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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 [Dts] - 양장본, 할인판
Various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메가박스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했던 토스카를 관람했다.
영상물로 보는 오페라는 아무래도 현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거기다가 2만원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 때문에 매력이 감소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D 화질과 큰 화면이 주는 시원스런 맛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최신 DVD 가격도 2만원이면 살 수 있기 때문에, 또 오페라 역시 뒷쪽 좌석을 사면 2만원 대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로 보는 오페라가 이 정도 가격이란 건 비싼 감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집에서 혼자 DVD 보는 것보다는 훨씬 실감이 났고, 항상 싼 좌석만 샀기 때문에 배우들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없는데 바로 코앞에서 생생하게 보니까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배우 못지 않게 극에 상당히 집중하면서 나름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바라돗시나 토스카의 아리아에서 멋지게 박수를 쳐쥐 못한 건 아쉽지만 나에게는 오페라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다.
그래서 그 여세를 몰아, DVD로 다시 한 번 토스카를 보기로 했다.
지난 번 <사랑의 묘약> 이나 <팔리아치>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덜 유명한 건지 도서관에 비치가 안 됐는데 다행히 <토스카>는 빌릴 수 있었다.
2003년에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영상물이었다.
줄거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지난 번 공연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대 장치 같은 것도 비교해서 보니까 재밌었다.
사실 아직까지는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나 차이점 같은 건 품평할 수준이 못 된다.
귀가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플로리아 토스카는 굉장히 능동적이고 행동하는 여인이다.
이런 게 서양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너무 단순화 시킨 것일 수도 있으나) 동양 여자가 인고하는 삶을 살고 순종하고 여리다면, 서양 여자들은 강렬하고 힘있어 보인다.
남편을 구하러 남장을 하고 감옥으로 찾아간 베토벤의 레오노레도 그렇고 토스카 역시 악당 스카르피아에게 굴복하지 않고 몸을 요구하는 그를 칼로 찔러 죽이고 사랑하는 연인 카바라돗시에게 달려간다.
욕정을 채우기 위해 카바라돗시를 사형장으로 보내고 그녀에게 덤비는 스카르피아에게 토스카는 칼로 복부를 찌르면서 이렇게 외친다.
"이게 바로 토스카의 키스다!"
한마디로 스카르피아는 사람을 잘못 본 거였다.
나중에 스카르피아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공포탄으로 죽이는 척만 한다던 마리오 카바라돗시가 진짜로 죽은 걸 알고 그녀 역시 살인이 발각되어 쫓기게 되자 높은 탑 위에서 떨어지면서 소리친다.
"스카르피아, 하나님 앞에서 보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너무나 당당한 그녀, 토스카!
라 보엠에서 폐병에 걸려 가엾게 죽어 간 미미와는 전혀 다른, 비록 둘 다 죽는다는 비극적 설정은 똑같지만, 강인하고 다부진 면모를 보여 준 캐릭터다.
제일 안타까웠던 노래는 역시 카바라돗시가 죽기 전 연인 토스카를 지상에 남겨 두고 가면서 부른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다.
무슨 내용인지 가사를 전혀 모를 때도 멜로디가 좋아 혼자 흥얼거렸던 노래인데 내용을 알고 보니 더더욱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이 세상에 그대를 남겨 두고 가려니 눈물이 나는구나.
별은 빛나고 있었고 대지는 향기로웠다네.
문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렸지.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베일을 벗기면서 그녀는 미모를 드러냈지, 그녀와의 키스...
그 사랑의 꿈이 이제 영원히 사라지는구나...
그리고 나는 절망에 죽어가네...그렇게 인생을 사랑했던 적이 없었네...
죽음을 앞두고 남길 것이라고는 오직 반지 하나 뿐인 카바라돗시는 토스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죽음의 순간을 앞둔 그 심정이 얼마나 절절하고 고통스럽고 또 괴로웠을까.
피하고 싶으나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그런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절대적인 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의 인위적인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스카르피아를 죽인 토스카는 죽기 전에 그가 써 준 통행증을 가지고 신이 나서 처형장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마리오에게 거짓으로 죽는 거라고, 총을 쏘고 나면 우리는 도망가면 된다고 들떠서 말한다.
죽음 직전, 이 세상에서의 아주 잠깐의 희망의 순간들.
곧 채 몇 분도 안 되서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날 이 가엾은 연인들의 안타까운 희망과 행복의 순간들.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행복의 순간이 안타까운 것 같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왜 이렇게 비극적인지.
라 보엠에서 미미가 죽을 때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는데.
가난해서 병 걸려 죽는 거라 더 안타까웠었다.
흠... 아무래도 난 <피가로의 결혼> 같은 오페라 부파가 더 맘이 편하네.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했던 오페라는 가수들이 하나같이 너무 뚱뚱해 처음에는 몰입이 잘 안 됐는데 이번 영상물의 배우들은그래도 비쥬얼이 좀 낫다.
뚱뚱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말이 생각나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영상물이다 보니 극에 몰입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배우들의 비주얼도 필요한 것 같다.
이 영상물의 카바라돗시 역을 맡은 테너는 일단 생긴 건 더 멋지다.
언제쯤 인물이 아닌 노래를 평가할 날이 올까.
하여튼 어렵게만 느껴졌던 오페라가 생각보다 재밌고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임을 요즘에 느끼고 있다.
메가박스에서 하는 오페라 상영물은 가능하면 매달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