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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마틴 가드너 지음, 강윤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어렵게 읽은 책이다
사이비 과학이 왜 틀린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책이기 때문에 술술 읽히지가 않았다
양자 역학에 관한 부분은 특히 어려웠다
양자 역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사이비 이론도 이해가 안 가는데, 왜 틀렸는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한 내용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머지 부분은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고, UFO에 관한 내용은 황당무계해서 재밌기까지 했다
적어도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보다는 쉽다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라 구하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막상 헌책방까지 뒤져 손에 넣고 보니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읽다 만 기억이 있는 사연있는 책이다)
마틴 가드너라는 작가 자체가 칼 세이건처럼 과학자는 아닌 듯 싶다
그의 약력은 다만 과학 에세이스트 혹은 퍼즐 전문가 정도로만 나왔다
사실 그 점 때문에 또 하나의 말장난에 휩싸이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책의 수준은 그런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 준다
다만 본인의 논증 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의 반론을 많이 인용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출처 밝히기에 열심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패러다임의 틀이었다
그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에 관한 글이 사이비 과학에 종종 잘못 인용된다고 지적하는데, 그 글은 수능 문제집에서 본 기억이 난다
언어 영역 지문에 인용됐는데, 그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을 뿐더러,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이를테면 뉴턴의 만유 인력 법칙 같은) 패러다임이 변하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사물을 보는 틀이자 관점이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변하면 당연히 진리도 바뀐다고 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도 대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지난 세대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창조론이나 천동설 같은 이론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폐기되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들도 다음 세대가 되면 전혀 엉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 글의 요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주의가 과학과 사이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데 이용된다고 한탄한다
과학적 진실들은 1과 0 사이에 나열되어 있으나 우리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들은 (이를테면 지동설과 진화론 등) 0.999999999의 가능성을 가진, 말하자면 1에 거의 근접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평론가들이 흔히 이용하는 과학의 오류나 거짓, 숨겨진 이야기 따위는 사실과 분리되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성경이다
저자는 왜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해 내려는가 의아해 한다
신의 말씀을 인간의 과학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신성 모독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성경은 신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일 뿐이지, 자연 법칙이나 과학적 사실들을 논증한 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경전이 마치 과학책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서 과학적 사실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여기서 바로 이 책의 제목,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신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들은 부모의 탯줄을 의미하는 배꼽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담과 이브를 그린 모든 그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배꼽을 당연시 한다
창조론도 마찬가지다
이미 로마 카톨릭은 진화론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잃어 버린 고리들을 예로 들어 진화론이 허구라고 공격한다
그렇다면 화석의 존재는 무엇이고, 수많은 지질학적 증거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대체할만한 어떤 논리적 증거나 과학적인 이론도 내 놓지 못한다
다만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식이다
성경에 대한 사이비 과학의 정점은 종말론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1992년 다미 선교회 사건이 그 예로 기록되어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중학생이었는데 92년 10월에 종말이 올 거라는 광고를 보고 (그들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혹시 그 예언이 맞으면 어쩌나, 두려워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지만, 정작 이장림 목사는 신자들에게 거둔 돈을 다음해가 만기인 채권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신앙을 공고히 하는 지파일수록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분석하여 종말론을 내세운다
다미 선교회처럼 특정 날짜를 명시해 신자들의 재산을 갈취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세상의 마지막이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며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가 새겨진 바코드를 이마에 받고 여기서 살아 남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후 천년 왕국에서 살게 될 거라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 최후의 심판이 우리 세대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흩어진 지엽적인 사실들을 교묘하게 짜 맞추어 바로 지금이 그 시기라고 주장하는 자칭 예언자들은 사이비라고 규정할 수 밖에 없다
UFO에 관한 믿음도 종말론 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다
제일 웃긴 건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발표를 안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 UFO에 관한 은폐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존 맥이라는 정신과 교수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책을 썼다
에모리 대학의 브라운 교수는 원격 투시를 통해 외계인 세력이 멕시코에 거주한다는 책을 썼다
도대체 이런 정신병자들이 대학의 교수로 멀쩡하게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다만 대학 당국은 그들이 종신 교수이고,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긴 하지만 그들이 대단한 골치거리임은 분명하다고 한다
브라운의 외계인 이주설을 들으면 영락없는 정신 분열증 환자다
과대 망상의 표본이다
대기 오염으로 화성이 황폐화 되자 다른 은하인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건너 온 화성인은 현재 멕시코 산 속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식이다
(정신과 인턴을 할 때 환자를 면담했는데, 그녀는 본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멀쩡하게 생기고 너무나 분명하게 얘기를 해서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 했다 식사는 잘 하냐고 의례적인 질문을 했더니, 화를 내면서 나의 하나님이 밥을 굶으라고 할 만큼 나쁜 분이 아니라고 했다 안 죽을 만큼 잘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얘기나 브라운의 얘기는 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왜 한 사람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고, 한 사람은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 얘기책으로 돈방석에 앉았는지 정말 의아하다)
설마 브라운 같은 사람이 책을 팔기 위해, 혹은 이름을 얻기 위해 일부러 황당무계한 얘기를 지어낸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얘기가 받아들여질 만큼 UFO에 관한 사이비 과학이 우리 시대에 널리 퍼진 것이다
식인 풍습이 일반적이라는 믿음도 저자는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이를테면 적의 시신을 먹음으로써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전쟁 같은 극한 상황)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사람을 잡아 먹는 풍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믿음이 퍼진 것은 선교사들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없이 책에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식인 풍습이 일상적인 곳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반론이 쿠루병인데 광우병이 인간에게 발생한 것으로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이 죽은 이의 뇌를 먹는 풍습 때문에 걸린다고 알려졌다
이것을 밝힌 영국의 의사는 노벨상을 탔다
당연히 그는 식인 풍습을 지지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아직 결론이 난 문제가 아니라고 한 발짝 비켜 선다
내 입장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대체의학이다
소변을 마시는 게 좋다거나 발이 몸의 모든 곳을 관장한다는 식의 믿음은 서양에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
사내아이의 소변을 받아 마시면 정력에 좋다거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읽었다) 더러운 물을 마시느니 차라리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게 낫다는 식의 (홍신자의 수필집에 보면 인도를 여행하는데 물이 너무 더러워 깨끗한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고 한다) 이야기는 웃고 넘어 가더라도, (과학자들은 바다 위에서 표류할 때 조차도 소변을 마시는 건 득보다는 해가 많다고 일축한다) 반사학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가기가 어렵다
반사학이라고 이름 붙인 사이비 과학은 우리 식으로 보면 수지침이나 발마사지, 경락, 경혈 이런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 듯 싶다
사실 나 역시 한의학에 대해 별 신뢰를 못하는데 요즘 신경과에서 IMS나 TPI, 테이핑 요법 등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침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흔히 발바닥은 몸의 모든 기와 혈이 모여 있어 장이 안 좋으면 어느 부위를 누르라는 식의 믿음이 꽤 통용되어 왔다
저자는 발의 특정 부위를 누르면 특정 장기에 영향을 끼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식의 믿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이 주장은 받아 들이기가 좀 애매하다
그는 대부분의 대체의학들을 아무 실험도 거치지 않은 채, 그저 그럴 것이다는 식의 직관에 의존해 잘못된 믿음을 설파한다고 비판하는데, 적어도 과학적인 절차를 통한 검증이 필요함은 분명한 듯 싶다
점성술이나 UFO, 대체 의학 등은 사이비는커녕 다양한 과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어떤 것들은 진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직관에 의해 이럴 것이다, 하는 식의 주장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어떤 주장이나 논리든지 과학적 방식에 따라 철저하게 검증한 후에서야 비로소 진리인지 아닌지 판명이 될 것이다
막연히 과학은 오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는 식의 문학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신 의학계가 프로이드를 상상력 풍부한 과학 문예가 정도로 밖에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과학적 실험 보다는 지나치게 직관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정신과 시간에 프로이드를 제일 첫장에서 배웠다 그의 이론이 이미 낡은 이론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꿈이 무의식의 욕망을 표출한다는 프로이드의 해석은, 뇌파 분석과 여러 실험들을 통해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데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려면 꿈을 해석할 게 아니라, 약물 치료를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이론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하나씩 격파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식 혁명이라고 평가받는 프로이드조차 냉정한 심판을 받는데, 사이비 과학들이 아무 근거나 논증 과정도 없이 막연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다는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팔아 먹는 건 잘못된 일이다
더불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과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