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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한평생 - 초대박물관장자서전
김재원 지음 / 탐구당 / 2013년 1월
평점 :
2013년도 출간 책이라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책의 1/3이 한자다.
어쩐지 보존서고에 있더라니.
2013년도 판은 새로 찍은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읽은 책은 1992년도에 나온 것 같고, 이 당시만 해도 한자어가 이렇게 많이 쓰였다는 게 놀랍다.
인물명이 전부 한자라 특히 읽기 힘들었다.
30년 사이에 이렇게 글쓰기 환경이 많이 바뀌었나 놀랍다.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 분의 딸 김영나 교수의 책을 재밌게 읽어 관심을 갖게 됐다.
딸 셋 중 두 분이 모두 미술사 전공이라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고, 둘째 딸은 소아과 의사였으니, 여자가 사회 진출하기 어렵던 시절에 참 대단하다.
부인도 일제 시대 때 동경의전을 나온 여의사였다고 한다.
가족사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이 부분이 아쉽다.
무척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제목답게 박물관에 바친 한평생에 중점을 둔 자서전이라 그런 모양이다.
1909년에 함경도에서 태어났고 조실부모 했으나 조모가 계시고 부잣집이라 무려 일제 시대 때 독일 유학을 가게 된다.
아버지가 21세에 사망하고 어머니는 저자의 나이 8세 때 재가해 버렸으나 숙부 손에 크게 된다.
함흥 시내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숙부의 소실 집에서 숙식했다고 하니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스토리다.
저자도 장티푸스에 걸려 1년을 병원에서 지냈는데, 숙부들과 사촌까지 이 때 죽고 만다.
정말 옛날에는 단명했던 것 같다.
요즘도 유학가는 게 쉽지 않은데 1920년대에 일본도 아니고 독일로 유학가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독일인 와이프와 귀국한 사촌을 보고 자극을 받아 저자도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다.
독일 유학 당시 근대 미술사에 나오는 배운성이라든가, 이미륵 등과 교제한 이야기가 나와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미술사 조교로 일하다가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한국으로 돌아와 보성전문학교에 강사로 출강하다가 해방을 맞았는데 이 때 미군정에게 뽑혀 박물관을 맡게 됐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전문 인력이 부족할 때라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전부 대학 교수가 되던 시절이라 대학으로 가지 않고 박물관에서 일한 것도 큰 결단이었다고 한다.
36세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아 25년 동안 재직하면서 대학에 출강도 나가고 고분 발굴도 하고 해외 전시도 개최하는 등 많은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과정들이 나온다.
전 세계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모습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던 시절에 이런 기행문들이 신문에 실리면 화제가 됐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는 자서전이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아주 흥미로웠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무척 자상한 아버지였을 것 같고, 북에 두고 온 친척들 이야기는 없어 궁금증이 생긴다.
정년퇴직할 때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자동차를 선물한 얘기가 나오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일반인은 운전면허 따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는지 선물로 받은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수를 고용하고 기름값 등 유지비 때문에 고생한 얘기가 나와서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