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 일과 삶의 균형 더블 라이프
데이빗 히넌 지음, 박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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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더블 라이프라고 하길래 요즘 유행하는 투잡에 관한 건가 했다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좀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여가 시간을 즐기고 일에 해방되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이를테면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해 점점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인데 오히려 남은 시간이 인간을 더욱 일터로 몰아 넣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 5일 근무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괴로운 일이 될 거라 하던데, 좀 다른 의미로서 동의하는 바다

아직도 충분한 여가를 즐기기에는 국민 소득이 낮은 모양이다

 

다행히 투잡에 관한 얘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에서 해방되어 여가를 일처럼 집중적이고 전문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의 유쾌한 보고서다

대부분이 사회 저명 인사로 일반인들이 이루기 어려운 성공을 쌓은 사람들이지만, 주류 인사들과는 다르게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집중력에 있다고 하겠다

일도 열심히, 취미 생활도 열심히라고 할까?

프로처럼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계발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셈이다

 

"다른 것을 못하면서 비지니스를 잘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경영인들은 확실히 뭔가 다른 능력, 이를테면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이 있는 모양이다

처칠은 세계 2차 대전을 이끈 정치인이면서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작가였고 (정치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는 꽤 많은 책들을 젊어서부터 출판했고, 베스트셀러 작가였기 때문에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천국에 가면 100만년 동안은 그림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평생 담배와 술을 달고 살았으면서도 90세까지 산 걸 보면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사람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는 비행 조종도 직접 했다고 한다

클린턴이 주한 미군을 방문해서 섹스폰을 연주하는 모습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등학교 때 레슬링 선수여서 한국 레슬링 협회 회장을 맡아 후원한다는 기사를 접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제일 내 눈길을 끄는 사람은 테스 게리슨이라는 전직 외과 의사이자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중국인 3세인 그녀는 수련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육아를 위해 가정으로 돌아온 후 글쓰기에 몰두해 유명한 작가가 됐다

외과 의사라는 전문성을 살려 그녀는 특히 의학 스릴러물에 능하다고 한다

의사 출신 작가라면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 정도 밖에 몰랐는데, 그녀 역시 미국에서 알아주는 작가라고 한다

그녀가 소설들로 경제적 안정을 취하자 남편은 의사직을 그만두고 아내의 컴퓨터 조수로 전업한다!!

(그녀는 아직도 펜과 종이로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컴퓨터로 옮겨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 아내가 자기 일을 포기하는 일은 흔하지만, 아내의 일을 위해 남편이 그녀의 어시스턴트가 되는 건 아직까지는 참 드물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가정을 위해서 일을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할 경우에만 말이다"는 게리슨의 말은 그녀의 남편 역시 동의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인 래리 스몰은 플라멩고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그러나 세계 10대 연주자들이 하나같이 스페인이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경우느 겨우 두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래리는 전문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월가로 뛰어든다

경영에 놀라운 재능을 보인 그는 금융계에서 400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관리인이 되지만, 아마존 문화에 대한 열정 때문에 박물관 이사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봉 33만 달러를 받는 박물관장으로 취임한다

"나는 지난 35년 동안 주중에만 일하고 주말에는 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주말에만 할 수 있던 일을 주중에도 해 달라니,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라는 그의 말에서 문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또 그는 학계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박물관일에 비전문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나는 박물관의 과학자나 학자들이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나만큼 플라멩고 기타를 잘 치지 못하고 아마존 문화에 대해 나만큼 잘 알지 못하며 조직 경영에 대해 나만큼 경험이 있지 않다 그들이 잘 하는 일을 나는 모르고, 그들 역시 내가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한다"고 명쾌하게 정의한다

즉 경영과 학문적 성과는 별개라는 얘기다

그는 박물관의 학문적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경영에만 힘쓴다

경영의 핵심은 부자들로부터 기부금을 얼마나 모으냐다

래리는 박물관 개관 이래 최고 기부금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미국 사람들은 확실히 스케일이 크다

경제 규모가 커서인지, 아니면 기부에 대한 인식이 발달했기 때문인지 어떤 미식 축구 구단주는 무려 8천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한다

(8천만 달러라면 무려 9백억원인데!!)

 

이 밖에도 여성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샐리 라이드라든가, (그녀는 대학의 테니스 대표 선수였는데 물리학 박사가 되어 NASA에 들어간다 우리 개념으로 보면 대학까지 스포츠를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물리학 박사가 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소니의 중역이면서 젊은 시절에는 성악가로 일하고 현재는 도쿄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오가 노리오라든가 (그는 지금도 소니에서 일한다) 펜싱 올림픽 대표였다가 세계 은행 총재가 된 짐 울픈손 등 (국가대표 선수가 은퇴 후 변호사가 됐다는 것도 정말 놀랍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다

그들의 특징인 본업도 충실히 하면서, 취미도 일처럼 열정적으로 말하자면 프로처럼 해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단순히 성공한 사람들의 업적을 얘기한 것이라면 사실 별 볼 일 없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성공이란 자기 스스로 정의하는 것으로서, 행복과 개인적 성취감을 얻기 위해 애쓰라고 말한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묻혀진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찾아내 그것도 즐기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더블 라이프야 말로 주 5일제 근무에 걸맞는 삶이 아닐까?

물론 기본적인 경제적 여유가 필수적으로 따라 와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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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이야기
앤드류 로빈슨 지음, 박재욱 옮김 / 사계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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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문자 자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보다는, 문자가 주는 의미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더 나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잘 아는 한글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지난 번 알파벳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느낀 거지만, 문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읽는 게 참 힘들다

한글을 읽는다고 해서 책 자체를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읽고 난 후 느낀 점을 쓰자면, 일단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단순히 표의문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집트 문자하면 사물의 모양을 그려 낸 상형문자로만 알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신화가 이집트 문자의 해독을 늦췄다고 한다

이집트 문자는 표의문자이면서, 표음문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독수리 모양의 문자는 독수리나 왕의 권위 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MN의 이중음가를 갖기도 한다

뜻과 음을 동시에 표현한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고대 이집트어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은 추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다만 콥트어와 문자가 적힌 주변 관계를 고려하여 추측할 뿐이라고 한다

 

문자가 반드시 실용성에만 기초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일본과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훌륭한 서예가였으나 한자가 중국 인민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이유로 로마자 사용을 주장했다

알파벳이 중국에서 쓰이지 않는 이유는 외국인이 먼저 발명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일본 역시 그들의 언어를 로마자로 표현하는 게 쉽지만 복잡한 한자어를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인이 알파벳을 버리고 아랍 문자를 채택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의 충격이라고 한다

또한 유태인들은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고대 언어인 히브리어를 국어로 채택했다

문자는 단순히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라는 더 넓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자어로 인한 어려움은 상당히 큰 모양이다

특히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2만 개나 넘는 한자어를 입력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중국은 알파벳과 한자를 병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시금 한글 창제의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저자는 남한이 지식인층의 반발로 인해 여전히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고 있다고 쓴다

반면 북한은 한글 전용에 성공했는데, 그 때문에 남한은 더더욱 한글 전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저자는 우리나라의 한자 병용을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는데 분명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한자어를 많이 차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처럼 한자 없이 표현이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세종 대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가에 대한 감탄이 빠지지 않아 무척 뿌듯했다

 

그림과 사진이 많아 읽는데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이집트 문자나 마야 문자 등을 이해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쉬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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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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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짐작이 안 갔다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마치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처음 봤을 때처럼 제목과 내용이 전혀 매치되지 않았다

설마 의학적인 얘기일 줄은 몰랐다

아들이 의사였기 때문에 의사들의 삶에 더 애착을 가진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던 분야였을까?

어쨌든 비교적 소상하게 의사들의 삶을 인터뷰한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 보지 않은 직업의 애환에 대해 쓴 글은 왠지 모를 생뚱맞음이 있다

잘 조사되고 연구된 정확한 사실들의 나열은 그저 소설 속의 문장으로만 존재할 뿐, 마음을 흔드는 애잔함 따위가 없다

그렇다고 소설을 폄훼하는 건 절대 아니고...

 

소설 자체의 내용만으로는 큰 공감이 안 갔다

좋아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열심히 읽긴 했는데, 책마다 연분이 맞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모양이다

남들은 다 감동하고 좋다고 칭찬해도 나한테는 무심한 것들도 있고, 통속 소설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뒤흔드는 책도 있다

그래서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라고 말했던가...

 

재벌 2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소설은 왠지 모르게 정이 안 가는데, 상대적인 박탈감이라기 보다는 내 주변에 워낙 없는 일이라 잘 공감을 못하는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 소설을 해석하는 내 독서 습관 때문에,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감동도 잘 안 온다

그래서 지지리도 궁상맞은 소시민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들을 좋아한다

노희경 드라마나 박완서의 다른 소설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힙겹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위악적인 삶, 아마 내가 가장 관심갖는 주제일 거다

(가난하다고 해서 착하지 않고, 오히려 기본적인 도덕성이 더 약할 수도 있다는, 그럼에도 크게 나쁜 짓 할 베짱도 없는 그런 소시민적 위악성...)

 

아버지 없이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조건이 나쁘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채이고, 고시 공부에도 실패했으나 재벌 2세를 만나 시집가는 영묘의 캐릭터가 현실적이 않아 쉽게 공감이 안 갔다

미국 가서 큰 부자가 되서 모교에 100만 달러를 척 허니 기증하고 금의환향한 형 영준 역시 허구적으로 느껴지고...

특히 부자집 남자에게 시집 가 애기도 안 낳고 큰 돈 받아 이혼한 후 자유로운 삶을 사는 현금의 캐릭터가 제일 맘에 안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다들 일이 술술 풀리는 걸까?

인생이 그렇게 굴곡없고 만만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제일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캐릭터는 주인공 영빈이었다

의사였던 죽은 아들 때문일까, 작가는 그래도 의사인 주인공 영빈을 제일 성실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린다

"남들은 의사니까 다 잘 살 거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실속은 하나도 없는 허울 뿐인 직업"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꽤 열심히 의사들을 인터뷰 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소설 속의 영빈은 모교의 내과 교수로 TV에 명의라고 소개까지 되는 성공한 인물로 나온다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자조감을 느낀다면, 이제 의사라는 직업의 기대치도 상당히 낮춰야만 할 것 같다

 

이 소설의 핵심 기둥은 영묘의 남편 송경호의 죽음과, 맨 마지막에 한 페이지 정도 등장하는 치킨 박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송경호는 Y그룹의 장남으로 영묘와 결혼 3년만에 두 아들을 둔다

이 집안은 대대로 결핵을 앓는 병력이 있어, 처음 송경호가 피를 토했을 때 무조건 결핵이라 단정짓고 그 보다 더한 병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송경호의 병은 폐암이었다

그것도 수술이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었다

영묘의 오빠인 영빈은 호흡기 내과에서 알아 주는 명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제를 떠맡지만 가족들은 항암 치료를 극구 거부하고 심지어 환자 본인에게도 절대 비밀로 한다

항암 치료를 하면 기가 빠져 손도 못 써 보고 죽는다고 생각한 송회장은 전국 각지의 대체 요법과 한약 등을 수집해 집에서 자가 치료를 시도한다

할머니는 집안 대대로 길흉화복을 점쳐온 최도사에게 백일 기도를 드리러 다닌다

 

환자들이 대체요법에 의존하고 싶은 심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항암요법을 해도 나을지는 미지수라고 발뺌을 한다

반면 대체요법이나 민간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낫는다고 확신을 준다

죽음이 임박해 온 사람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온갖 첨단 기구와 의학으로도 어쩌지 못한 병을, 단지 그들의 직관에 의존해서 고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까?

그들 역시 인간일 뿐인데, 사람을 살려내는 초능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혹 그들이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살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주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 하더라도 믿음만으로 이길 수 있는 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항암치료를 한다고 해도 겨우 1년 남짓한 수명 밖에 못 산다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대책없는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이 바로 대체요법이나 민간요법일 것이다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병원은 참 무력할 뿐이다

의학은 솔직하게 고칠 수 없다고 말해 버리기 때문에 환자들이 외면하고, 민간요법 등은 고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한다

소설에도 뜸으로 암환자를 고쳐 낸다는 의사가 나오는데, 송회장은 속는 척 하면서 수백억을 약속하지만, 고친 후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은 수를 써 결국 줄행랑 치고 만다

 

송경호는 집안 식구들의 함구 탓에 죽음에 대한 어떤 대비도 못하고, 치료법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이상한 도사의 주술 치료만 받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운명한다

어린 아들들이나 미망인을 위해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해, 삼모자는 시댁 식구들의 처분만 바라게 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망자에게도 죽음을 예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이 어떤 치료를 원하고, 어떤 식으로 삶을 마무리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줘야 한다

의사 영빈은 환자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는데, 매제의 죽음을 보면서 더욱 자신의 믿음을 확신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 믿음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치킨집으로 성공해서 별명도 치킨 박인 중년 남자가 폐암 선고를 받는다

이번에는 초기라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기 때문에 영빈은 보호자인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자에게 정확히 병세를 얘기한다

그런데 치킨 박은 그 날로 행방불명이 된 후 병원 지하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어이없게도 자살을 한 것이다

암에 걸리면 집안 거덜내야 한다던데, 어렵게 일궈낸 치킨 가게를 남의 손에 넘길 수는 없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이 정도 이뤘으면 나는 여한이 없으니, 아내에게 아이들 행복하게 키워 달라고 부탁하는 유서를 남긴다

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렇게 영빈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음에도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와 절망감 때문에, 가족을 위해 돈 축내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어 버리다니, 이걸 눈물나는 가족애라 해야할지, 무식이 주는 비극이라 해야할지...

 

그렇지만 결국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할 문제라고 본다

유산 분배 때문에 시끄러워질 걸 대비해, 혹은 환자가 희망을 잃을까 걱정된다는 이유로 끝까지 병을 숨기는 건 환자를 죽이는 것과 매한가지다

나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당연히 정확하게 알릴 것이고, 또 나 역시 가족들이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두면 가치 판단은 늘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그저 그 죽음의 공포를 이용해 죽어가는 환자들의 돈과 남은 생명력까지 소진시키는, 신비주의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학이 환자에게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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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의 프랑스 문화 읽기 - 프랑스는 왜 반미인가
최연구 지음 / 중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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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목 "프랑스는 왜 반미인가"는 책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라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가 갖는 문화의 우수성을 예찬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문화적 자부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정치 경제학을 전공해서인지, 단순히 가벼운 문화 소개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내부 사회에 대해 꽤 깊은 분석을 제공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프랑스의 음식 문화나 샹송 같은 가벼운 읽을거리도 빼놓지 않는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저자는 세계화라는 개념부터 비판을 하는데, 김영삼 정부가 유일하게 성공한 정책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과 바로 이 세계화라는 개념을 "globalization"이라는 영어 대신 "segyewha" 라고 표기한 것이라는 풍자로 시작을 한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화란 그저 미국 중심의 세계화로 무조건 미국의 문화를 받아 들이고 그들의 언어를 익히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는 프랑스가 유럽, 혹은 전 세계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국가이고 그 문화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자세히 논증한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른 문화권의 우수함을 대비시킬 때 제일 짜증나는 태도가 극단적인 찬양이다

서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그 나라의 제도나 문화 등은 절대적 우수성을 갖는다는 식으로 기술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든다

그래서 요즘은 가능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대신, 그 나라 사람이 직접 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맞벌이의 함정"이다 미국 학자가 보는 미국 사회의 분석은 아무래도 몇년 거기서 머물다 온 유학생들보다는 훨씬 우수하다)

 

프랑스어가 영어 못지 않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예로 유엔에 전화를 걸면 안내원이 불어로 대답한다는 식의 예까지 등장하니, 좀 실망스러웠다

저자는 마치 프랑스 사회가 민주주의의 최첨단에 서 있는 양 기술하고, 상대적으로 미국 문화의 보수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적한다

이건 완전히 흑백논리 아닌가, 싶었다

어떤 의미로든 미국은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고, 세계화의 상당 부분은 미국식으로 표준화된 양식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국제어로서 영어의 위상은 프랑스어와 비교되기 힘든 게 사실이지 않은가?

저자는 프랑스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특파원으로 파리에 오는 사람 정도는 불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영어 배우기로도 벅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세계화를 위해 프랑스어까지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곧 이 책이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님이 밝혀진다

저자가 주장하는 프랑스 문화의 우수성과 보편성은 프랑스 시민 혁명의 3대 이념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데서도 볼 수 있다

자유,평등,박애 이 세 가지 이념이 전 인류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장됐다는 것은 세계사 시간에 배운 바 있다

사실 자유와 평등이야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인데, 박애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단순히 봉사 정신 내지는 남을 사랑하는 정신 정도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보다 확실한 의미를 알게 됐다

저자는 박애를 연대주의로 표현한다

제일 흔한 예가 파업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반응이다

(이 예는 프랑스를 소개하는 책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이를테면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일단 신문에서 시민의 발이 묶여 얼마나 불편한지를 먼저 보도한다

지하철 파업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모습과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면서 일단 파업이 나쁘다는 식의 이미지를 심어 준다

연이어 불법 파업 어쩌고 하는 식의 정부 발표가 이어지고, 시민들을 위해 하루 속히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몰아세운다

정작 왜 그들이 파업을 했는지에 관한 심층적인 기사는 보기 힘들다

(이런 식의 선정 보도는 의약분업 당시 파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왜 의사들이 극단적인 행동까지 가게 됐는지에 대한 분석 대신, 맨날 뉴스에 나오는 건 환자가 죽어간다는 선정적인 보도 뿐이었다 혹시 기자들이 문제점을 분석하려면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니까 적당히 시민들 몇 인터뷰 해서 뉴스 시간 땜방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런 식의 선정 보도가 계속되면 국민들은 왜 노조가 파업을 했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대신 파업 자체가 집단 이기주의라 생각하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빨리 지하철이나 정상 운행 됐으면 바라게 된다

 

반면 프랑스에서 파업은 연대주의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시민들은 그 불편을 감수하고 지지를 보낸다

심지어 대체 인력 투여도 불법으로 본다

불편을 겪게 함으로써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인데, 정부나 회사 측에서 대체 인력을 투여해 버리면 파업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하철 파업 당시 파리 시민들은 센 강의 유람선을 이용해 출퇴근 했다고 한다

무려 2개월이나 지속된 이 공기업 부문의 파업이 가능했던 까닭은 시민들이 그들의 실력 행사를 지지하고 언론이 여론을 정확히 보도해 줬기 때문이다

저자는 "솔리다리테"라는 이 연대 의식을 "톨레랑스"와 더불어 프랑스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똘레랑스야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워낙 유명해진 개념이라 (심지어 술집 이름으로도 쓰이더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저자는 관용이라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단순히 아량을 베푸는 정도의 관용은 아닌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일련의 사례들을 읽어 보니, 똘레랑스란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알려졌다시피 프랑스에는 좌파와 우파가 공존한다

지난 대선 때 무려 16명의 대통령 후보가 나올 정도로 프랑스의 정치 집단들은 아주 다양하다

(프랑스식 정치의 폐혜는 군소정당의 난립이라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사상 검열이란 절대 불가능한 단어다

각자의 신념과 사고 체계를 제한한다는 것은 똘레랑스에 대단히 위배되는 일이다

내 신념이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신념도 존중해 줄 의무가 있다

여러 난립하는 사상들을 받아 들일 만큼 프랑스 사회가 저력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런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발전하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참 한심하다

아직도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언론이 앞장서서 걸러내겠다고 나선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초록은 동색인데 같은 초록끼리 구별하겠다고 애쓰는 꼴이다

회색과 진회색을 가리는 식이랄까?

분단 국가라는 현실 때문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제발 그 놈의 사상 검증 좀 그만하자

특히 여론을 선도해야 할 언론에서 앞장 서 한심한 짓을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개념은 앙가주망이라는 사회 참여 의식이다

유명한 드레퓌스 재판을 계기로 확립된 이 개념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역동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하겠다

빅토르 위고에서부터 앙드레 말로, 사르트르, 에밀 졸라 등 수많은 프랑스 지성인들은 학문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다

프랑스의 유명한 석학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노동자 파업 때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노조에게 지지를 보내고, 방향을 충고해 주는 중간자라고 했는데, 바람직한 현실 참여 방법이라 생각된다)

사실 인문학이 책상 위에서만 머문다면 그것을 연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옛 제도를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라 할 수 있겠다

언젠가 신문에서 정부의 각료로 대학 교수를 쓰는 걸 비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반드시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가수들의 사회 참여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샹송은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더 큰 매력이 있기 때문에 팝송처럼 세계적인 음악으로 뻗어나가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가수들의 사회 참여는 일반적이라 한다

한마디로 기본적인 의식이 있다고 해야 할까?

우리 나라 가수들이 외국에서는 가수를 문화 예술인으로 대접한다면서, 딴따라로 밖에 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곤 하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았음 좋겠다

 

이 외에도 바캉스 개념도 새로웠다

휴가란 단순히 휴식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휴가라면 잠, 집안일, TV 등으로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데 프랑스에서 휴가란 여행을 떠나고 축제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주 5일제 근무에, 5주의 유급 휴가를 보장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배경부터가 다르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 나라도 주 5일제 근무를 시행하는데,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한 휴식의 개념을 넘어 문화를 즐기는 수준이 된다면, 삶의 가치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경제가 지배하는 날, 군사력이 지배하는 나라,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 등,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 이념은 다양하다

프랑스는 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어쩐지 다른 지배 이념보다 더 저력이 있어 보인다

프랑스가 경계하는 것은 세계화가 미국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지키려고 애쓴다

요즘 유행하는 반미주의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 문화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문화들을 받아들일 자세가 우선이다

적어도 프랑스 문화에서는 "똘레랑스"(다양성의 인정)와 "솔리다리테"(연대 의식), "앙가주망"(사회 참여) 등은 받아들여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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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표정훈 지음 / 궁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읽고 싶던 딱 그 책이다

그렇지만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의 수준을 결정짓는 조건 중 자료 수집 능력과 서술 능력을 들었는데, 내용은 아주 마음에 들지만 저자의 서술 스타일이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

어떤 책들은 술술 읽히는데, 또 어떤 책들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잘 안 읽힌다

자꾸 건너 뛰는 부분이 생겨 자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려고 노력한 책이다

 

이 책은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읽기 에세이라 하겠다

북 패티시즘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데 솔직히 난 아직 이 수준은 아니다

독서광이 되면 책을 읽는 행위를 뛰어 넘어 책 자체에 집착을 보이게 된다

물건으로서의 책 그 자체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하기 힘든 책일수록 반드시 손에 넣으려는 집착을 보인다

독서광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책을 소장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저자 역시 큰 방을 아예 서재로 꾸며 버리고 발코니도 공사를 해서 서재로 쓰고 있다

이건 우리집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다

아빠가 워낙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 때문에 주거 공간이 줄어들 지경이다

책을 소장하고도 여유 공간이 많은 넓은 집에서 살면 좋으련만, 그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으니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아빠 연구실로 분산이 되있어 다행이지만, 내 책까지 더해져 집이 창고 수준이 되가고 있다

 

책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아빠 책들 때문에 나는 책을 소장하는데 좀 부정적인 편이다

일본의 유명한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보면 서재에서 원하는 책을 즉시 찾아 줄 비서를 고용하고, 책을 소장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돈 주고 산 책을 쉽게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쌓아 놓을 수도 없어 지금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편인데, 도서관의 문제점은 신간이 늦게 나온다는 점이다

신문에서 괜찮은 책 서평을 읽으면 당장 그 책을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 입점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지라 돈을 벌면서 부터는 바로 사 버린다

아직까지 내 책이 주거 공간을 침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빠랑 같이 살려면 나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겠다

 

나는 가끔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사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 책을 읽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가끔 회의가 든다

특히 세이노란 사람이 "직업에 우선 충실하고 교양 쌓는 건 돈 번 다음에 해라, 박찬호가 야구 연습 안 하고 교양 도서만 읽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라는 식으로 쓴 글을 읽으면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물론 그도 책 열심히 읽으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때 책은 역사책 같은 게 아니라 경영서나 부동산 같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단순히 지적인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특히 이런 의문은 고대 이집트에 관한 책이나 알파벳의 역사 같은 현실에 별 쓸모가 없는 책을 읽을 때 더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나의 고민에 해답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연관성을 기르라고 한다

이를테면 중국 문화에 대해 알고 싶으면 중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섭렵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배경 지식이 쌓이고, 중국에 관한 신문 기사나 뉴스를 접할 때 보다 체계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나중에 중국에 관한 사업을 하게 된다면 과거에 읽은 책들을 통해 중국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을 경우 훨씬 잘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이건 좀 단순한 예에 불과하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세상을 더 넓게 보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또 책은 책 자체의 지식을 머리에 집어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읽는다고 할 수 있다

모르면 모를수록 교양이 생기는 것 중에 여성지와 스포츠 신문, 유럽의 왕실 암투, 드라마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다

 

요켠대 책이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는다기 보다는 (이것은 책의 하위 목적에 불과하다)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며,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을 잡기 위해 읽는 것이다

저자는 논술 고사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영상 매체에 길들여진 요즘 학생들에게 고전의 지문을 주고 거기에 관한 내용을 쓰라는 것은 수영도 못하는 사람을 바다에 던져 놓고 헤엄쳐 나오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헤엄쳐 나온 후 과연 그 학생은 물 근처에 다시 가려고 할까?

책을 읽는 행위는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틀을 잡는 것인데, 시험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생겨 버리면 과연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인가를 걱정한다

그러므로 대학들은 학생에게 무조건적인 고전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고전의 의미를 해석하는, 접근하기 쉬운 텍스트를 먼저 내 놓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소제목의 아래에 책에 관한 좋은 글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천국은 거대한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돈이 생기면 책을 사고, 그래도 남으면 음식과 옷을 사겠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책일수록 그 책은 아무도 안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등등 인류 문화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입에서는 책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천국이 도서관일거라 상상하는 가슈통 바슬라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책을 사랑한 사람이 아닐까?)

 

이 책에서 새로운 개념은 북큐레이터다

큐레이터란 미술관에나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미국은 도서관에 북 큐레이터가 근무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사서인 셈인데, 단순히 우리나라처럼 대출 서비스를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소유한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인문학 전공, 역사학 전공, 문학 전공 하는 식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서관에 어떤 책을 소장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한 논문을 쓸 때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 보다, 도서관 북 큐레이터에게 문의하는 게 훨씬 빠르다고 한다

저자는 사서들의 질을 높히기 위해 복수 전공을 의무화 하여 도서관학 외에 전문 분야를 두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서의 대우가 형편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 거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공공 도서관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고향이자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가 있는 시애틀의 도서관에 2천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왕 카네기는 미국 전역에 수천개의 도서관을 설립하고, 그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히 세계 최고의 부자들다운 배포 큰 멋진 기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기부 문화가 정착되면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이야 말로 거의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망한 분야일 거라고 저자는 돈많은 사람들을 설득한다

(카네기나 빌 게이츠 만큼은 못 벌어도 작은 돈이나마 기부하게 될 날이 왔음 좋겠다)

 

요즘처럼 실용서가 난무하는 시대에 책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과연 지식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쩌면 책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전자북이 보급되면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 섣부른 진단을 하기도 하지만, 책이 곧 삶을 의미하는 지성인들이 버티는 한 생각보다 종이책의 생명력은 길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운명과 그 궤를 같이 하여 끝까지 따라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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