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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라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무척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고 하길래, 기대를 잔뜩 갖고 읽었는데 건조한 문체에 질려 간신히 읽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 역시 별 기대는 않했는데, 의외로 큰 소득을 거뒀다
역시 일본 최고의 지성인답다
이 책에서 가장 새로운 개념은 교양에 대한 정의다
교양이라면 그저 지식인의 스노비즘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를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 볼 때, 교양인이야 말로 인류 문화의 총체라고 평한 그의 주장은 새로울 수 밖에 없다
그의 주장은 인문학부가 존폐 위기에 선 요즘 같은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시대 역행적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대학이 직업 교육장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됐고, 신입생 티만 벗으면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교양을 기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기본적인 인간성으로서의 교양이 아니라, 일정한 지적 수준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의미로서의 교양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고 불평할 만 하다
언젠가 주간지에서 요즘 대학 졸업생들은 회사에 들어오고 나면 실무 교육에 제대로 써 먹을 수가 없다며, 대학이 보다 실제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불평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는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는데, 대학이란 더 이상 학문의 지성소가 아니라 직업 훈련을 받는 곳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과거 유교 사회가 지나치게 학문적인 것에만 몰두해 과학과 기술을 천시한 것에 대한 반발인 양, 오늘날에는 순수 학문은 죽은 학문이라는 식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면 쓸데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철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어져 학과를 폐쇄해야 할 지경이라는 뉴스를 접할 때 만큼이나 몹시 착잡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마저 요즘 같은 테크놀로지 시대에 과연 퀘퀘묵은 고전들을 들입다 파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회의였다
(나는 가끔 실생활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참 남감해진다)
다치바나는 나의 이 의문과 회의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가 말하는 교양이란 단순히 고전을 읽는 행위가 아니다
그는 교양을 "시대가 만드는 모든 이념 체계"라고 정의할 때, 현대의 교양이란 과학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우리는 최첨단 과학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컴퓨터, 유전자 공학, 우주선 등등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과학이 생활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 수준은 대단히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에 속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이비 과학이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직관에 의존해, 단지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상관없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이라고 한다
교양을 갖춘다는 것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종합하여 자신의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총체적인 인식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치바나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사고 과정이란 정보의 수집, 평가, 이용 전달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의 교양인이 되려면 인터넷의 검색 기능을 잘 익히는 게 중요한데, 그 덕분에 주입식 암기 교육은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단순 지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선생이 불러 주는 내용을 기록한 후 암기해서 시험보는 식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험장에 교과서도 들고 가고, 인터넷 검색도 허락해서, 단순 지식의 암기 여부를 물을 게 아니라 그러한 여러 지식들을 종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아직도 학교 교육이란, 대학 교육을 포함해서 교사가 불러 주는 내용을 받아 쓴 후 열심히 암기하는 방식이다
대학 입학 시험에 논술이 반영되긴 하지만, 토론 수업을 전혀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원 강사가 집어 주는 몇몇 주제를 연습하는 식으로 준비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인지 의심된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일본을 상당 부분 본뜬 모양인데, 다치바나가 걱정하는 일본 교육의 문제점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유사하다
일본 역시 학교란 노는 곳이고, 제대로 된 공부는 학원에서 따로 한다는 식의 사교육 우선주의가 팽배해 있다
공교육에서 원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대학 정원보다 입학생 수가 현저하게 모자라기 때문에, 대학은 학생 유치를 위해 입학 시험을 더욱 쉽게 개편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대학은 OX 문제만 풀고 들어가기도 한다
도쿄 대학조차 국영수 세 과목과 사회나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기 때문에, 의대에 입학한 학생이 생물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예도 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인이 입시에서 선택하지 않은 과목은 고등학교 때 아예 배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기본적인 과학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에게 전문적인 대학 교육을 시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학 당국자들은 실력 미달의 학생들을 위해 보충 수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강의를 들을 수준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대학이 보충 수업을 시킨다니, 그렇다면 대체 입학 시험이 왜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차라리 제비뽑기를 해서 대학 신입생을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통탄한다
일본의 도쿄대라면 우리나라의 서울대와 같은 위상일 것이다
(단순 비교로 보자면 서울대 보다 훨씬 높은 위상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서울대생은 바보가 됐는가"라는 책이 나왔다면, 일부 사람들은 저자가 서울대 출신인지 아닌지부터 따질 것이다
(강준만이 쓴 "서울대 죽이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이, 비서울대 출신의 서울대 콤플레스라고 폄훼한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저자는 이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도쿄대 출신에다가 3년 동안 교수로 초빙되어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학벌주의 사회에 일견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이제는 대학이 그 사람의 품질을 말해 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어느 대학 출신인가가 그 사람의 보증서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즉 도쿄대를 나와도 바보일 수 있고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삼류대라고 무시하는 대학을 나와도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셈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기업들에게 사원들을 대학 출신별로 평가해 달라고 하자, 대부분의 항목에서 쿄토대와 와세다 대학 등이 1,2 위에 랭킹됐고 도쿄대는 7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도쿄대생이 대학 이름이 주는 우월감에 안주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학생 선발 방식부터가 우수한 인재를 뽑기 힘들게 하고, 커리큘럼도 우수한 인재로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인터넷 시대에 "유비쿼스트 대학"을 강조한다
유비쿼스트란 어디에나 있는, 도처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본인이 배우려고만 하면 어디서든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더 이상 대학만이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매체가 아님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대학에 들어가 대학 강의에 충실했다고 그가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학 이외의 수많은 매체들이 (책과 인터넷 등등) 대학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지적 자극을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저자는 교양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인터넷 검색 능력과 문서의 조작 능력을 꼽는다
(또한 저자는 현대가 미디어 시대임을 역설하고 누구나 미디어에 대응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의 자체도 특수한 전공 분야에 치우쳐진 마당에 강의에만 의존하여 학습을 끝내려 한다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진정한 교양인, 다시 말해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저자는 스페셜리스트 보다 제너럴리스트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전작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제너럴리스트를 추구하는 모습이 왠지 신뢰감을 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제너럴리스트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제너럴리스트란 단순히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을 가진 만물박사가 아니다
스페셜리스트가 자기 전공 분야의 좁은 학문에 능통한 반면, 제너럴리스트는 여러 학문들의 기본 정신을 두루 섭렵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고,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리더에게 이런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
(몇 년 전, 손숙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대해 배우가 뭘 알아서 환경부 장관을 할 수 있냐고 비판하자, 강준만이 전문가 신드롬에 빠지지 말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다치바나와 비슷한 논지였을 것 같다)
리더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문제를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수적이다
도쿄대생이라면 대부분이 정부 고위 관료에 진출하는 사람들인데, 제너럴리스트의 자질을 기를 수 있는 교양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교양의 또다른 자질로는 창의성을 들 수 있다
창의성이야 말로 서구 국가에 한참 뒤지는 덕목인데, 일본 대학 역시 교수가 불러주는 내용을 열심히 필기해 암기 여부를 평가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취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강의록을 보고 그대로 읽느라 "한자로 된 일"이라던가, "아라비아 숫자로 된 일"이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불러 준다고 한다
사실 암기 위주 교육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 저하를 우려한 미국 교육학자들은 오히려 동양식의 암기 학습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초 교육에 대한 내용이다
필수적인 부분을 암기한 다음에는 당연히 활발한 토론과 깊이있는 연구가 수행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고등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까지 강의록을 불러 주고 베끼는 방식의 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 대학을 들어오기만 하면 졸업이 당연하게 인식된 것도, 저자는 대학 당국의 지나치게 인자한 태도라고 꼬집는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누구에게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제공하되 (물론 기본적인 선별은 필요하겠지만) 일단 시작하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교육 수준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타과 학생들은 어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의과대학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유급 제도가 없다면 방대한 양의 의학 공부를 6년 내내 고 3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유급 제도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저자는 "다치바나 세미나"를 통해 학생들의 정보 수집, 조작, 전달 능력 등을 길러 준다
이 세미나는 자발적으로 조직됐는데, 그가 주제를 주면 팀을 이룬 학생들끼리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책으로 엮으면 다치바나가 평가과 지적을 해 준 후, 공식적인 출판을 통해 타인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출판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활동은 실제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데 아주 유용하다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를 끌어 내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동적인 학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활동이 진정한 의미의 교양이라고 말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는 평가답게 상당히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
모든 학생들이 이 수준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대학의 학생들이라면 그 자부심이 알맹이도 없는 헛된 속물 근성이 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도쿄대생에 대해 아주 시니컬한 비판을 하는데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옛날부터 바보였다"는 식으로 자문자답 한다
다소 과격한 얘기도 있지만, 대학생이라면 (즉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대학 시절에 봤다면 좀 더 열심히, 자발적으로 대학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한 것처럼 현대는 대학만이 유일한 학습 기관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학습이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 역시 이 책에 귀기울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교양을 쌓기 위해,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