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간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기대를 엄청나게 한 책이었다
똘이를 키우면서 개에 대한 애정이,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되버렸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똘이 얘기를 막 하고 싶고 이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차였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 개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 죽겠고, 또 남의 개는 어떻게 자라는지 무지하게 궁금해진다
그래서 똘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다른 개를 만나게 되면 꼭 주인과 얘기를 나누게 된다
최소한 "그 강아지는 몇 살이예요?" "이름이 뭐예요?" "어머, 정말 예쁘게 생겼다" 이 정도 멘트는 꼭 날리게 된다
예쁘게 생겼다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주인이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마다 하나같이 천사처럼 예쁘고 귀엽다
마치 유모차에 실려 온 어린애들이 다 귀엽듯이 말이다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작가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애인인 재니스의 불평처럼,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일 따름인데 뭘 그렇게까지 쩔쩔 매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모든 게 다 용서되고 최고로 떠받들고 싶은 충동이 새록새록 생기게 된다
마치 엄마들이 막 태어난 애기들의 작은 반응에도 뛸듯이 기뻐하는 것처럼, 강아지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오직 나만을 의지하고,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책임감이 불끈불끈 솟는다
또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도무지 강아지에게는 짜증을 낼 수가 없다
한 번은 똘이가 엄마를 물어서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우리 식구 누구도 똘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왜냐면, 똘이가 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다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똘이에 대해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만큼이나 할 말이 늘어진다
그래도 책 속의 귀여운 고양이 노튼과 주인은 행복한 거다
노튼은 아프진 않았으니까
우리 똘이는 집에 처음 온 날부터 구토와 설사를 시작해 거의 죽을 뻔 한 고비를 넘겼다
동물병원에 데려 갔더니 죽을지도 모른다고 일단 입원을 시키고 수액을 맞추라고 했다
똘이를 입양한 애견샵에서는 데리고 오면 다른 개로 바꿔 주겠다고 했지만, 가게로 돌아가는 순간 똘이가 방치될 것은 너무 자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가게로 데려가는 대신,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1kg도 안 나가는 조그마한 요크셔테리어가 수액을 맞는 처참한 광경이라니...
천만다행으로 살아 났지만 의사는 새로운 얘기를 했다
똘이의 양쪽 다리가 선천성 탈골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다리를 모두 수술을 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 때 그 기막힌 심정이라니...

 

한 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번갈아 가면서 양쪽 다리 수술을 했다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다
아직 너무나 어린 똘이에게 마취와 수술, 그리고 깔대기를 쓰고 캐스트를 대야 했던 시간들은 참 길고도 긴 수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그 과정이 힘들었던지 차라리 수술을 시키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한동안 건강하게 자라나 싶었는데 산책을 데리고 간 게 문제였다
처음 개를 키운 우리 식구는 목줄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어 버린 채 높은 곳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세상에 활발하기 그지없던 이 강아지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문을 연 병원이 없어 엄마와 아빠는 울면서 똘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다녔다
똘이의 그 끔찍한 비명소리, 아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한 쪽 다리가 완전히 두 동강 나 버려서 이번에는 수술을 한 뒤 철심을 박았다
탈골 수술 보다 몇 배로 힘들었고 회복되는 시간도 길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잘 치료해 줬고 그 뒤 똘이는 잘 뛰어다니긴 하지만, 수술 전에는 침대 위로 점프를 잘 했으나 수술 후에는 못한다

 

그 뒤 3년의 시간이 흘러 똘이는 매우 건강하다
그렇지만 최근에 엑스레이를 찍어 본 의사가, 수술 때문에 엉덩이 관절 부위가 헐거워져서 5년 이내에 관절염이 생길 위험이 높다고 했다
산책할 때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은 피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산에서 내려올 때 가끔 가기 싫다고 주저앉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똘이가 어리광 피운다고만 생각했는데, 제 딴에는 수술한 부위가 아팠던 것이다
결국 그 날로 등산은 포기하고 산책할 만한 평지를 찾고 있는데 공원이 없는 아파트라 좋은 트래킹 코스 찾기가 힘들다

 

이 책에서 제일 부러웠던 게 바로 노튼을 맘대로 풀어 놓을 수 있는 주변환경이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차가 없는 산책로가 펼쳐진 곳에 사는 저자가 너무 부럽다
특히 여름을 해변가에서 보내며 노튼과 산책할 수 있는 저자가 정말 부럽다
우리도 좀 잘 살아서 그런 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에 온통 차도 밖에 없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다 보니 똘이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이 없다
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는 먼지 투성의 흙바닥이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시장갈 때 노튼이 뒤에서 졸졸 따라온다는 문장을 읽고 얼마나 부럽던지!!
똘이에게 그런 환경을 선물해 주지 못하는 게 정말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직업상 집을 오래 비우는 저자가, 어디를 가든 심지어 해외를 나가더라도 꼭 노튼을 데리고 가는 모습에서 감동받았다
물론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고양이를 홀로 버려 두지 않는 정말 좋은 주인임이 틀림없다
맞벌이 부부에다가 애들도 다 커 버린 우리 집은, 낮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똘이는 하루 종일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서 식구들을 기다린다
난 그게 늘 안타깝다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심심할까 싶어 강아지 한 마리를 더 키울까 싶기도 했지만, 워낙 식구들이 바쁘고 또 똘이가 최근까지 많이 아팠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저자는 노튼을 데이트 할 때도 데리고 간다
첫 장면에서, 노튼을 선물한 애인 신디와 데이트 할 때 그녀의 고양이 말로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말로와 노튼은 두 남녀가 데이트 할 때마다 만나는 친구 사이다
신디와 저자가 헤어질 때 말로를 못 보는 게 더 가슴 아팠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된다
신디와는 애인 관계를 청산했지만, 아무 죄없는 말로까지 볼 수 없게 되다니, 노튼에게도 저자에게도 모두 가슴아픈 일이었을 것 같다
사실 애인과 잠자리를 할 때마다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 남자, 좀 깰 것 같다
신디처럼 같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애인들은 고양이가 좋냐, 내가 좋냐라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해야 했고 그런저런 일들이 쌓여 결국 헤어지고 만다
사실 그 내면에는, 지속적인 관계를 불편해 하는 저자의 자유분방한 기질도 숨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서 재니스와 결혼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어떻게 됐는지는 2권과 3권을 읽어 봐야 알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6-09-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생이 많으셨군요. 맞아요. 건강이 최고지요. 강아지들 아프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지 알아요. 지금은 건강하다니 정말 다행이고, 온 가족의 사랑을 받는 똘이는 가장 행복한 개란 생각이 듭니다.

marine 2006-09-2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희도 똘이를 우리집 막내라고 생각합니다 키우느라 고생한 것에 비하면 똘이가 주는 기쁨이 너무 크죠 그런데 똘이라는 이름이 부르긴 편한데 촌스러운 것 같아요 전 레오란 이름, 참 좋더라구요^^
 
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낙 화제가 된 책이라 궁금해서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두께가 얇아서 조금 놀랬다
독특한 책이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감상을 바탕으로 쓴 몇 편의 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평면적이고 강렬한 색채의 삽화와, 아르헨티나 사진들을 넣어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소설 역시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가진 여주인공이, 아르헨티나 가서 느낀 점들을 고백하는 형식이다
문체가, 뭐랄까 큰 일을 담담하게 말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문체는 작가의 원래 글 쓰는 스타일 같다
뒤에 나온 작가 후기에서도 굉장히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아주 착하고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겸손함이 아니라, 세상에 그렇게까지 큰 일은 없답니다, 이런 식의 가벼운 느낌이랄까?
시니컬한 은희경식 문체와 아주 비교되는 스타일이다
조금 덜 세련된 하루키라고 할까?

 
"해피 투게더" 를 보면서 아르헨티나에 대해 처음 접했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적인 그 어떤 것인 모양이다
그 전에는 그저 지도 위에 나온 나에게 지극히 무의미한 한 국가에 불과했는데, 그 영화를 본 후 "아르헨티나" 라는 국명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가까운 느낌이 든다
동성애자로 내일이 없는, 오늘만을 살아가는 두 젊은이들이 찾아가려고 했던 곳, 홍콩의 정반대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가 있는 아르헨티나
결국 장국영은 죽고, 혼자서 이과수 폭포에 도달한 양조위의 독백이 서글프게 남아 있던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 책을 보면서 줄곧 그 영화를 생각했다
뭔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바나나의 책이 훨씬 덜 부담스럽고 가볍지만

 
그런데 정말 남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광고의 문구처럼 정열과 탱고의 나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역자후기에 반복되는 정열의 남미라는 수식어가 약간의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어쩌면 정형화된, 그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종의 편견은 아닐까?
실제로 그 나라를 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어쨌든 책에 실린 거대한 이과수 폭포를 보니,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책의 첫 단편은 생각할 꺼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너무나 바쁜 도시인이기 때문에 불륜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표현, 현대인의 사랑 패턴을 잘 정의했다는 느낌이 든다
"바람난 가족" 에서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문소리가 분노하는 대신 "오히려 잘 됐네, 소통할 사람이 있어서"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는 무심할 수 밖에 없고, 아내와 굳이 자리 다툼을 벌이지 않아도 될, 애인의 영역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특히 쌍방이 일 때문에 바쁜 경우에는 불륜도 쉬 오래간다.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바로 그 환경이 이런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한, 환경에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예를 들어 나 또는 부인이 임신을 하거나 부인의 부모가 죽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그런 외적인 힘이 가해지면 사태가 변하겠지. 아직은 젊고 어린 마음이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 진짜 인생의 무게에 다소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지를 믿고, 맡기려 했다, 특히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남편의 애인에게 그것도 외국에 나가 있는 애인의 호텔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죽었다는 장난을 친 아내, 정말 특이한 설정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얼굴없는 미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아내가 죽었는데 그녀와 불륜 관계에 있던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아내의 휴대폰으로 왜 연락하지 않냐면서 전화를 걸어 오는 것이다
차마 내 아내가 죽었소, 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남편은 말없이 그의 전화를 듣고만 있다가 끊는다
불의의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버리면, 비공식적인 관계였던 애인은 그녀가 변심했다고 착각하는 어이없는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일종의 블랙 코메디라고 할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관계가 주는 서글픔이라고 할까?
어쨌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애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아무런 조치도 못한 채 그저 낯선 외국의 묘지에 가서 울 따름이다
불륜의 관계니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도 없고, 왜 죽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그저 죽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일 수 밖에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저녁에 호텔로 걸려 온 애인의 전화
죽은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놀란 주인공, 사실은 애인의 아내가 악의적인 장난을 친 것이었다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장난을 칠 정도라면 그 아내 역시 남편의 불륜을 그저 약간 비웃는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게 아닐까?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남편의 애인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잡아 끄는 극성맞은 아내들의 모습은,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드문 느낌이 든다
현대인의 불륜, 환경이 만들어 놓은, 소통의 부재나 무관심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적인 불륜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


클래식 기타에 대한 감상도 자주 나온다
세 번째 단편도 독특한데, 주변의 기대를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의 클래식 기태에 대한 애착이 인상적이다
장황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기타를 구입하려고 일본에서 아르헨티나까지 딸을 데리고 간 남자, 심상치 않다
주인공의 외할머니는 프랑스 화가의 현지처였다
딸 하나를 낳고 살던 외할머니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자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자살했다
현지처, 얼마나 슬픈 단어인가!
애인보다 더 서글픈, 눈물나는 단어다
현지처라고 하면 막연하게 연변족이나 후진국의 가난한 여자를 떠올렸는데, 일본이라는 선진국에서도 유럽 유명 예술가의 현지처 노릇을 하는 여자들이 있다니, 당연한 거지만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법적 관계가 아닌 애정 관계는, 아무런 울타리도 없고 외적인 힘에 대항할 능력이 없는 연약한 속살 같은 관계인 것 같다
외할머니를 그린 외할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본 주인공은, 엄마를 닮은 듯한 그 초상화를 사고 싶었으나 어마어마한 가격에 놀라 포기했다고 한다
매일 울고만 있는 어머니를 위해, 파리로 전화를 걸고 싶었다는 조그만 여덟 살짜리 아이의 가냘픈 심성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 슬펐다
그 화가가 조금만 더 인간적이었다면, 버림받고 자살해 버린 여자의 딸을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자기 자식인데 말이다
적어도 어머니를 그린 그 초상화 한 점이라도 기념으로 남겨 줄 수는 없었을까?
전시회에서 외할머니의 얼굴을 봐야 하는, 그것도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달고 봐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서글프다
엄마에게 자신이 만든 종이집에 들어가 살아달라고 사정했다는 외할머니, 어쩌면 딸이라도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램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딸은 보호대상이 됐지만, 단순히 정신병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슴아픈 사연이다
잡히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딸이라도 자기가 만든 공간 안에 가둬 두고 싶었던 가엾은 여자...
그 딸은 어머니를 이해했고 기꺼이 종이집 안에 갇혔지만 (여덟 살짜리 소녀가 어머니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 것 뿐이었으니까) 성장해서 폐쇄공포증을 갖고 만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칠레 소설

파블로 네루다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마리오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마지막에 마리오가 시 공모전에 시를 내고, 바로 쿠테타가 일어나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는 저자의 서문에 딱 들어맞는 결말이다

베아트리스 곤살레스와 법정에서 자주 만나 식사를 했다는 말이 서문에 나오는 걸 보면, 마리오라는 인물도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약간의 변형은 거쳤겠지만, 군부 독재 시절 억울하게 시 한 편 쓴 걸로 끌려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하긴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이런 일은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널려 있을 것이다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걸쭉한 육담이 소설의 백미다

아마 저자 자신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일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사랑의 언어가 갖는 허구성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는지, 놀랍다

결국 다 섹스로 연결된다는 걸 너무 리얼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혼을 빨리 하긴 하나 보다

베아트리스는 겨우 열 여섯 살에 마리오와 첫 섹스를 하고 바로 결혼했으니까 말이다

 

메타포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백미인 것 같다

메타포의 뜻이 뭔지 정확히 알게 됐다

평범한 사물도 시의 눈으로 보면, 즉 메타포를 사용하면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탄생한다

이를테면 비를 하늘의 울음이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모든 것을 상징과 비유로 표현하면 끔찍한 현실 속에서도 한 편의 시가 탄생할 것 같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니까 약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어서 좋다

괜찮은 독서법 같다

너무 검색에 몰두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 한 편을 보고 나서 남는 게 정말 많다

이 책을 통해서도 칠레 현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아옌데가 누구인지, 피노체트가 어떻게 정권을 탈취했는지, 특히 카스티야라는 한 마디 단어를 가지고 카를 5세의 가계도까지 알게 됐으니 소득이 크다

교양은 이렇게 쌓아가는 것 같다

책을 이렇게 읽는다면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정말 엄청날 것 같다

특히 소설의 경우 외국 생활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 준다

지난 번 "책과 바람난 여자" 에서도 프랑스의 일상 생활을 많이 알게 됐고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에서는 현대 프랑스 정치사에 대해 감을 잡게 됐으며 이번 책에서는 칠레의 현대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사기 본기를 읽으면서는 고대 중국 역사를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책이 주는 효용성은 정말 엄청나다

 

중남미 소설은 확실히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색이 있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이나 11분을 읽었을 때 딱 그 쪽 계열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판타지가 가미됐다고 해야 할까?

명료한 사건 전개 보다는 은근슬쩍 넘어가는 게 많다

플롯의 탄탄한 구조 이런 걸 별로 중요시 안 하는 느낌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J뽀스 2006-08-1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영화보셨나요? 일포스티노.

marine 2006-08-1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말만 들었어요 일 포스티노가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고 하더군요

부엉이 2006-10-0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체홉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웠고, 또 누군가는 네루다를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하더군요. 문학이란, 목적을 순수하게 하는 힘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 급하게 읽은 책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장면 한 장면 꼼꼼히 읽기 보다는,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성급하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사실 이런 소설에서, 아니 어느 정도 수준있는 소설에서 줄거리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다지 질높은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자꾸 결말을 빨리 알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

더구나 한 번에 쭉 읽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책이라, 더더욱 ?기는 기분으로 급하게 읽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체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은희경이 제시한 새로운 갈등 관계,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자 하는 한국 아버지들의 그 가족주의가 마음에 들긴 했는데, 저자 후기를 읽으면서 약간의 반발심이 생겼다

은희경은 평론에서도 인정받고 이름만으로도 책 수 십만권은 팔아 치울 수 있는 이른바 문화권력을 가진 작가인데, 내면의 고민들, 그러니까 나같이 안 풀리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배부른 고민들에 불과한 얘기들을 후기랍시고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 게 좀 아니꼬왔다

왠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위 배알이 뒤틀린다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고뇌하는 척, 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고민들을, 평소에는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그것들을, 작가후기에 멋진 문장과 함께 필력 자랑하려고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너무 꼬여 있는 걸까?

하긴 내 고민이라는 것도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봤는데, 은희경 입장에서 보면 작가로서의 고민은 있을 수 있겠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 더 근원적인 것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분명 내제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고민이란 것은 너무나 개성적이고 제각각이라 처음부터 크고 작고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주제 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가족주의로 묶여 있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아들딸들의 공통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로 윗상사가 서울 사람이었는데 전라도 지방으로 혼자 학교를 와서 좋았던 점은, 무리에 쉽게 어울리기 힘들고 외로웠던 점도 있었으나, 가족이나 선후배 같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진짜로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고 살았다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고 들었던 얘기가, 타지로 떠나 있는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

주변을 둘러  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은 차라리 가족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가족이 없다면 한 학기에 등록금이 300만원씩이나 하는 사립 대학을, 그것도 원룸에서 살면서까지 다닐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가족이 주는 혜택만 누리고 의무나 간섭은 벗어 던지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에게 헌신적인지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결혼을 해서도 직장 나가는 딸을 위해 기꺼이 노년을 손자 키우기에 바치는 게 바로 대한민국 어머니들 아닌가?

자식 과외시키려고 식당 아르바이트나 가사 도우미도 자처하는 게 한국의 엄마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리는 게 또 대한민국 사회다

모든 인간관계는 give and take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헌신을 하는데 요구하는 게 없을 리 없다

절대적인 사랑이란 건, 부모 자식간에도 불가능한 말이다

물질적으로 바라지 않을 뿐,감정적인 기대감은 다른 어떤 나라의 부모보다도 클 것이다

 

장남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의 존재는, 더구나 큰 아들의 존재는 너무 엄청나서 장남 컴플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요즘처럼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을 만큼 잘 살았다면 장남이고 차남이고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6-70년대만 해도 딸은 물론이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마저 똑같은 교육적 혜택을 베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라도 잘 되야 한다는, 그래서 그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장남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자식들은 소외됐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영준과 영우 두 형제 밖에 안 나오지만 딸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얘기는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더구나 이 집안은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는, 당시로서는 아주 상류층은 아니나 중산층 중에서도 윗길을 차지할 만큼, 식모를 두고 마누라가 청와대에 초청받을 정도로 유복한 집이었다

그런데도 부모의 기대에 따른 형제간의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돈이 없어서 장남만 가르치고 차남은 팽개쳐서 생긴, 가난한 60년대 집안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능력있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하는, 자의식을 잃어버린 형제들의 갈등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상당히 현대적인 소설이다

시대배경은 60년대지만, 주제의식은 바로 21세기에 있다

그래서 내가 깊이 공감하는 것이리라

 


 

촌놈에 관한 정의도 마음에 들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남이 자기 무시할까 봐 어설픈 치기와 자존심으로 버티는 마초의식 강한 놈들

촌놈의 반대는 쿨함이 아닐까 싶다

스타일은 돈을 쳐 발라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감정의 세련됨까지 익히기는 참 힘들 것 같다

컴플렉스와 자기방어로 똘똘 뭉친, 편견과 독선과 아집 강한 촌놈들

사실 내 모습일수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서울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서울에 산다고 감정의 세련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 영준이 비록 촌스러움의 대명사인 전라도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인 세련됨, 즉 쿨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쿨하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은희경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일 것이다

냉소적이고 사랑을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순정보다는 비웃음을 택하는, 그러나 삐딱하기 보다는 세상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한 절반쯤만 적응하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다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결코 그 기질 때문에 손해보지는 않는 영악스런 캐릭터들

나처럼 감정의 과잉에 빠져 사는, 거기다가 맨날 손해만 보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닌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도 촌놈에 불과한가?

그래도 소설 속에 묘사된 촌놈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를 원하면서도 진짜 주류가 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안정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지향하는, 사실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매우 강한 사람이고 보면, 마초같은 촌놈들과는 또 일정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영우의 모습은, 어쩌면 동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다르겠지만, 거의 흡사하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고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능력이 부족한 자식으로써 말이다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패륜아가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최소한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버려 뒀을 경우 진짜 의미의 서민층이 될 사람들이다

의사들이 자조적인 의미로 나도 서민층이다, 하는 그 위선적인 서민 말고 말이다

 

영우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급 공무원이나마 안정된 직장을 잡게 해 준 아버지 정욱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사실 정욱이 한 그 청탁을 아빠도 동생을 위해 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꾸 동생에게 화를 내고 불안해 한다

정욱은 원래 건설업자로써 관공서 공사 따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청탁이나 연줄 같은데는 토가 텄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알음알음으로 얼마든지 하급 공무원 같은 건 끼워 넣을 수 있는 혼란기였다

아빠가 흔히 하는 말, 세상이 바꿔졌다는 건 바로 그 청탁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얘기와 통한다

동생은 아빠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형이었다는 식으로 분노와 서운함을 터뜨리는 영우를 보면, 동생이 아빠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나 역시 텍스트를 통해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두 형제의 삶을 내려다 보기 때문에 정욱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일 뿐, 실제 상황에서라면 더구나 내 경우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영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영준은 학창 시절 내내 아버지가 원하는 장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 번도 마음대로 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우등생 모범생 컴플렉스가 그를 짖눌렀다

반면에 영우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 때문에 결국은 제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고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산 것처럼 보인다

내가 너처럼 사람을 패서 병원비를 달라고 해 봤냐,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해 봤냐, 넌 아버지가 나에게 뭐든 다 해 줬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기 때문에 해 준 것일 뿐이었다는 영준의 절규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결국 끝까지 아버지를 외면한 것도 영우가 아닌 영준이었다는 점에서, 영우보다 영준의 마음에 더 큰 상처가 있음이 분명하다

어찌됐든 영우는 아버지 덕에 하급 공무원이나마 하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마지막 임종까지 지켰다

그러나 법대를 장학금 받고 들어간 영준은, 결국 아버지로부터 도망가 장례식 때나 나타날 정도로 완전히 아버지와 담을 쌓았다

그래서 영준은 가정도 이루지 않았다

 

정욱의 교육법은 옳은 것일까?

능력있는 영준에게는 완전히 틀린 것이고, 모자란 영우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결과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영우는 한 번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본 일이 없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우처럼 살다가는 낙오되기 십상이고 아버지 정욱 역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영우의 방황을 처리해 준 것이리라

그러나 결국 두 아들 모두에게서 진정한 이해를 받지 못했으니 불행한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자식과 부모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은희경은 또, 가족주의에 대해 슬쩍 건드려 본다

사실 소설 전체를 놓고 본다면 마을 청년들이 죽인 L의 집안과 주인공 정씨네 집안, 그리고 경쟁자 최씨네 집안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세월이 주제다

그렇게 서로를 미워 했건만 오히려 더욱 질긴 인연으로 묶여, 조부 정성일이 멍석말이로 죽인 L의 딸은 끔찍히도 귀하게 여기던 자신의 큰아들 재욱과 결혼했고, 막내 정욱은 또 원수 같던 최씨네의 외동딸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는다

세 집안에 드리워진 운명은 박수무당이 예언했던 것처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집단으로만 존재하는 한국인들, 특히 공동체가 아닌 그렇다고 개인도 아닌 가족으로만 정체성을 찾는 한국들인들의 혈연주의가 너무 버겁고 힘에 겹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는 도저히 자식을 나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끔찍하리만큼 질긴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에 발을 딛기가 두렵다

 

영준이 사랑했던 사촌 누이 명선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사생아인 또다른 명선의 이야기는, 사실 소설에서 방향 제시만 할 뿐 큰 역할을 못한다

소설에 삽입된 영화 역시 그저 영준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걸 드러내 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 점이 좀 아쉽다

은희경이 죽은 사촌 명선이나, 이복동생 명선이의 이야기를 플롯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거나, 영화 내용을 보다 개연성 있게 꾸몄다면 훨씬 재밌는 소설이 됐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이 불만인 모양이다

물론 나는 은희경이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어쨌든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독자에게 불친절 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녀의 문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새의 선물이나 마지마 춤은 나와 함께 등에 비교했을 때 재미가 떨어진다고 불평들이 대단하지만, 오히려 평론가들은 이번 작품을 더 높히 쳐 준다는 것만 봐도 그녀의 문학적 내공이 깊어 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자기 고향이기도 한 고창, 소설 속의 K 읍에 대한 묘사력도 대단하고, 영우와 영준, 아버지 정욱 등의 심리 묘사도 놀랍다

맨 마지막에 두 형제가 상대에 대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따옴표도 없이 줄도 안 바꾸고 쭉 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설전을 이어가는 그녀의 필력에 정말 놀랬다

너무 마음에 들어 따로 옮겨 놨다

더불어, 조감독의 촌놈 타령도 아주 마음에 든다

인간의 위악성을 파헤치는 은희경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왕세자빈 - 영혼의 한중록
마거릿 드래블 지음, 전경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을 무척 읽고 싶어했다

인현왕후나 혜경궁 홍씨처럼 한많은 조선 시대 여인들의 심리를 현대적 문체로 풀어 놓은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고 좀 지루하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소설 한중록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기분과 비슷하다

영국인 작가가 심리 묘사를 꽤 꼼꼼하게 잘 하긴 했는데 심리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만약 사도세자가 왕이 됐다면 혜경궁 홍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조가 조선 시대 왕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도세자가 즉위했다면 조선 후반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보나마나 노론과 왕의 기싸움으로 바람 잘날이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영리하게도 노론을 슬슬 구슬리고 위협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던데 반해,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치적 능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세자 시절부터 노론의 미움을 받아 모든 신하들을, 심지어 장인네 집안까지 적으로 돌릴 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혜경궁은 복이 많은 여자다

궁에 들어가자 마자 겨우 열 여섯의 나이로 세손을 생산했고, 비록 그 아이가 세 살 때 죽고 말았으나 바로 임신을 해서 또 정조를 낳아 대통을 확실하게 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또 두 딸을 낳았으니, 사도세자와 금슬이 비교적 좋았던 것 같다

하긴 항상 아버지 영조의 억압에 시달리다 보니, 부인과는 동지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이 있었음은 확실하다

영조 역시 가까운 사람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분노와 애정을 쏟은 걸 보면 정신병리학적 이상이 있었을 것 같다

아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봤던 것일까?

 

화평옹주나 화완옹주가 늘 예쁘다고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미인이었던 것 같다

사도세자나 정조의 초상화를 보면 과히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선희궁이 영조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선희궁은 스스로 왕에게 아들을 죽여 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비정한 어머니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면 아들에 대한 마지막 희망까지 버리고 차라리 세손이라도 보전하자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사도세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장인인 홍봉한네 집안도 어지간 했으면 세자와 손을 잡고 다음 정권을 준비했을텐데, 홍봉한 스스로 뒤주를 갖다 대령할 정도 사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버렸다

사위 편에 서다가는 자기 집안이 완전히 멸문지화 될 거라는 공포에 떨었을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6-08-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님의 리뷰 보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닉네임이 분명 바뀌었는데 누구실까 한참을 생각했답니다. 헤헤. 별님 댓글보구 나나님인줄 알았어요~~~ 반갑습니다.

marine 2006-08-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잘 지내고 계셨죠??
근데 좀 지루하긴 해요
시도가 새로워서 읽어 볼 만 합니다

미친여편네 2007-09-1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중록은요,, 혜경궁홍씨 그 미친 여편네가 자신의 가문을 복원시키려고 쓴 소설일뿐입니다!! 실제로 한중록과 영종기사를 비교해봤을때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뭐? 세손을 살리려고 희망을 버렸다? 노론계인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였겠지요!! 말도 되도 않는 헛소리 쓰레기인 한중록입니다!!

marine 2007-09-2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디와 똑같은 내용의 댓글이네요 역사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