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진화를 주도하며 우리를 더 영리하게 만들어왔는가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라 지루할까 봐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긴 복문으로 이어지는 번역투의 문장들 때문에 가독성이 다소 떨어져 좀 힘들게 읽었다.

요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매끄러운 한국어 문장으로의 번역이 내용 전달에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실험적 증거들은 다소 어려워 건너 뛰기도 했다.

책의 핵심은 문화-유전자의 공진화이다.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면 인종차별 내지는 남녀차별이 먼저 생각나는데 이것이야 말로 유전학을 잘못 이해한 일종의 유사과학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근본적으로 매우 단일한 종이지만, 여러 민족들이 속한 공동체의 사회규범과 문화적 관습에 의해 다른 심리 기제와 행동양식을 발전시켜 왔고,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유전학과 생물학을 혼동하면 안 될 것 같다.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는 종래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문화-유전자 공진화의 관점에서 반박한다.

과학적 주장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인간은 문화적인 종이고 이것이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생명체로 만들었다.

문화적 종의 가장 큰 특성은 집단두뇌와 상호협력이다.

뛰어난 개인이 있다 해도 혼자서 혁신을 계속 이뤄낼 수 없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 있고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지식을 습득하고 개인적 경험과 재조합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 낸다.

요컨대 한 집단이 쌓아 올린 집단 두뇌를 모방을 통해 잘 습득한 후에 비로소 또다른 혁신이 가능하고 그것이 종 번식에 유용하다면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문화의 핵심은 바로 누적 진화에 있겠다.

집단을 이루고 살려면 사회규범이 필요한데 이기적인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상호협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호혜의 의무를 내제화된 본능으로 설명한다.

내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사회규범으로 억압하여 상호협력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게끔 진화해 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도덕이나 양심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판단력이 종의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내제화된 본능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언어는 인간의 성공에 오히려 부차적인 요소이고 서로 협력하는 과정이 먼저이고 자연스럽게 언어가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앞서 읽은 <크로마뇽인>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가 언어가 발달하지 못해 문화적 노하우를 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다.

음성 언어가 발달해서 사회적으로 협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본성이 언어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성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게 해 왔음에도 오늘날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것은,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성들의 공격적인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폭력적 성향이 증가되어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 방향이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가 강제로 정한 것이 아니라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안정적인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그러한 배타적인 짝짓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일부일처제가 본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매우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꺼운 책이고 번역서라 가독성이 다소 떨어졌지만 문화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 아니라, 우리의 매우 핵심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다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집단에 함몰되어 사회규범을 지키는 것보다 좀더 개인의 가치와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사회와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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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마뇽 -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현생인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수민 옮김 / 더숲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읽는 과학책이고 너무너무 재밌었다.

좋은 책은 내용의 수준과는 별개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조상인 크로마뇽인, 그리고 그 주변을 수만 년간 함께 지켰던 조용한 이웃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멋진 서사시가 펼쳐진다.

제목은 크로마뇽인이지만 절반은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라져 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먼저 유럽으로 가서 오랫동안 빙하기를 이겨내며 번성했으나 4만 5천년 전쯤 크로마뇽인들이 건너오면서 점점 사냥 영역을 뺏기기 시작했고 갈수록 혹독해지는 빙하기를 견디지 못해 멸종하고 만다.

저자는 이들에게 "조용한 이웃"이라는 표현을 썼다.

네안데르탈인들은 10만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소수의 무리를 지어 찌르는 나무창을 이용해 사냥을 하면서 생존해 왔다.

이들을 조용한 이웃이라 부르는 이유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성 표현은 가능했겠으나 크로마뇽인들처럼 구체적으로 감정이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지 못했고 정보 교환이 안 되어 기술적 혁신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혹독한 빙하기에서는 살아 남았으나 훨씬 똑똑한 이웃이 아프리카를 건너오자 결국 자신들의 영역을 내주고 변방으로 쫓겨나 멸종하고 만다.

저자는 크로마뇽인들이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로 기술혁신과 더불어 영적 믿음을 꼽고 있다.

동굴 벽화로 대변되는 이들의 예술적, 종교적 활동은 서로 협력하면서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인간은 협력할 줄 알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생존할 수 있었고 언어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함께 추구하면서 격려했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과 종교적 속성은 수십 만년의 빙하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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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이라 불리는 사기
에트차르트 에른스트 지음, 강석하.김현우 옮김 / 과학과세상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앞서 읽은 <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 보다 한 발 더 나간 강경론적 입장의 책이다.

앞의 책은 대체의학이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다면 플라시보 효과 측면에서 나쁠 건 없다는 쪽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거짓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한다.

현대의학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대체의학의 존립 근거가 될 수 없다.

의학은 근거를 가지고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대체의학은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근거라고 제시하는 것들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허술한지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SCAMDMS So-called Alternative Medicine 의 약자, 간단히 말해 scam, 곧 사기다.

저자의 명확한 관점이 돋보이지만 대중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일 저명한 지지자로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나온다.

역시 방송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처럼 덜 떨어진 인물이었다.

왜 여전히 대체의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일까?

여전히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원래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대체의학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 주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쉽게 수용되는 듯 하다.

현대의학의 복잡성은 의과대학과 전문의 과정을 10년 넘게 수료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인들에게는 잘난 척 하는 배타적 집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환자 선택권이라는 것은 책에 나온 표현대로 토론에서는 이길 수 있는 논리로 쓰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환자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함을 인식하고, 의료인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인과 관계가 입증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임상에 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서도 느끼는 바지만, 대중의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진리를 어떻게 대중에게 잘 알리는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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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 - 자연치료라는 달콤한 거짓말
폴 오핏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구미에 딱 맞는 책이었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300 페이지가 채 못 되는 분량으로 쉽고 편하게 읽힌다.

의학과 의료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인 만큼 그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대체의학 산업도 아주 활발해 사회적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어려서는 미국에서도 동종요법과 침술 등이 인정받는다고 하면 내가 모르는 의학적 의미가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미국은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공평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나라였다.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으니 옳다는 주장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체의학의 범주에 한의학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인상깊다.

혈자리니 경락이니 하는 소리는 그저 치료사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언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피부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든 우리 몸의 엔돌핀이 분비되어 몸이 이완되어 치유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라 비싼 돈을 들였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플라시보 효과인데 저자는 이것이 의학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환자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줄 수 없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야 한다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의 작동 기전에 대해 신체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대체의학을 찾고 카리스마 있는 무면허 치료사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치료사들의 특성은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매우 강하고, 환자에게 1:1로 접근하기 때문에 신뢰감이 높다.

물론 뛰어난 상술가이가도 하다.

저자는 대체의학 종사자들이 거대 제약회사를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도 보건 당국의 감시는 환자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빠져 나감을 지적한다.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고 보건 당국의 규제와 감시를 수용한다면 적은 돈으로 환자들이 큰 부작용 없이 위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인정할 수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고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 운운하는 제품에 절대로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자궁경부암 백신이 도입되어 청소년들에게 무료 접종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원가 자체가 매우 높은 편으로, 개인이 돈을 내려면 십여 만원이지만 국가에서 무료로 접종해 주면 맞는 게 당연히 이익이다.

그러나 인터넷 괴담이 돌아 불임이 된다는 둥, 근육마비가 온다는 둥, 지능 저하가 된다는 둥 보호자들의 두려움 때문에 접종률이 매우 낮다.

예방접종으로 자폐가 됐다는 괴담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저런 국가 예방접종은 국민의 세금으로 무료 공급이 되는데 정작 사람들은 제약회사가 국가와 결탁해 이익을 올린다는 의혹만 사고 있으니 이래서 작은 정부가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책표지에 나온 말이 주제를 함축한다.

"대체의학은 없다. 치료하는 의학과 치료하지 못 하는 의학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이런 말도 추가하고 싶다.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은 없다.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있을 뿐이다"



<인상깊은 구절>

13p

나는 전통적인 치료 방법들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더라도, 대체의학에 무임승차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치료에 동일하게 높은 시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책의 목적은 대체의학 분야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검토하고, 사실과 미신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전통의학, 대체의학, 보완의학, 통합의학, 전일론적 의학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려낼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신중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채팅방이나 잡지 기사 혹은 친구와의 수다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37p

기원전 2세기에 중국의 치료사들은 질병이 에너지의 불균형에 기인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치료사들은 살갗 아래에 여러 개의 가느다란 침을 놓음으로써(침술) 이 불균형을 치료했다. 그러나 중국의 의사들은 인체 해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신경이 척수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신경이 뭔지도 몰랐다. 척수가 뭔지, 뇌가 뭔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들은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마치 강이나 노을처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해석했다. 중국의 의료진들은 인체의 에너지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12경락을 관통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중국에 12개의 큰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라고 하는 생체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음과 양이라고 하는 경쟁적인 에너지 사이의 정상적인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 경락선을 따라 피부 아래에 침을 놓았다.

51p

여드름과 자폐증에서부터 궤양과 하지정맥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병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러준다. 낱낱의 모든 일에 올바른 방법과 잘못된 방법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더구나 이 책들은 사람에게 걸릴 수 있는 모든 질병들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굉장히 단정적이고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해 놓아, 거의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 바 없는 열렬한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하면 더 오래 살고, 더 깊이 사랑하며,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자녀를 키우리라. 인생이란 본래 제멋대로에 어디로 튈지 모르며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 이런 책들을 읽으면 상당한 위안을 얻기 마련이다.

 대체의학의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냉담하고 무심해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한 사람의 개인이기보다는 숫자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틈새를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파고들어 온 것이다.

96p

FDA 국장은 건강기능식품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열거된 도표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처방약의 절반은 식물이 원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약물이 우리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고는 누구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엄격한 테스트를 고집함으로써 허용할 수 없는 독성물질이 포함된 약물을 가려내기 때문이지요. 식물이 치료 목적의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상황에서 모든 위험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00p

이 법은 주요 재료들 -비타민, 무기질, 허브, 아미노산- 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해 아무리 인공적으로 만든 제품이라 할지라도, 제조업체들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르면 그냥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예컨대, 약이나 음식에 새끼 양의 뇌를 넣으면 안정성과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년에 걸쳐 연구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에 이것을 넣으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순조롭게 허가를 받게 될 것이다.

103p

건강기능식품 산업은 관련 법아니 건강을 위해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믿도록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했지만,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지한 상태에서 누리는 자유일 뿐이다. 아는 게 힘이라면, 건강기능식품 건강교육법은 아무런 힘도 주지 않는 것이다.

120p

"효과 있는 대체의약품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이라고 불립니다."

173p

"과학적인 과정은 민주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는다고 과학적인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과학적인 사실은 증거의 질, 증거의 영향력, 증거의 재현성과 관계된다.

226p

"뇌 손상은 일단 그 원인이 제거되더라도 증상이 당장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제닝스와 부타르 박사는 제닝스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 킬레이션 치료만 받았는데 건강이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36시간 안에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이 회복 과정이 나에게는 그녀의 증상들이 무엇보다 심인성이었다는 단적인 증거로 보인다."

229p

결정적으로 역설적인 점은 부타르가 자신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허가도 받지 못한 약품을 팔아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대형 제약회사를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의 동기는 연구개발에 자금을 대는 것입니다. 그래야 독점권을 챙길 수 있고 또 그래야 거약의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뉴요커>의 기자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는 대형 제약회사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대형 플라시보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241p

노벨라는 침술이 그 자체로 가짜, 속임수, 사기라고 믿긴 했지만, 침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그는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침술은 치료사의 위로와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치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의식이다. 환자들은 30분 내지 1시간 동안 긴장을 이완시킨다. 바로 이때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사실상 피부 속에 침을 찔러 넣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다분히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사소한 것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43p

침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상충되는 사실에 부딪친다. 1)침술은 인습적이지 않다. 2)침술은 비싸다 - 한 번 침을 맞는 데 65달러에서 120달러의 비용이 들고, 자주 여러 차례 맞아 하며, 종종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 갈등을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은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인지부조화 이론' 이라고 불렀다. 이 이론에 대한 가장 좋은 예로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를 들 수 있다. 여우는 포도가 실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킴으로써 이 갈등을 해결한다.

245p

대체의학 치료사는 독특한 분위기가 주는 치유력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좋은 치료사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당신이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찾아왔다면 당신은 곧 낫게 될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왔습니다. 결국 이건 사실상 침술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료는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블로는 이렇게 썼다. "환자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주지 못하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249p

첫째, 침술은 속임수다. 침술사들이 정직하다면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침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2천 년 동안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을 모두 무시하자. 사실 중국인들은 해부학을 믿지 않았고 신경계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중국의 강과 음력에 기반을 둔다는 그릇된 가정을 하게 되었고, 피부 속으로 되는대로 침을 찔러 넣게 된 것이다. 기나 음과 양, 경락을 무시하라. 피부를 살짝 찔렀다가 다시 나오는 침을 사용해도 침술의 효과에는 변화가 없다. 침술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엔도르핀은 충분히 분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뱉는 순간 플라시보 반응이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침술사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음, 양, 기에 대한 심상이 치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플라시보 반응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의 필수 요소가 속임수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생명윤리학 교수 아트 캐플런은 플라시보 약물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과 낮은 부담으로 환자를 속이는 것은 윤리적이다. 그렇지만 먼저 그들은 의학 보고서에 자신들의 의료 행위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플라시보 효과가 강력하다는 사실을, 어떤 것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의학이 플라시보 효과를 가장 잘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고해야 한다."

(과연 이렇게 양심적이고 지각있는 대체의료 치료사들이 있을까? 그 정도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의학에 종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266p

"전일론 의학 치료사들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깊이 전념하는 경향이 있어 유능한 사업가가 되기 어렵다는 견해는 거짓임이 밝혀졌다. 머콜라 자신은 '탐욕에서 비롯된 의료 분야의 모든 과장 광고'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는 가짜 약장사로 유명한 1800년대의 불행한 전통인 자신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전통적인 마케팅이며 인터넷 직거래며 할 것 없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판매왕이다."

268p

"의학이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대체의학 제품들을 가까이할수록 결국엔 의학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가 왕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신봉한다. 물론 나는 의료도 일종의 산업이며 대체의학이 산업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의학과 대체의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전문가적 규범과 전문가적인 가치와 전문가적인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의료는 시장에 불과하고 환자는 고객일 뿐이며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외친다면, 결국 고객의 요구 앞에 전문성이 무너지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우리는 환자가 유혹에 약하지 않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를 도와줄 전문성으로 똘똘 뭉친 지지자가 없다면 좋은 환자가 되기 어렵다.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울 치료사들만 득실거릴 것이다."

270p

애석하게도 마법적인 생각은 해가 없지 않다.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의학적 지식의 격차는 에너지장이나 경락이나 점성술이 아니라, 이른바 과학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기준 아래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채워지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무지,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부정을 조장한다면 환자들은 질병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어 마침내 최악의 돌팔이 의사들에게 쉽사리 걸려들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과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과학만능주의라며 진리를 공격하고 현대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폄훼한다. 의학은 가치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란 사실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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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란 무엇인가 - 우리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대니얼 록스턴 지음, 김옥진 옮김 / 두레아이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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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제목만 보고 어린이 책인줄 모르고 신간 신청해서 어린이 열람실에서 빌리게 됐다.

겨우 55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진화에 대해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어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스켑틱이라는 잡지에서 나온 책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진화는 품종 교배를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도 계속 보고 있다.

가축이나 농작물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대가 짧은 동식물을 원하는 형질끼리 교배시켜 인간에게 유용한 특성을 지닌 종으로 바꿔 오고 있다.

같은 종이란 간단히 말해 교배하여 후손을 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DNA가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연 돌연변이가 발생하는데 생존에 유리할 때는 더 많은 후손이 살아 남아 그 특성을 전달시킬 것이고, 불리한 돌연변이라면 후손을 남기지 못해 사라질 것이다.

진화는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라 조금씩 수정하는 땜질 과정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이런 차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 교배가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분화하게 된다.


<인상깊은 구절>

25p

다리가 네 개라는 계획은 진화를 통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증된 기본 계획을 통해 일단 확립되면 고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화는 대부분 그저 생물을 땜질할 뿐입니다.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말은 발가락 다섯 개에서 한 개로 진화했는데, 인느 말을 훨씬 더 크고 빠르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말의 다리는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네 개입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종은 급격하게 재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저 최신판으로 고쳐진 것일 뿐입니다. 공통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적인 몸의 기본형식(체제)를 둘러싼 작거나 중간 정도의 수많은 변화인 이런 땜질 효과가 바로 지금 가동되고 있는 진화의 수리 공장입니다.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양서류는 크기, 형태, 색깔이 다 다르지만 뼈대는 같은 방식으로 한데 조립되었습니다. 이들 모두 앞쪽에서 머리, 뒤에 꼬리, 팔다리 네 개, 눈구멍과 턱이 있는 두개골, 유연한 척추, 장기를 보호하는 갈비뼈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비슷한 이유는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양서류는 모두 아주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하나의 기본적인 몸의 형식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그런 몸의 기본형식을 여러 번 땜질하여 생쥐, 벌새, 코끼리만큼이나 서로 다른 동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벌새의 날개 뼈도 육상동물의 다리뼈를 수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28p

진화는 먹고 마실 필요가 없는 동물, 또는 어딘가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필요가 없는 동물처럼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물리학과 공학의 균형은 또 다른 한계를 안겨 줍니다. 

46p

많은 동물들이 나무에서 삽니다. 그런데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어떻게 벽돌처럼 그대로 뚝 떨어질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다음 얼마나 멀리 떨어지거나 뛰어내릴지 어느 정도 조절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상상해 보세요. 

 다람쥐 같은 동물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대담하게 나무에서 나무로 뛰어다닙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람쥐 같은 포유류들은 몸을 활짝 펴고 낙하산처럼 내려옴으로써 떨어지는 것을 늦추는 최소한의 능력을 발달시켰습니다. 몇몇 동물에게서는 더 나아간 '진화 도약'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다리 사이에 펼쳐지는 피부판을 써서 우아하게 활공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은 하늘을 나는 것이 거의 마술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날아다니고 활공하는 것은 자연에서 놀랄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 인간이 이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행기와 같은 형태의 발전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진화는 동물의 왕국의 수많은 생물에게 날 수 있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50p

모든 나무들이 지금 높이의 딱 절반 크기라면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절반 크기의 나무 모두 지금과 정확하게 똑같은 양의 햇빛을 받겠지만 키가 크게 자라는 데 에너지를 그렇게 많이 써 버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동식물이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모든 것은 자신이 차지한 작은 풀밭 위에서 그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바삐 일합니다. 나무들은 그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나무를 해치는 일일지라도 말이죠. 그 결과 모든 나무들은 자원의 상당 부분을 높이 자라는 데 쓰게 됩니다. 심지어 키가 작은 게 숲 전체에 더 나은 경우에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듯이 "너무 무의미하고 너무 낭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자연입니다. 자연선택은 완벽한 세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자연선택은 수십만의 개별 생명체들 모두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맹렬히 경쟁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선택은 엄청나게 낭비가 많은 관계를 낳기도 합니다.  이 거대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경쟁은 놀랄 정도로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균형을 잡습니다. 종들 사이의 경쟁이 길고도 긴 무승부로 잦아들 때, 이를 '생태적 균형'이라고 말합니다.

52p

과학은 자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발견이 정신적인 의미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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