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탄생 - 고대 올림피아부터 현대 올림픽까지
볼프강 베링거 지음, 강영옥 옮김 / 까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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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고 독일책이라 지루하면 어쩌나 긴장했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아주 유익했다.

서양에서 발간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동아시아 사회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육체에 대한 과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포츠 문화도 없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스포츠 문화도 결국은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을 받아들인 셈이다.

올림픽이라는 전지구적인 행사에서 상상의 공동체 즉 국가의 역량을 뽐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 스포츠의 확산에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전 국민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미친 듯이 몰입하고 온 나라가 축구에 들떠 있는 게 약간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지금은 어떤 의미로든 국민들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축제의 장이고,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이 바뀌긴 했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도 안 봤던 축구 경기를 10여 년이 지나 유튜브로 보다 보니 축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운동인지 확 빠져 버린 탓도 있다.

아마도 그 때는 국민적인 열광에 반감이 생겼던 것 같다.

솔직히 스포츠, 더 정확히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정말이지 1도 관심이 없지만 프로 선수들이 보여주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책에서는 21세기의 스포츠가 거대한 쇼 비지니스라고 하지만, 근대 올림픽 창시자들이 추구했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중가수에 대한 편견도 최근에 깨지긴 했다.

전에는 단순히 연예인, 딴따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감동을 주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그들 역시 대중 예술가이고 아마추어와는 다른 기량을 가진 프로구나 인정하게 됐다

역시 엘리트 선수와 박수를 치는 관중은 구별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스포츠의 기원, 곧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제전부터 시작해 21세기 스포츠의 역사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흥미롭게 풀어 쓴 좋은 책이다.


<오류>

113p

1513년,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레오 10세)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조카 줄리오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주교로 선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기경에 올랐다.

-> 줄리오 데 메디치, 즉 훗날의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의 조카가 아니라 사촌 동생이다.

208p

카를 5세 황제가 영국을 방문한 이유는 그의 이모인 캐서린의 딸, 즉 당시 6세에 불과했던 조카 메리 튜더와의 약혼 때문이었다.

-> 카를 5세가 약혼한 이는 이모 캐서린의 딸인 훗날의 메리 여왕이 아니라,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공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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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경관 - 전통유산과 기억, 그리고 장소
조지프 L. 스카파시 & 아르만도 H. 포르텔라 지음, 이영민.김수정.조영지 옮김 / 푸른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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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 대한 책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은 되야 출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양질의 책보다는 오히려 종이 공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용은 빈약한데 그럴 듯한 사진과 편집 기술, 마케팅으로만 승부를 보려 하니 안타깝다.

제목은 매우 건조하고 재미가 1도 없게 생겼는데 내용은 정말 알차고 흥미롭다.

여러 학자들이 쓴 책인데도 주제에 수렴하는 통일성이 훌륭하고 지루하거나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쉽고 흥미롭다.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막연한 찬양이나 비판이 아니고, 쿠바라는 나라의 인문 자연 경관에 대해 풀어 쓴 좋은 책이다.

쿠바의 현재 경관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요소는 1959년의 혁명도 아닌 바로 설탕 산업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쿠바가 설탕 산업의 선두 주자였다니 처음 알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고 철도가 뚫리고 미국 자본이 들어와 거대한 공장이 세워지자 쿠바의 설탕 산업은 나라의 근간이 된다.

스페인 지배 시절에 노예들이 유입된 것도 이 설탕 농업을 위함이었다.

혁명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으나 90년대 소련이 무너지자 보조금에 의존하며 방만하게 운영된 설탕 산업은 몰락하게 된다.

여전히 미국과의 무역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무상 의료, 무상 주택, 무상 교육 같은 무상 복지 정책은 그럴 듯하게 들리면서도 정작 국가가 그러한 부를 창출해 낼 여력이 없으니 결국은 가난의 공평한 나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국에도 맨발의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였던가? 코로나 시대에 집집마다 방문하여 의료 서비스를 해주는 쿠바 정부에 매우 감격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선도적인 의료 기술은 결국 자본이 투입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인민이 다같이 공평하게 못사는 것과 이른바 양극화라는 불평등을 감수하면서 좀더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 것, 어떤 쪽을 민중은 선호할까?

국가는 정말로 모든 국민을 보듬어 안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대중을 지키는 것이 좌파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빅브라더는 아닐까?

무주택자로서 이번 정권을 견디다 보니 분노가 폭발하는 건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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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1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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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 역사는 언제나 모호한 느낌이다.

바빌론은 어떤 나라인가?
현재의 이라크 민족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르크의 후손은 누구인가?
이집트처럼 폐쇄된 지역의 오래 존속된 왕국이 아니라 그런지 명확히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잘 쓰여진 책이다.
이 책 정도로는 안 되고 더 많이 읽어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바빌론은 하나의 혈통으로 이어진 왕국이라기 보다는 도시 국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문 신이나 호루스 등을 섬겼듯 이들은 마르두크를 섬겼다.
마르두크의 대리인이 곧 왕이기 때문에 신전의 사제들에게 인정받으면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테베의 신전 사제들 권한이 셌던 것처럼 마르두크 신전의 사제들은 외국인 왕을 승인하는 역할을 했다.
엘람이나 아시리아 왕들은 모두 마르두크 신전의 사제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특권을 인정해 줬던 반면, 기원전 6세기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 왕들은 더이상 바빌론 신의 권위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바빌론을 세금을 걷는 피정복지로 봤을 뿐이고 이런 배경에서 성경에 나온 유대인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에 수도가 안티오키아로 옮겨 가면서 바빌론은 지방 도시로 전락했고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이 퍼지면서 결국 마르두크 신전은 문을 닫게 됐고 신을 찬양하던 쐐기문자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19세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다시 폐허가 발굴된 것이다.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바빌론의 역사에 대해 쉽게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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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의 역사 -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
이숙인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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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다.

요즘은 페미니즘이 오히려 역차별 문제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문제가 되는 시대지만, 어쨌든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남성, 특히 가부장에게 예속되어 종속적인 삶을 사는 비주체적인 존재였음은 확실한 것 같다.

사회에 진출하는 남자들은 임금에 대한 충을 최우선시 하고 바깥 활동을 못하는 여성은 직접 임금에게 충을 바칠 수 없으므로 대신 남편에게 정절을 바치는 느낌이다.

여성의 권리야 비단 조선 사회만 낮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개가 자체를 금지하고 평생 과부로 살게 하는 관습은 참으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다.

요즘이야 여자가 직업 활동도 할 수 있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평생 혼자 살 수 있었을까?

그래서 재산이 없는 하층민들은 개가가 자유로웠던 반면, 특권층인 사대부가의 여성들은 평생 수절했던 듯하다.

하층민들에게까지 현실적으로 수절을 강요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럼에도 조선 후기로 갈수록 수절은 전 계층에 당연스런 관습이 되었다.

참으로 유교 교조주의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오랑캐에게 굴복하고 충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었던 사대부들은 보다 손쉬운 통제의 대상인 여성들에게 정절을 강조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

양란을 거치면서도 조선이 무너지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던 걸 보면 확실히 이런 비인간적인 잔인한 노력은 효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충이니 정절이니 하는 개념이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우리 후손들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현재의 가치, 이를테면 민주주의를 위해 개인의 삶을 무시하는 걸 비판하지 않을까?

이념과 가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팽개치는 것은 확실히 어리석은 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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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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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확 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이라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었다.

표지 디자인이 다소 지루해 보이는 제목을 산뜻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과학은 100%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학문이지만 적어도 근본적인 정신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공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간단히 말해 지적 사기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진실을 전부 상대적인 것으로 몰아가고 과격한 극단적 회의주의를 추구하며 말을 위한 말장난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재의 인간의 머리로 100%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자연의 구성 원리에 상당히 근접해 왔고 그 증거가 바로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삶의 조건일 것이다.

이를테면 평균 수명의 증가나 교통수단, 의학의 발전, 달 탐사 등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들 말이다.

한때나마 계몽주의나 합리주의는 구식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자연계를 구성하는 "객관적 진실"에 보다 다가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결국은 과학, 즉 증거와 실험에 기반한 과학일 것이다.

정치적 좌파에 대한 공격도 인상적이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21세기의 현실에서 좌파들이 선택한 방법은 어려운 현실 문제를 뒤로 하고 지적 유희로 가득찬 자신들의 학술 공동체에 함몰되어 지적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념이 선명하고 위대해도 (진짜로 그 이념을 신봉하고 추구하고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실제 민중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하는 것인가?

진심으로 정치적 좌파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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