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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도 새벽까지 책을 읽느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도서관에서 세 권을 빌려 왔는데 한 권만 읽으려다 다음 책이 궁금해 잠깐 본다는 게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저자의 기술 능력이 뛰어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끔 만드는 얘기 솜씨가 대단하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 단국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학위 논문이 광해군인만큼 시원스럽게 그 시대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제목이 "광해군"이라 요즘 실리 외교 전문가 어쩌고 하면서 비운의 왕이었다는 식으로 미화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광해군의 진면목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역사, 정치 이야기를 마치 소설 쓰듯 재밌게 풀어내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알고 있는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살리고, 명, 청과의 관계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한 한마디로 개혁적이고, 현명한 임금이었다
폐모살제 같은 유교적 업보를 지녔으나, 세조 역시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것처럼 그것이 폐주가 된 치명적인 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개혁적이고 실리를 추구한 왕이 명분론자들에게 쫒겨났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정치 상황을 살펴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외로 광해군 역시 명나라에 많은 집착을 보인다
여태까지 알고 있기로는 명나라의 국운이 다한 걸 알고 명을 배척했다고 믿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명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하루 아침에 여진족에게 무너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200백년 동안 명을 섬긴 조선으로서는 명이 망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해군 역시 기본적으로 명을 섬기면서도, 무리하게 파병 요구를 하자 국내 사정을 봐 가면서 가능하면 미루려고 했을 뿐이다
재야 유림들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준 명에 대한 보답을 소홀히 한다고 당장 파병하라고 요구했지만, 정치 일선에 있지 않는 사람들의 명분일 뿐이었다
명을 배신했다고 반정을 한 세력 역시 명의 파병 요구를 거절했을 정도로 현실과 이상은 늘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의 파병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광해군은 결국 임진왜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1만 병력을 모아 요동으로 보낸다
이 파병은 백성들의 삶을 대단히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무리한 궁궐 확장 공사와 더불어 대대적인 원망을 받게 된다
인목대비 유폐와 중립 외교가 사대부들의 지지를 잃게 했다면 궁궐 건립과 파병은 민심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광해군은 전투에 패배한 후 감금된 총사령관 강홍립의 밀서를 받으며 청의 정세를 관찰한다
강홍립이 일부러 투항했는가에 대한 진위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는데, 어쨌든 우리 군사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싸울 필요는 없다는 식의 언지를 광해가 내렸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포로가 된 강홍립의 가족을 국내에서 보호해 줄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모문룡이라는 사기꾼 얘기는 명나라 환관들의 은 요구와 더불어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명나라 장수였던 모문룡은 청에 패한 뒤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남은 군대와 유민을 이끌고 조선 땅으로 들어온다
그 뒤 무려 8년 동안이나 조선에 눌러 앉아 걸핏하면 군량미와 자금을 요구한다
심지어 인조가 집권한 후에도 말이다
도대체 정부에서는 왜 모문룡에게 끌려 다녔던 것일까?
은혜를 베푼 나라의 장수이기 때문에?
아니면 청나라를 치기 전 오히려 조선을 먼저 칠까 두려워서?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단순히 외교 관계가 아니라 마음 속으로부터 내제화 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면 취하고 필요없으면 버리는 태도는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아마도 17세기 조선인들로서는 중원을 지배하는 명이 여진 같은 오랑캐에게 망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 망해 가는 명나라를 끝까지 받들어 온 나라가 청나라 군대의 쑥대밭이 되게 만들었겠는가?
광해군이 성군은 못 되더라도 연산군처럼 왕위에서 패악의 정치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왕위에서 쫓겨났는지에 대한 약간의 답을 얻은 기분이다
그것은 그의 지지 기반이 약했다는 것이다
즉 광해군은 비록 왕이었지만 정치 기반은 소수 집단에 불과했다
이황이나 이이처럼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서인 대신, 경상도 일부에서 명망을 얻는 조식을 받드는 북인 세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여론에서 밀렸고 아버지 선조가 세자의 위치를 흔들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반도 약했다
말하자면 세자 때부터 그의 지지 세력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였던 것이다
그럴수록 정치력을 발휘해 자기 편으로 끌어 들여야 하는데 유약하고 소심한 광해군은 자신을 떠받드는 소수 정치 세력에 의존해 자꾸 무리수를 두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인목대비 폐위 사건이다
광해가 세자 시절 목숨을 걸고 그를 지지했던 정인홍이나 이이첨 같은 세력들은 집권 후 자신들의 권력 강화를 위해 그 때의 공을 내세우며 옥사를 일으킨다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이나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 대군을 죽인 일 등은 격렬한 반대를 불러 일으켜 여론을 완전히 돌아서게 만들었다
더구나 광해군은 왕권 강화에 대한 집착을 궁궐 건축을 통해 드러냈다
전쟁 후 피폐해진 살림에 몇 개의 궁궐을 한꺼번에 지으려 들었으니 재정이 남아날 턱이 없다
급한 김에 사대부들에게까지 고통 분담을 요구하자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마치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증축 과정을 보는 듯 하다
어쨌든 광해군은 소수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정치력 부족으로 다수파를 아우르지 못해 결국 실각하고 만다
후대로 갈수록 신하들의 입김이 세진 것은 인조 반정 이후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실각 후에도 무려 19년을 더 산 광해군은 복잡한 국내외 정세를 관망하며 다시 복위할 꿈을 꾸었을 것 같다
실제로 몇 차례 광해군을 복위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재위 당시 병약했던 왕이 제주도 등의 험한 유배지에서 19년이 버티고 살 힘이 없지 않았을까?
광해군과 그의 시대에 관해 객관적으로 소설처럼 잘 풀어 쓴 책이라 무척 재밌다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