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젠장맞을 영화.
보다가 나가 버린 사람들 심정이 이해될 정도임.
토요일 메가박스에 갔는데 죄다 매진이고 시간은 때워야겠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영화인데 왜 이것만 빈 좌석이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이건 뭐 공포라기 보다도 엽기라고 해야 할 듯,
인간의 공포 심리를 탐구했다고 하는데 평론가 말대로 원작은 어떨지 몰라도 영화는 그저 시각적 끔찍함만 강조해서 유달리 잔인한 장면에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비추임.
잔인하고 무서워서 비추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설득력이나 완성도가 떨어짐.
많이 각색했다고 하니 원작은 어쩐지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주인공 퀘이드는 가학적 심리를 즐기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같다.
FBI 프로파일러가 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를 보면 사람을 죽일 때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들이 많이 등장한다.
원한 관계나 분노 감정 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쾌감 때문에 죽인다면 이건 정말 정신병으로 치부해야 할 듯.
주인공 퀘이드는 어린 시절 부모가 강도에게 도끼로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역시 도끼날에 노출됐는데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안 나온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극단적인 공포감에 어떻게 맞서는지 파고든다.
미인이지만 얼굴을 비롯한 몸 절반에 얼룩이 있는 애비.
그 반점이 적나라하게 대중 앞에 노출됐을 때의 공포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옷을 벗길 수 없는 퀘이드는 대신 그녀의 전라를 그린 후 거기에다 물감을 뿌리는 화면을 교내에 유포시킨다.
결국 애비는 면도날로 얼룩을 벗겨 내려다가 응급실로 실려간다.
문득 노구치 히데요의 전기가 생각난다.
손가락이 사로로 붙어 버린 노구치는 놀림 받는 게 싫어서 면도칼로 가운데를 자르다가 과다 출혈로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본 전기라 작가가 적당히 꾸며낸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하여튼 신체적 컴플렉스를 주변 사람들이 놀림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받는 트라우마는 엄청날 것 같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 역시 면도칼로 피부를 벗긴다고 해서 반점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겠지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겠지.
극단적으로 고기를 혐오하는 셰릴을 골방에 가둔 후 잘 익은 스테이크를 던져 준다.
며칠을 기아에 허덕이자 이미 애벌레가 들끓는 고기를 죄다 먹어 치운다.
그런데 솔직히 썩은 고기는 일단 냄새나 맛이 역겹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생리적으로 못 받아 들인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실화라기 보다는 영화를 위한 설정 같다.
차라리 정상적인 맛의 고기를 던져 주면 또 모르겠다.
관념적인 설정 같다.
마지막에 남자 친구의 시체를 칼과 함께 골방에 던져준 후 이번에는 며칠이나 버틸지 보자고 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코메디 같았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익히지도 않고 사람 시체를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여자가 베어서 먹을 수 있겠는가?
<로드>에서 지구 재난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단지 골방에 며칠 가둔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남자 친구의 시신을 먹는다는 건, 무슨 개도 아니고.
일단 사람 생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겠냐고.
사람이 정말 극단적인 굶주림에 처하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스스로 대의명분을 위해 굶어 죽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인간은 관념적인 존재라 극단적인 상황이라 해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작위적인 설정이라 설득력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오히려 <로드>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잘 묘사했다고 본다.
이 소설은 영화로 언제쯤 만들어지려나?
하여튼 주말에 괜히 기분만 완전히 상했고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스티븐이 청력을 손상시킨 사람이라 오해를 받아 피해자의 도끼날에 맞아 죽고 마는데, 이 장면이 상당히 리얼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고대의 전투 때도 백병전을 하면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끼도 무기로 애용됐으니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상대를 죽였을 것 같다.
멀리서 총으로 쏘는 것과는 고대 전투는 어쩐지 차원이 달랐을 것 같다.
가끔 옛날 소설책을 보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인권 의식이 매우 낮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눈 앞에서 사람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야 했으니 더 거칠고 무자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남자들이 여성 비하 의식이 훨씬 심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