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밑에 시디신 침이 고이고 있었다. 뜨겁고 아픈 덩어리가 식도를비집고 올라왔다. 목젖이 조여들고 뜨뜻한 물기가 속눈썹 뿌리까지차올랐다. 더 듣고 있다가는 물색없이 눈물을 쏟을 것 같아 허둥지둥눈을 떴다. 뜨자마자 공달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놈은 눈알을 사악하게 번득이더니 목을 쭉 뽑아 올리고 소리 질렀다.
"꺼져."
그렇지 않아도 꺼질 참이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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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친척도 조문객도 없이 승주의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에겐 알릴 수가 없었다. 연락처를 몰랐다. 어머니는 떠난 후 한 번도 우릴 찾지 않았다. 승주의 휴대전화에 지인이나 친구의 연락처 하나 없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승주는 세상과의 접점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 P41

나를 집안에 가둔 건 승주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삶의 불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도 아니었다. 불공평한 운명에 대한 분노 역시 아니었다. 그런 건 살고 싶어 할 때에나 생기는감정이었다. 살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가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 아무 생각도 없는 평화, 아무 감정도 일지 않는 평화. 새로운 평화주의 자아는 내게 밖으로 나가라는 훈계를하지 않았다. 집 안에 갇힌 나는 한없이 평화로웠다. - P45

옳은 말씀이었다. 신경을 끈다는 건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내 오감에 걸리는 상대의 모든 것은 무의미한신호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것은 편안한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작은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해야 할 때 가장 필요한 태도였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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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전의 삶이 싫었다면 다른 극장을 찾으면 그만이다. 점점더 행복한 삶을 찾다 보니 행복에 내성이 생겨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고달픈 삶을 택할 수도 있겠다. 도파민 평형을 되찾는 데 가장 유용한 전략이다. 쾌락 역치를 낮춰 사소한 즐거움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므로. - P20

"사람은 누구나 선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싶어 하지만, 나와 일할땐 그러지 말았으면 해요. 사소하고 부끄러운 기억이라도 숨기거나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뜻이에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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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섬으로 돌아가면서 어쩌면 리사와 나의어긋남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상대를 이해하고더 나아가 그런 점에서 슬프게도 서로를 믿고 있는 사이였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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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리는 여전히 비싼 자재라고 했다. 옛날에는 어떠했겠냐고. 한때영국에서는 집의 유리창 개수를 세어서 세금을 징수하기도 했다고 예를 들었다.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없애는바람에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는 거였다. - P251

"애들은 뭐라고 안 그래?"
"내가 시키면 애들은 잘 따르잖아. 한놈만 빼고."
"누구?"
"누구겠어요. 오태양 개는 만날 그러니까 포기해야 해."
"좀 슬픈 말이다. 사람을 포기한다는 말."
‘이모, 그렇게 마음이 약하면 어른으로 살 수가 없어. - P253

"이모는 하루 마감하면서 가끔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다행히 아무도 안 죽였습니다."
산아가 어이가 없는지 약간 웃었다.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묵하시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거니까."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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