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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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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빌 펄롱은 모친의 고용주였던 미시즈 월슨, 모친 사라, 그 존재를 몰랐으나(그를 제외한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늘 옆에서 그를 돌보아 주던 부친 네드의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자라나 연료를 판매 및 배달해 주는 야적장을 생업으로 꾸려 나가면서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을 둔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의 목표는 지극히 소박하고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이 시기 에 이웃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생업을 유지하며, 딸들이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 마거릿에 입학 및 졸업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말 그대로 불철주야 하루 하루를 도돌이표처럼 살아가고(혹은 견뎌내고) 있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 갇혀 번아웃 되어가던 펄롱은 당연한 듯 자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들, 다른 삶에 대한 가정과 갈망, 모든 욕구와 욕망을 거세 당한(또는 거세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근본적 회의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하루 하루 당연한 듯 주어지고 이어지는 자신의 일에 아주 충실하게 살아가고 그것으로 인해 그의 속은 더 곯아가게 된다.

 

기민하고 현실적이며, 직관이 뛰어난 아내 아일린은 그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이는 따뜻한 마음씨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는 그런 그녀에게 그의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없었고 항상 돈에 관련된 일상의 얘기로 그를 숨막히게 했는데,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 후 그에게󰡒나한테는 크리스마스 선물 뭐 줄지 정했어?󰡓 라고 묻는 대목은 그가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따듯한 위로를 건네 받지 못한 채 기브 앤 테이크에 기반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태위태하게 일상을 지탱하면서 소심하게 숨죽여 살아가던 그는 배달을 위한 수도원의 방문을 시작으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서 󰡐모두가 알고도 모른척 하고 있었던 거대한 악과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이에 맞서는 용기 있는 자󰡑로 변화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빠쁜데) 더 바빠진 펄롱은 최대 우량 고객인 수도원에 연료를 배달하기 위해 예정된 시간보다 이르게 그 곳을 방문하게 되는데, 방문객을 경계하는 거위떼와 경당을 윤이 나게 닦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자신을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 애원하다 화를 내는 아이의 모습에 충격은 받고 귀가하다 길을 잃지만 노인의 조언 을 듣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고민 끝에 침대에서 아일린에게 수도원에서의 일들을 털어놓지만 그녀는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라는 말과 이에 대해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고 반문한 펄롱의 물음에도 󰡒미시즈 윌슨은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고 당신 어머니와 네드가 필요해서 그랬을 분󰡓이라는 식으로 윌슨의 행동을 공감과 따뜻함이 아닌 󰡐가진 자의 여유와 필요󰡑정도로 평가 절하한다.

 

크리스마스 전 주 토요일, 수도원에서 다시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이를 배달하기 위해 펄롱은 어쩔 수 없이 일요일 새벽, 배달을 나가게 되지만 그날 따라 안락한 침대에서 아일린에게 위로받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 욕구와 막내 로레타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사업장 근처 여자의 도움을 얻어 물건을 싣고 수도원에 도착하게 된 그는 수도원의 석탄광에서 모자보호소에 자기 아이를 빼앗기고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중노동을 당한 채 힘겹게 하루 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사라 레드먼드(모친과 동명)를 만나게 된다.

 

󰡒14주 됐어요. 아기를 데려가 버렸는데, 만약 여기 있다면 다시 젖을 먹이게 해줄지도 몰라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묻는 그녀를 두고 고민에 빠진 채 수도원장을 대면하게 된 그는 이 상황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러운 언행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더러움이 있는 곳에 복도 있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수도원장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이 비칠 정도로 모든 물건이 반짝이는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지 않는 수녀들에 대한 분노로 인해 진실에 다가가고 싶은 용기로 바뀌지만 결국 수도원장이 건넨 돈봉투와 󰡒다들 곧 때가 되면 여기 학교에 들어오겠지요. 신께서 원하신다면요.󰡓 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사라를 놔둔 채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두 번의 수도원 방문 후 펄롱은 미사를 소극적으로 거부하면서 괴로워하다 저녁을 먹은 이후 네드를 보러 간다는 이유로 외출을 한다. 네드를 찾아간 집에서 그는 네드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사라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한 가지 부탁조차 거절한 채 미사를 보러 갔던 위선적인 자신에 대한 책망에 이르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째 가슴에 뭔가 얹혀있고 과로로 인한 감기로 시달려 정말로 일하러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펄롱은 수금을 하러 나가 다양한 선물과 인사를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같은 수준의 호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동질감과 소속감 확인을 위한 인사 치례󰡑(성냥팔이 소녀가 차고 넘치는 음식과 선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성냥을 사주지 않아 얼어 죽은 것과 같은)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느끼고 자신이 받은 것을 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일꾼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일과 종료 후 미시즈 케호의 식당에서 크리스마스 만찬을 베풀어야만 해서 괴로워하던 펄롱에게 미시즈 케호는 수도원에서의 일들을 물으며,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그에게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말하며 󰡒이 근방에서 잘 풀린 여자애 중에 그 학교 안 다닌 애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야.󰡓 라고 아일린과 동일하지만 애정어린 충고를 해준다.

 

괴로움을 뒤로 한 채 캐호의 식당을 나온 펄롱은 어린 시절 갖지 못해 눈물까지 보였던 농장이 그려진 500피스 직소 퍼즐을 사려 했으나 그러지 못한 채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은 후 네드가 친부임을 알 수 있었던 많은 단서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고 아일린에게 줄 구두를 산 후에도 쉬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다 결국 수도원의 석탄광 문을 다시 열고 사라를 데리고 집으로 가게 된다.

 

󰡐다 한통속이라는 것을󰡑잘 알지만 󰡒서로 돕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라는 내 마음 속의 소리를 들으며 미시즈 윌슨이 말과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이 합쳐져 자신의 삶을 이루었다는 생각과 그녀가 아니었다면 모친이 사라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확신과 나와 내 가족이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사라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다짐을 하면서 두렵고 비장하지만 희망차게...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정확히 예측했음에도 펄롱이 사라를 데리고 집으로 간 것은 왜일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아왔던 그가 한 순간에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모두(아일린 조차도)의 암묵적 동조 하에 벌어지던 일들을 모른 체 하던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처런 사소한 것들은 왜 펄롱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을까?

 

정의감? 의협심? 공명심?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해서? 아니라면 종교적 양심? 그런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 만으론 펄롱의 변화를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변화의 열쇠는 미시즈 윌슨과 네드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혹은 결론)이 든 건 열 번 정도 책을 읽은 후였는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무엇이었나를 나름 이해해 보는 과정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미시즈 윌슨은 집에 두는 것 자체가 망신스럽고 온갖 구설과 추문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펄롱의 모친(사라)과 네드(펄롱의 부친) 그리고 펄롱을 자신이 거두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살펴 주고 펄롱도 친손자처럼 양육해 주었다. 자상하면서도 엄격하게(비록 500피스짜리 직소 퍼즐을 사주진 않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도 일상 생활을 통해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윌슨은 왜 그랬을까? 아일린의 말처럼 세상 걱정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던 사람의 자선일까? 아니다! 그것이라면 일을 하게 해주고 급료를 지불해 주며, 숙식을 해결해 주는 선이면 충분하다. 굳이 펄롱의 결혼에 수천 파운드의 거액을 주거나 말과 글을 가르쳐 줄 이유나 필요는 없다.

 

측은지심이란 단어가 오랜 고민 끝에 떠올랐다. ‘어려운 사람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맹자가 강조한 4단 중 하나인데, 윌슨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거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고 쫓아내야 할 이유들만 가득한 펄롱과 그 부모를 그녀는 차마 내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게 시작이 되어 같이 살다보니 그 마음이 더 깊어져 펄롱에게도 애정을 쏟게 되고 펄롱은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근면하고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하나 어려운 사람들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과 함께 수오지심이란 단어도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자신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마음정도로 의역 가능한 역시 맹자의 4단 중 하나이다. 펄롱의 부친 네드는 홍길동(혹은 스타워즈)’ 이다. 자식이 직접 󰡒제 아버지는 누군가요?󰡓라고 물어도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묵묵히 그 사실을 숨기려 노력하는 동시에 은은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펄롱에게 다 해준다.


그는 펄롱에게 건초더미 무단 반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미시즈 윌슨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그리고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아마도 네드는 그 사건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너의 아버지다.’ 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감정도 담아서 펄롱에게 전달했을 것이라 유추해 본다.

 

펄롱이 측은지심수오지심을 품고 데려오게 된 사라는 어떤 의미인가? 그녀는 모친과 동명이다. 펄롱은 사라를 통해 그녀의 현재가 모친의 과거가 될 수도 있었다고 확신했고(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14주 된 아이의 현재가 자신의 과거가 될 수도 있었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게 된다.

 

사라는 수도원을 안정적으로 벗어나게 된 시내 중심가에 이르자 눈이 내린 길거리에 토를 하기 시작한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사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토를 통한 과거와의 작별과 새로운 삶을 향한 한 걸음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사라를 펄롱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구토가 날 정도로 어지럽고 역겨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날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관점에서 보든 과거와의 결별 및 새 출발이란 해석은 타당할 것 같다.

 

이제 가장 불편한 진실에 대해 묻고 답하고자 한다. 󰡐그 뒤 펄롱과 사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작가는 이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고(할 수 있었음에도) 이야기를 끝맺는데, 그 덕분에(?) 가장 중요하지만 불편한 상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사필귀정󰡑에 입각한 순리적인 전개였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일랜드 정부의 공식 사과가 2013년일 리가 없다. 40, 강산이 네 번 바뀌었을 동안 펄롱과 사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일단 그의 야적장은 가장 큰 고객인 수도원과 부자 고객들에게 손절 당하고 경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의 다섯 딸들도 세인트 마거릿 학교에서 퇴교 당하고 입학이 거절되었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선 아마도 버티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했을 것이고 펄롱은 다시 빈주먹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미시즈 케호를 비롯해 그를 신사라고 부르던 동네 사람들도 그를 배척했을 것이고 아내 에일린은 그와 이혼하고 그는 맨몸으로 사라와 쫓겨났을지도 모른다.(여기까진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작품 속 그녀는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로 서술되고 있다.)


시종일관 음울한 서술과 전개로 볼 때(심지어 펄롱이 사라를 데리고 나오는 순간에도 환희와 기쁨, 통쾌함 등의 감정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전혀 무리없는 상상적 결론이다. 아마 실제로 해당 사실을 처음 알린 누군가의 삶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펄롱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빠르게 태세전환을 했을 건 같지는 않다. 천리를 걷는 소의 걸음으로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새로운 삶을 향해 갔으리라...

 

우선 사라의 아이를 찾기 위해 수도원장과 대면했을 것 같고 사라의 집에도 찾아가 그녀의 부모를 만났을 것 같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기존의 인간관계를 재편했을 것 같고 미시즈 케호처럼 은근하고 은밀하게 그를 돕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미시즈 윌슨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간절하게 상상해 봤다.

 

펄롱의 삶은 출생부터 지독히도 불운하다. 2차대전 직후 폐허가 된 아일랜드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그런 기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가정도 꾸리고 경제적 기반도 탄탄히 갖출 무렵에는 극심한 경제적 불황을 견뎌내야 했다. 그의 조국은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더불어 영연방에 합병된 것을 계기로 이를 찬성하는 신교(개신교)와 이를 반대하는 구교(가톨릭)의 극심한 내전에 휘말리면서 말 그대로 내우외환의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그런 그가 평생 처음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하기로 결정한 일은 그 어려운 와중에 얻어낸 나타와 안정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그는 나비가 되어 사람들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엄청난 파도를 몰고 왔다. 불편한 진실에 불쾌해 할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를 매도하고 짓밟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펄롱의 날개짓으로 인해 다른 펄롱이 나타나 날개짓을 반복하면서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대로 상황은 전개되어 갔을 것이다.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니?󰡑󰡐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는데, 다 소용없어.󰡑라는 냉소와 혐오 그리고 조소는 늘 존재해 왔고 그로 인해 우리는 좌절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펄롱처럼 그런 억압과 감시를 뚫고 날개짓을 하는 나비들 덕분에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상식과 정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종교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땀과 눈물을 착취해 더러운 곳에서 오래도록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자 하고 정치(그리고 국가)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이는 대신 울지 말고 나를 위해 나가서 일하라고 등을 떠미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펄롱은 그런 시대와 우리에게 바닥짐 같은 존재이다. 배가 기울지 않고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게 바닥에 둔다는 그 짐은 값 비싸거나 귀중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게 없이는 어떤 배도 운항할 수 없으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펄롱이 스스로 바닥짐이 되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정했을 때, 모두가 안된다고 비웃고 조롱하며 방해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건 (아주 늦었지만) 2013년 아일랜드 정부의 공식 사과를 통해 증명되었다.

 

모두가 펄롱인 사회를 꿈구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라고 답하고 싶다. 모두가 펄롱이 되어야 한다는 건 그 사회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높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궁극적으로 나는 펄롱이 필요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소수의 펄롱에게 다수가 공감해주는 사회를 꿈꾼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감상문을 쓰기 위해 또 읽고 또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나와 이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알고 펄롱과 미시즈 윌슨, 네드, 사라, 미시즈 케호, 아일린, 수도원장 등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길 바란다.

 

그것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가끔 묻고 답하면서 더 살만한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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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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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내내 영화 매트릭스, 소설 1984와 멋진 신세계, 수용소 군도, 고도를 기다리며 가 떠오르고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우며, 현실과 꿈 속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몽환적인 작품이다. 작가가 초창기 시절에 구상했지만 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작품 설명을 읽었는데, 그 과정에서의 고뇌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나는 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그것도 시력과 그림자를 버리고 기꺼이 들어가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그림자에 대한 연민과 도시의 생활 방식에 대한 회의, 그림자의 권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탈출을 결심 및 강행하지만 다 와서 그림자 만을 보내고 마음을 바꾼다.


그림자가 탈출하고 난 후 30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주인공은 무미 건조하게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 지쳐 사표를 내고 직장 동료의 도움을 얻어 후쿠시마현 z**의 고야쓰(고인이 된 혼령)에 의해 전적으로 운영 및 유지되던 도서관의 관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고야쓰 전 관장은 못다한 일들을 정리(이는 필자의 추정)하고자 주인공을 낙점하고 시간이 허락되는 선에서 그를 만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자신의 개인사와 혼령이 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고백하며, 주인공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던 그에게 도서관의 단골 방문자인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다가와 생년 월일을 묻고 태어난 요일을 답해주는 과정을 계기로 직원 스에다를 통해 소년에 대해 알게 되고 친한(아주 상대적인 관점이지만) 사이가 되고 소년은 그에게 도시의 지도를 보내고 그는 그 지도를 정확하게 수정해 주며, 소년은 그에게 거기로 들어가고 싶으니 안내해 달라고 부탁한다.


오래된 꿈을 읽으며 사는 삶이 자신에게 맞는 것이라면서 도시로의 무단 전입을 시도하면서 결국 도시도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던 소년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그 도시로 간 것으로 추정 또는 그것이 유력) 모두와 도서관이 있는 마을(z**)과 소년의 가족들을 놀라게 하는 과정이 수습되면서 작품은 결말에 이른다.


생과 사, 육체와 그림자(또는 영혼), 현실과 꿈의 경계는 있는가 더 정확히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내 나름대로의 의문과 해답을 하면서 작품을 읽었다.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은 그냥 관성적으로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이 일을 또는 이 삶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찾고자 했던 의미를 읽어버린 채 표류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또는 굴레)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 또는 자신이 있어야 할 혹은 진정 있고 싶은, 거기서 하고 싶은 일들을 찾기 위한 과정 속에 겪어야 할 혼돈이 이 작품 속에 잘 드러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저쪽은 다른 나라(어딘지도 모를)가 아닐까, 버스를 타고 2-3시간 정도 가면 세계를 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대통령과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은 이제 그 당시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자식을 둘이나 두고 하루 하루 생존(실존이 아닌)을 위한 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그 시간들을 견뎌내기 버거워 하는 알 것 다 안다고 착각하는 40대 중년이 되었다. 내가 꿈 많은 어린이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다 어느 순간, 무언가의 이유나 계기로 다시 그것을 떠올리며 실존적 가치를 추구하고 책이 있는 아늑한 서재와 같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장소를 찾는 삶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있고 싶어 있어야 할 곳에서 하고 싶은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며 나는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러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기에 참 다행이라고 내게 주어진 삶의 굴레 속에서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이 작품 속 주인공이나 옐로 서브 마린 소년, 고야쓰 관장처럼 순간 순간에 전부를 걸고 후회도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지금 그리고 이 순간 만을 살자고 다짐하면서 나를 다독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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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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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글은 편하게 재미있게 읽혀 좋다. 과하거나 억지스런 설정이 없고 그냥 우리네 사는 그 시대의 모습들을 담백하게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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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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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면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사적 배경과 관련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올여름은 토지와 함께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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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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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소설의 무대는 남부이고 남북전쟁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들이 많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에 접근해 갈 수 있는 것 같다. 미소설 특유의 문체와 요구되는 인내력 또한 공통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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