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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 취향과 안목의 탄생
박은주 지음 / 아트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간만에 나를 고양시키는 책을 만났다.
제목이 약간 진부해 보여 몇 번이나 뒤로 미뤄뒀던 책인데 읽을수록 너무 좋고 가슴이 막 뛰는 것 같아 중간에 감상문을 남긴다.
표지 디자인도 세련됐고 편집도 참 보기 편하게 잘 만들었다.
책에 소개된 컬렉터들의 소장 작품들도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글을 참 잘 쓴다.
보통 인터뷰를 실은 책들은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이라 지루하기 마련인데 다양한 컬렉터들의 인생 철학이 조화롭게 잘 녹아들어 정말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 컬렉터의 에세이 몇 권을 읽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 지루했고 왜 컬렉션을 하는지에 대한 철학 같은 게 별로 드러나지 않아 별 감동이 없었는데 이 책은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컬렉터들의 인터뷰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 있고 또 그것이 독자인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슴이 막 뛰고 흥분된다.
작년 여름 휴가 때 파리를 갔었다.
대학교 때 가 보고 근 20년 만이지만 같은 곳을 또 가는 거라 큰 기대가 없었다.
먼저 들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암스테르담 등이 무척 좋았고 파리는 너무 유명해서인가 식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막상 파리에 도착해 여러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파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뉴욕은 오히려 서울 한복판 같은 빌딩숲이라 그저 그랬는데 파리는 과연 문화의 수도답구나 감탄의 연속이었다.
훌륭한 명화들을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진심 부러웠다.
이 책에도 주로 프랑스권 컬렉터들이 등장한다.
재벌 회장 같은 돈 많은 유명인이 아니라 작은 수입으로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중산층 수준의 예술 애호가들이라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물론 작품을 구매하려면 기본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책에도 중산층 보다는 좀 더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는 한다.
그렇지만 35평의 작은 아파트에 1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학 교수도 소개된다.
그 사람 말이, 돈이 없어서 컬렉션을 못하는 것은 핑계라는 것이다.
돈 많은 변호사 친구는 더 고가의 작품 구매 때문에 고민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한정된 자신의 예산으로 최대한의 안목을 발휘하여 훌륭한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수집벽이 없어서 얼마나 복받았는지 모르겠다.
특히 책은 설사 수집을 한다 해도 미술품에 비하면 턱없이 싸고 (천만원이면 500권은 구입할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무제한으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으니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다만, 나는 돈보다 시간이 문제다.
아까 그 교수는 자신의 수입의 25%를 작품 구입에 쓴다는 원칙을 세웠다.
나는 독서 시간의 확보가 가장 고민이다.
어떻게 책 읽을 시간을 만들 것인가?
돈 고민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보통 예술계는 자유로운 진보주의 좌파 성향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들을 후원하거나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적 소득이 있어야 하고, 예술적 안목을 가지려면 노동 외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하니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자본가 계급이다.
그런데도 예술가들은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것 같아 좀 의아하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반 고흐 같은 가난한 예술가는 역사책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고 대부분의 유명 예술가들은 아주 부유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린다.
그렇다면 미술은 궁극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순수미술이란 곧 귀족적이고 자본주의적인가?
마티스 박물관장이 유족들이 기증한 오려내기 작품들을 뉴욕과 런던에 순회 전시한 이야기가 나왔다.
뉴욕 여행갔다가 모마에서 봤던 바로 그 전시회였다.
신기하다!
서구 미술관들은 기증의 전통이 오래 되고 풍부한 것 같다.
고가의 유명 작품들만 기증하는 줄 알았는데 덜 알려진 작품들도 지역의 작은 미술관에 많이 기증하고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문화가 참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