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울게 하고 나는 세상을 웃게 한다
알리 아크바르 지음, 이채련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복잡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가볍고 유머 감각이 있다.
나귀님의 페이퍼에서 발견한 책인데,  리뷰가 많이 달려 있길래,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어 다급히(?) 읽게 됐다.
나귀님이 지적한 책의 한계를 나도 느낄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신파조고 잘 된 에세이로 보기에는 전체적인 수준이 한계가 있다는 것) 그 점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재밌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오히려 저자의 약력을 생각한다면, 즉 파키스탄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열 두 살 때까지 배운 게 전부이고, 프랑스로 이민와서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프랑스어로 이만한 에세이를 썼다면 나름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저자도 밝힌 바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유머가 있어서 좋다.
내가 보기에 알리 아크바르라는 사람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 같다.
모험심도 뛰어나고 재치가 있다.
약간 이상한 점은, 알리가 무려 30년이 넘게 프랑스 땅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데도 여전히 체류증 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귀화가 어려운 걸까?
불법 이민자라서 그런가?
강대국이 약소국의 이민자들을 좀 넓게 포용해 주면 안 될까?
더군다나 프랑스는 과거 식민 지배라는 과오까지 저질렀지 않은가?
불법 이민자들 덕분에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자국민이 안 하는데 뭘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제한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민자 수용이야 말로 선진국의 도덕심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프랑스도 자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무조건 프랑스 국적을 부여하는 모양이다.
그런 줄 알았으면 알리의 큰 아들도 프랑스에 와서 출산했을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나머지 네 명은 모두 프랑스에서 출산해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으나 큰 아들만 외국인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큰 아들이 겪는 상처가 꽤 큰 모양이다.
아버지가 유명해졌으니 선처를 해 주면 참 좋을텐데...

제 자식만 최고라고 여기는 부모들이 하도 많아 이거야 말로 이기주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들 하나씩만 낳기 때문에 지나치게 정성을 쏟는 걸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보면 자식도 많이 낳을 뿐더러 그 자식을 매우 함부로 대한다.
우리나라 역시 60년대에는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교육도 못 시키는 집이 많았다.
때리는 아버지와 감싸는 어머니의 대립구도는 60년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지는 걸까?
알리의 아버지 역시 큰아들 알리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가출을 했을 때 거리에 발가벗겨 놓고서 행인들에게 침을 뱉어 달라고 부탁했다.
본인의 자서전이 아니라면 믿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명예살인 문제는 이 책에도 등장한다.
파키스탄은 자식의 배우자를 부모가 결정하기 때문에, 만약 여자가 연애를 하다 들키면 아버지나 오빠에 의해 살해당한다고 한다.
집에서 쫒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죽여 버린다니, 이 문제는 아무리 문화적 상대성을 들먹인다 해도 (이슬람은 평화와 평등의 종교니 어쩌니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재밌는 것은, 알리가 아버지에게 그토록 모욕과 구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신문팔이로 번 돈을 집으로 송금했다는 사실이다.
딸도 아니고 아들이 말이다.
이런 것만 봐도 알리가 얼마나 착실한 청년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이었고 자기도 다리 밑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집에 돈을 송금한다.
파리에서 신문팔이로 번 돈을 파키스탄까지 보내다니!!
알리는 이슬람교도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결혼 전까지 혼전순결도 지키려고 애쓴다.
배를 타는 선원 생활을 하면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무척 착실한 청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알리가 파리에서 비록 신문팔이이긴 하지만 자리를 잡고 책까지 낸 데에는 이런 성실한 태도가 밑받침이 됐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내 아지자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을 큰 명예로 생각한다.
아이가 다섯이나 되니 바깥 일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여자가 일하는 것을 남편의 무능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알리네 가족은 절대적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 서구 여성들의 직업 활동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페미니즘도 계층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신문팔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직업인지라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가판대에서 신문이나 주간지 사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신문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사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리는 르 몽드가 쉬는 날이면 자기가 쓴 책을 직접 팔러 다닌다고 한다.
벌써 5천부나 팔았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생활력이 아닐 수 없다.
겨우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 밖에 받지 못한 사람이, 외국 땅에서 외국어로 이만큼의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가 보통 이상의 지적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튼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고 여전히 신문을 팔러 다닌다고 하는데, 인세 많이 받아서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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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좀 식히려고 빌린 책이다
보통 내가 읽는 책들은 독서대에 책 올려 놓고 커피 준비하고, 노트와 필기구 갖춘 후, 책갈피까지 있어야 하는, 이를테면 정독을 요하는 책인데 지하철 안에서까지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좀 가볍게 읽어 볼까 하고 빌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감동받고 있다
옛날에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눈물 줄줄 흐를 만큼 슬플 때만 썼는데, 요즘은 작가 생각에 100% 공감하고, 글솜씨에 감탄할 때도 쓰게 된다
어찌 보면 감탄보다 더 많은 찬사를 보내는 말이, 날 완전히 감동시켰어, 이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조지 오웰, 이 사람 마음에 쏙 든다
벌써 대문호 반열에 오른 (솔직히 괴테나 톨스토이처럼 사람 주눅들게 하는 위대한 성인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고전으로 남을 만한 책을 쓴 작가이니 나 같은 평범한 독자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대세에 아무 지장도 없겠으나, 그러나 정말 나를 감동시킨다
이 사람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총들고 참전했다는 게 충분히 믿어진다
난 가끔 번역서가 일상의 자잘한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전달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큰 줄거리라면 모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장력기 훌륭하다면 번역해서 읽더라도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난에 대해 이렇게도 상세하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그러나 이렇게도 재미나게 묘사할 작가가 또 있을까!!
작가각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고,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배고픔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묘사했다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그건 정말 추상적이다
이 사람의 다른  책, "동물농장" 도 정말 재밌게 읽은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인데 이 소설도 참 맛깔스럽다
문득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 보고 싶어진다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가난에 관한 얘기라는 게 짐작이 간다
가난, 언제나 비루하고 끔찍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을 떠올리는 단어지만 위대한 작가에 의해 묘사되니 그것도 나름 매력적으로 들린다
물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소크라테스는 배가 덜 고팠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얘기하는 가난이란 책을 사 볼 돈은 물론 며칠을 굶어야 하는 절대 가난을 뜻한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삶도 위대한 작가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쓰면 나름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게 살짝 위안이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위로받고 재미나게 생각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언제쯤 이런 극도의 가난을 겪어 봤을까?
저자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잘 매치가 안 된다
아마 내가 책을 끝까지 안 읽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첫 부분에 저자가 나중에 부자가 된다는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접시닦기는 노예의 노예라는 식의 재치가 번득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가득한 이 책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원어가 아닌 한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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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지오웰 좋아하는데 이 책은 못봤군요.

marine 2007-06-1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몰입이 안 되서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곧 빠져 들게 됩니다 유머와 위트가 풍부한 작가죠 강추~~

비로그인 2007-06-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의 글을 읽기 전에는 조지 오웰의 가난이 절대치라고 믿었는데, 그만큼이나 생경스러우면서도 천연덕스러웠어요. 마지막 생각,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번역도 매우 매끄러웠습니다.

하이드 2007-06-1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읽고 그 식민주의적 사고관에 역겹고 불콰했답니다.위선적으로 보였거든요. 그 이후로는 조지오웰책 거들떠도 안보고 있긴합니다만... 더 읽어봐야하나 싶습니다.

marine 2007-06-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어로 읽을 수 있는 Jude님이 부러워요~~ 님 말씀처럼 번역도 잘 한 것 같아요
하이드님, 확실히 이 사람은 식민주의적 사고관이 있는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 살짝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뭐,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드님도 English로 읽으시면 좋을 듯... ^^

숲노래 2007-06-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 님 이야기는, 이분 책 번역을 곧잘 하고 있는 박경서 님이 낸 <조지 오웰>(살림,2005)을 살펴보시면, 퍽 낱낱이 아실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아늑한 삶하고는 평생 거리가 있는 채로 살다가 죽은, 그러니까 죽은 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빛을 본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 분이지요.
 
제인 에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0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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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밌는 연애 소설을 읽은 적이 있던가?

소설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근래 읽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소설은 마치,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 아래 숨겨두고 읽었던 로맨스 소설 같다

물론 그 재미나 수준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옛날부터 로맨스 소설을 별로 안 좋아했다

신데렐라에 대한 환상이 없어서인지, 도무지 소설 속의 모든 완벽한 조건들에 동화되지가 않았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주인공, 뭐든 척척 잘 해내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다만 돈이 없다는 게 유일한 흠인데 그것마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돈 많고 성격 좋은 남자가 채워준다

대체 이런 일이 현실에서 가당키나 하냔 말이지...

그런 거부감 때문에 완벽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언제나 흥미 밖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 너무 완벽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인 에어, 과연 그녀는 19세기 영국의 일반적인 여인이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현대적이고 너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정말 이렇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자가 19세기에도 가능했을지 나로서는 참 신기하다

내가 생각하는 당시 여자들은 매일 파티에 나가서 부잣집 남자 고르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던지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리즈의 어머니처럼)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어 노동에 치여 사는 그런 피폐한 여자들 뿐이었다

내 상상력의 빈곤인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는 샬롯 브론테의 놀라운 창작력인가?

그녀 역시 사립학교를 세우려고까지 한 걸 보면,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결혼도 죽기 1년 전, 그러니까 서른 여덟 살에서야 한 걸 보면 아마도 독신으로 살 결심도 했을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그녀의 일생을 잠깐 훑어 보면, 목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나 위로 두 언니는 기숙학교에서 죽고 만다

제인 에어에 나오는 로우드 학교가 바로 이 기숙학교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로우드 학교는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세워진 자선 학교인데 형편없는 식사와 엄격한 규율 때문에 학생들이 숨막혀 하고, 발진 티푸스가 돌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사망한 끔찍한 학교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로우드 학교를 창조해 냈을 것이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당시 현실을 이해는 하지만, 기숙생들의 발육에 지장을 줄 정도로 형편없는 식사를 제공하는 자선학교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그 이사장은 학생들을 굶기는 것이 극기를 배울 수 있는 길이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샬롯 브론테는 종교적 근본주의자, 혹은 원리주의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 대목에서 보여 준다

무조건 하나님을 갖다 붙이면 된다는 생각, 인간 사회의 관습이나 상황 등은 초월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 정말 치떨리게 싫다

또 이런 생각들이 중세 암흑기를 낳고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소설 속의 근본주의자들만 비웃을 게 아니다

우리 역시 명분과 논리에 휩싸여 마치 그것이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지고지순한 것이라도 되는 양 상대방을 공격한다

얼마 전 알라딘에서도 확인한 바이다

특히 정치적인 논쟁이 붙었을 때 나중에는 대체 저런 쓸데없는 말싸움을 왜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말을 위한 말,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들, 그러나 상대의 가슴에는 비수가 되는 날카로운 언어들...

 

내가 제인 에어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그녀의 날카로운 지성과 독립심 때문이다

보통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외모가 기본 조건이라도 되는 양, 하나같이 예쁘고 눈부시다

그러나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에게 눈부시 외모 대신 강인한 의지를 부여한다

벌써 이것부터가 얼마나 현대적인지 모르겠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고 오히려 괴롭히는 사람들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상상적인 캔디 캐릭터가 요즘도 난무하는데, 제인 에어는 부당한 처사에 단호하게 대응한다

또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한 살 때 양친이 죽은 후 외숙모 집에서 구박을 받고 살았던 중요한 이유는, 먼저 그녀의 외모가 예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쉽게 기가 죽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귀여운 애가 말을 안 들으면 그래도 귀엽게 봐 줄 수 있는데 못생긴 애가 떼를 쓰면 정말 얄미워 쥐어 박고 싶어진다

아마도 반항할 수 없는 어린 아이라는 사실 때문에 무자비한 억압을 쉽게 생각해 낼 것이다

제인 에어는 남의 집에 더부살이 하는 주제에 못생기고, 거기다가 어른들에게도 자기 주장을 펴는 당돌한 꼬마애니, 천성적으로 귀여움 받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외숙모와 사촌들의 구박에 못 이겨 로우드 자선 학교로 떠난다

그러나 그 학교에서 받은 육 년의 교육은, 제인을 훌륭한 숙녀로 변모시키고 (비록 식사는 형편없었지만) 2년 간 교사로 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시 한 번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만약 그녀가 외숙모 집에서 계속 구박덩어리로 자랐다면 아마도 성깔만 있는 형편없는 여자로 전락했을 것이다

 

제인은 매우 강한 여자다

로체스터와의 결혼식 날 아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단호하게 돌아선다

가정교사로 근무하면서 얻은 월급, 결혼식 때 받기로 한 패물을 모두 버려둔 채 조용히 몸만 빠져 나간다

비록 로체스터의 아내가 갇혀 지내는 광인이고, 또 그가 제인을 몹시 사랑했지만 정부로 사는 것은 그녀의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

과연 나라면 미치도록 사랑하는 남자를 단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단념할 수 있을까?

그것도 결혼식 바로 직전에 말이다

더구나 제인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가난뱅이고 로체스터는 비록 스무 살이나 많긴 하지만 매우 부유한 신사다

또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갈망한다

오, 제인, 넌 정말 대단하다

나라면, 나였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 앞에서 이성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차라리 돈 앞에서 양심을 지키는 편이 쉬울 것 같다

 

제인이 로체스터의 재산은 단 한 푼도 갖지 않고 그의 집을 빠져 나간 후 죽음 직전의 기아에 허덕인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로체스터는, 비록 나와 결혼하지 않더라도 떠난다는 얘기나 하고 갔으면 내 재산의 절반을 떼어 줬을텐데 왜 말 없이 갔냐고 원망한다

로체스터로서는, 자기 목숨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돈 한 푼 없이 낯선 곳에서 헤맸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제인이 얼마나 순결하고 도덕적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녀로서는 로체스터를 떠나는 이유가, 그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로체스터의 호의에 기댄다면, 자기 양심에 비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ㅇ르 것이다

 

어쨌든 너무 순결한 이 아가씨는, 생판 모르는 곳에 버려진 후 사흘간 기아에 허덕이다 죽기 직전까지 간다

너무 배가 고파 음식점에 들어가 구걸도 해 보지만, 그것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입도 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누구도 그녀에게 음식을 내주지 않는다

더구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숲 속에서 잠을 자다 보니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샬롯 브론테는 이 죽음같은 기아와 공포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난 지금도 굶어 죽는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풍요의 시대에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무서워 소름이 쫙 끼칠 정도였다

정말 내가 동전 한 푼 없이 거리에 버려진다면 나에게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친척도 아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이라면?

당장 외국 땅을 생각하면 된다

만약 내가 영국 땅에 버려진다면?

아, 정말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잊고 지낸다

 

2권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책이라, 나는 제인이 로체스터와 맺어질 지 아니면, 원리주의자 세인트 존과 맺어질지 못 견디게 궁금해 몇 번이나 마지막 장을 열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지만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는 없으므로 꾹 참고 또 참으며 다음 장을 넘겼다

솔직히 나는 로체스터와 다시 연결될 줄은 몰랐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제인이 선교사와 결혼해 떠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건 아닌데,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읽었다

그녀의 외사촌으로 밝혀진 세인트 존은, 비록 그리스 조각상처럼 잘 생겼지만, 인도로 선교 사업을 떠나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 원리주의자 목사다

가끔 나는 선교 사업하는 분들이 위대해 보이면서도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었다

이런 말 함부로 하면 그들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으나, 세인트 존 같은 원리주의적인 열정이 어느 정도는 작용할 것 같다

원리주의의 특징은 신념이 너무 강하다 보니 모든 것을 그 신념에 맞춰 해석하고 남을 재단한다

쉽게 말해 나에게 그렇게 엄격하다면 타인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겠는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는 격언은, 사실 지키기 어렵다

왜냐면 인간은 보통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과 나를 구분해서 보기가 매우 어려운 까닭이다

하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만약 제인이 신앙심 때문에 인도로 선교 사업을 떠났다면 아마도 세인트 존의 그 강압적인 신심에 부응하느라 너무 많은 일을 한 나머지 일찍 죽었을 것이다

제인은 몹시도 가냘프고 작은 여인으로 나온다

어쩌면 샬롯 브론테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이 가엾은 작가는, 서른 여덟에 결혼한 후 임신한 채 그 다음 해 죽고 만다

그녀 역시 목사와 결혼한다

현명하게도 제인은, 세인트 존의 강압적인 신심에 함몰되지 않고 용감하게 로체스터를 찾아 떠난다

이미 눈이 멀고 한 팔을 잃은 불구였지만, 아내가 죽은 후였기 때문에 제인은 떳떳하게 그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

 

최고의 번역이라는 광고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문장이 참 매끄럽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반어법이라든가 심리 묘사를 참 잘 구사한다

문장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라든지 위선적인 부분을 어찌나 잘 꼬집어 내는지 허걱 놀래면서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다

위트가 풍부하고 특히 위선적인 행동을 풍자하는 솜씨가 놀랍다

그리고 매우 신심이 깊었을 것 같다

문장에 인용되는 성경 어구들이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아마도 작가의 신앙심이 많이 투영된 듯 하다

또 이런 신앙심이 일반화 된 사회였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선교사들도 많이 파견됐을 것 같다

가난뱅이 제인이 있는지도 몰랐던 외삼촌의 재산을 갑작스레 상속해서 부자가 된 점만 빼 놓고는, 별다른 우연의 요소도 없고 모든 설정이 훌륭하다

또 부자가 된 것을 두고, 이제 나도 독립적인 여자가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독립적인 여자, 남편이나 친척의 재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여자, 이렇게도 명쾌한 부자의 정의가 또 있을까?

 

제인은 갑자기 생긴 2만 파운드를, 그의 또다른 외사촌들 세 명에게 공평하게 분배한다

요즘 물가로 계산해 보면 만약 나에게 20억원의 유산이 느닷없이 생겼는데 만난지 한 달 밖에 안 된 사촌들에게 5억씩 나눠 줄 수 있을까?

그런데 내 동생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들에게 갖는 신뢰감과 애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제인 역시, 그 사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기아로 죽어가기 직전 구해준 후 따뜻한 애정을 베풀어 줬기 때문에 선뜻 나머지 만 오천 파운드를 건네 줬을 것이다

사촌 중 한 명인 세인트 존은, 갑자기 부자가 됐는데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선교사로서 적합할 거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이런 제인의 태도야 말로 그녀를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만드는 점이다

 

너무 재밌게 읽고 많은 생각을 한 책이다

아마도 제인 에어라는 캐릭터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의 좋은 멘토가 돼줄 것 같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가 이렇게도 현대적인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샬롯 브론테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다

더불어 유종호씨의 번역도 정말 훌륭했다는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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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07-01-2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코 빠지셨군요. 전 제인 에어만 보면 엘리자베스(오만과 편견)가 떠올라요. 분명 다른 케릭터일 텐데... 마린님의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에 대한 구별 멘트가 궁금해지네요.
근데 제인에어 '2'라는 건?

marine 2007-01-2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 1,2권으로 나눠졌어요 1권에는 리뷰가 하도 많길래...^^
그리고 마린이라는 발음이 예쁘네요, 블루마린 보다는 마린이 더 듣기 좋네요^^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 모두 각각 한 권의 책 밖에 안 읽어봐서 매우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오스틴이 더 속물 근성 표현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식으로 하자면 좀 더 베스트셀러 작가답다고 해야 할까요? 일단 주인공들 미화를 안 하잖아요 속물근성이나 위선적인 면, 특히 심리 분석에 탁월하고.... 반면 브론테는 훨씬 더 기독교적이고 단아한 스타일이죠 그래서 더 반듯하고... ^^

다크아이즈 2007-01-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훙, 이렇게 명쾌할 수가. 제 머리에서 웅웅대던 걸 마린님 (이제 이렇게 불러도?^^*)이 정리해주니 이해가 쉽네요. 그럼 난 오스틴에 한 표!

marine 2007-01-2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오만과 편견" 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 나온 앙증맞게 생긴 이미지와는 달리, 책을 읽어 보니 꽤나 말썽피우는 대책없는 개였다
독특한 이름의 말리!
만약 내가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감하면서 읽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튼 이야기와도 비슷한 맥락인데, "파리에 간 고양이" 가 반려동물에 대한 넘치는 사랑, 즉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 못할 유대감과 강한 애착을 표현했던 책이라면, "말리와 나" 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겪어야 할 문제점 내지는 고생을 리얼하게 그려줌으로써 모든 애견인들에게 위안을 준다
마치 그래도 우리 개는 말리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 존 그로건씨는 아예 말리에 대한 자랑은 포기하고, 내 개가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다고 고백해 버린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못한 강아지를 키우는 저자의 고생과 가슴앓이에 많이 공감했고 또 굉장히 겸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튼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고 가장 훌륭한 고양이라고 거품을 물고 자랑하는 피터 게더스씨가 잘난 척 한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의 책은, 애견인들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양면성을 각각 따로 풀어 쓴 책이다
그래서 전혀 상반된 입장의 두 책에 모두 120%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이 책에 더욱 많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게, 내가 키우는 세 살짜리 요크셔테리어 똘이가 워낙 애를 먹여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똘이는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세 번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우리 식구들의 애간장을 녹인 개다
그래도 말리는 어디가 심하게 아픈 건 아니어서 다행스럽다
말도 못하는 짐승이 자기 아픈 걸 표현도 못하고 낑낑대면 우리는 또 그 개가 왜 괴로워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안타깝다
속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개 한마리에 온 식구가 절절 매냐면서 갖다 버리라는 사람도 있었다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죽으면 다른 개 한 마리 키우면 되지 않냐는 거였다
그 말은 마치 애가 죽으면 다시 하나 낳으면 되잖냐는 말과 같이 들린다
이미 우리 식구들과 강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똘이는, 결코 어떤 존재로도 대치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데,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는 그저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리는 아마도 과잉행동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무리 먹어대도 절대 지방이 붙지는 않고 죽는 날까지 매우 튼튼했다
반면 우리 똘이는 아플 때 워낙 식구들이 뜻을 받아 줘서 버릇이 나쁘게 들었다
아파트에 사는데 식구들이 나갈 때 마다 짖는 건 기본이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안으려고 하면 물기도 한다
앉아, 일어서 같은 고차원적인 훈련은 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워낙 몸집이 작은 견종이기 때문에 말리처럼 말썽을 크게 피울래야 피울 수가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렇지만 솔직히 말리처럼 큰 개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그로건네 집이 부럽다
대부분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한국에서는 말리 같은 대형견을 키울래야 키울 수가 없다
말썽을 피워도 좋으니 큰 개를 길러 볼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역자 역시 이런 대형견을 키울 수 있는 미국인들의 넓은 주거 환경을 부러워 한다

말리의 온갖 실수담과 말썽 피우는 걸 읽으면서 생명을 기른다는 건 희생을 각오하고 책임을 지는, 즉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마냥 좋기만 하고 마냥 기쁨만 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또 그런 불편을 감수할 각오가 안 됐다면 그건 아직 개를 키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런 준비 없이 막연히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개를 키우다 보니 유기견들이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섣불리 인터넷에서 무료분양을 원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걱정이 된다
개 한 마리를 키우려면 드는 돈은 말 할 것도 없고,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그것도 1,2 년이 아니라 10년이 넘게 키워야 하는데 과연 어린 학생들이 키울 능력이 될까 염려스럽다
당연히 부모의 동의를 얻어 일정 부분은 부모가 책임을 져 줘야 하는데 막연히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데려오고 보는 무책임한 태도가 수많은 유기견을 양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것 같다

말리의 노화와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단 당장 키우는 우리 개와 비교를 하게 됐고 언젠가 우리 똘이도 말리처럼 죽음을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개가 사람처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오래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껏해야 10년을 조금 넘는 수명은 늘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가슴아프다
또 넓게 생각하면 인간 역시 언젠가는 죽게 된다
지금은 함께 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가족도 언젠가는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당장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그렇고 아빠 엄마 역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죽음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든 올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면 노화는 또 어떤가?
나 역시 말리처럼 관절염으로 다리를 제대로 못 쓰고 이빨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한 쪽에 축 늘어져 있는 그런 늙은 시절이 분명히 올 것이다
육체의 늙음이란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인지...
아직은 노년을 생각하기엔 너무 젊지만, 가끔 이런 노년의 우울함을 기록한 책을 읽을 때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어떻게 노년을 맞을 것인가도 잘 생각해 볼 문제임이 분명하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에 걸맞게 문장력이 괜찮은 책이라 마치 소설을 읽듯 술술 읽었다
노튼 이야기에 비해 문장력 면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노튼 이야기가 세 편의 책으로 나눠져 시간차를 두고 에피소드 중심으로 쓰여진 데 비해, 이 책은 한 편의 완결성을 가지고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하다
양도 400페이지나 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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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1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파리에 간 고양이" 노튼도 그렇고 말리도 결국 안락사 시켰잖아요 정말 안락사 밖에 답이 없는지 참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책 사면 머그잔 주나 봐요?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라...^^

marine 2006-10-2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덜 서운하네요^^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노튼과 피터의 만남을 담은 첫 권을 읽은 뒤, 다음 권은 뻔한 얘기의 반복일 것 같아 마지막 권을 먼저 집어 들었는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주제가 담겨져 있어 많은 생각을 했다
애완동물이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한 마리 더 사면 되죠"
그 말은 꼭 딸이 죽은 어머니에게 한 명 더 낳으시죠,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다
물건은 대체될 수 있을지 몰라도 (물건 역시 내가 애정을 쏟아 부으면 그 때부터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것이 된다) 생명을 가진 동물은 절대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굳이 그 고생을 해 가며 애완동물 따위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노튼은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개나 고양이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려면 고양이 나이*4+16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 공식에 따르면 노튼은 80세니까 적정 수명을 다 누리고 간 셈이다
물론 자연사 했으면 좋았으련만 간암으로 1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다가 갔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피터씨에게 고양이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고양이가 보통 고양이인가?
두 권의 책까지 쓰게 만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타 고양이가 아닌가
실제로 노튼이 죽었을 때 뉴욕 타임즈는 부고 기사까지 냈다고 한다

 

노튼의 마지막을 돌본 수의사 다이안씨는, 애완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유일한 단점은, 인간 보다 먼저 죽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반대로 생각한다
수명이 사람만큼 길다면, 즉 내가 애완동물 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면 남겨질 동물 때문에 쉽게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마치 아직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말이다
난 애완동물이 충분히 내 보살핌 속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체의학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사람에게만 대체의학이 있는 줄 알았더니, 동물들에게도 대체수의학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역시 미국은 대단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연식을 먹이고 약초 등으로 치료를 하는 것 같다
노튼이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후, 피터는 암 전문의에게 (고양이 암 전문의라니! 미국 수의학의 세분화에 깜짝 놀랬다) 화학요법을 받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대체의학자에게 약초 등으로 치료를 받게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일반 수의사가 고양이에게 불친절 하고 사무적인 반면, 대체의학자는 매우 친절하고 정서적으로 교류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나는 늘 왜 환자들이 입증되지 않는 위험한 이론에 자신을 맡기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약간은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질병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질병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약해진 몸과 마음을 함께 추스려 줄,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 주는, 소통이 가능한 치료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낱 키우는 고양이에게만 불친절 해도 화가 나는데, 자신의 몸을 다루는 의사가 자신을 사람이 아닌, 조치를 가해야 하는, 고장난 자동차 쯤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누가 진료를 받고 싶겠는가?
치료의 효과라는 효율성을 떠나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보다 인간적인 관심을 가져 줄 필요가 있다
나는 대체의학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환자에게 보이는 전인적인 관점, 스스로 병을 이겨내게 도와 준다는, 환자가 주체가 되게 하는 인간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하는 바다
피터가 대체의학 얘기를 꺼내자 의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암 전문의 같은 이는, 들을 필요도 없는 미신이라고 일축한 반면, 노튼을 어린 시절부터 돌봐 온 트레츠키나 다이안 같은 이는 그런 방법도 있겠네요 하면서 관심을 보인다
누가 더 성숙한 의사인지는 금방 알 것이다

 

책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 또 하나의 이야기는 피터의 결혼관이다
독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 피터의 독신 라이프는 관심을 갖게 만든다
1권을 출판한 후, 피터는 항의 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잠자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확실히 미국은 유럽과 또다른 느낌이다
청교도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고 하던데, 새삼 확인한 기분이 든다
1권에서 진실한 사랑의 단계에 접어든 피터와 재니스는, 그러나 노튼이 죽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애인 관계다
그렇다고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집에서 각자 생활을 하면서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스위티 홈을 이루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도 다양한 형태의 삶을 인정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터와 재니스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길 빈다

 

내가 키우는 똘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기 때문에 아직은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날이 올 것이다
피터처럼 책으로 낼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똘이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조금씩 기록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언젠가는 우리 식구 곁을 떠날 똘이,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랜 시간 함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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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2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성숙하게 이별을 맞이했다고 하더라도 전 이 책 읽을 자신이 없어서, 1,2권만 사놓았답니다. 큰맘먹고 리뷰 읽은걸로 대신할래요. ^^

DJ뽀스 2006-09-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은 읽었고 2~3권은 천천히 읽으려구요. 노튼때문에 고양이도감에서 귀접힌 스코티쉬폴드 고양이 찾아봤는데 정말 귀엽더군요.

marine 2006-09-2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전 아직 똘이가 어리니까 마치 남의 일인양 읽었답니다^^

DJ 뽀스님, 천천히 야금야금 읽어도 참 맛깔나는 책 같아요 저도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많이 바뀌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