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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사 이야기
박용숙 지음 / 예경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김영나 교수의 <20세기 한국 미술> 읽다가 뒷편 날개에 소개됐길래 같이 읽게 됐다.
요즘 나온 책들은 책날개 홍보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유용한 책 선택지 중 하나다.
현대 미술은 참 어렵고 직관적으로 공감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팝 아트나 색면회화 정도까지는 색채가 주는 감정의 고양을 경험할 수 있어 그럭저럭 감상할 수 있는데, 설치미술, 특히 비디오 아트나 대지미술, 아르테 포베라 여기로 넘어가면 평론가들의 설명에 전혀 공감이 안 된다.
말을 위한 현학적인 말장난 느낌이 강하게 들어 거부감이 생긴다.
과연 작가들은 평론가들의 철학적이고 난해한 사고방식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 책에서도 모더니즘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 혹은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그러고 보면 동양의 전통적인 수묵화는 현대미술처럼 수단이 아닌 목적, 즉 기운생동이라는 정신의 표현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
형상을 똑같이 그려내는 사실주의가 아닌, 마음에 품은 정신을 표현하는 것, 김정희가 말한 "문자향 서권기" 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서구의 모더니즘이 곧 동양철학이냐,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동양의 선 정신을 표현함으로써 동서양 융합을 추구했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읽은 김영나 교수의 책에서는 오히려 백남준은 동양적인 것에 규정받지 않으려고 애썼고, 선덕여왕이니 이순신이니 하는 우리 위인들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것은, 한국의 컬렉터들을 위한 맞춤 제작이었다고 했다.
이 의견에 더 공감이 간다.
저자의 해석들이 당위적이고 표면적이라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1) <맹견도>를 김홍도 작품으로 추정하던데 다른 책에서는 서양화 영향을 받은 청나라 화가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김홍도가 정조의 명으로 일본에 건너가 시찰을 하고 사진을 찍듯 여러 그림을 남겼다는 상상의 나래가 첫 장부터 펼쳐져 신뢰도가 떨어졌다.
2)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나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을 두고 서양은 화가들이 직접 정치 일선에 나가 몸으로 체험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일제 시대 우리 화가들은 시대정신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다.
서양화가 처음 들어온 상황에서 배우기도 힘들었을텐데 화가에게 시대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과연 작품에 반드시 시대적 상황을 녹여 내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정치 선전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니 적당한 예가 안 되는 것 같다.
고희동의 자화상에 대해서도 시민적 자아를 흉내내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작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뜻일까?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외국 화풍을 모방하는데 그친 부분에 대해 비판하고 그 밑에 깔린 인문정신을 강조했다.
일제 시대는 서양화가 막 소개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시절이라 일본 화가들도 서구에서 배워온 것을 다시 조선인들에게 전수하는 시대였으니 따라하기도 바빴을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당시 화가들을 작가정신 혹은 시대정신이 부족한, 인문학적 사유가 결여됐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책의 특장점은 선명하고 많은 도판들이다.
미술 전문 출판사라 그런지 2003년에 나온 책인데도 도판 상태가 너무 좋다.
올 컬러이고 인쇄가 아주 잘 돼서 크기가 작은 게 아쉽긴 하지만 감상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본문에 나온 그림들도 거의 다 실려 있어 보기 좋았다.
현학적인 미술 이론들에 공감이 좀 안 되긴 했지만 한국 현대 미술을 전반적으로 훑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류>
401p
작품 <한국 여성사>에서는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광고판처럼 꾸민 거대한 설치물 속에 확대된 명성황후의 사진이 걸려 있다.
-> 사진 속 여인은 명성황후가 아니라 그 며느리인 순정효황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