한다는 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래도 의학적인 관점에서 명화를 보는 시도는 신선하다

특히 형벌의 잔인함을 그린 그림에 대한 해부학적인 해석은 유용했다

차라리 미술 전문가와 저자 같은 법의학자가 같이 글을 썼더라면 훨씬 좋은 분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편하게 읽을 수는 있는 책이다

내용은 제목이 주는 신선함과는 다르게 너무 '평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5
양운덕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이 책 참 어렵습니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입문서에 지나지 않는데도 워낙 푸코라는 철학자의 내면이 깊어서인지 쉽게 읽히지가 않습니다

자 들고 밑줄 그으면서 두 번 정독했더랍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책값도 겨우 3300원에 불과합니다

3300원,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놀라운 가격에 이 정도의 지적 교양과 흥미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죠

서점 가서 마땅히 고를만한 책이 없거들랑 (혹은 저처럼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주머니 사정이 딸리거들랑) 과감하게 살림 총서 시리즈 중 하나를 집어 드십시오

모든 책값은 3300원이고, 이렇게 어려운 일부 책을 제외하고는 서점 옆 커피숖에 앉아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분량입니다

그렇지만 그 깊이는 가격이나 시간에 비해 대단히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대인은 흔히 생각하듯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에 의해 길들여졌다는 게 푸코의 주장입니다

심지어 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한 오늘날, 권력은 담론을 활발하게 펼치도록 유도한 후, 바람직한 방향마저 미리 제시함으로써 개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인 '성'마저도 권력의 통제 아래 둔다고 했습니다

전 이 부분 읽으면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국가가 성을 억압한다면 도대체 왜 매춘은 고대로부터 늘 존재해 온 것인가에 대한 제 오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국가, 즉 권력은 개인의 성을 마치 사회의 문제인 양 표면으로 끌러 올려 끊임없이 토론하게 만든 후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가하고 있었던 거죠

성을 까발리는 것만이 성해방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이론을 시원하게 반격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어떻게 미시 권력에 의해 세심하게 길들여져 왔는지의 과정이 정말 치밀하고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